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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전의 태국 유소년 축구선수들. 맨 왼쪽이 코치인 에까뽄 찬타웡세 | |
발견된 유소년 축구선수들. | |
선수들의 생존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가족. | |
구조되고 있는 유소년 축구선수. | |
11일 태국 공보부가 공개한 치앙라이 쁘라차누크로병원 병실에 입원한 유소년 축구단 선수들. |
사건 요약도 | ||
발생일 | 2018년 6월 23일 | |
발생 위치 | 태국 치앙라이주 탐루앙쿤남낭논국립공원 탐루앙동굴 | |
발생 원인 | 동굴 관광 중 폭우로 인한 수몰 및 고립 | |
실종 인원 | 13명 | |
생존자 | 13명 | |
구출자 | 13명 | |
사망자 | 축구팀 | 0명 |
구조대 | 1명 | |
경과 | 2018년 7월 10일 전원 구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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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국 치앙라이주 유소년 축구교실 "무 빠"(야생 멧돼지라는 뜻) 소속 소년 12명(당시 11~16세)과 유소년팀 코치 에까뽄 찬따웡세(25세)는 6월 23일 치앙라이주 북부에 위치한 탐 루엉 동굴에 들어갔다. 훈련을 마친 후 관광을 하기 위해서였다.탐 루엉 동굴은 직선거리로만 3.2km인, 태국에서 가장 긴 동굴로 인기 관광지 중 하나지만 내부가 미로처럼 복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엄청나게 구불구불한데다 중간중간 높이가 1미터도 안 되거나 사람 허리가 겨우 통과할 38cm의 좁다란 구간도 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오후 이들이 들어가자마자 시작된 폭우로 동굴 내 물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이들은 차오르는 물을 피해 더욱 더 깊은 곳으로 계속 들어갔고 결국 동굴 안 5km 지점에서 고립되었다.
태국의 우기는 6월 말이나 7월 초에 시작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들어간 것이지만, 이번 우기는 평소보다 약간 빠르게 왔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
결과적으로 전원 생환하였다. 이렇게 대규모 인원이 동굴에 조난됐다가 이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전원 구출된 것은 이 일이 최초이다. 다만 구조대였던 전직 태국 해군 특수부대 부사관이었던 자원봉사자 한 명이 사망했다.
2. 진행
2.1. 수색
소년들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날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겼고, 공원 수색대가 실종 정황을 발견했다. '탐 루앙 낭논' 동굴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공무원이 공원을 폐쇄하기 전 항상 수색 과정을 거치게 되어있다. 이런 수색 과정에서 한 공무원이 13대의 자전거와 가방, 신발, 핸드폰 등을 발견했고 실종자들이 모두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으나, 이미 침수가 위험한 수준으로 진행된 이후라서 구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출처 - '더 트랩트 13: 태국동굴 조난사건') 축구클럽 사무실에서는 실종자들을 찾아나서다 일찍 귀가한 실종자들 친구의 증언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고립 직전 코치가 페이스북에 동굴 안에서 선수들과 사진을 찍은 포스트를 발견하게 되면서 실종자들의 동굴 고립이 확실해졌고 관할 소방서에 신고했다. 그리고 태국 정부는 실종 이튿날인 6월 24일부터 태국 해군 소속 네이비씰 대원과 경찰, 소방대원, 육군과 해군, 해병대 소속 군인 등 1000명을 동원해 합동 구조대를 조직, 수색에 나섰다. 동굴 입구 근처에서 실종자들의 자전거와 신발 등을 발견했다. 특히 침수되었던 곳이기 때문에 해군과 해병 소속 잠수부들이 집중 투입되었다.이후 27일 미국 태평양사령부 소속 구조대원 30여 명을 시작으로 영국과 중국, 호주, 미얀마, 라오스, 독일, 이스라엘, 미국, 벨기에, 캐나다, 체코, 덴마크, 핀란드, 인도, 일본, 네덜란드, 러시아 등 전 세계에서 온 다국적 구조대가 수색 작업에 동참했다.
하지만 상황은 악조건 중의 악조건이었다. 위에서 설명했듯 엄청나게 길고 구불구불하고 좁은 동굴인데 거의 전 구간이 물로 차있는 상황에 기상도 좋지 않아 비까지 계속 내리다말다해서 수위도 오르락내리락했다. 좁고 긴 동굴 구조 탓에 유속도 급하고, 또 물이 혼탁했기 때문에 아무리 경험있는 전문 다이버들도 들어갈 때에는 6시간이 걸리고 나올 때에는 5시간이 걸릴 정도. 밑에 얘기할 "파타야 비치" 직전까지 구조대가 진입했다가 물이 불어나면서 다시 후퇴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물론 지상에서도 다른 출입구를 찾기 위해 태국 육/해군과 경찰/소방당국 특수구조대가 여러 산을 뒤지고 진입하고 땅을 뚫어가며 실종자들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입구부터 이어지는 통로를 이용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태국의 구조당국은 다른 곳으로 나올 만한 통로가 없는지 구조견에 드론까지 동원해가며 찾아봤으나 끝내 찾지 못한다. 동굴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뚫어서 구조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동굴 깊이가 산맥 밑 800~1000m에 달해서 석유/석탄 시추장비와 같은 채유/채광 산업용 드릴이 필요했고, 실종자들의 위치를 특정할 수도 없어서 어디를 뚫어야 할지 적절한 지점을 찾을 수도 없었다.
