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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비/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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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쇼윈도 부부3. 갑질4. 막말5. 박사 학위6. 마코 공주카코 공주의 대학 입학7. 히사히토의 중학교 무시험 입학8. 히사히토의 살인 미수 피해 사건9. 자녀들
9.1. 마코 공주 : 결혼 소동9.2. 카코 공주 : 솔직한 발언9.3. 히사히토 : 교육
10. 냉랭한 집안 분위기11. 가와시마 일가 재일한국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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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코 비의 각종 소문과 논란을 설명해놓은 항목이다.

2. 쇼윈도 부부

파일:external/blogimg.goo.ne.jp/6e71925b782261c4401d3a374997c3a9.jpg

후미히토의 생모가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배우라는 소문이 있는데, 후미히토 역시 태국인 여성뿐만 아니라 다카라즈카 가극단원과도 바람을 피웠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서 네티즌은 "친엄마나 내연녀나 다카라즈카 가극단원이냐?!"고 비꼰다. 이런 와중에도 후미히토 친왕은 아내 키코 비와 함께 다카라즈카 가극단 공연을 관람하는 공무를 했다. 게다가 안마시술소(19금)의 단골에, 해외순방을 갈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키코 비와 같이 갈 때도 역시 해외 원정 성매매를 한다는 소문이 일본에서 도는데, 일본인들은 거의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2003년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4명이 모두 함께 태국 순방을 갔는데, 당시 가쿠슈인 초등과 6학년이던 마코 공주와 3학년이던 카코 공주에게는 첫 해외순방이었다. 그런데 후미히토 친왕은, 아내와 어린 두 딸이 함께 묵고 있는 숙소에서 태국인 여성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이에 키코 비의 친정아버지 가와시마 타츠히코(川嶋辰彦) 교수가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했으나, 후미히토 친왕은 좀처럼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듯하다.

2016년에 들어서 후미히토 친왕이 키코 비를 폭행한다는 소문에, 쇼윈도 부부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다만 소문들이 진짜라기보다는, 후미히토 친왕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 또는 이미지로 보는 게 맞는 듯하다. "후미히토 친왕이 정말 키코 비를 사랑해서 결혼했을까??", "후미히토 친왕은 여자를 막 대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 주된 이유는 자녀교육 문제이다. 엄격한 교육을 하는 키코 비와 달리, 후미히토는 자유방임형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후미히토는 신경도 안 쓰고 문을 쾅 닫아버리는 식으로 응수한다.

다만 서로 사이가 어떻든 간에, 공무에서는 여전히 (2016년 기준) 키코 비후미히토우산을 들어주고 있다.

후미히토키코 비를 폭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단순히 소문인 듯하지만, 후미히토는 매일 저녁마다 을 마실 정도로 알코올 중독[1], 자녀 교육에 방임형이라는 소문이 일본에서는 아예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에 대해 키코 비는 남편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히사히토가 공부하는 데 방해되니, 나가서 술을 마시라!!"고 일갈한다고 한다. 그러나 후미히토가 키코 비의 말을 들을 린 없으니 진짜 쇼윈도 부부가 아닌가 싶다.

애초에 정말 금슬 좋은 부부라면, 배우자가 지나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는데 말리지 않을 리도 없다. 더군다나 후미히토 친왕의 알코올 중독 의혹을 보도했던 기사에 따르면, 키코 비는 기자들과 궁저의 고용인들 앞에서 그들이 보거나 말거나 "나가서 술을 마시라!!"고 소리를 지르고, 후미히토가 술을 마시며 앉아 있었단 이유로 "소파가 더러워졌으니 버리라"고 했다.

이런 의혹이 있는 데는, 보도되는 기사 사진에서 부부의 정을 느낄 수 없다는 점도 한몫한다. 행동거지가 자연스러운 나루히토 황태자와 마사코 황태자비 부부와는 여러모로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당장 요 몇 년 사이 키코 비가 남편 후미히토를 쳐다보는 사진은 있지만, 후미히토가 아내 키코 비를 보며 미소 짓는 사진은 거의 없다.

2020년 9월 11일 키코 비의 54세 생일 기념으로 공개된 영상에서 후미히토가 키코 비와 함께 책을 보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분위기 자체가 어거지로 하는 듯한 느낌에다가 후미히토가 책을 넘기려고 하는 부분에서는 제법 손을 떠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라고 평가하고 있다.

3. 갑질

2015년부터 아예 "키코 비가 바깥에서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하지만, 집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성질을 부린다"는 이야기가 일본에서 정설로 여겨진다. 그에 대해서 동궁(황태자 일가)보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 주어지는 생활비가 적어서라는 설과 일부러 시위하려고 소문낸 것이라는 설이 있다.

히사히토 친왕이 암묵적으로는 황태손으로 여겨지긴 해도 공식적으로 황태손의 지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2]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시종들 및 생활비는 황태자 일가보다 적다고 한다. 2015년에는 첫째 마코 공주영국 대학원 유학비와 생활비, 둘째 카코 공주의 대학 등록금, 초등학생인 막내 히사히토 친왕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만큼 돈이 많이 드는데, 무남독녀 아이코 공주만 있는 황태자 일가보다 생활비를 적게 받아서 먹고 살기 빠듯하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소문 덕에 일본 국민들은 키코 비에게 더 우호적인 시선을 보낸다. 적은 돈을 가지고, 바지를 입고 3남매의 육아를 직접 해낸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실제 궁내청 일본 황실 관련 예산 사용 내역을 보면, 실제로는 후미히토 친왕 일가에 돌아가는 돈이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에게 돌아가는 돈보다 2배 이상 더 많다. 현재 후미히토 일가가 받는 돈이 1년 기준으로 약 7천만 엔이고, 나루히토 일가가 받는 돈이 3천만 엔이라고 한다. 후미히토 일가 등 각 미야케에 배당되는 돈을 제외하고 일본 황실에 배정되는 돈이 1년에 약 3억 3천만 엔인데, 이 중 제례비 등 황실 행사 용도로 사용되는 2억 엔가량을 제외하고 1억 엔을 아키히토 부부, 나머지 3천만 엔을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가 받는다.

2016년 기준으로 현재 도쿄대학 학부 졸업생이 첫 직장에서 받는 초임이 평균적으로 월 24만 엔가량임을 고려하면, 누가 봐도 후미히토 친왕 일가가 적게 받는다고 볼 수 없다. 더군다나 가족이 늘 때마다 특별 예산 증액의 형태로 추가 비용을 더 받아온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와 달리,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는 아무리 저기서 가족이 더 늘어나도 황태자 일가에게 주는 고정비용이라 더 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오히려 미야케를 연 차남이 황태자인 장남보다 더 많은 비용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매번 돈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2016년 9월에 마코 공주국제기독교대학 예술과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할 예정이라는 말에, "아키시노노미야 일가가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 당시 <유럽의 왕실> 다음 카페에서 키코 비가 성질을 부린다는 소문의 글이 자주 올라왔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시종들이 야반도주를 한다, 키코 비가 요리사를 물건처럼 부른다거나, 언제 불려갈지도 모르고 24시간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요리사가 1명뿐이라 힘들다 등.

2015년 7월의 한 주간지에 실린 기사의 폭로로 인해 기정사실로 확정되었다.기사 원문 참고. 이 주간지의 기사에 따르면, 아키시노노미야 궁저의 요리사였던 사람을 직접 인터뷰했는데, 소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오히려 더 심한 취급을 받는다는 증언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요리사는 인터뷰 시작부터 중간에도 계속 주변을 살피면서 불안해 하더니, 인터뷰를 끝내기도 전에 자리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주간지를 체크하고 있는 키코 비에게 잘못 걸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는데, 어지간히 키코 비에게 시달리지 않고서야 이런 반응을 보이기 쉽지 않다. 이 정도면 흡사 일본조현아 수준이다.

외무성에서 황족 수행원으로서 공무에 동행한 이력이 있는 외교관들 사이에서도, 키코 비에 대한 평이 매우 안 좋다. 일본 정부 소속의 공무원인 만큼 함부로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워 하지만, 실제로는 "언론보도와 실제로 옆에서 보고 들은 인상이 많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는 평이 지배적이라고 한다.[3] 키코 비는 공무에 동행하는 수행원이나 통역관에게도 (겉으로는 보이지 않게 뒤편에서)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린다고 전해진다.

