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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4:03:04

콜로 투레


콜로 투레의 역임 직책
{{{#!folding ▼ 맨체스터 시티 FC 주장
리처드 던
(2006~2009)
콜로 투레
(2009~2010)
카를로스 테베스
(2010~2011)
}}} ||
콜로 투레의 기타 정보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aa33, #ffaa33)""<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aa33> 파일: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fff>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디디에 조코라 123회 2000.4.23 2014.6.19
2 콜로 투레 120회 2000.7.2 2015.2.8
3 막스 그라델 110회 2011.6.5 2024.3.23
4 디디에 드록바 105회 2002.9.8 2014.6.24
5 야야 투레 101회 2004.4.28 2015.3.29
6 시아카 티에네 100회 2000.4.9 2015.6.14
}}}}}}}}}}}}}}} ||
Manchester City Football Club Under-16
파일:Kolo Touré.jpg
<colbgcolor=#98c5e9>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콜로 투레
Kolo Touré
본명 콜로 아비브 투레
Kolo Habib Touré
출생 1981년 3월 19일 ([age(1981-03-19)]세)
코트디부아르 부아케
국적
[[코트디부아르|]][[틀:국기|]][[틀:국기|]]
|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1] / 체중 76kg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98c5e9> 선수 ASEC 미모사 (1999~2002)
아스날 FC (2002~2009)
맨체스터 시티 FC (2009~2013)
리버풀 FC (2013~2016)
셀틱 FC (2016~2017)
감독 셀틱 FC (2017~2019 / 코치)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2017 / 코치)
레스터 시티 FC (2019~2022 / 수석 코치)
위건 애슬레틱 FC (2022~2023)
맨체스터 시티 FC U-16 (2024~ / 수석 코치)
국가대표 120경기 7골 (코트디부아르 / 2000~2015)
가족 동생 야야 투레
동생 이브라힘 투레[2]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지도자 경력6. 기록
6.1. 대회 기록6.2. 개인 수상
7. 여담

[clearfix]

1. 개요

코트디부아르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아스날 FC, 맨체스터 시티 FC, 리버풀 FC 등에서 활약했다.

2. 클럽 경력

2.1. 아스날 FC

파일:꼴로투레.jpg
327경기 14골 3도움
모국 코트디부아르의 명문 클럽 ASEC 미모사에서 뛰다가 2002년 2월 14일, 아스날 FC의 입단테스트를 통과하여 아스날의 1군팀에 영입되었다. 하지만 선수 등록 시기가 아니었기에 다음 시즌에서야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당시 입단 테스트 과정에서 수비 훈련 도중 아르센 벵거 감독의 눈에 들어서 입단 계약 체결이 완료 되었다. 티에리 앙리에게 백태클을 걸어서 부상 직전 상황으로 보냈고, 선수에게 태클 걸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데니스 베르캄프에게도 백태클을 걸어서 두 명 째 실어보냈고, 더 이상 절대 태클 걸지 말라는 강한 경고를 받게 된다. 그리고 공중볼 다툼 끝에 벵거 쪽으로 공이 가자 감독이라 가만히 지켜보던 벵거에게 양발 태클을 시전하며 선수 2명에 감독 1명, 총 3킬을 시전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벵거는 이런 열정적인 모습을 높게 사 다음 날 바로 계약을 체결했다.

