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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덩이쇠. |
1. 개요
철정(鐵鋌) 또는 덩이쇠는 주로 한반도 남부 지방에 위치한 유적들에서 출토되는 주괴 유물로, 원삼국시대 변한, 진한 및 삼국시대 가야, 마한 지역 일대에서 사용했던 금속 화폐의 일종이다.2. 상세
일정한 크기로 주조한 판형 철괴는 본래 철기를 제련할 때 쓰던 재료#[1]이며, 한반도 남부 국가에서는 이를 교환의 대가로 지불하였다.덩이쇠는 양 끝으로 갈수록 철판이 넓어지는 장방형의 뼈다귀 형태를 하고 있으며, 비슷한 생김새의 덩이쇠들이 주로 고령, 부산, 김해 등 동남부 지역에서 출토된다. 유적에 따라 출토되는 규격이 조금씩 다른데, 소형 덩이쇠의 경우 구멍을 뚫고 노끈을 메어 사용했다. 대형의 덩이쇠는 개인이 휴대하기에는 무거우므로 상자, 말 등에 적재하여 운반했으며 다른 옷감이나 식량 등 자원과 교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지> 변진(弁辰; 변한과 진한)조 대목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國出鐵 韓濊倭皆從取之 諸市買皆用鐵 如中國用錢 又以供給二郡
(진한과 변진의) 나라에서는 철이 생산된다. 한국, 예국, 왜인이 모두 와서 사 간다. 시장에서의 모든 매매는 철로써 이루어지는데, 마치 중국에서 동전을 쓰는 것과 같다. 또한, 그 철을 낙랑군과 대방군에도 공급한다.
(진한과 변진의) 나라에서는 철이 생산된다. 한국, 예국, 왜인이 모두 와서 사 간다. 시장에서의 모든 매매는 철로써 이루어지는데, 마치 중국에서 동전을 쓰는 것과 같다. 또한, 그 철을 낙랑군과 대방군에도 공급한다.
도끼날이 덩이쇠로 쓰이기도 했다.[2]
이 기록은 당시 덩이쇠를 화폐로 활용하면서 한국과 예국과 왜 지역과 낙랑과 대방에 걸쳐서 국제 무역이 성행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