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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보시 | |
헌액 연도 | 2021년 |
크리스 보시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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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토 랩터스 등번호 4번 | ||||||||||||||||||||||
젤라니 맥코이 (2002~2003) | → | 크리스 보시 (2003~2010) | → | 퀸시 에이시 (2012~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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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마이애미 히트 No. 1 | |
<colcolor=#fff> 크리스 보쉬 Chris Bosh | |
본명 | 크리스토퍼 웨슨 보쉬 Christopher Wesson Bosh |
출생 | 1984년 3월 24일 ([age(1984-03-24)]세) |
텍사스 주 댈러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조지아 공과대학교 |
신장 | 209cm (6' 10.25")[1] |
체중 | 106kg (235 lbs) |
윙스팬 | 221cm (7' 3") |
포지션 | 파워 포워드 / 센터 |
드래프트 | 2003 NBA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 토론토 랩터스 지명 |
소속 구단 | 토론토 랩터스 (2003~2010) 마이애미 히트 (2010~2017) |
등번호 | 4번 - 토론토 1번 - 마이애미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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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BA의 前 농구선수.토론토 랩터스를 이끌었던 에이스였고 이후에 마이애미 히트로 향하며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빅3를 결성해 가자미 역할을 맡으며 반지 2개를 손에 넣었으나, 다시 에이스로 활약할 기회를 잡자마자 질병 때문에 커리어에 위기를 맞이했고, 방출 후 선수생활을 마감한 빅맨이었다.
2018년 10월 11일 한국과 중국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Gen.G Esports의 선수 매니지먼트 자문위원으로 영입되었다.[2]
2. 커리어
2.1. 토론토 랩터스
토론토 시절에는 머리가 길었다.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태어나 조지아텍에 입학해 2년을 마치고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4번째로 토론토 랩터스에 지명되었다. 팀의 슈퍼스타 였던 빈스 카터가 한 시즌 후인 2004-05시즌에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 된 후부터 팀의 중심이 되었다.[3] 2006-07시즌 올해의 코치 상을 수상한 샘 미첼 감독 아래 보시는 급성장해 팀 공격의 핵심이 되었고 2005-06 시즌부터 토론토를 떠난 2010-11 시즌 전까지 평균 22점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노력한 끝에, 2006-07 시즌에는 디비전 우승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 랩터스는 2007-08 시즌엔 딱 5할에 그치며 3번시드 올랜도 매직에게 1라운드 광탈했으며, 그 다음 두 시즌은 플옵에도 못 나갔다.
이 상태로 간다면 보시가 FA를 통하여 이적하는 건 뻔한 사실이라는 걸 안 단장은 그를 잔류시키기 위해 굵직한 트레이드를 몇번 감행한다. 호세 칼데론의 발전을 위해 버린 TJ 포드도 있었고, 처참한 수비력의 개선을 위해 당시 연봉킹이였던 저메인 오닐까지 영입했다. 그때 당시 언론들은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90년대 트윈타워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 후 이런 파트너는 없었다.' 라고 열광했을 정도.