2016년 1월 큰딸 마코 공주가 귀국하여 박물관의 연구원이 되긴 했지만, 황족으로서의 공무가 우선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근무시간이 긴 정규직원은 하지 못하고, 무급 비정규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또한 작은딸 카코 공주는 아직 대학생이다. 따라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생활비는 여전히 빠듯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에 들어서도 아키시노노미야 가의 업무에 대한 안 좋은 기사는 틈틈이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7월에 나온 기사 중에서는 대놓고 폭력이라는 단어를 썼으며, "어느 미야케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글이 있었다. 유일한 후계자를 기르는 키코 비의 각오를 고용인들이 못 따라 간다는 듯. 키코 비가 사실상 왕실의 미래를 짊어진 여인으로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너무 부담을 느낀 나머지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키코 비는 매일 아침마다 아키시노노미야 궁저의 직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전날까지의 작업 정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업무 분할 및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여기서 키코 비는 "그게 아니다", "어째서 모르냐"라고 엄격하게 요구하는 일이 많다. 공무 중 온화한 모습과 달리 궁저에서는 목소리가 높고 말도 빠르게 하는데, 직원들이 실수를 할 때마다 "그게 당신들의 일이다"라고 주의를 주는 일이 많다.[4]

매년 공무하러 가는 곳조차도 일일이 따지고, 종종 "마음에 안 든다"고 자신의 마음에 들도록 바꾸라고 강요해서, 공무 담당자들은 자주 밤을 새운다. 직원들이 좀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여기에서 일하는 건 큰 영광"이라고 들볶거나, 잠깐 파견 온 직원마저도 "마음에 안 든다. 빨리 교체해달라."고 요구한다. 궁내청은 상당히 곤란해하면서도 키코 비의 요구대로 직원을 급하게 교체해준 적도 제법 된다.

원래대로라면 미야케가 해야 하는 업무별로 담당자가 따로 있어야 하지만, 키코 비의 성격상 한 직원에게 "이것을 하라"고 했다가 다시 "다른 것을 하라"고 지시한다.[5] 그래서 아키시노노미야 직원들은 고정된 직무가 없는 상태에서 매일마다 갑자기 익숙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데,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바로 키코 비가 달려들어서 상상도 못 할 인격모독성 발언들을 평범하게 퍼부어버린다.

어떻게 이러한 갑질을 일정기간 이상 버티는 직원이 있어서 궁내청이 이 사람을 잡기 위하여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승진시키는 경우, 키코 비는 원칙적으로 그 직원이 쉬는 날에도 불러서 온갖 잡일을 하도록 지시하며, 이걸 거부하면 해고시켜버리는 등. 하는 짓 하나하나가 갑질의 정석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일 정도. 이쯤되면 대한항공 이다.(…) 그 덕분에 궁내청이 열심히 노력해서 업계 탑급의 인재들을 엄선하여 선발해서 아키시노노미야 궁저에 보태도, 1주일도 못 버티고 도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애시당초 하도 가문 내 직원들을 자주 갈아버리는 통에, 궁내청 측은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에 한정해서 주요 직원들조차도 비정규직으로 처리한다. 다른 미야케의 경우 기본적으로 주요 업무 부분에는 정규직을 채용하고 임시로 직원을 추가적으로 둘 필요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 직원을 채용하지만, 이쪽은 주요 업무 부분에서도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집어넣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후미히토 일가가 직원들을 얼마나 자주 갈아치우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키코 비의 성질(…)과 갑질이 워낙 유명한 나머지, 히사히토의 가정교사를 구하려고 해도 어느 누가 선뜻 가정교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가정교사 채용을 한동안 포기한 적도 있었을 정도.[6] 그렇다고 학원에 보내기도 어렵다. 경호 문제 때문이다.

2019년 5월 이후 후미히토가 황사로 지위가 격상되어 후미히토 일가도 황태자급으로 직원들을 충원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이러한 갑질 때문에 증원이 제대로 이루어질지에 대해서 궁내청 내부에서도 상당히 회의적인 의견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보통 황족의 거처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남성은 시종(侍從), 여성은 여관(女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2019년 5월 1일자로 황사가 되는 후미히토 일가에 새로 들어가는 직원들은 남녀 불문하고 궁무관으로 표기하는데, 후미히토 가문의 인원들이 하도 자주 바뀌는 걸 감안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2019년 8월 1일자 한 주간지 기사에 의하면, "보도 시점에서 황사직 궁무관 정원 10명 중 7명만이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 궁내청은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문제가 아니라 궁무관 개개인의 문제"라면서 논란을 일축시키고 있으나, 많은 일본인들은 궁내청의 변명을 믿지 않고 있다. 한 네티즌은 야후재팬 댓글에다가 "아키시노노미야 부부는 직원들을 해고하기 전에 먼저 코무로 케이와의 관계를 없애라"는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2020년 3월 17일 기사에는 또 다시 갑질에 궁내청 직원이 도망갔다고 한다.일본어 기사 기사에도 나오지만 해당 직원은 도쿄대학 출신으로 이후 경찰청 캐리어조로 활동하다가 궁내청으로 간 직원이라고. 나이나 캐리어조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대략 경시정(경무관~치안감)급의 고급 관료[7]이다. 그런 관료조차도 못 버티고 도망칠 정도인 것이다. 이에 일본 네티즌들은 이구동성으로 "코무로 케이 같은 놈이 꼬이는 게 다 이유가 있었다"라면서 "저런 인간들이 나루히토 덴노 다음의 덴노/황후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여담으로 경시청측에서는 기껏 장래가 촉망한 엘리트를 보내놨더니 사람을 반병신으로 만들어서 돌아온 것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그의 후임으로 논케리어 직원을 보냈다고 하는 데 한국 이상으로 고도로 경직화되고 상하가 엄격하게 지켜지는 일본 관료계에서 이 정도 대응은 사실상 강력 항의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

2020년 9월 기사에서는 궁내청 직원들 사이에서는 아키시노노미야에 갈 바에는, 차라리 궁내청을 그만둔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기사 작성 기점으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궁무원 중 궁내청 파견직원은 2~3명 정도이며, 그 이외 직원들은 타 정부부처이나 지방자치단체 혹은 민간에서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키코 비의 갑질이 심해서 내각부 직원이 1년도 못 채우고 그만두고 있으며, 그 후임으로 들어온 정부 직원조차도 갑질을 못버티고 그만 둘 생각을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또한 얼마 전 언론에서 미담으로 칭송하던 방호복 500벌조차도 키코 비가 직원들에게 억지로 작업에 동원하고, 조그만 흠결에도 막말을 퍼부으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였다는 게 들통나버렸다.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일본 중앙부처에 들어가는 쟁쟁한 엘리트들조차도, 무식한 노예처럼 아주 철저하게 부려먹는 사람이 차기 황후 후보라는 것에 전율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 밑에서 사춘기를 맞이하는 히사히토가 유력한 차차기 덴노 후보라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22년 히사히토의 고등학교 진학을 두고 특혜의혹과 더불어 진학을 위해서 학교측에 세금으로 뇌물을 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거기에다가 황실 역사상 리모델링 비용으로 수십억엔 이상을 쓰고 있는 아키시노노미야 저택[8] 리모델링 과정에서 키코 비가 주기적으로 찾아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서 그 요구에 맞춰서 주기적으로 공사가 중단돼서 공사가 지연 중인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참고로 궁내청측이 밝힌 리모델링 지연 사유는 코로나로 인하여 인부 수를 줄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22년 7월 한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궁내청 목장에 와서는 아무 말 없이 경승합차 두 대 분의 과일,채소등을 싣고 가는 데 원칙상으로 내정황족이 아니면 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지만 키코 비가 이걸 가지고 간 이후 비용을 지불했는 지는 모른다고 하지만 기사에서 목장 관리하는 관료가 약탈이라고 말하는 걸 봐서는 내정황족이 아닌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의 이런 행위는 원래는 비용을 받아야 하지만 황위계승순위 2위라는 지위[9]를 이용해서 비용을 안 주고 강제로 수탈하는 모양인 걸로 보인다.참고로 이때 키코 비와 같이 온 마코/카코 자매는 휴대폰만 보고 있고 히사히토는 목장의 수로에서 얼굴을 가져갔다고 한다.