영입 당시 이적료는 비공개였으나 훗날 밝혀지기로는 15만 파운드였는데[3] 이는 훗날 콜로 투레가 맨시티로 이적할 때의 이적료 1,400만 파운드의 대략 100분의 1이다. 처음 아스날에 왔을 때 콜로 투레는 이미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이었고 20살이 갓 넘은 나이에 A매치를 10경기 넘게 뛴 코트디부아르의 촉망받는 유망주이자 확고한 일원이었다.[4] 코트디부아르 국대에 선발되는 유망주를 겨우 15만 파운드에 데려온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 물론 2000년 초반에도 이런 일은 매우 드문 사례였고 지금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영입이 가능했던 건 벵거와 개인적 친분이 있던 장마르크 기유(Jean-Marc Guillou)[5]의 영향이 큰데, 벵거가 1983년 AS 칸에서 코치로 데뷔했을 때 당시 기유는 AS 칸의 선수 겸 감독으로 있었다. 칸에는 1시즌만 있었지만 기유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는지 아스날에는 기유와 관련된 영입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기유는 1993년에 코트디부아르로 건너가 2000년까지 ASEC 미모사의 단장을 맡았는데 마지막 시즌에는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겸임했다. 따라서 기유는 당시만 해도 유럽 축구계에는 아직 미지의 국가였던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시스템과 유망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6] 훗날 자신이 봐뒀던 유망주들을 대거 유럽에 공급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콜로 투레였다.

기유는 코트디부아르를 떠난 다음 2001년부터 벨기에 주필러 리그 KSK 베베런의 감독을 맡았는데 이때 ASEC 미모사에 있던 유망주들을 엄청나게 영입해 유럽으로 데뷔시켰다. 이 코스를 밟으면서 유럽으로 진출한 선수로 콜로 투레의 동생 야야 투레[7], 훗날 아스날에서 뛰는 에마뉘엘 에부에, 제르비뉴 등이 있다.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어를 쓰는 나라이기에 이 점도 벵거에게는 매력적인 요소였다.
8월 커뮤니티 실드 리버풀 FC 전에서 1군팀 선수로 데뷔하였다. 첼시 FC 전에서 아스날 첫 골을 기록하였다. 2002-03 시즌은 주로 우측 풀백 혹은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지만, 2003-04 시즌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주전자리를 꿰차게되고 솔 캠벨과의 콤비로 아스날의 무패 우승에 공헌하였다. 2006-07 시즌부터는 등번호를 5번으로 옮겼고, 2007-08 시즌부터 부주장이 되어 상황에 따라 주장완장을 차는 경우도 있었다.

아스날에서 7시즌 동안 225경기 9골을 기록하며 주축선수로서 활약하였다. 다만 마지막 시즌 리버풀 3연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3차전에서 원정 다득점 리드[8]를 잡자마자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재차 역전을 허용하는 오점을 남기기는 했다.[9]

아스날 시절 활약이 워낙 좋아서, 아직도 투레가 에미레이츠 구장에 오면 응원하는 팬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성기 시절은 아스날 역사를 통틀어 봐도 최고의 수비라인이었기 때문이다.

2.2. 맨체스터 시티 FC

파일:Manchester-City-Kolo-Toure.jpg
102경기 3골 1도움
2009년 7월 29일 같은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1500만 파운드, 4년 계약이었다. 시티에서 첫 시즌은 주장을 맡아 9월 23일, 풋볼 리그컵 풀럼 FC 전에서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하였다. 11월 7일 번리 FC 전에서 이적 후 리그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5위에 공헌하였다.

2009-10 시즌: 35경기(선발 35경기) 2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1 31 0 1 0
FA컵 1 1 0 0 0
EFL컵 3 3 0 1 1
합계 35 35 0 2 1

2010-11 시즌 주장 자리를 카를로스 테베스에게 양보했지만 팀의 수비의 중심으로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2010-11 시즌: 29경기(선발 28경기) 1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2 21 1 1 0
유로파 리그 4 4 0 0 0
FA컵 2 2 0 0 0
유로파 리그 예선 1 1 0 0 0
합계 29 28 1 1 0

그런데 2011년 3월 3일,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콜로 투레가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아내의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라고 항변했으나, 잉글랜드 협회는 6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부과하였다.## 그 뒤로 폼도 다소 하락하며 주전 경쟁에서 뱅상 콤파니, 졸리온 레스콧에게 밀려 후보가 되었다. 이 후에는 마티야 나스타시치까지 영입되면서 완전히 쩌리 확정.