하지만 이런 야심찬 계획은 완전히 망했다. 저메인 오닐은 연봉도둑이 어떤것인지 몸소 보여주었고 팀은 엉망이 되었다. 보시 개인의 활약은 여전했지만, 팀원들 중에 제 몫을 했다고 할만한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 이렇게 세월은 흘러 2009-10 시즌을 앞두고 야심차게 전시즌 준우승팀 올랜도 매직에서 영입한 히도 터콜루도 망하고 보시는 팀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2.2. 마이애미 히트
결국 2010-11 시즌을 앞두고 FA로 마이애미 히트에 입단한다. 이때 그를 둘러싼 악성 루머가 꽤 많았다. 그는 드웨인 웨이드와 르브론 제임스랑 같은 드래프트 동기이기 때문에 친분이 두터웠고, 이를 바탕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 때 부터 이 셋이 한팀에 뛰는걸 목표로 2009-10 시즌을 고의로 '망쳤다'는 것이다.[4] 2009-10 시즌 엄청난 활약을 보인 르브론 제임스가 플레이오프 진출 후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한 것[5]도 충격적이였고, 보시가 2009-10 시즌 후반에 부상으로 아웃, 뛸 수 있었지만 뛰지 않아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좌절시켰다는 뉴스에 이 루머가 꽤 심각했다.그러나 고의로 시즌을 망쳤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낭설에 가깝다. 보시는 이때 24점-10.8리바운드에 필드골 성공률 51.8%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며 개인 활약으로는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경기 수도 70경기를 뛰었는데, 데뷔 후 7년 간 415경기, 7시즌 중 이보다 많이 뛴게 세 번 밖에 없었던 걸 감안하면 보쉬치곤 평범한 경기수였다. 또한 이 때 랩터스는 플옵 진출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의 팀도 아니었다. 바로 직전 시즌에 33승에 그친 데다가 야심차게 영입한 히도 터콜루가 폭망했기 때문에 별로 올라갈 건덕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40승이나마 거둔 것도 사실 보시의 활약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결정적으로 팀의 시즌을 고의로 망쳐봤자 보시가 얻을 것도 없다. 막말로 이때 랩터스는 우승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플옵 1라운드냐 플옵탈락이냐를 놓고 싸우는 처지였다. 차라리 플옵에 진출시켜놓고 이적하는게 모양새가 더 낫다.[6]
다만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 건 팀이 플옵 진출이 걸린 중요한 경기에서 보시가 결장해 결국 플옵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위에 나오는 콜란젤로의 발언 역시 보시가 시즌을 고의로 망쳤거나 부상을 꾸며냈다는 요지와 거리가 멀다. 그의 요지는 보시가 부상에서 회복하는 데 필요 이상의 시간을 들였다는 말이었다.
"Despite limited swelling and any excessive damage on an MRI, he felt like he needed to sit for six more games ... I'm not even questioning Chris' injury. I'm telling you he was cleared to play subject to tolerance on his part, and the tolerance just apparently wasn't there and he chose not to play," Colangelo said."
"(부상 부위가) 그리 많이 붓지도 았았고 MRI에서 심한 손상이 보였던 것도 아닌데 그(보시)는 여섯 경기나 더 쉴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제가 크리스의 부상에 대해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의료진이) 그가 스스로 참을 수 있다면 뛸 수 있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인내심이 없었고 결국 뛰지 않았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부상 부위가) 그리 많이 붓지도 았았고 MRI에서 심한 손상이 보였던 것도 아닌데 그(보시)는 여섯 경기나 더 쉴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제가 크리스의 부상에 대해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의료진이) 그가 스스로 참을 수 있다면 뛸 수 있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인내심이 없었고 결국 뛰지 않았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즉 부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시가 조금만 참았으면 뛸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당시 보시는 이미 떠날 마음을 굳혔고, 안 그래도 부상이 잦은 몸인데 FA를 앞둔 상황이니 몸을 사렸다고 보는 게 맞다. 콜란젤로가 섭섭하다고 하는 것은 보통 중요한 경기에서 스타들은 종종 부상을 무릅쓰고 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 이런 부상투혼은 물론 대단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선수에게 부상을 참고 뛰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창창한 나이의 선수가 부상으로 커리어를 망치면 누가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
정리해보자면, 토론토의 간판스타로서 투혼을 발휘하지 못하고 본인 몸만 챙긴 것은 분명히 아쉬우나 보시에게 도의적이거나 법적인 잘못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부상에서 회복 중이었던 것은 분명히 사실이었기 때문에.
이런 마당에 2월에 있을 토론토 대 마이애미 게임에서,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마이애미로 이적했던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처럼 환호를 받을지 빈스 카터처럼 캐나다인들 전체의 적이 될 것인지는 확실치가 않았으나... 결국엔 야유를 받고야 말았다. 그래도 빈스 카터처럼 대놓고 태업하고 떠난건 아니고, 빈스 카터가 보유한 프랜차이즈 역대 득점 1위 기록을 깨고 갔기 때문에 심한 야유는 아니었다.
2.2.1. 넘버3?
2010-11 시즌의 보시는 팀의 리더에서 팀의 3옵션으로 격하되었다. 다만 NBA 전체에서도 탑3 안에 드는 선수 중 2명과 함께 뛰는만큼 감안해야 하는 부분.마이애미에서 3옵션으로 뛰면서 스탯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별 불만없이 자기 롤을 수행해 히트의 선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르브론과 웨이드가 빠진 13년 4월 1일 샌안토니오 스퍼스전에서는 위닝 3점 슛을 꽂으며 클래스는 여전하다는걸 증명했다.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상대한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로이 히버트나 파이널에서 만난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팀 던컨과의 매치업에서 고전했으나, 위기의 6차전에서 레이 앨런의 극적인 동점포로 이어지는 공격 리바운드에 성공하고 연장 마지막 대니 그린의 슛도 블록하는 등 허슬 플레이로 팀에 공헌했다.
