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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6:19:14

카를스루어 F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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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파일:Karlsruher FV.png
<colbgcolor=#da251d> 카를스루어 FV
Karlsruher FV
<colcolor=#fff> 정식 명칭 Karlsruher Fußball Verein e. V.
별칭 KFV
창단 1891년 11월 17일 ([age(1891-11-17)]주년)
소속 리그 크라이스클라세 B 카를스루에 그룹 2[1] (Kreisklasse B Karlsruhe Staffel 2)
연고지 바덴뷔르템베르크카를스루에 (Karlsruhe)
홈구장 요아힘 쿠르자이 베크 5 (Joachim-Kurzaj-Weg 5)
(0명 수용)
회장 미하엘 오베르트(Alexander Holley)
감독 라몬 테킨(Ramon Tekin)
공식 웹사이트
우승 기록
[[3. 리가|{{{#fff 3. 리가
(3부)}}}]]
(1회)
1973-74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2]
(1회)
1909-10
VsFV 축구 선수권 대회[3]
(8회 / 최다 우승)
1900-01, 1901-02, 1902-03, 1903-04, 1904-05
1909-10, 1910-11, 1911-12

1. 개요2. 역사3. 여담

[clearfix]

1. 개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카를스루에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독일에서도 창단이 빨랐던 클럽들 중 한팀이다. 독일 남부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클럽이자 축구가 처음 시작된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굉장히 잘나갔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고, 2004년 파산 후 2007년 재창단되는 다사다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거 독일 챔피언십 우승 경력이 있기 때문에 엠블럼 위에 별을 달수 있다.

2. 역사

유대계 혈통인 발터 벤제만[4]1891년 11월 17일, 카를스루에에서 축구단을 만들며 "카를스루어 FC"라는 이름으로 창단하게 되었다.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벤제만은 이 클럽에 대해 이렇게 말 했다.
“1889년 9월에 나는 스위스에서 축구공을 보냈습니다. 공은 학교 앞 아침에 부풀려졌고 10시 휴식 시간에 고등학교의 창문은 이미 그것을 믿어야했습니다. 구스타프 벤트는 Engländerplatz라는 작은 퍼레이드 장소로 우리를 보냈습니다. 많은 영어 및 고등학생들이 2년 전에 이곳 에서 럭비를 했었습니다. 이사한 지 며칠 후 우리는 '카를스루어 FC'를 설립했습니다. 이 클럽은 처음에는 독일인들로만 구성 되었지만 곧 약 15~20명의 영국인들이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창단 초기에는 남부 독일 최고의 클럽으로 성장해 전성기를 보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동안 모든 클럽 회장이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당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또한 1933년 4월 9일 독일의 모든 스포츠 클럽에서 유대인을 퇴출한다는 선언에 참가하기도 했다. 또한 다른 클럽들과 마찬가지로 회원들에게 나치당의 사상을 교육했다.

1947년 이후부터 급속도로 추락을 하기 시작했다. 2부리그로 강등된 이후 같은 카를스루에를 연고지로 하는 클럽인 FC 푀닉스 카를스루에와 VfB 뮐부르크가 합병해 카를스루어 SC를 설립했는데, 이 합병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이후로 약 80년이 지난 현재까지 카를스루어 SC를 따라잡지 못했다.. 한동안 2부리그에서 헤메는 중에 1956-57 시즌을 끝으로 3부리그, 아마토이어리가로 강등되었다.

3부리그까지 강등되자 또다시 합병논의가 오갔다. 이미 KSC와의 격차는 너무나 벌어져 있었다. 1961년 DFB-포칼 1라운드에서 KSC에게 1대 10 대패를 당했고, 이후 리저브팀과의 경기에서도 1대3 패배를 당했다. 그래도 KSC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은퇴 직전 이 팀으로 와서 잠시 뛰고 은퇴하면서 팀이 아마토이어리가에서도 강등되는 것까지는 막아냈다. 1973-74시즌에 드디어 아마토이어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리가 구조조정으로 인해 새로운 2부리그가 생겨나며 승격하지는 못한채 그대로 4부리그로 내려갔다. 게다가 1975-76시즌 충격적인 강등을 당하며 선수들이 대다수 팀을 떠났고, 그 다음시즌 역시 강등.

1990년대~2000년대 초까지 끝없는 강등으로 팀 상황은 매우 나빠졌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성적에 팀 재정상황 역시 만신창이가 되었다. 경기장의 전기가 끊기고, 선수들에게 줄 돈이 모자랐기 때문에 인력 부족에 시달렸다. 결국 2002년에는 유소년 부서가 해체되었고, 1군팀이 리그 포기선언까지 했으나 결국. 2004년에 28만 유로의 부채를 남기고 파산을 선언했다.

2007년에 팀의 선수 출신 유소년 코치가 재창단을 하며 다시 활동하게 되었다. 2016-17 시즌 크라이스클라세 C 카를스루에 그룹 1에서 2위를 거두며 승격을 확정지었다.

그 후에 현재까지 크라이스클라세 B 카를스루에 그룹 2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4년 유소년 부서가 부활하며 재정적 문제가 꽤 해결된 듯 하다.

3. 여담


[1] 11부 리그다.[2]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각 지역 리그의 우승자들끼리 경기를 해서 전국 챔피언을 가려내는 방식이었다.[3]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4] Kicker창간자이기도 하다.[5] 웬만해서는 바이에른, 튀링겐, 헤센, 자를란트, 바덴뷔르템베르크 등의 지역을 일컬어 말 한다.[6] 흔히 TSV 1860 뮌헨이 말 그대로 1860년에 창단된 줄 아는 경우가 있으나 우리가 아는 축구 팀은 1899년에 창단되었다. 또한 TSV 슈바벤 아우크스부르크는 축구팀이 1907년에 창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