태국 광물자원부(DMR·Department of Mineral Resources)는 Esri Thailand 및 GIS 기업의 전문가에게 축구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지도 제작을 요청했다. 이에 지도 전문가는 수로 깔때기 역할을 하는 싱크홀을 찾고, 3D지도를 만들어 지상에서 물줄기가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지하로 흘러가는지 데이터를 해석하며 분석을 통해 수로 전환 옵션을 검토하고 모델링했다. 동굴 내 상당한 물줄기를 생성하는 근원지를 식별하기 위해 산림 피복 정보, 수치 표고 모델(DEM), 지질학적 특징을 이용해 배수 지역, 유수 방향, 흐름 누적값을 계산했다. 이를 통해 동굴의 북부 및 남부 지역으로 흐르는 2개의 중요한 수원을 발견했고 현장 작업자가 동굴 북쪽에 있는 싱크홀에서 가장 가까운 논까지 긴 파이프라인을 설치하여 물을 퍼내 동굴의 수위를 감소시킬 수 있었다.태국 동굴 소년 구출 작전의 숨겨진 조력자 ‘GIS’ 태국 중부 펌프 전문가들은 그 산에 올라가서 20여일 동안 펌프질만 하기도 했다고.
동굴의 물을 빼기 위해서는 어딘가에다 흘려보내야만 하는 상황인데, 결국 그건 산 밑일 수밖에 없었다. 수 킬로미터 길이의 동굴을 채운 엄청난 양의 물이 한꺼번에 동굴 밖으로 흘러 내려가게 되면 산 아래 쪽에 있는 마을의 농부들이 농사짓던 논이나 밭이 다 침수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농부들이 먼저 '잠겨도 상관없다. 물 다 뽑아서, 뽑을 수 있을 때까지 다 뽑아서 논을 다 망쳐도 상관없으니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물을 내려보내라'고 제안했다. 태국 정부에게 농사가 망쳐져도 나중에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결국 배수한 물을 내려보냈고, 태국 정부는 이를 나 몰라라 하지 않고 농부들에게 보상을 약속했다.#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은 구조 작업을 국가적 우선순위로 선언하고, 자원봉사자 약 1만명과 군인을 포함한 태국 노동자 2천명, 태국 네이비실 150명, 정부 관계 기관의 대표 100명 이상이 구조 작전을 지원했다.
한편 유소년 선수들과 코치를 포함한 13명은 동굴 천장과 종유석에 맺힌 물을 마시며 버티고 있었다. 코치가 소년들에게 움직임을 최소화해 에너지를 아끼는 한편, 동굴바닥에 흐르는 물 대신 천장에 맺힌 물을 마실 것을 권했다고 한다. 동굴바닥의 물은 위생상 나쁘고 물이 탄산칼슘을 함유할 가능성이 높아 배탈이나 질병감염, 결석증의 위험성이 높지만 천장에 맺힌 물은 의외로 깨끗하기 때문에[1] 이렇게 한 것으로 보이며 결국 자신을 포함한 13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들은 동굴에서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간식을 챙겨갔다. 애초에 동굴에 들어간 목적도 생일 파티였던 만큼, 열흘간 이 간식으로 버텼었다고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코치는 간식을 단 한입도 먹지 않고 오직 물만 마셔가며 버티는 정신력을 발휘했다. 하루 한 끼만 먹는 수도원 생활을 10년 동안 했다지만 열흘을 그렇게 단식한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다.
덧붙여 겨우 20대에 불과한 코치가 리더십과 정신력이 굉장히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생존 방법을 보면 코치가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최선의 수단을 강구해 구조를 기다린 것 같다. 코치는 소년들의 패닉을 막기 위해 명상이나 잠을 권유했으며 축구팀 구호를 외치게 하며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태어난 곳은 태국인데 태어난 직후에 가족들은 미얀마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부모가 병사하여 10세에 고아가 된 후 친척 아주머니에게 키워지다가 태국하고 미얀마 접경 지역에 있는 절에 맡겨져 출가해 승려가 되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미얀마에 계신데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서 스님 생활도 포기하고, 일주일 중에 하루 정도는 새벽에 미얀마 국경을 넘어서 미얀마에 가서 할머니를 돌보고 다시 돌아오고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사건 3년 전에 환속한 경력이 있다고 하며, 승려생활 경험이 동굴에서 버티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순번을 정해서 새로 땅을 파도록 했는데, 최대 5m까지 팠다. 생존을 위해 절박함에서 나온 행동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자체도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살릴 수 있던 것.