6차전에서 마이애미의 패색이 짙어지자 미리 떠나는 홈 관중들이 많았는데, 6차전 승리 이후 "이런 근성없는 놈들아 그럴거면 그냥 집에서 봐라." 라며 패기를 부렸다. 그런데 문제는 7차전에서 무득점 5파울로 거하게 삽을 펐다는 점. 마이애미가 우승을 했기에 다행이지 패배했다면 엄청 까였을 가능성이 높다.
2013년 12월 1일, 홈에서 벌어진 샬럿 밥캣츠전에서는 4쿼터 4분여를 남겨두고 7점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투 2개, 덩크슛, 3점슛 3개로 보시 혼자 연속해서 13점을 몰아넣어 역전에 성공하였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참고로 그 3점슛 3개가 본인의 NBA 통산 99, 100, 101번째 성공한 3점슛이었다고 한다.
또한 2013년 12월 29일, 서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의 원정경기에서 37점 10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역전 위닝 3점샷까지 성공시키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전날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르브론 제임스가 출전하지 못했고 드웨인 웨이드가 최근 무릎 상태로 인해 백투백 경기에서 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으며, 팀의 두번째 센터 '버드맨' 크리스 앤더슨마저도 부상으로 결장한 경기였기 때문에 더욱 값진 승리였다. 최근 엄청난 기세를 보이던 상대 파워포워드 라마커스 알드리지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면서도 공격에서 거의 1옵션으로서 활약하면서 그동안 3옵션으로서 희생해온 보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동부 컨퍼런스 이 주의 선수에 선정 된 것은 덤.
보시가 Big 2.5니 뭐니 많이 까이긴 했지만 실제로 Big 3 시절 마이애미의 게임플랜과 백투백 우승에는 보시가 필수였다. 르브론과 웨이드는 전형적인 슬래셔로서 순간적인 돌파로 수비를 찢고 들어가 화려한 레이업과 덩크로 림어택을 하거나 킥아웃 패스를 찔러주는 선수들이다. 이 공격방식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대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상대의 센터를 골밑에서 꺼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 보시의 미드레인지 성공률은 53%에 육박했고, 이는 NBA 전체에서도 최상위권인 성공률이다. 실제로 3점슛보다 확률이 떨어지는 롱투의 성공률을 고려할 때, 이쯤되면 체감상 던지는 족족 들어가는 수준이다. 해설자가 "He's not a good shooter. He's a great shooter."라고 언급할만큼 좋은 슛을 가지고 있는 보시가 롱투를 던지는 거리까지 빠져있으면 상대 센터는 울며 겨자먹기로 골밑을 비워야 했고, 이런 페인트존을 르브론과과 웨이드가 신나게 폭격한 것이다. 그 둘을 막자고 보시를 비워놓을 수도 없는 게, 2013 플레이오프 때 인디애나는 르브론과 웨이드를 막기 위해 히버트를 페인트존 근처에 상주시킨 적이 있고 그 경기에서 보시는 롱투로 인디애나를 완전히 격침시켰다. 인디애나가 다음 경기에서 바로 히버트를 3점라인 근처까지 빼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르브론이 캐벌리어스에서도 케빈 러브라는 준수한 외곽슛을 갖춘 센터와 함께 경기를 뛰기 원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 시기의 보시를 절대 과소평가 할 수 없을 것이다.
2014년 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에게 패하고 옵트아웃을 선언, 휴스턴 로키츠가 영입을 위해 러브콜을 보내왔지만 르브론을 잃은 마이애미가 5년 $118M의 거금을 약속하자 잔류하게 되었다.
