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808080> 최상인 Choi Sang-in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학 / 학사)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빅데이터학 / 석사) |
경력 | 前 딜로이트 컨설팅 전략 그룹 前 PUBG 서비스 전략 리드 前 Fighting Esports Group 최고 전략 책임자(CSO) 前 OP.GG 최고 제품 책임자(CPO) 前 LG U+ 게임 e스포츠 자문위원 前 DRX 단장 前 DRX 대표 |
MBTI | INTJ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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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前 DRX의 대표 및 단장.대표 시절 사용하던 닉네임은
DOwner
였다. 'DRX Owner'니까 꽤나 직관적인 닉네임으로 도우너라고 불리기도 했다.2. 생애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UBC)에서 경영학 학사를 받고 연세대학교에서 빅데이터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 컨설팅 전략 그룹에서 일하면서 대기업을 대상으로 전사 전략 프로젝트, M&A 등을 진행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OP.GG 최고 제품 책임자(CPO) 직을 맡았다. PUBG 주식회사 서비스 전략 리드를 거쳐 킹존 드래곤X(現 DRX) 소유주였던 Fighting Esports Group(FEG)의 최고 전략 책임자(CSO)로 합류하면서 e스포츠 산업에 몸담게 됐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처음에는 e스포츠 지원 산업의 일환으로 데이터베이스 사업을 맡기 위해서 FEG에 합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역할이 커지더니 킹존 드래곤X 팀의 세일즈[1]를 담당하게 됐고, 2019년 11월에는 킹존 드래곤X를 직접 맡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FEG에게서 킹존 드래곤X를 인수해 드래곤X로 그리고 현재의 DRX로 리브랜딩한다. "처음에는 사무국 직원 셋과 '데프트' 김혁규만 남아있었어요. 마치 폭풍이 지나간 농장에 찾아가니 한 마리의 알파카만 덩그러니 남아 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같았죠"라며 최상인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출처
한 질의응답에서 당시 킹존 팀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당시 승계가 일어나지 않으면 선수들이 월급을 못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경제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 승계를 했다고 밝혔다. 원래 e스포츠 팀을 운영하는 것이 꿈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맡게 되고 이왕하는거 제대로 하자고 생각하다보니 대표가 돼있고 단장이 돼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카카오를 비롯한 많은 기업의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하고 DRX의 재정 상황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2020년 DRX는 영입한 씨맥 감독과 도란, 표식, 쵸비, 데프트, 케리아 로스터로 성공적인 새출발을 했고 순조롭게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해 2020년 11월경 스토브리그 팀 공중분해 사건이 터지며 논란에 휩싸이게 되고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이 때문에 본래 DRX 대표 외 단장직도 겸하고 있었으나 2020년 12월 2일,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고 단장직에서 사임하고 최병훈을 새로운 단장으로 선임하게 된다. #
2024년 6월 12일 오후 11시경,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DRX 대표이사직 사임을 발표했다.[2] 스토리 사진 캡처본
최상인 인스타그램 스토리 전문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안녕하세요 DRX 여러분, 오늘은 제가 여러분께 직접 전하는 마지막 소식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DRX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간만의 소통인데, 이렇게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19년도 DRX를 처음 설립하고 킹존을 인수하던 시기가 저에게는 정말 큰 도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는 팀을 잘 매각한 후 다시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고 했었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팀이 없어지게 되면 실망할 선수들과 직원들을 생각하며 사실 많은 부담과 책임을 느꼈습니다. 어떻게든 회사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오르게 됐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잠 못 이루던 밤들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새벽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버지 댁에서 같이 살아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이 어떻게 되든 당신은 괜찮으니 힘들면 내려놓고 언제든 시골로 와서 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 숨소리 참으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아버지의 그 말씀이 세상의 무게를 견딜 힘이 되어 주었고, 저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위기를 무사히 극복하고, 기왕 맡은 팀 제대로 성장 시켜보자는 마음으로 저는 20년을 '고속 성장의 해'로 삼아 가지고 있던 모든 열정을 폭발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 선수단을 구성할 때 선수들 한 명 한명에게 거의 빌다시피 하며 모셔왔기에, 그들의 합류 자체가 저에겐 너무도 귀중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과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그들을 위해 함께 뛰는 그 자체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선수들이 탄 차를 운전하면서 개인적인 팬심까지 충족하고, 인형탈을 쓰며 선수들의 관심을 끌 때도... 