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킬베인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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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케빈 킬베인 Kevin Kiibane | |
본명 | 케빈 다니엘 킬베인 Kevin Daniel Kilbane | |
출생 | 1977년 2월 1일 ([age(1977-02-01)]세) | |
잉글랜드 프레스턴 | ||
국적 | [[아일랜드| ]][[틀:국기| ]][[틀:국기| ]]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83cm, 82kg |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1] / 은퇴) | |
소속 | 선수 |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 / 유스)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95~1997)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1997~1999) 선덜랜드 AFC (1999~2003) 에버튼 FC (2003~2006) 위건 애슬레틱 FC (2006~2009) 헐 시티 AFC (2009~2012) → 허더즈필드 타운 AFC (2011 / 임대) → 더비 카운티 FC (2011 / 임대) 코번트리 시티 FC (2012) |
국가대표 | 110경기 8골 (아일랜드 / 1997~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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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의 前 축구선수.2. 클럽 경력
2.1. 경력 초기
랭커셔주에 위치한 프레스턴에서 태어났으며, 로컬팀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에서 축구를 시작하게 된다. 1996-97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자리잡으며 주전으로 뛰기 시작했고, 준수한 플레이로 많은 클럽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100만 파운드에 웨스트브롬에 입단했다. 당시 그는 알비온의 첫 100만 파운드 선수였으며, 클럽 레코드이기도 했다.2.2. 선덜랜드 AFC
1999년 12월, 당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소속이던 선덜랜드는 킬베인을 영입하기 위해 250만 파운드를 지불했으며, 이는 클럽 통산 세 번째로 비싼 이적료였다. 그리고 소튼과의 데뷔전에서 교체로 나선 킬베인은 케빈 필립스의 크로스를 받아 결승골을 넣으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름과 동시에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빠르게 주전으로 도약하며 많은 경기를 출전했으나, 2002-03 시즌 팀이 부진한 경기력으로 강등권에 몰리자 킬베인은 팬들의 표적이 되었고, 많은 비판을 받아야했다. 그리고 결국 팀은 강등을 맞이하게 된다.[2]
2.3. 에버턴 FC
2003-04 시즌 여름 이적시장 마감을 앞두고, 그는 데이비드 모예스가 지휘봉을 잡고 있던 에버턴에 입단했다. 그는 3년간 주 포지션인 왼쪽 윙은 물론이고 왼쪽 풀백, 오른쪽 윙, 심지어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활동하는 다재다능함을 보이며 팀에 헌신했고, 이에 구디슨 파크의 팬들은 그의 헌신에 감사하며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2006년 8월 26일, 토트넘과의 에버튼 소속 마지막 경기에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2.4. 위건 애슬레틱 FC
토트넘을 상대로 2년 6개월만에 득점을 신고한 뒤 포효하는 킬베인 |
2006년 8월 31일, 그는 위건과 200만 파운드에 3년 계약을 채결한 뒤 입단했다. 그리고 다음해 4월 15일에 토트넘과의 리그전에서 파워풀한 헤더골을 성공시키며 데뷔골을 기록했고, 3:3 무승부를 이끌었다. 참고로 그의 골은 2004년 10월 이후 약 2년 6개월만인 실로 오래간만에 나온 골이었다.
두번째 시즌에는 익숙지 않은 레프트백으로 대부분의 경기를 소화했으나,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Wiganer.net에서 수상하는 위건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2.5. 헐 시티 AFC
킬베인은 2008-09 시즌을 앞두고 영입된 마이노르 피게로아의 등장으로 입지가 위태로워졌고, 결국 이듬해 1월 15일에 50만 파운드로 추정되는 이적료에 헐 시티로 이적하게 된다.
2010년 4월 10일, 번리와의 경기에서 헐 시티 소속으로 첫 골을 기록했다.
2.5.1. 허더즈필드 타운 AFC (임대)
2011년 신정에 겨울 이적시장이 재개되자 킬베인은 허더즈필드 타운으로 임대를 떠난다. 같은 날 브런턴 파크에서 열린 칼라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1월 15일 월솔과의 경기에서 첫 골을 신고했다. 그는 주전으로 뛰며 팀이 26경기 리그 경기 무패 기록을 세우도록 도왔으나, 피터보로와의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3:0으로 무릎을 꿇으며 승격이 좌절되고 말았다.2.5.2. 더비 카운티 FC (임대)
2011년 8월 2일, 그는 6개월 임대 계약으로 더비 카운티에 합류했다. 8월 20일 동커스터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했고, 더비 소속으로 10경기를 뛰었지만, 11월 29일 등 부상으로 인해 원소속팀으로 복귀했다.2.6. 코번트리 시티 FC
2012년 7월 2일, 헐 시티를 떠난 킬베인은 코번트리 시티와 1년 계약을 맺고 합류했다.
8월 14일, 대거넘과의 풋볼 리그 컵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첫 골을 신고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틀 뒤에는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0월 24일, 브렌트포드에게 2:1로 패한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마지막 프로 무대를 밟았고, 12월 8일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프레스턴의 유스팀 시절 킬베인은 잉글랜드 U-18 대표팀에 부름을 받았지만 아일랜드를 대표하고 싶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이는 아일랜드 출신인 부모의 영향으로 인해 아일랜드에 대한 애국심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97년 9월 6일에 아이슬란드를 상대로 성인 대표팀에 데뷔하게 된다.
그는 2002년 6월에 예정된 한일 월드컵 23인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대회 기간 팀 동료들과 함께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토너먼트 진출을 이루어낸다. 그리고 16강에서 스페인을 만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나, 3번 키커로 나선 그의 킥은 이케르 카시야스에게 막히고 말았고, 아쉽게도 승부차기에서 패하고 만다.
2009년 11월 14일, 몬테네그로와의 친선전에서 100경기를 달성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으며, 2011년을 끝으로 대표팀의 경력을 마감했다.
4. 은퇴 후
현역 은퇴 후 Staffordshire University에서 프로 스포츠 작문 및 방송 학위를 취득했으며, 2010년에는 남아공 월드컵 기간 RTÉ Sport의 해설진으로 활동했다.2012년부터 아일랜드의 TV3 및 3e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 및 UEFA 유로파 리그에서 분석가로 활동했고, Setanta Sports의 단골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3년 4월 7일, 그는 BBC One의 The Match of the Day 2에서 축구 전문가로 처음 등장했다. 5월 9일에는 Guardian Football Weekly Extra 팟캐스트에 처음으로 출연했다.
2014년에는 브라질 월드컵 기간동안 BBC의 해설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2020년 2월에는 Dancing on Ice[3]라는 프로그램에서 호흡을 맞춘 프로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브리안 델코트와 약혼했고, 9월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다음 해 2월, 델코트가 딸 그레이시를 출산하면서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다.
또한 그는 다운 증후군 협회의 후원자이며, 2015년 2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팬들이 다운 증후군을 조롱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주장에 대해 FA에 강력하게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