4. 막말

손윗동서인 마사코 황후에게도 함부로 대하여, 병을 제대로 낫지 못하게 만드는 데 궁내청과 함께 적극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 알려진 것만 하더라도 비공개 황실 행사에 참석한 마사코 황태자비의 면전에서 "난 누구와 달리 정신병자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해서 마사코 황태자비의 회복을 방해하거나[10], 2016년 9월 23일에 열린 도쿄국제북페어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키코 비는 정신병을 가진 자녀에 관한 책을 보면서 "이걸 누군가에게 권유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마사코 황후아이코 공주를 간접적으로 조롱했다. ???: 아 이건 좀...[11] 사실 아이코 공주가 초등학생 시절 이지메를 당했을 때도 "그 배후에 키코 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상당히 신빙성 높게 나돌 수 있었던 것도, 키코 비가 가쿠슈인 대학 교수의 딸이라서 이지메 주동자들 중 하나인 가쿠슈인 대학 교수 출신의 자녀와 인연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있었지만, 이러한 대놓고 손윗동서를 비난하던 것이 한 몫했다.

그리고 키코 비의 이러한 히스테리와 갑질, 과격한 언행은 쌓이고 쌓여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으로 인해 드러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상황에 기름을 부었고, 시어머니인 미치코 상황후로 하여금 "키코 비가 황족답지 않다, 황후의 재목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히스테릭하고 지나친 억압과 부적절한 가정 교육(황족관 교육)로 인해 두 딸들과의 사이는 안드로메다 급으로 멀어졌고, 이어지는 두 딸의 황족답지 못한 기행 때문에[12] 국민들로부터 "딸들 키운 꼴을 보아하니 히사히토도 누나들이랑 똑같이 클 게 뻔히 보인다", "저따위 집안에 미래의 천황 양육을 맡겨도 되는가", "저런 집안에서 자란 아이라면 아무리 하나뿐인 남자 황손이라도 장래의 천황이 되는 것은 반대다", "황족으로서의 자각이 없는 아키시노노미야 사람을 천황으로 올리느니 차라리 나루히토 부부의 아이코 공주를 천황으로 올려라"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남편의 천황 등극과 자신의 황후 등극은 아키히토 덴노의 생전 퇴위 및 양위 발표로 아주 시원하게 물 건너갔고, 그토록 원하던 자리는 20여년 동안 멸시하고 괴롭혀온 손윗동서 마사코 황태자비의 것으로 돌아갔으며 키코 비 본인은 황후 자리 대신에 20여년 동안 마사코 황후의 것이었던 '세금 도둑'의 칭호를 물려받았다.[13][14] 국민들에게 공식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 모습이 180도 다른 키코 비 자신의 언행이 스스로와 3남매의 앞날을 막은 셈.[15] 결국에는 국민들의 지지를 전부 잃고 남편과 아들 히사히토 친왕의 천황 등극을 위해 깎아내리고 대놓고 미친듯이 공격해왔던 나루히토 덴노와 마사코 황후에게 납작 엎드려 아들 히사히토 친왕의 천황 등극에 협조해 달라고 애원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인과응보라는 말이 딱 어울리게 되었다.

5. 박사 학위

1990년 황실에 시집 올 당시, 가와시마 키코가쿠슈인 대학 대학원생이었다. 결혼 후 황족으로서 각종 공무를 하고 두 공주를 낳아 기르는 바쁜 와중에도 키코 비는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고, 1995년 가쿠슈인 대학에서 석사학위(심리학)를 받았다. 2013년에는 국립 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서 박사학위(인문학)[16]를 받았다. 그런데 이는 학구열 때문만이 아니라, 열등감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황족들 중에는 해외 명문대학에 유학한 사람이 많고, 특히 손위 동서인 마사코 황태자비하버드 대학교 출신의 전직 외교관이다. 키코 비가 졸업한 가쿠슈인 대학도 그당시 좋은 대학이였긴 하지만, 해외 대학에 유학한 경험은 없고 그래서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을 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키코 비의 박사학위 논문#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서도 비공개(열람 금지)라서, 여기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보통 박사학위 논문쯤 되면 그 분야의 전문가의 견해로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에 각 분야의 유명 저널 등에 실리기 마련이며, 특히 이공계의 경우 아예 해당 논문 투고가 성공해야 박사학위로서 인정된다. 그런데 키코 비의 박사학위 논문은 그런 이력도 아예 찾을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말이 많은 것이다. 특히 키코 비의 박사학위 수여 형태는 논문박사인데 일본 내에서 실시되는 엄격한 논문박사 심사기준(예:저널 논문 실적 5편 이상 등, 예시 : 큐슈대학 농학부)이 적용 됐는지도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렇듯 키코 비부터 박사학위를 받은 경위가 석연치 않은 탓에, 마코 공주의 박사과정 진학에 관해서도 스스로 노력해서 박사학위를 딴 7촌 고모 아키코 공주[17]와 달리 어머니 키코 비와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우려대로 현재 마코 공주는 어머니와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6. 마코 공주카코 공주의 대학 입학

2010년 마코 공주와 2015년 카코 공주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 입학에 대하여, 부정입학과 정당성 논란이 일어났다. 가쿠슈인 재학 당시에 두 공주는 성적이 최하위권으로 유명했는데, 둘 다 명문대학인 국제기독교대학에 합격했기 때문. 서류와 면접으로 합격 여부가 정해지는 AO입시라는 전형에 지원해 합격했는데, 만약 공주 자매가 시험 성적으로만 대학 입시에 도전했어도 명문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또한 카코 공주가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하기 전 다녔던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교육학과에 대해서도, 학교 측은 원래부터 신설 예정인 학과였는데, 우연히 카코 공주가 입학하게 된 것이라 해명했지만, 공주를 위해 신설된 학과라는 말이 있다.

공주 자매가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한 이유와 교육학과 신설 배경에 대해, 일본 황실과 대학 측에서는 "국제기독교대학의 폭넓은 교양교육(liberal arts)과 영어교육에 매료되어서",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경쟁하여 합격했다", "예전부터 교육학과를 개설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카코 공주가 입학하는 해에 맞추어 개설되었을 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우연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공교로운 타이밍인데다, 1984년 아버지 후미히토 친왕의 가쿠슈인 대학 입학 때의 도시전설(…) 같은 일화[18]도 있어서, 일반 국민들 대부분이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히사히토 탄생 이후인 데다, 차남인 아키시노노미야 일가가 장남인 황태자 일가보다 공무를 더 많이 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문제가 없는 듯 했다. 하지만 2013년에 공개된 아이코 공주의 성적 이후 키코 비의 히스테리, 두 형제 간의 황위 계승권 다툼 등, 여러 가지 소문이 쌓이고 쌓였다. 그러면서 2016년에 들어서 아키시노노미야 3남매의 성적에 대한 비난이, 단순한 소문을 넘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공주 자매의 국제기독교대학 입학은 물론, 암묵적으로 차기 천황이라 불리는 히사히토가쿠슈인 입학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입학을 거부당하고 뇌물로 겨우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유치원과 부속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하는 등, 안 좋은 소문들이 많다.[19]

2016년 8월, 한동안 아버지와 공무를 하던 마코 공주는 국제기독교대학 대학원 예술과학과 박사과정에 합격, 2016년 9월 대학원에 입학했다. 마코 공주는 영국 레스터 대학 대학원에서 2016년 1월에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지만, 국제기독교대학 대학원에서 박물관학을 중심으로 심화된 연구를 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4월부터 다니던 도쿄대학 박물관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공무와 공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표면적으로 마코 공주를 응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 마코 공주를 비판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특히 실제로 연구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누구는 돈이 없어서 석사도 중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황족은 놀면서도 세금으로 박사학위를 따나 보다!!!!" "저런 식으로 엄마 마음으로 주는 게 박사학위이면, 나도 국제기독교대학 가서 학위 따겠다!!!!"는 분노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박사과정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에 비해서 학비 부담이 크다. 이공계라면 과제를 통한 인건비를 지원받아 다닐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문부성 장학금을 받는 게 아니라면 자비로 학비를 충당해야 하고 그마저도 3년이 지나면 받을 수 없다. 일본 대학의 분위기 자체도 "공부를 하는 쪽이 돈을 내는 게 맞지 않느냐"는 인식이 큰 편. 그래서 육영회에서 학자금 대출을 많이 진 학생들의 경우 초엘리트 코스를 밟아놓고도 학자금을 안 갚아도 되는 공무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마당에 황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충 놀다가 박사학위를 받을 것이 자명한 마코 공주를 일본 대학원생들이 어떻게 볼 지는 불 보듯 뻔한 일.