실종 열흘 만인 7월 2일, 마침내 동굴 입구로부터 약 5㎞ 떨어진 곳에서 실종자들이 발견됐다! 영국인 구조대원들 존 볼랜던과 리처드 스탠턴이 처음으로 발견했다. 상황이 굉장히 드라마틱한데 둘 중 한 명이 뒤따라오는 다이버들을 위해 동굴 내 가이드라인을 설치하는 도중에 줄이 다 떨어지자 잠깐 숨이나 돌리려고 물 밖으로 나왔는데 바로 거기에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발견될 당시 소년들은 사방이 물에 둘러싸인 작은 진흙 언덕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태국 해군이 이날 공개한 영상을 보면 소년들은 영국인 구조대가 다가오자 영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몇 명이 있냐는 구조대의 질문에 영어로 "13명"이라고 대답하고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구조대원에게 자신들이 동굴에 얼마나 있었는지, 언제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곧 후발 다이버들이 찾아와서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했고, 이 소식은 바로 밖으로 타전됐다. 발견 다음날에는 호주에서 온 마취의사 출신 다이버 리처드 해리스가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바로 살폈다. 당국은 의료진을 보내 실종자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에너지젤 등을 보내 영양을 보충하도록 했다. 이들의 첫 식사는 돼지고기와 쌀밥 그리고 우유였다고 한다.
치앙라이주의 나롱삭 주지사대리는 "일부 소년들이 가벼운 부상을 입긴 했지만 대부분 건강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날 동굴 밖에서 실종자들이 살아돌아오기만을 기도해온 가족들은 기쁨에 환호했다.[2]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도 "태국 정부와 국민들은 구조팀의 지원과 협력에 감사하고 있다"며 "모든 팀의 안전과 빠른 회복을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의 생존 소식은 태국은 물론 수색 상황을 지켜봐온 각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실종된 소년들은 해맑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아무래도 축구 선수들이라 그런지 구조대원들에게 현재 진행중인 러시아 월드컵의 결과를 묻기도 했다. 이에 축구 선수들 역시 소년들에게 보내는 응원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으며 FIFA 회장은 이들을 월드컵 결승전에 초대하였다. 그만큼 하루 빨리 구출되길 바란다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한다. 당초엔 구출 작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측되어 이 약속이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다행히 4강 전이 채 시작하기도 전에 전원이 구출되었기 때문에 구출된 사람들의 건강 상태에 따라 실제로 결승전 관람이 가능할 수도 있게 되었다. 구출된 유소년 선수들의 건강상태는 양호한 편이지만, 회복 기간을 고려해 월드컵 결승전 참석은 무산되었다.
2.2. 구조
고립 상황이 드러났다고 해서 동굴 탈출이나 구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굴 구조가 복잡하고, 하필 기간이 우기인지라 조난자 전원을 바로 구조할 수는 없었다. 폭우로 동굴의 수위는 높았으며, 산소 부족 문제도 심각했다. 태국 소방구조대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태국은 물론 미국과 영국·호주 등 다국적 구조대 100여명이 투입됐다. 현장에는 연인원 1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와 구조대가 참여했다.태국 정부와 구조대는 최악의 경우 우기가 끝날 때까지 4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4개월치 식량과 의약품 등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생존자들에게 잠수 교육을 시켜서 빼내올 계획도 세웠다.
생존자들이 있는 "파타야 비치"에는 조난자들 곁으로 의사 1명, 간호사 1명, 특수부대 5명 등 7명이 들어갔다. 그리고 여러 구조 대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담요와 식량이 들어가고, 전화선 설치도 성공해서 생존자들이 가족들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동굴에서 물을 시간당 1600만 리터 가까이 퍼내고 있지만 역부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위가 시간당 1cm만 줄어들고 이걸 하루 종일 중지없이 양수기를 작동시켜가며 퍼낼 경우 24cm. 그리고 동굴로 유입되는 물의 양을 생각해볼 때 아주 조금씩 수위가 줄어드는 정도다. 게다가 일부 봉사단체가 퍼낸 물을 다시 동굴의 지하수 수원(水源) 지대로 보내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나오려면 조난자들이 자력으로 잠수해서 오는 방법이 꼽혀, 조난자들에 대한 잠수 교육을 시작했다. 잠수마스크를 쓰고 숨쉬는 훈련부터 시작했다고 한다.[3] 구조대원과 선수들은 로프에 서로 연결됐다. 이 상태로 잠수와 수영, 걷기와 등산을 반복했다. 1명당 2명의 구조대가 붙어서 데려나올 예정이지만, 몇몇 좁은 구간에선 단독으로 잠수를 해야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통로는 성인 1명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좁았다. 그만큼 여건이 좋지 않았다. 한편 다른 방법으로 동굴의 천장 방향으로 굴착해서 새로 통로를 만드는 방법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굴착 작업을 할 수 있는 위치가 해발 1,200m 지점으로 험한 산중인데다 수직으로 약 700m를 뚫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붕괴 위험도 있다.
