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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재능 다 내꺼/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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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재능 다 내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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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인공3. 호영의 주변 인물4. 축구 선수
4.1. 한국 선수4.2. 해외 선수
5. 감독6. 구단 관계자7. 축구계 관련 인물8. 기타 스포츠 선수9. 연예인

1. 개요

웹소설 축구재능 다 내꺼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주인공

3. 호영의 주변 인물

4. 축구 선수

4.1. 한국 선수

늘 그래왔듯 한국선수는 이름을 살짝 변형해서 등장한다. 초상권 문제인듯.

4.2. 해외 선수

5. 감독

6. 구단 관계자

7. 축구계 관련 인물

8. 기타 스포츠 선수

9. 연예인


[1] 주급을 받는 선수로 뛰었다면 모두 포함한다.[2] 그것도 칼데론 본인이 변호사 출신이라 사업 감각이나 수완이 부족하여 적정가보다 훨씬 비싸게 + 팀의 재정 역량을 초과하여 선수들을 영입했기 때문으로 이들 중 주 전력이 된 선수는 많지 않았다.[3] 타 팀의 경우 최소 3억 파운드부터 제시했으며, 거액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리버풀과 아스날은 언론에 대고 구차하게 구애를 하는 실정이었다.[4] 일부 선수들은 재능을 탐하려면 반드시 그 선수가 소속된 팀에 들어가야만 했다. 다만 월드컵 같은 국가 대표 팀에 들어가면 조건이 바뀐다.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아 이니에스타가 작중 그 예시로 나온다.[5] 외조부모가 스페인 국적을 갖고 있었고, 우호영이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5년 넘게 뛰었기 때문에 귀화 자체는 조건을 이미 만족하였다. 결정적으로 블라터가 축출되고 빈 함맘이 차기 FIFA 회장이 되어 귀화법 개정으로 바로 스페인 국대로 월드컵에 뛸 수 있게 되었다.[6] 정작, 우호영은 스페인 귀화는 당장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었다. 맨시티로 간 것도 단지 칼데론의 정치질에 화가 나서 간 것일 뿐 대한축구협회와 대립각을 세우겠단 의도는 없었는데, 회장이 되고 싶어하던 정현성 FIFA 부회장의 욕심과 그의 영향력 하에 조종당하는 대한축구협회의 개수작 때문에 이에 휘둘리고 싶지 않던 우호영이 블라터 축출로 귀화법을 개정할 기반을 마련한 뒤 스페인 귀화를 선택한 것.[7] 100m 한 종목만 출전했다. 축구 대표로도 출전했고, 애초에 우호영을 귀화하는데 호의적인 여론이 축구선수로서의 공헌도였기 때문에 200m와 같은 추가 종목에 더 출전하는 건 본말전도고, 혹시나 축구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여론이 뒤집힐 걸 우려했기 때문이다.[8] 이에 볼트는 점심에 치킨 너겟을 안 먹었음 내 승리라고 추한 변명을 늘어놨다.[9] 구원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10] 다만 명예 작위인지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는 작위인지는 불명이나 아마도 호영만이 누릴 수 있는 명예 작위로 보인다.[11] 예시중 하나로 야야 투레가 있다. 투레가 바르샤에 있을때 08-09 시즌의 엘 클라시코때 호영에게 살인 태클을 시전했다가 실패후 보복으로 영거리에서 면상에 시속 150km는 나올 법한 풀 파워 슈팅을 맞고 쌍코피는 기본에 입술, 잇몸이 다 찢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심지어 이때 호영은 한국 태권도 선수 김성민에게서 탐해온 각력 재능과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킥력, 디에고 포를란의 슈팅 능력, 차붐의 허벅지를 탐한 상태라서 인테르 전때 시속 154km라는 경이로운 속도의 중거리 슈팅을 날렸었다. 인테르의 거미손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가 공을 막았다가 속도와 파워에 밀려 공을 놓치고 새끼 손가락이 퉁퉁 붓는 부상을 당했었다. 그걸 영거리에서 맞았으니... 심지어 같은 경기에서 제라르 피케가 백태클로 호영을 저지했으나 투레의 건과 겹쳐 되려 호영을 열받게 해버리고 결국 5대 0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로 털렸다.