사실 연구직, 그것도 타교로 취직해서 반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저런 식으로 뜬금없이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겠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연구직이며 명색이 박사학위인 만큼 하나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직종인데도, 직장은 그렇다 쳐도 공무까지 하면서 박사학위를 받겠다는 건, 적어도 석사 이상 공부를 한 사람은 알겠지만 저건 놀면서 받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인이 그 정도로 머리가 좋은지는 차치하더라도, 학업과 연구직이라는 직장에 한해서는 굉장히 불성실한 태도임은 변함없다.

참고로 후미히토 일가에 대해 넷상에는 비교적 우호적인 댓글이 많이 달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이들이 "키코 비는 늘 돈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자녀들을 뒷돈으로 입학시키고 뒷돈으로 학위를 따게 한다!!"는 불만의 반응도 많았다. 심지어 칠촌 고모이자 일본 황실 최초의 여성 박사인 아키코 공주조차도 이런 마코 공주의 태도를 비판했다.[20]

2016년 9월 이후, 카코 공주국제기독교대학 2학년 2학기가 되어서도 성적이 바닥이라고 한다.[21]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서는 단순히 낙제한 거야 학창시절부터 늘 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사실 생각보다 심각한 건데, 사실 카코 공주가쿠슈인 대학에 다닐 때도 1학년 1학기 중반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계속 두고 보던 가쿠슈인 대학에서 결국 견디지 못하고 제적시키려던 판에, 어머니 키코 비가 손을 써서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시킨 것이라는 설이 정설이다. 이 과정에서 카코 공주편입학이 아니라 재입학을 택했다.

그럼에도 "가쿠슈인 대학에서 이수한 학점을 유지시켰다"는 기묘한 논리로, 최소 2학년 1학기까지는 학점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는 방침을 택했다. 따라서 이 논리대로라면 기 이수학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적에 무리가 가지 않았어야 정상인데, 그 억지 이수학점이 있음에도 낙제했다는 꼴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카코 공주는 낙제하기 싫어서 공무를 쉬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상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니, 더욱 문제이다. 즉, 그렇게 공부도 하고 어거지 학점도 있는데도 2년 내내 낙제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충 요약하자면, 결국 두 공주가 국제기독교대학에 진학한 이유는,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적이 나빠 가쿠슈인에서 낙제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마코 공주가쿠슈인 대학과 가쿠슈인 여대에 없는 예술과학과의 박사과정을 편안히 공부하기 위해서, 카코 공주는 가쿠슈인 대학 교육학과에서 최소한의 성적조차 유지할 수 없어서였다.

두 자매의 화려한 성적 탓에 바보 자매(…)라고 불리더니, 이제는 하다하다 남동생 히사히토 친왕까지 합해서 바보 3남매라고 불리고 있는 중이다.

7. 히사히토의 중학교 무시험 입학

2018년도부터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의 자매결연 학교인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로의 무시험 입학 제도가 발표되었다.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초등학교 학생 몇 명[22]을 선발,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에 무시험으로 진학할 수 있게 하는 것. 중학교 졸업 후 츠쿠바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상술했듯이 히사히토가 다니는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 및 부속중학교까지는 남녀공학이지만, 부속고등학교는 여고이다. 때문에 남학생들은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초등학교 남학생들은 대부분 이 문제 때문에, 중학교부터 이미 외부 중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중학교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약 2.5배가 많다.

그래서 히사히토는 다른 남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중학교 입시 준비를 위해, 4학년이던 2016년부터 가정교사를 구하려고 했다.[23] 하지만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어머니 키코 비의 악명(?) 때문에, 가정교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여고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일본 최초의 여학교'라는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오차노미즈 동창회의 결사적 반대로 인해 무산되었다. 게다가 총장 무로후시 키미코(室伏きみ子)도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학교를 쭉 거쳐 오차노미즈 여대 이학부를 졸업한 인물이라, 찬성할 리가 없었다. 오차노미즈 여대에 부속남고를 설립하려고도 했지만, 그 역시 되지 않았다. 결국 자매대학의 부속중학교 진학으로 노선을 바꾼 것이다.

편자치 75[24]라는 입시명문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에 무시험 서류 심사 입학이, 히사히토의 한 학년 위부터인 2018년도부터 시작되어 히사히토가 입학한 후인 2019년도까지만 적용된다고 한다. 당연히 이 이야기가 보도되자 일본에서는 여론이 좋지 않다. 4학년부터 계속 중학교는 가쿠슈인 중등과(남중)로 진학한다고 언플했지 않았나?

2019년 2월 큰누나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 때문에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이 결정되었으나 일본 여론은 부정입학일 거라고 거의 믿고 있다.

졸업식 날에 초등학교 시절의 성적이 일절 공개되지 않았고, 가족들이 기본적으로 성적이 낮아서 부정입학을 했다보니, 그에 따라 히사히토 역시도 부정입학 논란이 상당히 심하다.

3월 30일 주간지를 통해 드디어 히사히토의 성적 수준이 알려졌다. 기사에 의하면 히사히토의 성적은 중간 정도로, 작년 8월부터 국영수를 비롯한 음악, 미술, 가정, 체육까지 시험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그 정도 성적이라면 그나마 진학처나 히사히토의 장애 관련 의혹 등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데는 충분했기에 공개해도 무방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실은 친누나들처럼 낙제에 가까운 성적을 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거기다 후미히토동창회를 가지 않을 정도로 가쿠슈인을 싫어해서 히사히토를 가쿠슈인 고등과(남고)에 보내지 않을 거라고 한다.[25]

4월 8일, 히사히토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가능성과 시야를 넓혀 가겠다"는 선서를 했고, 보도진과의 대화에서 "충실한 중학교 생활을 보내고 싶다"고 답변했다. 2019학년도 입학자는 히사히토를 포함한 114명으로, 히사히토는 4개의 반 중 국화반에 배정되었다.

해당 기사에서 일본 국민들은 신입생 대표는 성적 우수자들을 중심으로 하는데 황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이 낮은 것이 사실상 확정인 사람을 신입생 대표로 세운 것에 대해서 이렇게 제대로 노력도 안 하고 특혜만 받고 있는 히사히토가 과연 차기 천황으로서의 합당한 자질이 있는 자인가라는 주장이 대부분인 상황이다.

거기다 졸업생들의 말로는 "여학생이 신입생 대표가 하는게 관례이며 남학생이 신입생 대표가 된 것과 교장의 축사는 학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하고, 이러한 특혜들을 감안하면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여고가 히사히토가 고교에 들어가는 2021년즈음에 강제로 남녀공학이 되는거 아니냐며 추측하면서 출신자들이 전통이 황족 특권을 이유로 파괴될 것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있다.

8. 히사히토의 살인 미수 피해 사건

어린 히사히토는 이런 집안 분위기 탓에 위축되던 중 2019년 4월 26일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 1학년 국화반 교실 히사히토의 책상에 칼 2개와 봉 1개로 만들어진 흉기가 올려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5월 1일자로 천황 승계 서열 2위이자 향후 일본 황실의 유일한 희망인 히사히토를 노린 테러인 셈이다.[26] 처음에는 일본 전체가 놀랐으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언가 앞뒤가 안 맞은 보도가 나오면서 키코 비에 의한 정보 조작이 의심되고 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사건 당일 오후 "키코 비히사히토를 데리고 나가노현으로 갔다"던 보도가 어느 순간 "히사히토 혼자 나가노현으로 갔다"는 것으로 변경된 것이었다. 이러한 정보 조작은 사건 전개 과정에서 수상한 면들이 많다는 점 등과 연결되어 최종적으로는 집안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차단하기 위한 후미히토 일가가 언론계의 지인 등[27]을 이용해서 한 수작이라는 내용의 음모론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2019년 5월 11일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 차원에서 흉기 사건에 대한 학부모회가 열렸다. 이 모임에 키코 비도 참석하자,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저건 분명 학부모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한 예상대로 키코 비는 상석에 앉아 학부모들을 내려다보면서 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결국 학부모들 어느 누구도 "이번 사태를 유발한 히사히토를 전학시키라"는 요구를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인터넷 상에서 나돌고 있다.