몇몇 소년들과 코치의 상태가 잠수로 동굴을 빠져나오기에 부적합하다는 의료진의 검진 결과가 나왔다. 실종된 일주일간 적절한 영양공급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의료진이 밝혔다. 잠수를 가르쳐서 소년들을 빼오는 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조대 중 사망자까지 나왔다. 태국 네이비씰 출신 구조대원[4]이 공기통을 전달하고 복귀 도중에 공기 부족으로 동굴 입구 2km 앞에서 의식을 잃은 뒤 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 사망했다. 좁은 동굴에서 다수의 구조대원이 작업하다 대기 중 산소농도가 저하된 것이 원인으로, 이후로는 이와 같은 안타까운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공기공급장비를 동굴 내로 투입했다고 한다.
7월 8일 구조대에서 구조작업에 들어간다는 발표가 떴다. 또 다시 폭우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나왔고, 이렇게 되면 펌프를 가동해도 수위를 낮추기는커녕 오히려 동굴이 더 잠길 수 있어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듯하다. 또한 동굴 내 산소 레벨이 점점 내려가는 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구조작업을 시작하기 전 구조당국은 작업공간 확보를 위해 취재진들을 동굴 주변에서 철수시키고, 앰뷸런스 13대와 헬기 4대를 대기시켰다. 그리고 미국, 중국, 영국, 태국 등 다국적 구조요원들로 이루어진 국제잠수팀이 동굴로 들어갔다.
구조 첫날인 7월 8일 일요일 4명이 구출됐다. 이후 잠시 중단되었는데 준비된 공기탱크를 모두 소진했고 아침부터 내내 구조작업에 매달린 대원들을 휴식시킬 필요가 있어서다. 2차 구조작업 개시까지는 10~20시간이 걸렸다. #, #2
7월 9일 두 번째 구조작업이 수행되었다. 이날 4명이 동굴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총 8명이 구조되었다. 처음 구조된 사람이 코치라는 오보가 있었지만 guardian과 CNN이 코치는 아직까지 구조되지 않았다고 컨펌하였다. 또한 2차 구조작업은 이걸로 종료한다고 한다. # 이런 오보가 나온 이유는 코치가 물 말고는 섭취한 음식이 없어서 매우 건강상태가 나빠서 우선 구출대상으로 고려하는 과정에서 나온 오보였다고 한다.
구조된 이들은 구출 즉시 병원으로 후송되어 검진 및 치료를 받고 있다. 당초에 1명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는 보도도 있었으나 이들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고 태국 당국이 밝혔다. 이들은 건강상태와 감염위험성을 고려해 당분간은 가족과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태국 당국은 일단 구조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후순서로 배정되어 아직 구출되지 못한 요구조자 가족의 심정을 배려하기 위한 조치이다.
7월 10일 구조작업이 다시 재개되었다. 태국 당국은 곧 폭우가 예보되는 만큼 이날까지 잔류한 마지막 5명을 전원구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
그리고 당일 드디어 전원 구조되었다. # 조난 18일 만이자 본격 구조 개시 사흘 만에 고립 상태가 완전 해소된 것이다. 구조 현장을 지킨 치앙라이 지사의 표현대로 환상의 동굴 생환이었다. 구조대의 전문성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 코치의 탁월한 보살핌과 소년 선수들의 용기가 어우러진 성과였다. 세계는 환호했다.
이전 보도와 달리 아이들의 축구 코치는 가장 마지막에 빠져나왔다고 한다. # 고립 기간동안 음식을 양보하며 아이들을 돌본 일부터 시작해서 구출 순간까지도 마지막에 나오는 책임있는 코치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코치 덕분이었다. 코치의 지혜와 노력이 없었다면 이 아이들의 생명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구조가 완료되면서, 구조를 어떻게 했는지영어 기사 한국 기사와 구조하다 사망한 구조대원#에 대해서 다시 조명되었다. 구조작전이 기적적인 이유
구조 직후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실종자들이 모두 구조된 직후, 일부 구조대원들이 동굴에 남아서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수 펌프가 고장나서 동굴 내부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대원들은 공포에 질려서 긴급히 동굴을 빠져 나왔다. 다행히 사상자 없이 전원 대피하였다.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이 세 사람은 태국 의사 1명과 네이비실 1명, 호주 의사 리처드 해리스(이 사람이 진짜로 마지막)였다.