[12] 카사노의 타이틀 재능 괴짜 판타지스타를 탐하는 조건이 카사노의 코피 터뜨리기였기 때문.[13] 레알 마드리드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시티 - 에덴 아자르/호비뉴, 스페인 국가대표 -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그에 해당한다.[14] 특히 공격수의 경우 우호영의 움직임을 보며 움직였더니 어느새 이걸 못 넣으면 축구 선수 자격이 없는 수준의 노 마크 찬스가 떡하니 배달되어서 깜짝 놀라는건 기본이다.[15] 메인 포지션은 소위 트레콰르디스타라 불리는 어드벤스드 플레이메이커. 서브 포지션은 폴스 나인.[16] 에덴 아자르, 호비뉴, 리오넬 메시가 대상이다. 단 메시는 에덴 아자르에게 이야기 하는걸 본 메시의 축구 스승 호나우지뉴가 말해준다.[17] 과거 많이 팔던 종이컵에 담아주던 분식집 떡볶이.[18] 사실 얼토당토 않은 것이, 정작 한국 축구팬들은 축협에게 갑질당할 바에 귀화하는 게 낫다는 것이 과반수 이상이었다. 이미 올림픽 메달로 군 면제가 된 상황이라 군 복무때문에 귀화했다는 건 말도 안되는 게 당연했다.(군 복무 관련해선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우호영이 한국 최초 올림픽 축구 메달 수상, 아시아 최초 월드컵 3위, 아시아 선수 최초 골든볼-골든슈 수상 등 온갖 영예를 한국 국대에 안겨준 1등 공신이었기에 스페인으로 귀화해서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한국 국대로 뛰어도 이 이상의 업적을 더 거두기는 어려우므로 우호영을 응원하게 되는 것.[19] 실제로 재능을 탐할때 재능의 그릇이 확장되면서 재능을 탐하는 시간이 줄어 들었다. 물론 그 후에도 재능의 그릇이 부족해 지단의 예술적인 볼 컨트롤(SS+)를 완전히 탐하지 못할뻔 했으나 축구신동(S) 덕에 겨우 탐한다.[20] 차붐의 허벅지를 탐하는 중이었는데 탐하는 시간이 67일에서 32일로 줄어들었다.[21] 내심으로는 자신이 지단과 다르게 프랑스 대표팀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걸 서운하게 생각했었는데, 우호영은 립서비스로 첼시팬이라고 했던데다 자신을 바로 알아봐주었기 때문이다.[22] 그냥 항의 수준도 아니고 언어 폭행, 그러니까 막말 논란까지 나왔다.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으로 심판의 판정에 항의하다가 옐로 카드로 끝날거 레드 카드를 받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제하기 때문에 필드에선 심판의 판정에 이의 제기를 해도 적정 선을 지켜야 한다. 근데 시소코는 막말까지 했으니...[23] 그도 그럴게, 원래는 바르셀로나에서 2009 6관왕 + 2015 트레블을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커리어를 쌓게 되지만, 우호영의 등장으로 우호영이 있던 레알 마드리드 상대로 엘 클라시코 10연패 + 리그챔스 무관의 성적을 거두었고, 이후로도 우호영이 챔스에서 계속 우승해버리니 1인자로 지지해줄 건덕지가 없어졌기 때문.[24] 호영이 시티로 떠난 후 17경기 32골 기록을 세웠지만 호영은 자력으로 공을 높이 띄우고 시저스 킥으로 득점 같은 외계인 쇼를 펼쳐서 묻혔다. 오죽하면 2011년 발롱도르 시상식때 로타어 마테우스, 루드 굴리트가 메시가 챔스 우승을 했다면 이번 발롱도르 수상을 했을건데 아쉽다며 우호영이 은퇴하지 않는한 희대의 2인자로 남을거라고 할 정도.[25] 우호영에게 9연패를 한 뒤 10번째 엘 클라시코에서 4골을 넣는 미친 활약을 했는데, 우호영이 무려 5골을 넣고 팀의 5:4 역전승을 이끌어서 묻혀버렸다.[26] 이전에도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달래줬지만 이젠 지친듯.[27] 심지어 이때 호영은 한국 태권도 선수 김성민에게서 탐해온 각력,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킥력, 디에고 포를란의 슈팅 능력, 차붐의 허벅지를 탐한 상태라서 인테르 전때 시속 154km라는 경이로운 속도의 중거리 슈팅을 날렸었다. 인테르의 거미손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가 공을 막았다가 속도와 파워에 밀려 공을 놓치고 새끼 손가락이 퉁퉁 붓는 부상을 당했었다. 그걸 영거리에서 맞았으니...[28] 호영의 여자친구 모니카를 건드리고 호영의 엄마 김희선을 건드는 등 아주 막 나갔다. 하긴 지단의 여동생을 창녀같다고 했으니 뭐...[29] 본인도 무릎 부상으로 기량이 대폭 하락했기 때문이다.[30] FC 바르셀로나의 팬을 지칭한다.[31] 엘 클라시코 자체가 패배하면 감독직이 위태로워진다고 할 정도로 단두대 매치다. 바르샤의 레전드였던 로날트 쿠만조차도 프리메라리가 엘 클라시코 3연패로 부진하자 경질당했는데, 작 중에서 펩 과르디올라는 2시즌 간 엘 클라시코 6연패를 당했다. 이렇게 엘 클라시코에서 매번 물 먹으니 아무리 팀의 레전드 출신이라도 이 성적이면 더 이상 감독직을 유지해줄 명분이 사라지는 것.