2019년 5월 24일에 나온 기사는 애써 키코 비히사히토를 감싸는 내용들이었다. 모자(母子)가 떠난 나가노현 여행은 원래 히사히토가 자연과 정서를 느끼기 위한 1인 여행으로 경호원과 시종도 함께 동행할 예정이었다, 키코 비는 '4월 말 ~ 5월 초까지 시아버지 아키히토 덴노의 생전 퇴위에 따른 여러가지 황실 행사 기간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서 히사히토와 함께 갈 수 없다'는 의사를 친구에게 밝혔다, 히사히토에 대한 살인 미수 사건에 대해 키코 비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불안에 빠질까봐', '학교 관계자들이 자신들을 책망하는 것은 아닌지'를 걱정을 하고 있었다 등등.

하지만 이러한 보도에 대해서 일본인들은 "또 다시 언론을 이용해서 여론 조작한다"면서 "더 이상 일본 국민들은 너희들의 여론 조작에 안 휘둘린다"는 의사가 강하다.[28]

9. 자녀들

키코 비의 세 자녀의 교육 논란

9.1. 마코 공주 : 결혼 소동

2017년 장녀 마코 공주가 대학 동기인 코무로 케이와 결혼하겠다고 약혼 발표 기자회견을 했지만, 곧 코무로 케이와 그의 어머니 코무로 카요(小室佳代)에 대하여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일본 여론은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의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정식으로 약혼 의식[29]도 치르지 못했고, 결혼식이 2020년으로 미루어지더니, 코무로 케이는 2018년 여름부터 근무한 회사의 지원으로, 미국 포덤 대학교 로스쿨유학을 떠났다.

2018년 8월 4일 오후, 코무로 케이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키시노노미야 궁저를 방문했다. 브라질 순방에서 8월 2일 돌아온 마코 공주를 비롯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구성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2018년 8월 7일, 드디어 미국으로 떠났다.

마코 공주의 약혼과 결혼 소동은, 마코 공주 개인뿐만 아니라 후미히토 일가(특히 어머니 키코 비) 및 일본 황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도 2018년 하반기 이후 키코 비는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의 결혼을 반대하게 되었다. 카요가 문제를 수습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황실에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반면 마코 공주는 계속 케이와 결혼하겠다고 고집하고, 후미히토도 큰딸의 편을 들어, 키코 비에 대한 비판 여론은 줄어들고 대신 후미히토와 마코 공주에 대한 비판이 강해졌다.

3남매 중 가장 엄격하게 교육받았다고 생각되는 마코 공주였으나, 엄격하게 교육받았다고 해도 키코 비에 의해 아이돌 팬 금지, 무기한 서클 활동 금지 등처럼 제한되는 게 많았을 뿐, 황족으로서 제대로 교육받은 것도 아니고 10살 아래의 아이코 공주와 15살 차이의 히사히토가 태어나기 전까지 일본 황실의 맏손녀로서, 사실 동생들이 태어난 이후에도 조금 덜할뿐이지 성년이 되기 전까지도 직계 황녀의 대우와 그와 다름없는 인기를 자랑했다. 결국 성인이 되어서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떠받들어져서 자라 고집세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임이 드러나면서 여론은 매우 부정적으로 변했다.

2019년 1월 22일 ~ 23일 마코 공주코무로 케이고작 A4용지 1장짜리 문서변명문를 하나 발표했다. 발표 시점은 천황 부부가 요양 중이고 후미히토 부부는 공무 중이라 모두 부재중일 때였다. 문서 내용은 "카요가 전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돈은 빌린 것이 아니고 증여받은 것이니, 전 남자친구에게 돈을 갚을 이유가 없다"는 구구절절 변명에 불과했다. 덕분에 궁내청은 새벽부터 패닉 상태였고, 일본에서는 전국민이 아키시노노미야 집안을 비판했다.

2019년 들어서도 카요와 케이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들이 터졌음에도 마코 공주는 계속해서 결혼을 고집했다. 마코 공주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여전히 마코 공주는 이해할수 없는 고집과 정신력으로 파혼하지 않고 버텼다. 그 덕분에 집안 전체의 이미지는 최악을 달렸으며, 당시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 1학년이던 막내동생 히사히토는 큰누나 마코 공주 때문에 학교에서 테러범의 살인미수 피해를 겪어야만 했다.

2020년 1월, 황족들이 모여 와카를 발표하는 행사가 있었다. 마코 공주는 와카를 통해 여전히 코무로 케이와의 결혼을 원하고 있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후 주간지 보도들에 따르면, 마코 공주는 여전히 부모님과는 공무 이외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공무나 박물관 근무를 제외한 시간에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서 코무로 케이와 소통하고 있다고 한다.

2021년 10월 26일, 마코 공주는 코무로 케이와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이에 따라 그녀는 평민 코무로 마코가 되었다. 결혼식도, 시집가는 공주에게 주어지는 지참금도 없이, 혼인신고만 했다. 케이와 마코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신접살림을 차릴 계획이다.

9.2. 카코 공주 : 솔직한 발언

카코 공주 역시 마코 공주만큼은 아니어도 부정 입학 논란이 심각했지만 언니 마코 공주와 남동생 히사히토에게 끼여서(?) 2016년 내내 공무에 시달리고 뒤늦게야 영국 유학을 갔는데 마코 공주의 결혼 소동탓에 급히 돌아와야해서 마코 공주에게 민폐를 받는 입장이었다.[30]

그러나 2019년 3월 22일 카코 공주국제기독교대학 졸업식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카코 공주는 "본인의 마음이 중요하다. 언니 개인으로서의 희망이 이루어진 형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함께 "앞으로 내 결혼 상대까지 공개하지 않겠다"고 황족답지 않은 솔직한 생각 없는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올라 스스로 논란거리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어떤 남자를 만나고 어떤 남자와 결혼하건, 간섭하지 말라"고 황실과 언론, 전 일본 국민에다 대고 선전포고한 것이다.(…)

2018년도까지만 해도 카코 공주의 자유분방함이 단순히 보수적인 일본 황실에서 파격적인 수준이었을뿐이지 적어도 그 나이 또래 여자들에게 흔한 수준이였기에 일반 대중들은 그런 걸로 난리를 부리는 게 이상하다는 듯한 평가를 내리면서 카코 공주의 인기를 올렸으나 문제는 이번 발언은 결혼 문제에 신중한 의견을 제시하는 일본 황실의 공식 발언[31]과 달리 너무나 솔직한 발언이었고 거기다 일본 사회를 뒤집어놓은 언니인 마코 공주의 결혼을 찬성하는 말에 또 다시 일본 여론은 자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런 문제들을 연발하게 만든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를 비난하고있다.

언니 마코 공주만큼은 아니어도 역시 카코 공주 역시 폐쇄적인 환경속에서 떠받들며 자라나서 세상물정 모르고 제멋대로로 자란 데다가, 한편으로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자라서 문제성을 모른 채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그나마 이를 조금이나마 교정해줄 역할을 해야 하는 부모조차도 이들 못지 않은 존재들이기에 결국 별 다른 교정없이 그대로 자라면서 이런 문제들을 연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가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지배적이며 이러한 평가는 그동안 후미히토 일가를 옹호해오던 궁내청이나 극우세력들에게도 자주 나오는 내용이기도 하다.

마코 공주카코 공주의 논란으로 인하여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우려해오던 아키시노노미야 부부의 교육방침에 대해 구설수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이를 연관하여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의 천황 승계 거부 여론으로 크게 불거졌다. 국민들은 황족으로서의 자신과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명확하게 나눠 교육한 아키시노노미야 부부가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공주들의 사생활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아 이러한 사단이 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생활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부부의 인식은 '어떤 경우라도 입장과 의무를 우선시하는'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가 관철하고 있는 신념[32]과 상반된 것이라는 게 궁내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언니 마코 공주를 옹호하는 발언 등을 하면서 물의를 일으켜서 일본 국민들로부터 언니에 버금갈 정도로 질타를 받고 있다.하지만 아직까지는 별 다른 문제가 없는데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친언니를 도와주는 것이라서 졸업시 해당 발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재 카코 공주는 언니마냥 사고를 치지 않았고 조용히 공무에나 집중하고 있는 상태라서 비난할 건덕지가 적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대중 여론은 걱정에 의한 잔소리에 가깝지만 카코 공주의 성격상 마코 공주에 버금갈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물의 이후 조금만 움직였다고 하면 네티즌들이 달려드는 통에 울면서 마사코 황후아이코 공주에게 달려간다는 보도도 있었으나 그 이후 보도를 통해 비공개 댄스동아리 발표식에서 대규모 경호인력들을 대동하고 나타나서 부모들이 자녀들 사진을 찍는 것조차도 방해하는 등 행위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카코 공주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욱 더 커진 상태.