힘든 것도 모르고 참 재밌기만 했습니다. 그때는 많은 일들이 새로웠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했던 찬란했던 시절로 기억합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이 때가 저는 가장 뜨거웠고 영광스러웠습니다. 팀을 사랑해주신 팬분들의 애정도 아직 생생합니다. 다만 한편으로는 일 욕심만 많던 초보 대표 겸 단장으로 인해 직원들이 많이 고생했던 시절이기도 해, 아직까지 당시 직원들에게 깊은 미안함과 감사함을 갖고 있습니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선수들과의 재계약 실패로 인한 저의 첫 번째 월광포화가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기대하던 팬분들을 낙담시켰고, 저 자신도 많이 좌절했습니다. 당시 개인적으로 억울해서 할 말이 좀 있었지만, 팀을 지켜야한다는 책임감으로 결국 마지막까지 참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억울함을 토로하지 않은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팬분들이 원하는 것은 제 억울함이나 사실 관계 파악이 아니라, 선수들과의 재계약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미안하단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깊은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21년을 '행복 추구의 해'로 정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발판을 마련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모든 것들을 일일이 관여하던 저는 많은 것들을 직원들에게 위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수가 한마음으로 움직이기 위한 시도를 하였고, 팬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충격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도록 섬세한 노력을 했습니다. 스프링까지는 계획대로 나름 잘 진행되었던 것 같은데, 서머에서 원치 않는 변수가 생겨 처음으로 꼴찌를 경험했습니다.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그 결과는 참 수치스러웠습니다. 선수단 성적은 아쉬웠지만, 다행히 구성원들은 앞으로 나아갈 의지와 발판을 많이 회복하여 22년을 '재도약의 해'로 정하고 새 해를 맞았습니다. 선수, 직원 등 팀 내 모든 구성원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22년은 사실 가장 위기가 많았던 해였습니다. 시즌을 연패로 시작하며, 감독 경질, 플옵 1라운드 탈락 등 여러 가지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도전이었던 만큼 모두 합심하여 이를 잘 헤쳐나갔고, 선발전을 턱걸이할 때까지 선수들부터 직원들, 저까지 누구 한 명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즌 내내 성적이 위태로웠기에 당시 주장 선수와 개인 면담을 종종 했는데, 그때 가장 많이 주고받았던 말이 '우리 꺾이지 말자'였습니다. 마음을 아무리 다잡아도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이 자주 찾아왔지만,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직원들 모두가 꺾이지 않고 의연히 전진하였습니다. 플레이인 때까지는 이게 되나 싶었지만, 16강, 8강을 거치며 4강부터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강한 자신감이 생겼고, 결국 롤드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어느 때보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 마음만큼은 함께 우승을 만들어준 팬분들도 같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23년은 '가치 실현의 해'로 정해 지속 성장 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사업 매출을 전년도 대비 50% 가까이 상승시켰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월광포화로 인해 선수 구성의 조화적인 부분에 다소 아쉬움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남들은 한 번만 쏘아보아도 될 궁을 저는 시부랄, 두 번 쏘아올리며 참 어이 없이 좌절했습니다. 전적으로 제 책임이고, 제 능력 부족의 결과였기에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젠 계속 행복하겠지'라는 희망에 부푼 기대를 한 상태에서 강제로 미끄러지듯 또다시 실패하고 좌절하니까 좀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지켜야 할 팀과 직원들이 있었기에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분전했고, 이런 극복 과정 자체가 저와 여러분이 함께 공유해온 DRX의 도전 정신이라고 믿고 의연히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 꽤 고통스럽고 재미없는 한 해를 드린 것 같아, 늦었지만 진심으로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비록 또 실패했지만, 다시 도전하여 고무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해 24년은 '재미 추구 및 몰입의 해'로 정했습니다. DRX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 일에 미쳐서 신나게 몰입할 수 있도록 조직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했습니다. 