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러시아 제국|{{{#000000 러시아 제국}}}]]의 주요 정당}}} | ||||
마르크스주의 | 인민주의 | 자유주의 | 자유보수주의 | |
사회민주노동당 ^볼셰비키 · 멘셰비키 (국제파 · 주류) ^ | 사회혁명당 ^좌파 · 우파 ( 트루도비키 · 민중사회주의) ^ | 입헌민주당 | 진보당 | 10월 17일 연합 ^ 좌파 · 우파[1]^ |
[1] 입헌민주당, 진보당, 10월당 좌파가 결성한 진보블록에 참여하지 않고 10월당 우파(right-wing of octobrists)라는 이름의 당파를 결성해 독자적으로 선거에 출마했다. |
[1] | |
Конституционно-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 |
Умение и труд на благо Родине 조국을 위한 기술과 노동[2] |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80FF> 영어 | Constitutional Democratic Party |
한글 명칭 | 입헌민주당 |
설립자 | 파벨 밀류코프 |
창당일 | 1905년 10월 12일 |
해산일 | 1917년 12월 12일 |
이념 | 자유주의 (러시아) 입헌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 의회주권주의 입헌군주주의[3] 정치적 다원주의 내부계파 : • 급진주의 • 공화주의 |
스펙트럼 | 중도좌파 ~ 좌익 (전기) 중도 ~ 중도좌파 (후기)[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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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05년 창당한 러시아 제국의 사회자유주의 정당이다. 약칭은 카데뜨(Кадет)[5]이며 30년대까지는 하이픈(붙임표)가 붙은 카데티(ка-деты)라는 약어도 사용하였다.2. 역사
러시아 제국시기 러시아식 보수적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던 10월 17일 연합(Союз 17 Октября), 영국식 입헌군주제와 자본가의 권리 보장을 주장하던 진보당(Прогрессивная партия)과 더불어 러시아 제국의 두마 주요 정당이였다.이들은 완전한 입헌군주제 및 초계급적 다원주의 운동과 여성투표권, 인종차별의 폐지, 자유방임주의적인 맨체스터학파의 거부와 약간의 국유화를 통한 부의 분배를 주장하던 이들로 러시아내의 진보적 자유주의(우익 자유주의는 진보당)으로 존재하였다. 2월 혁명이후에는 진보당과 10월당 좌파 당원들이 대거 입당하며 범 자유주의 빅텐트 정당이 되었으며[6], 사회혁명당 우익과 연정하여 두마를 이끌었다. 10월 혁명 이후에는 인민자유당(people’s freedom party)로 이름을 바꿨지만 이 이름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제헌의회 총선때는 볼셰비키를 비난하며 독일과의 ‘명예로운 평화’, 즉 소위 백색 평화를 주장하는 한편 반 볼셰비키를 위한 민주 정당연합을 결성 시도했으나 트루도비키와 민중사회주의자들[7]이 반대하면서 무산되었다. 결국 총선 최대의 패배자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으나[8], 대도시에서는 볼셰비키에 이은 제 2정당으로써 반 볼셰비키 지식인들에게 꽤 지지를 얻었다. 반면 농촌에서 전멸(…)하였고 사회혁명당 우파(트루도비키)가 농촌의 표를 싹쓸이했다.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 탄압을 받았고 강제 해산되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입헌민주당의 당수가 볼셰비키에게 암살당했으며, 이는 소련 성립 이후 최초의 적색테러이자 최초의 좌파정당 탄압이었다.
러시아 내전 때는 입헌민주당 출신들이 파벨 밀류코프를 비롯해 대개 초기 백군에 가담하였으나[9] 개별 당원의 성향에 따라서 백군 내 반유대주의나 국수주의 성향에 환멸을 느끼며 적군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러시아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많은 입헌민주당원들이 백군 군벌 조직 내에서 직책을 맡았으며, 주로 외국과 연대해 내전의 지원을 받거나 소비에트 정부를 규탄하는 등의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몇몇 당원들 아예 자유주의를 버리고 보수주의로 전향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밀류코프처럼 백색 운동에 협력한 경우가 많다. 다만 일부 당원들은 적색 운동에 협력한 경우도 있었다.
3. 성향
계급정치에 반대해 초계급적인 지향성을 나타냈다. 카디트는 기본적으로 입헌군주주의와 사회자유주의를 지지했으며, 노동자 인권[10], 여성 참정권, 유대인 차별 금지, 의회민주주의 강화를 주장하였다. 특히 당시 러시아 정당들 중 반유대주의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정당이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주 지지층으로 두었다.2월 혁명 이후에는 차르의 복위를 주장하는 왕정복고파, 입헌민주주의파, 자유주의 공화파, 그리고 서구적 헌정을 추구하는 지식인 계층 등으로 나뉘게 된다. 2월 혁명 이전 차르가 통치할 때는 개혁파 야당으로, 혁명 이후 임시정부가 성립되면서는 여당의 위치를 담당했으며 반볼셰비키파의 핵심이 된다.
4. 구성원
5. 같이 보기
6. 둘러보기
[1] 사실 이 그림은 당 심볼이 아닌 1917년 총선 때 쓰인 카데츠의 포스터로, 저 방패 안에 쓰인 글자는 ‘자유’(freedom)이다.[2] 영어 번역문은 Skill and work for the good of the Motherland[3] 2월혁명 이전[4] 다만 10월 혁명 이후 카데츠는 진보당, 10월당과 사실상 통합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하며 크게 우경화하였다. 물론 이게 카데츠가 보수주의적 우익으로 전향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전직 입헌민주당 의원들 중에서는 보수주의로 전향한 케이스가 상당하며, 그게 아니더라도 당수 밀류코프처럼 백색 운동에 협력한 경우 역시 많다.[5] 사관생도라는 뜻도 있다.[6] 이때 이적하지 않은 진보당 당원들은 당 이름을 급진민주당으로 바꾸고 카데츠를 지지한다[7] 사회혁명당 내 민중사회주의 파벌. 자세한건 사회혁명당(러시아) 문서 참조.[8] 단순 의석으로만 따졌을 때 원내 제6당(…) 우크라이나 사회혁명당이나 카자크 연합, 알리시 오르다 등 지역정당을 제외하면 그래도 원내 4당은 된다. 달리 말하자면 지역정당에게도 밀리는 허접이라는 뜻이다[9] 콜차크의 쿠데타로 무너지기 전[10] 다만 이들은 초계급적 운동에 의거하여 폭력없는 파업을 지지하였지만 계급투쟁적, 혹은 폭력적 파업이나 투쟁은 비판하는 축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