2011-12 시즌: 20경기(선발 14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4 8 6 0 0
챔피언스 리그 1 1 0 0 0
유로파 리그 2 2 0 0 0
EFL컵 3 3 0 0 0
합계 20 14 6 0 0

2012-13 시즌: 18경기(선발 13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5 10 5 0 0
FA컵 2 2 0 0 0
EFL컵 1 1 0 0 0
합계 18 13 5 0 0

2.3. 리버풀 FC

71경기 1골 3도움
2013년 5월 28일 자유 이적으로 리버풀 FC로 이적하였다. 맨시티 시절에도 그렇고 나이도 있어 주전보다는 땜빵용으로 쓰일 것으로 추측되었다. 초반에는 부상이 많은 다니엘 아게르 대신 마르틴 슈크르텔과 함께 주전으로 뛰었으나 점차 아게르, 마마두 사코에게 밀리게 된다. 특히 웨스트 브롬과의 경기에서 다 이긴 경기를 그의 실수로 비기게 되면서 완전히 주전 자리는 놓치게 되었다.

14-15 시즌 아게르는 떠났지만, 데얀 로브렌이 영입되면서 여전히 땜빵으로 있을 줄 알았는데 로브렌도 사코도 다 정줄 놓은 수비를 보여주면서 기어코 다시 주전 경쟁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31R 아스날전에서 주전 수비수인 슈크르텔이 징계로 빠지면서 얻은 주전의 기회에서 말그대로 거대한 똥을 푸짐하게 싸는바람에 주전경쟁에서 멀어질듯 싶다.

2.3.1. 2015-16 시즌

15-16 시즌 현재 재미있는 기록이 하나 나왔는데 현재 투레가 출장한 경기에서 리버풀은 무패를 기록하고 있다! 투레는 EPL 4경기, 캐피탈 원컵 2경기, 유로파 리그 4경기에 출장했는데 그 10경기에서 리버풀의 성적은 6승 4무 였다. 하지만 투레는 나오는 경기마다 경기력이 참담하다는게 아이러니.

그러나, 클롭이 온 뒤 시즌 중후반기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데얀 로브렌마르틴 슈크르텔이 부상을 당하면서 마마두 사코와 듀오를 맞춰 나서게 됐는데, 맨유전에는 경기 후반에는 체력이 많이 없어져 걷는 모습이 많았고, 세트피스 실점으로 패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웨인 루니의 공격을 적절히 차단해내는 좋은 수비를 보여주는 등,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26R 아스톤 빌라전에는 정말 전성기 시절의 콜로 투레를 보여주듯 깨끗하고 든든한 수비를 보여줬고 스탠딩 헤딩골도 기록하였다. 물론 에이스인 쿠티뉴,스터리지의 복귀의 덕도 있었고, 상대가 올시즌 답이 없는 빌라이긴 했지만 콜로가 늦은 나이에 이런 폼을 보여준다는 것은 콥들에게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결국 2015/2016시즌 26주차 위클리 베스트 XI에 같은 팀인 필리페 쿠티뉴, 나다니엘 클라인과 함께 이름이 올라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추세는 이어져 리그 컵 결승전과 27R 맨시티 전에서도 매우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4월 원래 주전이던 마마두 사코가 예전의 투레처럼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가 도핑 테스트에 양성 반응을 보이면서 투레는 더 이상 백업이 아닌 로브렌의 주전 파트너로서 구멍이 난 센터백 자리를 매꾸게 되었다. 부상 복귀 후로 기량이 급격히 하락한 슈크르텔과 최근 회춘한 콜로 투레를 보고 사람들은 둘의 기량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콥들은 이러다 레알로 가는 게 아니냐며 행복해하는 중이다.