개별 이익과 팀, 회사의 이익이 일치하도록 세심하게 설계했습니다. 우리들이 고통받는 포인트도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월광포화 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비록 스프링은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했지만, 22년 때처럼 이번 섬머 시즌에 다시 도약하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여러가지 섬세한 노력을 하였고, 이는 곧 여러분이 원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DRX가 여러분의 삶에서 작은 위안과 강한 자부심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마지막 퍼즐을 맞추며 저는 떠나고, DRX는 쇄신될 것입니다. 지난 6년 동안 DRX에는 도전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사명감을 가진 분들이 합류했습니다. 이 훌륭한 분들은 DRX가 도전 그 자체가 되기 위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도 의연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점과 고점을 넘나들며 매 순간 도전해왔고, 앞으로도 이 도전 정신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느꼈던 실망감이나 서운함은 모두 제 부족함의 결과이니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즐겁게 도전하며 DRX의 영광을 만들어주신 핵심 인력들이 아직 남아계시기에 그들이 DRX의 도전과 영광을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진심 어린 응원과 지지를 부탁 드립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저는 곧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것입니다. 저같이 부족함이 많아 실패를 반복한 사람도 의연하게 도전을 지속하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사례가 앞으로 인생의 여러 무게를 견뎌낼 당신들에게 작은 힘과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형들 덕에 저는 참 많이 웃고, 울고, 행복하고, 재밌게 놀다가 갑니다. 그리고 못난 대표 밑에서 팀을 위해 묵묵히 고생해준 선수들과 감코들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열정적이었지만 많이 부족했던 동생, 최상인 드림 Enjoy Challenge DRX |
3. 평가
꽤나 명과 암이 명확한 단장으로 평가받는다. 분명 능력이 있는 인물인 것은 확실하다. 어려운 팀을 인수받았음에도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스폰서를 계속 늘려가며 경영쪽에는 꽤나 능력을 보여줬고, 로스터 역시 항상 그럴듯하게 만들어오며 성적을 내려고 노력했다는 점은 인정받는다.다만 이런 능력있는 인물이 DRX 팬들에게 별로 좋지 못한 이미지가 된 이유는 있기 마련. 구단에서 일어난 많은 사고들을 보면 알겠지만 그가 재임하던 시절 프런트는 DRX팬들에게 꽤나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DRX는 성적이 좋았던 해의 멤버들을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20년~22년의 3번의 스토브를 거치는 동안 무려 2차례나 팀이 공중폭파 되며 팬덤이 쌓일만 하면 부숴버리고 쌓일만하면 부숴버리고를 반복해버렸다. 결정적으로 2022년에는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월즈 우승을 기록한 스쿼드를 폭파시켜 DRX의 이미지를 망가뜨린 것은 최상인의 대표 실책으로 꼽힌다.[3] 이 때문에 '월광포화'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이에 대해 프런트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고소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대처 역시 좋지 못 했다. 예기치 못한 행운 덕분에 두 번이나 팀 규모를 키울 수 있던 상황이었으나 이를 모조리 실책으로 날린 결과 한때 플옵권 강팀이자 월즈 우승까지 해본 DRX는 LCK의 중하위권 팀으로 전락했다.
논란 때문이 아니더라도 팀의 복지가 좋지 못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20년 도표쵸뎊케 스쿼드 당시에는 가습기와 공기청정기조차 비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똑같이 복지가 열악하기로 유명했던 KT조차 저 물품들은 기본적으로 제공했다는 걸 생각하면....
4. 여담
- 2003년 HP배 온게임넷 워3리그 16강 진출로 준프로로 출전했었다. 주종족은 언데드. 본인 말에 의하면 준프로 타이틀을 결국 떼지 못하고 현역으로 입대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워3 선수풀이 워낙 작아서 그런지 소수의 올드팬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 특이하게 단장임에도 co-stream 같은 방송들을 본인이 직접 진행했다. 일명 '도우너 쇼'. 그 방송 홍보를 위해 여러 사진들을 찍었는데 그 중에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보는 짤은 마치 아펠리오스가 궁극기를 쏘는 자세와 흡사하여 일명 '월광포화' 자세가 되었고, 이것이 DRX의 팀 공중 분해 사건과 엮여서 '궁 한방으로 5명을 원콤내는 역체 아펠리오스'같은 별명이 생겼다.
[1] 드래곤X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디알엑스 주식회사를 2019년 7월경 세웠다고 한다.[2] 다음날인 6월 13일에는 DRX 공식 X에 영문으로 번역된 입장문이 업로드되었다.[3] 물론 도우너가 좋아서 터뜨린 것은 아니고, 안그래도 재정이 좋지 못한 팀이 무리해가며 22년 로스터를 꾸린 것인데 우승을 하며 몸값이 더 올라가는 바람에 도저히 팀 예산상 잡을 수 없었다는 사정이 있긴 하다. 하지만 다 놓치고 새 플랜을 짜는 과정에서 프차 스타 표식을 헌신짝처럼 버려버린 것 하나는 확실하게 비판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