하지만 키코 비의 입장에서는 현 시점에서 카코 공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그동안 방해해온 댄스 활동에 대한 방해도 멈추었다고 한다.

9.3. 히사히토 : 교육

2019년 2월 4일 히사히토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 중학교로 진학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처음에는 츠쿠바대학 부속 중학교로 보내려 했지만 일본 여론의 반발 때문에 결국 그만뒀다. 문제는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학교는 고등학교부터 여학교라서, 고등학교와 대학은 어디로 가야 할지가 문제다. 이미 2017년도부터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 무시험 입학 전형을 추진하려다 무산되었고, 현재 황실 쪽에서 아이코 공주에게 '격이 떨어지는건 알겠지만 그냥 가쿠슈인대학에 가십시오'라 한다지만,[33] 아이코 공주의 성적이 2019년(고3)에 접어들어 도쿄대학 입시 안정권까지 올라갔기 때문에[34] 정말로 도쿄대학에 합격하게 된다면, 히사히토의 공부 압박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35]

거기다 현재 히사히토의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중학교 입학 역시 부정입학이라는 의심을 넘어서 확신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6월 황실 전담 기자에 의하면 키코 비히사히토를 차기 천황 후계자로서 잘 양육하는 것을 임무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이 히사히토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마코 공주 역시 이와 같은 이유로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코 공주 본인은 언젠가 황실을 떠나서 자기가 생각한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식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결혼만은 부모님의 간섭없이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의사가 강하며 그러한 생각 때문에 자신의 아집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 지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

사실 키코 비는 마코 공주카코 공주를 구 황족이나 구 화족 가문의 아들과 혼인시켜서 여성 미야케를 창설해 히사히토를 계속 돕게 하려고 한다.[36] 하지만 하가해서 부모의 규제와 약 27년간 쭉 해온 엄청난 공무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코 공주의 입장에서 부모에게 계속 얽매이는 게 싫기 때문에 코무로 케이라는 민간인과의 결혼을 하기 위하여 계속 반항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건 마코 공주보다 아버지처럼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카코 공주도 마찬가지일 듯. 사실상 모녀의 대화가 해결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6월 23일 상황 부부가 후미히토 집안의 잇다른 추태에 후미히토 내외의 자녀 교육을 상당히 걱정하고 있는데다 그동안 와병생활을 하던 마사코 황후가 수십년간 와병생활을 한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활동적인 모습으로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히사히토의 천황 승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낀 키코 비히사히토의 교육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궁내청 관계자는 "현재 키코 비와 히사히토의 모습은, 아이코 공주가 가쿠슈인 초등과에서 이지메를 당했을 때 마사코 황후와 아이코 공주의 '모녀 밀착'과 비슷하다"고 하면서도 "마사코 황후아이코 공주를 옆에서 지지하는 수준이었다면, 키코 비는 히사히토에게 적극적으로 간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키코 비의 관여에 히사히토는 "어머니의 사랑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듯하나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운동회 때 키코 비에게 당연하다는듯이 배낭을 건네고 그걸 받아들이는 키코 비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기 때문에 제법 오래 전부터 이런 관계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춘기를 맞이한 히사히토의 인격 형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궁내청 관계자가 많다.

히사히토가 학교 친구들에게 무뚝뚝하게 대하거나, 큰누나 마코 공주를 두고 "좋지 않은 이름"이라고 하면서 디스하는 등 여러가지 면에서 인성의 문제가 튀어나오자 궁내청에선 "차기 천황(히사히토)으로서 나루히토 덴노의 옆에서 제왕학을 공부해야 한다"면서 "나루히토 천황이 시간이 된다면 히사히토와 등산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나루히토 천황 입장에서 아이코 공주로의 승계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같기에 과연 이를 실시할 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나루히토 본인도 히사히토의 교육을 자기가 맡으면 딸 아이코 공주의 황위 계승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애들은 친부모 밑에서 자라야 옳다'는 이유를 내세워서 필사적으로 히사히토의 양육을 거부하고 있다.

아이코 공주의 승계 문제를 제치고서라도 나루히토 덴노가 히사히토를 굳이 맡을 이유가 없는 것이, 양육을 하려고 했으면 유치원, 아무리 늦어도 소학교 입학 전후 쯤에서는 맡아야 했다. 이미 왜곡된 집안환경 속에서 생활한 지 13년이나 된 청소년의 인성과 행동양식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전문적인 카운슬러도 한참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인데 공사 다망한 나루히토 덴노 부처가 이제와서 아이코 공주에게 했던 것처럼 히사히토에게 공을 들일수도 없을뿐더러,[37] 그렇게 데려다 키운 결과 별 달리 나아진 모습이 없으면 역으로 천황 부부가 역풍을 맞기 좋은 일이다. 게다가 그 자존심이 센 키코 비가 금쪽같은 아들이 순순히 자기 시아주버니 손에 자라게 놔둘 리도 없으니, 사실상 히사히토가 큰아버지 나루히토와 큰어머니 마사코 부부 손에서 자랄 가능성은 0에 한없이 수렴한다.

결국 아이코 공주는 최종적으로는 도쿄대학이 아닌 가쿠슈인 대학 진학을 발표했지만 천황인 아버지의 뒤를 따라서~라는 말을 볼 때 동궁 시절 천황의 행보를 따라 영국 유학을 택해 우수함을 입증하거나 대학에 진학한 뒤 부모를 도와 황족 공무로 위엄을 떨치는 등의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아이코 공주는 논란이 많다지만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공무를 해서 공무에 익숙한 마코 공주가 외국 공무를 다녀오자 마코 공주와 접선해 공무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물어보기도 했으며 2019년 12월 18세 생일 이후에는 부모님을 따라 여러 공무에 참석하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2020년 하반기에는 2020 도쿄 올림픽/2020 도쿄 패럴림픽이 예정되어 있기에 이때를 기점으로 단독 공무를 실시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10. 냉랭한 집안 분위기

히사히토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야심을 드러내지 않으며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히사히토가 태어나고 후미히토 친왕이 아키히토 상황 부부에게 총애를 받게되자 점차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 나루히토 천왕 일가가 아들을 낳기 전에 아들 히사히토의 스펙을 완벽히 만들어 무결점 왕을 만들어 황위 계승권을 탄탄히 만들기 위해 교육열을 보이면서 폭주하기 시작한다.

히사히토가 태어난 이후 키코 비는 히사히토에만 신경쓰고 히사히토가 하면 봐주고 공주들이 하면 단단히 혼내는 등, 히사히토의 응석만 받아주고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의 말은 묵살하니 두 공주는 부모에게 차별감정을 제대로 받았다. 그 결과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가 남동생이자 막내인 히사히토에 대한 현재에 대해서는 규제로 인해 보도가 안되기에 불명이지만 전반적으로는 키코 비와 후미히토가 히사히토에게만 신경쓰고 처벌선이 낮은 것에 대한 불만이 강한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것을 증명하듯 2019년에 들어서 마코 공주는 부모가 말을 걸면 아예 입을 닫아버리고 무대답으로 대응하고 카코 공주는 그런 언니를 말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편들고 어머니 키코 비에게 말 걸지 말라고 하며, 두 자매 모두 히사히토 편애를 하는 부모에게 항의하는 중이다.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다 이는 부모가 지나친 간섭 또는 방임으로만 키웠기 때문에 그로 인한 불만이 이번 사건으로 폭발해서 심하게 반항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카코 공주는 둘째라서 피해를 크게 봤다.[38]

게다가 이제는 하다하다 만 13세인 히사히토가 보는 앞에서도 부부싸움을 한다고 한다. 그 덕분에 2019년 히사히토의 인성 논란이 튀어나오기 시작하자 일본 네티즌들은 이 사실에 놀라기보다는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11. 가와시마 일가 재일한국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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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한국 방문 당시 사진[39]

결론부터 말하자면 키코 비의 한국계설은 완전히 헛소문에 불과하지만, 본디 음모론이란게 늘 그렇듯이 2021년 시점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일웹 일부에서 계속 제기되는 중이다. 사실 일본에서 논란이 되는 인물을 두고 부라쿠민으로 몰아가거나 재일한국인으로 모는 것도 이제는 의례적이다시피 한 일이지만, 키코 비도 본인과 관련한 논란과는 별개로 끊임없이 재일한국인설과 부라쿠민계설이 제기된다.