그리고 유로파리그 4강 비야레알과의 1,2차전과 결승전에 모두 출전하였다. 나이 때문에 재계약 가능성이 높지 않은 콜로 투레는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유로파리그 결승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비야 FC와의 결승에서도 정말 로브렌과 함께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누구의 삽질등 여러면에서 고전하면서 결국 1:3 패배 자신의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아쉽게 마무리 했다.

원래대로라면 투레의 재계약 여부는 마마두 사코의 징계 수위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었으나 마마두 사코가 복용한 팻 버너는 애초에 UEFA가 지정한 금지 약물 목록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서 사코는 무혐의를 받게 될 예정이고 투레의 이탈은 사실상 기정사실화가 되었다. 직전시즌에 보여준 기량이 상당히 준수했던지라 중위권~중하위권 클럽에서 노려봄직한 선수다.

2.4. 셀틱 FC

투레 본인을 리버풀에 영입시켰던 브랜던 로저스 감독과 재회했다. 2016-2017 시즌 백업 수비수로 활약했다.

시즌이 종료된 후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으며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코치로서 셀틱에 재합류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코트디부아르 대표로 2000년에 르완다전에서 데뷔하였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2006에서 결승전 진출에 공헌하였다. 그 후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뒤에서 치고 올라올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선수로서는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이기에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4. 플레이 스타일

180cm가 채 안 되는 센터백으로서는 작은 키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올라운드형 수비수였다. 전성기를 기준으로 빠른 주력과 기동력, 운동 능력 등은 두말할 것 없고, 전진성과 기술도 갖췄고 체력과 리더십까지 갖춘 무결점의 센터백이었다. 물론 이 분야에선 최고봉은 카를레스 푸욜이겠지만, 투레에게는 미드필더 전 지역까지 소화하는 멀티 포지션 능력이 있었다. 물론 아스날 시절 초창기를 제외하면 그 능력이 빛을 발한 적은 없었다.

다만, 푸욜과 마찬가지로 역시 센터백으로서는 단신이기에 하드웨어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었으며, 운동 능력을 기반으로 한 공격적인 수비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나이를 먹음에 따라 신체 능력이 떨어져서 잔실수가 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로라하는 빅클럽들의 구애를 받으며 유럽 커리어를 마감했을 만큼 클래스 자체는 늘 뛰어난 센터백이었다. 특히 운동 능력이 뛰어났는데, 형제인 야야 투레 역시 그러한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집안 내력인 것으로 보인다.

운동 능력이 엄청나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투레는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 등으로 뛰던 선수였으며, 아스날로 와서는 솔 캠벨의 비호 아래 미친개 스타일의 센터백으로 뛰었다. 그와 콤비로 함께 뛰면서 시즌 무패로 우승한 경력도 있다. 또한 로렌을 제외하면 딱히 대체자가 없던 오른쪽 풀백으로도 간간이 나와 수십 미터를 드리블해서 어시스트하는 모습도 곧잘 보여주었다. 중앙 미드필더로도 간간이 출전했으며, 운동 능력과 볼 다루는 스킬로 무난한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2002년 옥세르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선 왼쪽 윙어로도 출전하였다.

이 부분이 콜로 투레가 다른 센터백들과는 차별화되었던 부분이며, 아프리카 역사상 손에 꼽히는 센터백 중 하나인 이유였다. 당시 크리스티안 파누치존 오셰이 등 센터백을 겸하는 멀티 플레이어 수비수들은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어느 한 분야가 특출나게 뛰어나다기보다는 포지션 적응력이 좋은 선수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고, 많아야 본래 포지션에서 두세 가지 포지션을 더 뛸 수 있는 정도지만, 투레의 경우엔 신체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모든 부분이 뛰어난 선수였고, 광범위하게 넓은 포지션을 소화하는 올 라운더였다. 요즘의 기준에선 데이비드 알라바와 비슷한 이미지의 선수였지만, 알라바가 조금 더 기술이 뛰어나고 영리하다면, 투레는 조금 더 운동 능력에 의존하는 면이 있었다.

