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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생대 ~ 신생대
중생대까지만 해도 카타르는 바다였으나 신생대 이후에야 육지가 되었다.2. 고대 ~ 중세
1만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이며, 본격적으로는 기원전 6세기부터 아라비아로부터 아랍인들이 이주해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에는 아카드 제국과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잠시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5세기 ~ 4세기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지역들과 왕래가 있었으며, 훗날 인더스 문명권, 그리스, 로마와도 무역을 했다. 2세기에 아랍 세계에서 '카타라(Qatara)'로 표기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카타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편 아랍어로 카타르는 '국가'라는 뜻이다. 기원전 3세기에는 파르티아의 지배를 받았다가 3세기에는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기도 했었다. 7세기에는 이슬람이 나온 이후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통일되었으며, 카타르 지역에서 사산 왕조의 간섭이 사라졌다.3. 중세 ~ 근세
이슬람 제국 성립 이후 지정학적으로 무역에 유리한 위치였기에 무역이 발전되었으며, 아라비아 상인들은 페르시아 만(아라비아 만)의 특산품이었던 진주를 캐서 해외에 팔았다. 한편 1480년대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건너 인도양 일대에 해상 진출을 했으며, 아라비아까지 간 포르투갈은 아라비아 동부 해안을 지배하려 했던 인근의 오스만 투르크와의 대립이 발발했다. 처음에는 포르투갈이 승리하여 100년 이상 카타르 일대를 지배하다가 카타르 지역에서의 반란으로 포르투갈이 물러나서 1650년대에 오스만의 통치를 받았다. 훗날 동아라비아의 유목 부족들은 나중에 오스만 지배에 불만을 품고 이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으며, 최종적으로 1670년에 오스만 제국도 물러났다.4. 근대 ~ 현대
자세한 내용은 도하 문서 참고하십시오.18세기부터 알사니 가문들이 카타르에 정착해 이곳 일대의 패권을 장악하여 이곳을 통치했다. 1783년에 쿠웨이트는 바레인을 점령했고 여기서 훗날 쿠웨이트의 알 칼리파 가문에서 갈라진 바레인의 알 칼리파 가문과의 분쟁과 대립이 나타났다.
이후 1868년에는 대영제국이 아라비아를 점령하면서 바레인과 카타르는 영국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영국은 바레인이 카타르를 사실상 지배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때문에 카타르는 바레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카타르는 영국에 대해 처음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바치던 공물을 영국에게 바쳤으나 영국의 야욕에 대한 견제를 위해 1870년대 초기에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아라비아만에서 오스만 제국이 약화되어 영국에 지게 되었고 훗날 카타르는 1916년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
1935년 카타르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석유 채굴 관련 회사들이 많이 나왔다. 1971년 9월 3일 영국으로부터 독립되었으며, 동시에 영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카타르를 지배할 수 있는 총독부를 가졌던 바레인으로부터 결별되었으며 바레인과 카타르는 독립되면서 동시에 분리되어 바레인의 통치도 벗어났다. 당시 국왕은 이크 아흐마드 빈 알리 알 사니(Sheikh Ahmad bin Ali Al Thani)였다. 영국의 보호령을 받던 시기에는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바레인과 하나였다. 그러나 독립 이후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와 하나가 되기로 하는 의견을 폐지하고 독자적 왕국을 세웠다.
이후 1972년, 1995년[1]에 쿠데타가 두 번 일어났었고, 이후 쿠데타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2004년 엘리트 선수 육성을 실시할 목적으로 설립한 아스파이어 아카데미를 통해 타국에 스포츠 외교를 공격적으로 진행하였다. 이를 발판으로 마라도나와 펠레를 불러 자국 이벤트를 노출시키는 한편 타국 스포츠 산업[2]에도 크게 투자를 했으며, 월드컵 개최를 이용한 외교적 지위 상승을 노렸고, 결국 2022년 월드컵의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FIFA부터 시작해 여러 부패 스캔들이 문제점으로 불거졌으며, 2022년에는 유럽의회 카타르 뇌물 스캔들까지 번지기도 했다.
2006년 카타르는 주말을 목요일·금요일에서 금요일·토요일로 바꾸었고, 2022년에는 중동 최초로 판다 쓰하이(四海)와 징징(京京)을 임대받았다. 쓰하이가 암컷, 징징이 수컷이다. 이 판다들은 판다 하우스라는 판다만을 전시하는 동물원에 살고 있다.
[1] 요건 좀 쿠데타라고 뭐라 하기 좀 그런데... 당시 국왕(에미르)이었던 칼리파 빈 하마드 알사니(1932~2016.10.23)가 스위스로 여행 간 사이, 아들인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가 무혈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것. 이 탓에 한동안 아버지와는 절연 상태였고, 나중에 아버지는 카타르로 귀환해서 화해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카타르의 현대화를 이뤄놓은 하마드 국왕은 오래 제위를 유지할 수 있었음에도 2013년 아들인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에게 양위를 했다고 한다.[2] 특히 월드컵 개최지 투표권을 행사하는 국가들 위주로 사업을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