[32] 만치니가 마지막 시즌에 UEFA컵 + 리그 + FA컵 우승으로 미니 트레블을 이루었으나 챔스에 약하다는 평가 때문에 구단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미니 트레블도 호영 덕에 달성한거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라 재계약을 할 건덕지가 더욱 없었다.[33] 현실의 펩은 2016년부터 시티의 감독이 된다.[34] 데뷔 시즌의 34승 4무 리그 우승 포함 전관왕, 차기 시즌 35승 3무로 최다 승점 갱신 등.[35] 동서를 막론하고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 개그 소재로 쓰려면 친분이 있어야 한다.[36] 선수의 머리카락이 헤어드라이어의 바람을 맞은것처럼 휘날릴 정도로 분노를 퍼붓는다는 말이다.[37] 선수단의 반발은 스콜라리 감독을 압박해서 해당 선수를 못 뛰게 만들면 된다는 말이었다.[38] 호영의 전생, 그러니까 현실에선 반대로 라몬 칼데론이 구단 총회에서 투표 조작 파문을 일으키는 바람에 자진 사퇴로 물러나고 2009년에 페레즈가 돌아온다.[39] 단순히 길이만 오버한 것이 아닌, 잔디 상태도 일부러 패싱 축구를 하기 힘들게 개판으로 놔뒀다.[40] 우호영은 마라도나의 능력을 탐하는 조건 중 하나가 UEFA컵 우승이 있었고, 만수르가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구단의 내실이 무너져가는 AC밀란보다는 맨시티에 마음이 갔다. 칼데론은 (6개월만 이적시킬 셈이었으므로) 챔스에서 만날 일이 없는 맨시티로 보내는게 그나마 덜 비난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41] 맨시티 보드진은 포르투에서 트레블이라는 성적을 거둔 무리뉴 쪽에 좀 더 마음이 가 있었으나, 우호영은 자신의 전술관과 맞지 않는다며 만수르에게 과르디올라 감독을 추천한다.[42] 물론 이들의 영입에는 우호영과 펩 과르디올라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이니에스타는 과르디올라의 설득에, 다비드 실바와 가레스 베일은 우호영이 자신과 같은 팀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에 바로 이적을 승낙하였기 때문.[43] 물론 만수르 입장에서도 우호영을 통해 이득을 본 게 많은데, 작 중 제프 블라터와 미셸 플라티니가 중동 자금의 유입에 대해 경계하는 실정(정확히는 경쟁자인 빈 함맘의 지지세력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경계)이어서 맨시티가 알게 모르게 배척을 받아왔는데 이들이 모조리 비리 혐의로 축출당해 맨시티 역시 간접적으로 이득을 많이 봤기 때문.[44] 이 대목까지 듣고 호영은 동양인인 자신은 호날두에게 안된다고 하는 줄 알고 분노하다 이어진 말을 듣고는 벙찐다. 역시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45] 여자에 미쳐 주축 선수를 팔아치우는 미친 짓을 한 양반이다.[46] 개정된 귀화법은 FIFA 공인 국제대회 2회 출전 시 기존의 귀화법과 동일한 제한이 걸리므로, 어떻게든 우호영을 설득해서 월드컵이나 아시안컵만 뛰게 하면 우호영을 한국 국대에 묶어놓을 수 있다는 심보였다.[47] 델 보스케는 우호영에게 국대에서 맡을 역할과 축구관, 앞으로의 국제대회에 관한 얘기를 했으나, 축협에서는 애국 선전용 자료와 온갖 정치적인 혜택만을 얘기했다. 당연히 축협의 제안들은 우호영이 실력으로 충분히 타낼 수 있는 것들이기에 전혀 와닿을 리가 없었다.[48] 애초에 우호영은 한국축협 측의 방문을 계속해서 거부해왔었다. 마지막에 오라고 한 말도, "제안을 거절해도 좋으니 차 한잔만 하게 해달라고"해서 말 그대로 돌려주었을 뿐이었다.[49] FIFA 공인 대회 2회 미만 출전자에 한해 국적을 변경하여 출전 가능. 우호영이 월드컵만 대표로 뛰었고 아시안컵은 불참했기 때문에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50] 정확히는 블라터가 임기를 마친 후 차기 회장자리를 노렸다. 당장의 목표는 빈 함맘을 밀어내고 부회장이 되어 아시아 축구계에서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51] 우호영이 차출된 중국전은 우호영 외에는 죄다 국대 2군 라인업이었고, 국제대회 진출 예선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국대 에이스를 성적을 낼 필요가 없는 매치에 소집한 셈.[52] 인판티노 같은 블라터와 연계된 사람들이 후보로 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셸 플라티니는 블라터와 함께 비리 때문에 사임했다.[53] 정작, 이런 여론전조차도 한국 내부에서만 먹힐 뿐 국제 여론에 미칠 영향은 미비하다시피 했다. 오히려 A매치 강제 출전으로 갑질을 시도한 증거가 폭로당해 국제 여론이 나락을 간 상황이었기 때문.[54] 현실의 KB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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