구조 당시를 설명하면서 "아이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은 크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고 하며 50:50 확률로 출발했다고 한다.
생존자를 동굴 밖으로 꺼내오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보면 알다시피 동굴 내부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좁고 복잡했으며, 생존자에게 잠수복을 입히고 공기통을 연결한 뒤, 들것에 눕혀서 좁은 통로를 이동시켰다. 또 중간중간 물에 안 잠긴 부분에서 수면 위로 올라와 생존자의 안전을 살피고 새 공기통으로 다시 교체하는 등, 몇시간동안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작업이었는지 알 수 있다.
3. 후일담
- 요구조자 중 유일한 성인으로 아이들의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가장 마지막에서야 나온 코치는 미얀마 출신의 난민으로 태국에서는 무국적자임이 알려졌다. 코치 외에도 소년 선수 3명(아둘, 마크, 티)이 무국적자임이 알려졌다. 이 중 아둘이란 이름의 소년은 일행 중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외국인 구조대원들과 대화가 가능했다. 난민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지역 교회에서 배웠다고. 해당 지역은 태국, 라오스, 미얀마 세 개 나라 국경 지대에 인접해 있는 도시라서 이렇다. 옛날에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하여 마약 거래도 많이 이루어지던 흑역사도 있다. 그래서 주변 지역, 특히 미얀마 지역에서의 소수민족 탄압과 안 좋은 치안 상황으로 인한 난민유입이 막대한데, 유엔난민기구의 공식 통계로는 약 40만 명, 비공식적으로는 300만 명에 달하는 난민 무국적자가 태국 내에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현지에서는 이들에게 태국 국적을 부여해 주자는 움직임도 나오기 시작했다. 태국 정부 또한 이들에게 올해 안에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
그리고 8월 8일 태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전달받았다. #
- 사고 지역 인근의 유명한 대학은, 구조자들이 본교에 진학하기로 선택한다면 열세 명 모두에게 대학 교육까지 마칠 수 있는 장학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 생존자들은 7월 18일에 공식 마지막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 내용 부적절하거나 민감한 질문이 쏟아질 경우 회복 중인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 등을 고려해 인터뷰를 통제한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까지 모두 인터뷰를 통제한다. 이런 합의를 깨고 생존자들과 그 가족의 생활을 방해하는 경우 아동보호법에 따라 기소까지 경고했다. #
- 태국이 구조에 헌신한 해외 자원봉사자 100명을 극진히 예우하며 5년 내에 태국으로 올 수 있는 무료 항공권과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태국 엘리트 카드'를 제공하기로 했다. #
- 이 사건 이후 태국 정부는 우기기간에 동굴출입 시 처벌을 강화할 방침이다. 또한 태국군은 네이비씰 훈련과정에 동굴조난사고 인명구조를 추가시킨다고 발표했다.
- 사건을 겪은 소년들은 이후 승려생활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 소년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초청으로 현지 시간 10월 28일에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유 대 에버튼전을 직관하였다.
- 2018년 타임지가 올해의 영웅으로 선정하였다.
- 2019년 4월 6일 무빠 팀은 후쿠시마로 원정가서 교류 경기를 했다.
- 2019년 6월 23일에 소년들이 생환 1주년을 맞아 자선기금 마련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건강을 과시했다.#
- 2023년 2월, 동굴 고립 당시 주장이자 구조된 이후 영국으로 축구 유학을 떠났던 두앙페치 프롬텝이 영국에서 사고를 당해 1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고 5주년이 되는 23년 6월 10일 사고 현장에서 다시 만난 생존자들은 탁월한 리더십을 자랑했던 프롬텝을 간절히 추모하며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 도우면서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 ##
4. 여담
- 이 사건은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절대다수가 미성년자로 이루어진 여행자 집단이 조난을 당했는데 그 원인이 물 때문이라는 점 등 여러 가지로 4년 앞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 연상되는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해놓고 먼저 줄행랑을 친 세월호 사건과 달리, 25세에 불과한 젊은이가 인솔자이자 코치로서 끝까지 아이들을 책임져 전원 생환을 이끌었다는 사실에 대해 새삼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는 한국인이 많다.