결혼하기 훨씬 이전이지만 1985년에 한국을 방문한 전력이 있다. 사실상 2002년 노리히토 친왕의 방한 이전까지 일본 황족으로서는 유일하게 20세기 한국을 방문한 인물인 것. 이를 두고 일부 일본 누리꾼들은 키코 일가의 재일 한국인설을 주장한다. 그 주된 논법이라는 것이 다음과 같다.

"1980년대에는 한국을 찾는 일본인 여행객이, 특히 여대생이 한국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키코는 위험을 무릅쓰고 군사독재 국가이던 그 시절 한국에 갔다. 그러므로 가와시마 일족은 사실 재일 한국인이며, 한국에는 친척을 만나러 갔을 것이다." 따라서 키코에게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주장한다. [40]

이는 오사카 타이쇼역 근교에 위치한 '다쓰미(たつみ)'라는 한국식 불고기집에 걸린 키코의 사진과 더불어 이른바 '가와시마 일가 재일 한국인설'의 단골 소재다. 해당 업소에는 가게를 찾은 키코의 사진과 그런 키코를 환대하는 가게 종업원들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 이 사진을 업로드 한 블로거가 남긴 '아무래도 점주와 키코님이 먼 친척이 아닐까?'라는 코멘트까지 재일 한국인설의 근거로 활용된다.

오사카야키니쿠집은 주로 재일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당 가게 사장도 재일 한국인일 것이고, 키코가 뜬금없이 오사카의 평범한 불고기집을 찾은 건 다름아닌 해당 가게의 주인과 친척이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오사카시 보건소 생활 위생 감시 사무소 #가 공개 중인 '식품 영업 허가 시설 일람'에서 해당 업소와 영업주의 이름을 조회해보면 아무래도 재일 한국인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이름인데다가 # 가와시마 일가의 가계도를 뒤져봐도 불고기 가게 사장인 '모리타니'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논리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우스운 것이, 그런 논리라면 불고기집 단골로 알려진 아베 신조 총리도 재일 한국인일 것이고 [41] 단지 여행지로 각광받지 못했던 1980년대의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국인이라면, "2020 년 현재 아프리카에 관광 여행을 가는 일본인 여대생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여행을 간 여대생은 아프리카인이다."라는 기적의 논법도 얼마든지 가능한 셈.

하지만 키코 비의 아버지인 카와시마 다츠히코 교수가 유독 여러모로 수상한 재일교포들[42] 혹은 그들과 연관된 일본인들과의 교류가 상당히 잦다는 건 수 차례 언론 보도를 통해서 확인된 상황이며 심지어 한국 내에서 노재팬 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에도 재일교포 지인과 대한민국을 방문할 정도라 궁내청측에서도 우려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인지라 이러한 재일설은 후미히토 일가를 안 좋게 보는 진보측 인사뿐만 아니라 후미히토 일가를 적극 응원하는 극우 그것도 일본회의쪽 사람들조차도 믿고 있는 사람이 제법 많을 정도.