플레이의 특이점으로는 본업이 수비수다 보니 슛 자체는 그저 그랬으나, 특유의 허벅지 파워를 이용해서 볼을 몰고 중앙선을 넘어와서 한대 후리고 가는 중거리 슛이나, 먼 거리 프리킥 상황 시 장거리 슈터로 자주 참여했다. 김진규 등처럼 힘 좋은 센터백들이 그렇듯이 프리킥 상황에서 다리 힘을 이용한 이른바 '맞고 뒈져라' 슛을 자주 찼는데, 그런 슛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성공률은 높진 않았지만, 아스날 FC에서 뛸 당시엔 로빈 반 페르시 정도를 빼면 투레보다 슛을 세게 찰 수 있는 선수가 없다 보니 슛하는 장면을 꽤 볼 수 있었다. 이렇듯이 전성기적 투레는 굉장히 역동적인 센터백이다 보니 안정감은 다소 떨어졌지만, 보는 맛은 있는 부지런한 센터백이었다.

5. 지도자 경력

5.1. 셀틱 FC

시즌이 종료된 후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으며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코치로 셀틱에 재합류했다.

5.2. 레스터 시티 FC

하지만 브랜던 로저스가 레스터 시티 감독으로 가면서 2019년 2월 로저스를 따라 1군 코치로 합류했다.

5.3. 위건 애슬레틱 FC

2022년 11월 29일, 레스터 시티를 떠나 위건 애슬래틱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3년 반 계약.#

2023년 1월 27일,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성적 부진으로 인해 선임 59일만에 경질되었다.#

5.4. 맨체스터 시티 FC U-16

2024년 7월 15일, 맨체스터 시티 FC U-16 수석 코치를 맡게 되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7. 여담



[1] 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에서는 183cm로 나와있는데 리버풀 구단 홈페이지에서는 178cm로 나온다. 야야 투레와 키 차이를 보면 대략 10cm 정도 차이가 난다.[2] 현지 시간으로 2014년 6월 19일 으로 인해 28살에 사망했다.[3] 요즘 1부 리그 클럽들의 핵심 플레이어들의 주급과 비슷하다. 콜로 투레 본인 또한 맨체스터 시티 FC에서는 1~1.5주만에 저 돈을 벌었다고 말할 정도이다.[4] 이중국적자가 아닌 비유럽 선수들에게 발급이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워크퍼밋을 콜로 투레가 발급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때문이다.[5] 프랑스 국가대표팀 출신[6] 직전 세대의 디디에 드록바가 있긴 하지만 드록바는 어릴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축구를 시작했다.[7] 2003년에 KSK 베베런의 재정 위기로 야야 투레는 팀을 옮겨야 했는데 그때 콜로 투레의 추천으로 아스날에서 두달간 훈련하며 영입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다. 벵거가 재능을 알아보고 영입하려고 했으나 야야 투레는 콜로 투레와는 달리 아직 국가대표팀으로는 뛰지 못했고 이에 워크퍼밋 발급이 지연되면서 결국 무산됐다.[8] 챔피언스리그 8강 1, 2차전 바로 사이 주말에 리그에서도 만났다. 앞선 두 경기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1-1로 끝났고 리버풀은 홈에서 2-1로 리드를 잡았으나 시오 월콧의 0.9골급 폭풍 드리블로 아데바요르가 2-2를 만들며 되려 원정 다득점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1분만에 투레는 라이언 바벨을 페널티 박스 안에서 넘어뜨리며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제라드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경기는 종료 직전 바벨이 한골을 더 넣어 4-2로 리버풀의 승리.[9] 다만 아스날 팬 사이에서는 이 당시 투레를 까는 의견 못지 않게 바벨이 시뮬레이션을 한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 또한 강했다.[10] -투레-캠벨-로렌의 포백은 무패시즌에 리그 38경기에서 25실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