- 현지 최고 관료인 주지사가 모든 지휘를 도맡아 책임감 있게 대처한 것도 세월호 사건 당시 한국의 사고 담당자들이 우왕좌왕 그 자체[5]였던 것과 비교된다. 치앙라이 주지사가 구조대책본부장을 맡았는데, 우연히도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그는 자국 구조대와 더불어 전세계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주도했다. 또 있어봤자 혼란만 가중시킬 언론사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접근을 통제하였고, 가족들도 별도의 대기공간에서 구조를 확인하게 해서 구조 방해 여지를 최소화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빠져나올 때도 완전히 구조작전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신원을 일체 발표하지 않았는데, 이는 먼저 구조된 아이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아직 나오지 못한 아이들의 부모들이 낙심하거나 잡음이 생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세심한 조치였다. 정부와 왕실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의 주지사 임기가 6월말로 종료라서 다른 주로 발령받았기 때문에 그곳으로 옮겨야하지만(태국은 지방관이 임명직이다) 임기 막판에 사고가 나고 사태가 장기화되어가자 태국 정부는 주지사 임기가 끝난 뒤에도 그에게 '주지사대리'라는 직책을 줘서 지휘자 변경으로 인한 혼란이나 공백을 최소화하고 원래 맡았던 사람이 뒷수습까지 담당할 수 있게 했다. 위에 썼듯 군, 경찰, 소방당국을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도 도움을 청했고 말이다.
- 언론도 마찬가지로 비교되었다. 위에서 언론사들을 통제했다고 썼는데 언론들 본인 역시 협조하며 ‘국민 알권리’를 내세우지 않았다. 아이들의 얼굴과 신원이 공개된 것은 구출 완료가 된 뒤였다. 구조소식을 중계방송 하듯이 요란하게 떠들지 않았다. 물론 당연히 한국 언론사들의 잘못된 행태들 역시 없었다. 언론사들의 눈을 피해 환자들을 병원 뒷문으로 데려가자 알 권리를 외면한다고 징징거리는 추태나, 큰 일을 당한 아이들에게 "친구가 XX했다는 걸 알고 있나요?'라고 마구 물으면서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이대면서 촬영을 하고 해당 내용을 변조 하나 없이 아무 동의도 받지 않고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거나 심지어 병원에 가서 도촬하거나 자는 아이를 깨워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돈이나 음식으로 환심을 사서 어떻게든 인터뷰를 따려고 하는 만행, 피해자 신원이나 연락처가 노출되자 이걸 사방팔방에 유출해 숱한 기자들에게 연락이 오게 하는 민폐를 끼치거나, 물에 빠진 폰을 고쳐주겠다고 가져가더니 그 안에 사고 당시 영상이 있자 말도 없이 찍어가거나 다른 생존자에게 실명이 노출된 다른 피해자의 이름을 팔아 관계자인 척 사칭하며 '아무개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다'고 접근하면서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하는 비윤리적 행동, 구조세력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추측성 오보, 보험금부터 운운하는 왜곡 보도, 피해자 비난 따위는, 한국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태국에서 일어난 이 사건에선 그런 기레기는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동굴소년들 무사귀환, 태국 언론은 달랐다
- 동굴 구조 전문가인 영국인 존 볼랜던과 리처드 스탠턴은 태국 정부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동굴 구조 전문가들로, 특히 스탠턴은 인명 구조 임무에 여러 차례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받은 바 있다. 퇴역 소방관인 이들은 곧바로 출발해 실종 3일째 날 도착했고, 태국 네이비씰, 미 태평양사령부 다이버들과 함께 공조해서 수색하다가 아이들을 최초로 발견해냈다. 이들의 도착은 다른 전문가들을 따라 도착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6] 또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7월 12일 이들을 만나 기념 메달, 티셔츠, 공식 엠블럼이 새겨진 공예품을 선물했고, 재정부 장관과 체육관광부 장관이 런던으로 떠나는 공항에 함께 배웅 나가 명예증서를 전달하고 초상화를 선사했다.
- 또 다른 구조 대원 중 한명인 호주 출신 마취과 전문의 겸 30년 경력의 동굴 잠수 전문가인 리처드 해리스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전원 구조 완료 직후 부친상을 접했다. 태국 정부에서는 구조 과정에서 해리스에게 본래 외교관에게나 주는 특별대우인 면책특권까지 보장했다. 면책특권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년들과 코치의 구조순서를 정하는 데 의사인 그의 의견이 절대적이고 그가 정한 구조순서 때문에 구조가 실패하거나 사람이 죽게 된다면 법정소송 등의 골치아픈 문제가 따라온다. 그래서 법적인 책임을 면제하고 의학적 판단만 할 수 있게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7]
- 위에 언급된 사람들 외의 자원봉사자들에게도 태국 정부는 후한 보답을 잊지 않았다. 치앙라이와 수도 방콕에 무료 여행을 주선했고, 곧바로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앞으로 5년 안에 태국으로 올 수 있는 무료 항공권과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태국 엘리트 카드'를 제공했다.#[8]
- 별도의 중계기가 필요없는 이스라엘 맥스텍 네트웍스의 신형 무전기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장거리 통신의 역할이 주효했다고 한다. 이 역시 태국 정부의 요청에 업체가 기증한 것이라고.