[1] 사실 잘 생각해보면 후미히토는 비교적 공무에 참여하는 편이니 알코올 중독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후미히토에 대한 일본의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2] 히사히토는 천황의 손자이지만 황태자의 아들이 아니라서, 황실경제법상 황족비를 받는 방계 황족이다. 천황과 황태자 일가가 받는 내정비보다 황족비는 상대적으로 적게 책정되어 있다.[3] 이들이 공무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만 해도 얼마나 돌려서 말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4] 이 자리에 후미히토도 참석하는데, 그는 그냥 자리에 앉아서 키코 비가 시종들에게 갑질하는 거나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5] 여기에서 후미히토까지 끼어들어서 지시에 따르는 시종에게 별도 지시를 해서 서로의 지시가 충돌하면 직원들은 패닉에 빠진다. 그 이유는, 이 2개를 다 하지 않으면 부부가 쌍으로 둘 다 못한 직원을 들볶기 때문. 후미히토는 아내가 자신과 다른 지시를 했다는 걸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시킨 적도 있다는 듯하다.[6] 추후 천황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냥 가정교사도 사실 부담이 큰 자리인건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 천황 논의까지 이뤄졌던 아이코 공주도, 황실 첫 손주인 마코 공주도, 그 이전 나루히토 황태자 시절에도 이런 게 논란이 크게 된 적이 없었던 걸 보면 분명히 다른 문제 역시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클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부담이 큰 자리라고 해도, 명예욕 때문이든 물욕 때문이든 자원하는 사람이 없을래야 없을 수는 없기 때문.[7] 이후 추가보도를 통해 그가 경찰청 복귀 후 직책이 폭력단대책과 이사관이라는 게 확인되면서 경시정인 게 확정되었다.[8] 해당 저택은 원래 쇼와 덴노의 동생 치치부노미야 부부가 거주하던 곳으로 1995년 세츠코 비가 사망하면서 리모델링을 거쳐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의 저택이 되었다.[9] 하지만 아키시노미야 가문은 나루히토 덴노 즉위 이후에도 내정황족은 아닌 일반 황족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상태이다.[10] 다시 말해 대놓고 손윗동서를 정신병자라고 모욕한 셈. 심지어 본인보다 3살 많은 형님임에도! 아랫동서의 이런 모욕에, 당시 오랜만에 행사에 참석해서 다소 긴장한 상태에도 최대한 웃으려고 노력하던 마사코 황태자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11] 마사코 황후는 1993년 일본 황실에 시집온 이래로 아주 극심한 우울증과 적응장애에 시달려왔고, 아이코 공주는 아기였을 때부터 "자폐증이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에 시달려왔다. 물론 우수한 성적으로 그런 논란들을 사그라뜨렸지만.[12]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 카코 공주의 결혼 발언을 통해 두 공주가 황족으로서 사생활 관리를 해야 한다는 자각이 없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13] 마코 공주코무로 케이와 결혼하겠다고 드러누워 떼쓰는 기간이 길어지고, 결국 헤이세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해결하지 못해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런데 논란의 당사자인 마코 공주가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만 골라하고 있으면서 여전히 국민들의 세금으로 대학원까지 다니고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코무로 케이 또한 미국 유학 중에도 일본 국민들의 세금으로 경호를 받고 있는 데다,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는 아키시노노미야 부부는 상황 해결은커녕 손도 못 대고 있으니, 일본 국민들 눈에는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행동이 세금 도둑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14] 마사코 황후는 오랜 지병인 우울증과 적응장애로 인해 황태자비 공무를 거의 수행하지 못해 세금 도둑 소리를 20년 동안 들어야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연이은 호재(남편의 천황 등극, 의 우수한 성적)와 시어머니 미치코 상황후의 지지 덕분에 많이 호전되었으며 그녀의 불운하고 굴곡진 삶이 일본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며 그동안 세금 도둑이라 욕하던 사람들도 악재 속에서도 딸 아이코 공주를 일본 최상위권 우등생으로 키워낸 그녀를 칭찬하고 마사코 황후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궁내청, 주간지, 극우, 그리고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를 비난하게 되었다.[15] 두 공주들의 막 나가는 언행이 키코 비후미히토 때문이며 "히사히토를 후미히토 부부의 슬하에서 키우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부모부터가 앞에서만 황족다운 척 공무를 열심히 하고 뒤에서는 허구헌날 큰 소리로 부부싸움에다 엄마는 히스테릭한 통제광에 아빠는 알코올 의존증에 불륜, 성매매 의혹이 끊이지 않는 콩가루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니, 두 공주가 앞에서나 뒤에서나 항상 황족다운 기품을 유지하는 모습으로 자랄 수 있었겠냐는 것.[16] 박사학위논문 : 結核予防の意識と行動について : 結核予防婦人会講習会参加者・女子大学生の調査より (2013). 보고번호(박사논문)가 을호(乙号)박사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논문박사이다.[17] 아키히토 덴노의 사촌 남동생인 토모히토 친왕의 큰딸. 일본 황실 최초의 여성 박사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해외유학을 떠나는 큰딸 아키코 공주에게, 토모히토 친왕은 "세금으로 공부하는 것이니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18] 후미히토 친왕도 공부를 지지리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어떻게든 가쿠슈인 대학에는 보내야 하겠기에, 일본 황실&궁내청&가쿠슈인은 고심했다. 결국 후미히토 친왕의 점수를 커트라인으로 정했고, 그래서 1984년도 가쿠슈인 대학의 신입생이 많았다고 한다.[19] 애초에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학교는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거주지의 학군이 아니다. 게다가 고등학교부터는 여고이기 때문에 고등학교부터는 에스컬레이터 진학이 불가능하다! 그에 비해 가쿠슈인은 시작부터가 황족+화족 전용 학교에다 지금도 금수저가 많이 다녀 경비도 삼엄하고,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학군이고 에스컬레이터 진학 또한 수월한데다 후미히토, 마코 공주, 카코 공주 부녀의 사례를 보더라도 황족이라면 공부를 아무리 못해도 대학까지는 보내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걸 다 뿌리치고 굳이 다른 학군의 오차노미즈로 보내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 황족에게 유리한 조건을 다 뿌리치고 오차노미즈로 간 것이 아니라 가쿠슈인에서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이런 이유로 나오는 것이다.[20]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 황실어그로꾼이라 알려진 토모히토 친왕인데, 그런 그조차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유학박사학위를 받으려는 큰딸 아키코 공주에게 "세금으로 공부하는 거니 넌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었다. 아키코 공주도 아버지의 말에 따라, 그리고 본인이 취업하는데 "황족이라 유리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공부와 연구에만 파고들어서 순수하게 자기 실력으로 박사학위를 땄다(어떻게 보면 토모히토는 적어도 자기 자식들만은 확실히 개념있게 키워온 셈이다). 그에 비해 마코 공주는 박사학위를 하는 가운데서도 공부, 연구, 공무 셋 다 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정말 도를 지나친 것이 사실이다.[21] 어머니 키코 비는 부지런한 우등생이었다는데, 3남매 모두 어머니는 닮지 않고 아버지를 닮은 모양.[22] 아마 히사히토 및 히사히토와 친한 아이들 몇 명을 선발하여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로 함께 보내, 히사히토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친한 친구들과 함께 마음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려는 듯.[23] 경호 문제 때문에, 일반 아이들처럼 학원에 다닐 수 없다. 그래서 개인 과외 선생님을 구해야 하는 것.[24] 커트라인이 전국 상위 0.62%라는 뜻이다.[25] 그런것치고는 가쿠슈인 대학 캠퍼스 커플로 결혼한 키코 비와의 결혼 과정에도 논란과 안 좋은 소문이 떠돌고 있다.[26] 황족을 대상으로 한 이지메는 많이 있었으나 살인미수 사건은 사실상 최초이다.[27] 실제로 일본 언론계에 유독 후미히토 일가에 우호적인 언론인과 연예인들이 제법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28] 이는 그동안 일본 언론들의 혹독한 비난을 받던 마사코 황후가 상상 이상의 활약을 펼치면서, 그동안 언론들의 패싱 때 언급한 '무능하면서 병을 핑계로 쉬고 있는 황태자비'라는 평가가 거짓말이라는 걸 직접 본 이후로 더더욱 강해졌다.[29] 노사이(納采) 의식. 신랑 측에서 신부의 집에 사람을 보내 청주(술), 도미(어류), 옷감 등의 예물을 전달한다. 이 의식을 치러야 정식으로 약혼 관계가 성립된다. 마코 공주코무로 케이는 아직 노사이 의식을 치르지 못했고, 약혼 발표 기자회견만 한 상태.[30] 당시 카코 공주는 1달간의 유럽 자유여행을 준비중이었다.[31] 아버지인 후미히토조차도 큰딸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 "국민들의 동의와 찬성 없이는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32] 이는 상황 부부만의 신념뿐만이 아니라 대체적인 일본 황족관이다. 심지어 온갖 파격 발언으로 화제가 되어서 망나니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던 토모히토조차도 두 딸들에게 이러한 신념을 교육시켰을 정도.[33] 원래 황족과 화족의 전용 학교였던 가쿠슈인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지만, 아직도 옛 화족 집안 출신이나 부잣집 금수저 아이들이 많이 다닌다. 논란의 마코 공주가 가쿠슈인 대학이나 가쿠슈인 여대가 아닌 대학(국제기독교대학)을 다니다가 그 대학에서 문제투성이 집안의 남자 코무로 케이를 만났기 때문에, 아이코 공주를 애초에 금수저들이 많은 가쿠슈인으로 보내서 제2의 마코 공주 사건을 막으려는 것이다.[34] 겨우 1년 전 2018년(고2) 여름만 하더라도 커트라인에 걸리는 상황이라, 츠쿠바대학, 조치대학, 히토츠바시대학을 거론했다. 하지만, 현재 아키시노노미야 가문(후미히토 일가족)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렴한 두뇌의 소유자들(…)인 게 밝혀진 마당에 저 정도만 되어도 이미 타 황족들의 기를 죽이고도 남는다. 게다가 히토츠바시대학은 가쿠슈인 따위는 저리가라하는 초 명문대로 무려 도쿄대학교토대학 다음 가는 입결과 아웃풋을 자랑하며, 한때 도쿄대와의 통폐합 떡밥이 돌았을 때 교수, 학생, 재단 이사진 할 것 없이 결사반대한 전적이 있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는 평판이 자자하고 타 대학에 비해서도 꿀릴 것이 없는 일류대학이다.[35] 아이코 공주는 성장하면서 우수한 성적이 부각되고 본인 스스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반면, 히사히토는 제대로 성적 공개가 되지 않고, 아버지 후미히토부터 큰누나 마코 공주와 작은누나 카코 공주에 이르기까지 성적은 엉망이었으니… 더군다나 키코 비의 극성 때문에라도 히사히토가 느끼는 압박감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36] 애시당초 구 황족과의 결혼을 통한 여성 미야케 허용론 자체가 친 후미히토파에서 먼저 나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참고로 2019년 기점에서 이러한 논의가 아이코 공주를 천황으로 삼고자 하는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아이코 공주의 천황 등극에 가장 큰 방해가 되는 여계 천황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즉, 후미히토 일파가 자기네들의 권력 공고화를 위하여 제안한 게 역으로 나루히토 덴노 내외에게 반격의 수단으로 전환되어 버린 셈이다.[37] 아이코 공주의 양육에 있어서는 마사코 황후가 황태자비 시절 내내 공무를 거의 못하고 요양에 집중하면서 아이코 공주의 곁에 있었던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물론 아이코 공주 본인의 자질도 우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마사코 황후가 이토록 전심전력으로 힘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면 그 일본 황실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치코 상황후가 여성 천황 승계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칠 정도로 우호적인 상황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38] 마코 공주는 고2때 단독공무를 할 정도로 간섭받으며 주변으로부터의 기대에 맞춘 어린시절을 보냈다면 반대로 카코 공주는 형제들에게 이리저리 치여 언니 대신 공무에 시달리거나 유학을 가고싶어도 못가는 등, 떠받들면서도 제한된 생활을 하는 언니나 비교적 자유로운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중간에 끼여서 나중에는 꿈(유학, 대학원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동생 두 자매 모두 불만이겠지만 특히 카코 공주가 불만이 상당히 많아서 앞으로 카코 공주마코 공주보다 더 큰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39] 촬영장소는 부산광역시 혹은 인천광역시로 추정된다.[40] 가와시마 일가의 가계도를 두고서는 '일본인의 호적을 구입했다.'고 억지를 부린다.[41] 놀랍게도 이걸 근거로 아베도 한국계로 몰아간다. (...) 실제로 아베는 강성혐한인 야마카미 테츠야에게 피살당했다.[42] 카와시마 교수와 교분이 깊은 재일교포들은 민단계,조총련계 가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