2.2.2. 폐혈전[7]과 방출 그리고 은퇴
마이애미의 프랜차이즈 선수인 웨이드는 여전히 건강 때문에 결장이 많았고, 그 외에는 딱히 믿을만한 선수가 없는 마이애미의 에이스로 활동하면서 평균 20득점을 다시 돌파하고 있다. 팀 승률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애쓰고 있었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가슴 통증으로 입원, 진단 결과 폐혈전이 발견되어 시즌아웃이 확정되었다.2015-16 시즌에는 그럭저럭 하다가 또 올스타전 이전에 건강문제로 결장하다 폐혈전이 재발해서 다시 조기에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보시 본인은 컴백하기를 원하고 있었지만 최근 실시한 신체검사에서 또 떨어지면서 점점 컴백이 힘들어 졌다. 보시는 자신의 건강상태가 최상이었고 충분히 컴백할 수 있지만 마이애미 입장에서는 괜히 그랬다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감수해야 할 위험부담이 너무 큰 것도 사실이었다.
이에 한때 팀 동료이자 절친인 웨이드 역시 "보시의 결정은 존중하고 그가 컴백했으면 하지만, 그에게는 아내와 다섯명의 자녀가 있기에 나는 그에게 그걸 더 먼저 생각하라고 권유했다"라고 입장을 보여주기도 한 걸 보면 컴백하기는 힘들어 보였다.[8]
폐혈전은 한 번 걸리게 되면 재발이 쉬운 질병이고, 보시의 나이가 젊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히트에서의 커리어는 끝났다. 16-17 시즌에도 돌아올 수 없었고 구단주 팻 라일리는 사실상 그의 커리어가 끝났음을 암시하였다. 어쨌거나 에릭 스포엘스트라 역시도 그가 없는 마이애미를 고란 드라기치와 하산 화이트사이드를 중심으로 잘 만들어 나갔다.
한때는 NBA Inside에서 현역 선수들이 패널로 진행하는 쇼에 나왔다!
2017년 6월 2일에 NBA 사무국 측과 선수협회에서 진단을 했는데 이번에도 복귀하기엔 너무 위험하단 소견이 나오면서 사실상 복귀하지 못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갔고, 2017년 7월 5일 마이애미 히트는 크리스 보시를 방출시켜 구단 주치의가 더 이상 선수로 뛸 수 없다고 전하면서 사실상 현역을 은퇴하였다.
2019년 3월 26일, 히트 구단 관계자들과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보시의 등번호 1을 영구결번시키는 세리머니가 개최되었다. 이후 마지막에 보시가 "COME ON"이라고 외치면서 모든 관중들을 고조시켰다.
3.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NBA 챔피언 2회 (2012, 2013) 올-NBA 세컨드 팀 (2007) NBA 올스타 11회 (2006-2016) NBA 올-루키 퍼스트 팀 (2004) 2006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일본 동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21) |
4. 플레이 스타일
큰 신장과 빠른 스피드, 뛰어난 기술을 겸비한 파워 포워드였다. 날렵한 체형에 걸맞게 민첩성과 퍼스트스텝이 포지션 대비 대단히 뛰어나서 발 느린 상대 빅맨을 손쉽게 제끼는 돌파 능력이 있었으며, 정교한 미드레인지 점퍼도 겸비해 트리플 쓰렛 상황에서 강점을 보였다.또 한가지 특기할 점은 바로 자유투 겟 능력. 빅맨들 중 미드레인지 장인으로 유명했던 디르크 노비츠키나 라마커스 알드리지는 자유투 시도수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는데, 보시는 토론토 시절 경기당 평균 8개 이상 자유투를 시도할 정도로 자삥에 일가견이 있었고 이는 높은 효율의 원천이었다. 다만 프레임이 얇아서인지 위 둘과 달리 포스트업 능력은 공격형 올스타 빅맨치곤 대단치 않은 편이었다.
토론토에서는 페이스업을 매우 즐겨했지만 마이애미에선 페이스업 머신인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와 동선이 많이 겹치는 관계로 바스켓 돌파의 빈도를 많이 줄이고 점프슛 위주의 플레이를 했다. 이로 인해 시즌 중반에는 매스컴에 "난 픽앤팝에서 팝을 하기 싫다. 나도 바스켓 돌파 좀 하게 해줘."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준우승에 그친 후 빅3 내 교통정리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1대1 공격과 같은 개인 전술은 르브론과 웨이드에게 양보하게 되었다.