- 여러 명의 실종자들이 동굴에 고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칠레 광부 매몰사건과 비교하기도 한다. 실제로 칠레 사건 때 고립되었다가 구조된 광부들이 고립된 소년들에게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라며 응원하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 일론 머스크도 구조를 돕기 위해 태국 당국과 논의했다고 한다. 우주 탐사 기술로 생존자들의 정확한 위치파악 및 테슬라의 기술로 배수를 하거나 배터리를 제공하는 방안 혹은 머스크가 소유하고 있는 굴착 회사가 구조를 위해서 굴착 작업에 참여하는 방안 등이 고려되고 있다고 한다. # 또한 태국 사고 현장을 방문해 자사에서 특별 제작한 소년들을 구출할 소형 잠수함을 놓고 갔다고 밝혔으나, 현지에서 운용에 적합한지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이미 전원 구조가 임박한 상황인 만큼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다만 현지 만평 등에서 머스크를 아이언맨으로 빗대 선의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 그런데 영국인 잠수사 중 한 명인 버논 언스워스가 CNN 인터뷰에서 "머스크의 잠수함은 아픈 곳에나 쳐박아 마땅하다(stick it where it hurts)" 며 잠수함이 전혀 쓸모가 없었고 머스크의 방문이 도리어 걸리적 거렸고 머스크는 단지 자기 PR용으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데 사건을 이용한 것이라며 머스크를 맹비난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에 머스크는 트위터로 스탠턴 소방관 등 작전 관리자들 측의 의뢰를 받고 한 일이었고 언스워즈의 주장과 달리 떠나달란 요구를 받은적도 없으며 도리어 언스워즈야말로 현장에서 보이지도 않았다고 맞받아쳤는 데, 문제는 자기 잠수함 역시 구조에 동원될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동영상을 올리면서 언스워즈를 페도필리아(Pedo Guy)라고 지칭하며 비난한 것이다![9] 당연히 이는 서구권에서 매우 심한 욕이라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으며 언스워즈는 법정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했다.
- 동굴에서 생존자들이 가족에게 쓴 편지에는 "난 건강하다. 걱정하지 말라.", "빨리 나가고 싶다.", "뭐 먹고 싶다.", "나가면 집안일 잘 돕겠다"는 내용이 있었고 코치는 "부모님들께 죄송하다. 반드시 아이들을 무사히 돌려보내겠다."는 말을 썼다. 사실 저런 상황에서는 코치의 입장이 가장 괴롭다. 육체적인 고통은 모두 같지만 코치는 인솔자로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어린 아이들을 내몰리게 했다는 죄책감과 부모들에 대한 죄송스러움이 클 것이다. 그러나 해당 코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챙기며, 음식을 모두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등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오히려 부모들은 코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 위에도 썼지만 치앙라이 지역은 무슬림이나 난민, 라오스, 미얀마 이쪽에서 내려오는 난민들이 굉장히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은 옛날에는 이 3개 국가가 서로 국경이라는 것 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살았으며 지금도 거의 그런 상태. 그래서 무슬림들도 있고 불교도도 있고 기독교인들도 있고, 많은 타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상태이다. 그래서 무슬림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이곳에 살고 있는 여성이 할랄 음식들을 만들어 무료로 제공해 주는 훈훈한 일도 있었다고.
- 사고 초반에는 우기가 시작되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동굴로 들어간 코치에 대한 비난 여론도 있었지만, 입구부터 물이 차올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안으로 도망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이 알려졌다. 또한 코치가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잘 돌본 것이 알려지고 아이의 부모들도 코치에게 신뢰와 감사를 표하면서 비난 여론은 대부분 사라졌다.
- 사망한 전직 해군 부사관 구조대원을 제외하고 인명피해 없이 소년들과 코치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태국 경찰 및 소방 당국의 사전 조치가 미흡한 것은 지적할 만하다. 탐 루엉 동굴은 내부가 복잡하기로 유명하고 이번처럼 우기가 되면 수몰되는데 만약 태국당국의 동굴 폐쇄조치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실종사건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우기가 예상 외로 빨리 왔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최근 동남아시아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우기가 과거보다 일찍 찾아오고 기간도 길어지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관계 당국의 대비도 예전과 달리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사고가 다시 발생했을 때 이번처럼 운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
- 불빛 없는 동굴 안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둡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시각이 적응해서 눈앞 정도는 분간할 수 있게 되지만, 쉽게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아니다. 굉장히 공포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수일을 버틴 소년들과 코치의 정신력은 정말 놀라울 따름. 랜턴이 있었지만 전지를 아끼기 위해 아이들이 물을 마실 때에만 코치가 랜턴을 켜 종유석을 비춰줬다고 한다.
