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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01:12:02

최재영(목사)


파일:최재영(목사).jpg
1962년 ~ ([age(1962-01-01)]세)

1. 개요2. 생애3. 비판 및 논란4. 방송 출연

1. 개요

미국한국계 미국인 출신의 목사. 또한 미국 국적을 활용해 남한과 북한 양측을 오가며 '통일운동가' 목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북한과 왕래하던 대북사업가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혹의 주요 당사자로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유상범이 혁명열사릉에서 사진을 찍었냐는 질문에 대해 재북인사릉으로 정정했고, 이에 상호 간에 논쟁을 주고 받다가 위원장 정청래의 조정으로 유상범 의원이 오류를 인정했다.[1]

자칭 목사라고는 하지만 정작 목회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는데,[2] TV조선 취재 결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남가주노회 소속이었다가 친북 활동을 이유로 2015년에 제명된 사실이 밝혀졌다.#[3]

3. 비판 및 논란

3.1. 종북 논란

후술하겠지만 최재영 목사는 실제로 김건희(개명전 이름 김명신)에 관한 사건으로 공론화되기 이전부터 북한의 혁명열사릉애국열사릉, 그리고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 개관식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 미국을 비판하기도 하거나 적군묘지를 참배하는 등 통일운동가를 자칭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종북 논란이 될 만한 활동들을 해오며 # 사실상 북한의 선전을 옮겨적다시피 한 기고문, 서적을 쓰는 활동을 했다. 평양의 음식점들이 서울보다 더 고급지다느니, 북한에는 종교활동이 자유롭고 원활하다느니[4] 하는 내용들이다. 2018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기도 했으나, 이후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

2020년에는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고 500여개의 가정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서구기독교의 관점으로 북한 교회를 바라보면 안된다면서 북한의 종교 탄압 현실을 부인하고 있다.#

3.1.1. 종북 인사들과의 교류


최재영은 재미교포 종북 인사로 유명한 노길남[5]이 대표로 있던 민족통신[6]에서 편집위원을 지낸 바가 있다.
[특별대담-1, 2, 3]노길남 민족통신 대표, 그는 누구인가(상, 중, 하)
#, #, #[접속불가]
해내외 동포들, 민족통신 대표 7순잔치 뜨겁게 축하
#[접속불가]

편집위원 시절 그는 민족통신에 다음과 같은 글들을 4차례 기고한 적이 있다. 더군다나 노길남과의 2014년 대담에서 그를 북부조국 바로 알리기로 통일운동에 기여했고, 조국통일에 힘쓴다고 옹호했다.
파일:최재영과 신은미.jpg
파일:신은미와 최재영.jpg

온갖 종북 콘서트 개최로 논란을 일으킨 신은미와도 가까운 사이다. # 그녀를 신은미 선생이라고 높이기도 했으며 2013년 10월 15일 중앙일보 갤러리 강당에서 열린 북부조국 바로알기 강연에 함께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었고 #[접속불가], 같은 해 11월 21일 시내 평안교회 소강당에서 열린 신은미의 방북강연회에서 사회자를 맡기도 했다. #[접속불가]

3.1.2. 천안함 음모론 주장



서울의소리 방송에 출연하여 천안함 피격 사건에 관한 음모론을 설파했다.

천안함 음모론자의 대표격인 신상철을 옹호하고, 2018년 '천안함사건 진실규명 범시민사회공동대책협의회'라는 음모론 단체가 출범하자 이 단체에 참여하는 행보도 보였다. #

3.2. 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혹

3.3. 김건희 양주 수수 논란

4. 방송 출연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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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청문회에서 이 재북인사릉을 참배한 사진이[11]혁명열사릉을 참배한 사진으로 와전되는 '왜곡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이다. 최재영 목사가 혁명열사릉을 방문한 것은 사실이지만, 청문회에 사용된 사진은 혁명열사릉이 아닌 재북인사릉 사진이라는 것.[2] '크리스찬투데이'라는 미국 매체가 보도한 바에 의하면, 최재영은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하였고, 안양대학교 신학과와 안양대 신대원을 졸업하였으며, 고려대 대학원에서 철학교육을 전공했고, 미주총신대 목회학석사(M.Div), 미주장신대 신학석사(Th..M),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선교목회학박사(D.Min.GM)를 취득했으며, 2011년에 '영광의 빛 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했다고 한다.# 그의 목회활동에 대해 인터넷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보도이다.[3] 최재영은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자리에서 어느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예장에서 받았지만 노회가 어디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대답한 바 있다.[4] 이는 북한 정권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5] 미 시민권자 자격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사회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7년 기준 북한총 75차례나 방북했으며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재미본부 위원, 6.15 공동성언 미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신은미와 황선, 김기종 같은 종북 인사들을 옹호하거나 북한에 대한 인권결의안을 극찬하고, 연평도 포격전에 대해 대한민국의 책임이라며 사이버 삐라를 뿌렸으며 2014년 김일성상을 수여받기도 했다. 2020년 4월 25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감염되어 사망했다.[6] 노골적인 친북 사이트답게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차단한 상태로, 국내 접속이 불가능하다.[접속불가] [접속불가] [접속불가] [접속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