롱2 기반의 스트레치 빅맨으로 사실상 전업하면서 롤이 제한되고 자유투 시도수가 뚝 떨어졌지만, 보시에게는 빅맨을 넘어 NBA 전체에서도 톱클래스 반열에 들어가는 정교한 미드레인지 점퍼가 남아있었다. 가장 잘 들어갔던 시즌에는 미드레인지 슛을 무려 53%의 확률로 집어넣었을 정도. 더불어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던 3점 슛을 연마하는 등 줄어든 역할 하에서 최선을 다했다.
수비의 경우 신장과 윙스팬, 운동능력을 모두 갖춘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블록을 비롯한 세로수비 존재감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몸이 가늘어서인지 힘 쎈 빅맨들을 상대로 대인 수비에서 어려움을 겪곤 했으며, 골밑에서 덩어리들과 진흙탕 몸싸움을 벌이는 데에는 영 강점이 없어 리바운드 간수가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로 인해 토론토 시절에는 좋은 신체조건에 비해 수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마이애미에서도 위와 같은 약점들은 유효했으나 그래도 센터로 뛰며 수비와 박스아웃에 대한 적극성이 향상되었고, 특히 발이 빨라서 헷지 앤 리커버리를 상당히 잘해준 덕분에 리그 최상급 수비수들인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가 마음놓고 1선 압박 수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당시 마이애미의 강력한 수비력의 근간이 무한 헷지에서 비롯되는 무지막지한 핸들러 압박이었음을 생각하면 보시의 수비적 공헌은 낮지 않았으며, 7푸터치곤 외곽에서 미스매치도 곧잘 버텨줄 정도로 가로수비가 괜찮았던 편이라 20년대에 뛰었다면 더 빛을 볼 수 있는 유형의 수비수였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5. 기타
- 국내에서는 마른 체형 때문에 기린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또는 좋은 플레이 이후 포효같은 걸 많이 한다고 해서 박력왕. 미국에선 공룡. 스눕 독 닮았다는 얘기도 많이 나오는 편.
- 나름 진지한 외모인데 위와 같은 장난이나 얼굴개그처럼 깨는 짓을 좀 해서 구글검색어에 연관검색어로 chris bosh funny가 뜰 정도다.
- 말을 정말 잘한다. 청산유수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 실제로도 코딩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인터뷰에서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밝혔고,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도 그 말솜씨를 아낌없이 뽐냈다.
- 2011년 처참한 파이널 패배 후에 만난 아드리안 보시와 결혼해 아이가 다섯이다. 부부금슬이 워낙에 좋아서 폐혈전 당시 은퇴이슈에 시달릴때 웨이드가 간곡히 복귀를 만류했던 주된 이유도 아내와 아이였다.
[1] DraftExpress.com 2003년 드래프트 측정 결과 착화 신장 6' 11.5" = 212cm[2] 너무나도 뜬금없었는지 기사에 "형이 왜 거기서 나와?" 같은 댓글들이 달리기도 했다.[3] 그때 당시 토론토 프랜차이져로 Air Canada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빈스 카터는 팀 이탈을 위해 진짜 병맛같은 짓을 너무 많이 했다. 예를 들어, 게임 중 벤치에 있던 그는 다른 팀에게 토론토의 전술을 전하고 일부러 태업을 일삼기도 했으니....[4] 랩터스의 단장 브라이언 콜란젤로가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보시는 '보시가의 사람들은 그런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라고 항변했다.[5]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때 제임스가 팔 부상을 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6] 사실 르브론의 경우에도 2010년 플옵에 너무 부진해서 저런 말도 안되는 루머가 나오는거지, 일부러 시즌을 사보타쥬해서 얻을 게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이때 르브론이 플옵에서 망한 것 때문에 별 이상한 소문이 다 돌았는데 (팀 동료 디욘테 웨스트가 르브론 엄마와 썸씽이 있다는 등) 실제로 당시까지 커리어를 보면 르브론은 압박받는 상황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물론 이건 2000년대까지 얘기고 2010년대 들어 르브론은 역대급 클러치 플레이어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활약을 하게된다.[7] 폐혈전색전증. 피가 굳어서 생긴 덩어리가 혈관을 타고 이동하다가 폐의 동맥을 막는 현상으로,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이다.[8] 참고로 말하자면 보시가 갖고 있었던 위험 요소는 경기 중 뛰다 사망한다는 경우까지도 포함된다. 웨이드가 함께 팀을 이끈 선수에게 별다른 의미없이 이런 말을 했을리도 만무하기에 상황이 제3자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9] 문제는 저게 파울로 선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