- 국왕 라마 10세가 구조 활동 도중 숨진 전직 태국 해군 특수부대 부사관(하사)이자 자원봉사자 사만 쿠난을 소령으로 특진시키고 왕실 최고 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 # 현지 언론 치앙라이 타임스의 영문판 기사에 따르면, 이처럼 하사에서 소령까지 무려 일곱 계급을 단번에 특진시킨 건 태국군 역사상 전례없는 조치(an unprecedented rise of seven ranks)라고 한다. 그의 아내는 페이스북에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누구에게 입맞춤을 하나. 당신은 영원히 나의 마음속 영웅입니다."라는 글을 써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구조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매우 안타까워하며 지속적으로 그를 잊지 않고 추모하고 있다.
- 9월 27일에 소년들을 구조하러 물을 빼다가 잠들어 동굴에 이틀간 갇혔다 구조된 현지 자원봉사자 4명의 이야기가 뒤늦게 알려졌다.#
5. 매체에서
- 첫 영화화는 <더 케이브>로 2019년 11월에 개봉.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된다.
- 론 하워드 감독이 <써틴 라이브스(Thirteen Lives, 13명의 생존자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 넷플릭스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별개로 제작되었다. 제목은 <더 트랩트 13(갇힌 13명)>.
- 레이저 탐사 장비를 이용해 동굴의 3D구현 및 당시 상황을 재현한 다큐멘터리
6. 관련 링크
[1] 게다가 운 좋게도 물에 철분과 미네랄이 들어있어서 영양섭취에 도움이 되었다.[2] 한 실종자의 아버지는 "물이 불어나있는 걸 본 순간부터 아들이 살아있는 건 단념했고, 그저 시신이라도 찾기만을 바랄 뿐이었다."라는 속마음을 고백했다.[3] 잠수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풀페이스 마스크가 주어진다.[4] 네이비씰 예비역 상사 사만 쿠난(37). 전역 이후 태국공항공사에 취업해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구조대에 지원했다. 국내 몇몇 일간지에는 병장 전역으로 소개되었는데, 현지 언론 치앙라이 타임스의 영문판 기사에는 '하사(petty officer first class)'라고 나와 있다.[5]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참사 당일 관료들은 탑승객 수는커녕 구조자 수도 파악하지 못하고 종일 우왕좌왕했다. 해경과 현장, 진도실내체육관을 연결해 상황을 알려주는 책임자도 없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누구를 붙잡고 물어야 할 지 몰랐다. 안행부나 해수부, 정부부처 어느 곳도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수행원과 기자들을 몰고 우르르 몰려왔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자세한 것은 세월호 최초 100시간의 기록 이 기사 참조. 당연히 가족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 정부는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피해자 가족들이 화를 내고 자신들에게 항의하는 것만 쏘옥 빼놓고 보며 그들을 '반정부 불순세력'으로 낙인찍고 감시와 사찰을 시작했던 것이다. 경찰, 국정원에 절대 민간인들에게 관여해서는 안 되는 군 전문 조직 기무사까지 그야말로 동원 가능한 모든 조직을 총동원해서 말이다. 가족들이 그리 오래 항의한 것도 아니었다. 참사가 난 지 단 하루만에 시작된 일이었다. #[6] 동굴 다이빙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특이한 것이, 처음 들어가는 사람이 그 안에 가이드 라인을 설치하면 그 사람 이름을 판에 새겨서 동굴에 부착한다. 약간의 경쟁적인 관계이기도 하면서 그러면서도 사실 동굴 다이빙이 목숨을 거는 것이다 보니까 경쟁자면서도 동료인 것이다.[7] 물론 면책특권이 있다 한들 윤리적 책임감은 상당했다. 본문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리처드 해리스는 여전히 아이들을 전신마취해 구조하는 작전에 매우 회의적인 편이었다. 산소마스크에 물이 새어들어올 경우 질식사할 위험, 그리고 전신마취로 인체 대사와 컨디션이 저하된 성태에서 장시간 물속에 있으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린 소년을 마취시킨 다음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는 과정은 마치 아이에게 사형선고를 하는 것 같아 실로 섬뜩했다고 한다.[8] 사실 이 점 역시 세월호 참사 당시 한국의 대처와 비교되는 점이다. 이 당시 해경이나 정부는 민간잠수사들에게 면책특권 따위는 없었고, 철수는 그냥 쫓아내버리는 식으로 시켰고, 구조작업 중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나오자 책임을 떠넘기며 잠수사 중 가장 고참인 사람을 형사기소해버리는 짓을 저질렀다.[9] 태국인 아내가 그보다 22살 연하여서 과거 태국에서 아내가 아동일 때부터 만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든 것인데, 당연히 확인하기 힘든 얘기이다. 애초에 사건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모독을 했으니 경솔한 발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