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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관련 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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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차범근에 대한 언사를 정리한 문서.

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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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꼭 와 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미하엘 발락, 2002년 한일 월드컵 독일 대표팀 입국 당시 인터뷰에서.[1]
“우리가 풀지 못한 주요 문제는 차붐이었다. 차붐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해결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알렉스 퍼거슨, 1979년 애버딘 감독 당시 프랑크푸르트와 UEFA컵 1라운드 경기 패배 후
“당신에게서 사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는 제게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올리버 칸, 2004년 월드컵 예선 대비 친선 경기 차 방한 후 차범근을 만나서 한 말
”나는 차붐을 존경한다. 어릴 적 차붐을 보고 자랐고, 나도 그 선수처럼 되고 싶었다.”
마이클 오언
“방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 증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난 차붐부터 만나고 싶다.”
2002년 정상 회담을 위해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나도 어느 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 만큼은 아니다.”
위르겐 클린스만
“퍼펙트라는 말이 어울리는 공격수였다. 슛이 좋은 데다 속도가 폭발적이었다. 첫 대결 이후로도 나를 상대로 많은 골을 넣었다. 내가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를 상대로도 골을 안 먹었는데 차붐은 도저히 못 당하겠더라. 만약 차범근이 지금도 현역이었다면 1억 유로를 이적료로 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팀에 차붐 같은 선수가 있다면...”
토니 슈마허
결승전 당시 차붐은 최고의 선수였다.
차범근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건 분명하다. 그는 나의 자만을 깨우쳐 줬다.
1980년 UEFA컵에서 프랑크푸르트를 만났는데 한국의 전설적인 선수 차범근을 만났다.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의 상징 같았다. 뛰어난 드리블 능력과 득점력을 갖추고 있었고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였다
로타어 마테우스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뛰던 시절 한국인 선수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선수가 바로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붐근차였다.”
요아힘 뢰프[2]
“난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독일인이라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에 넣고 싶다.”
에크하르트 헨샤인트(eckhard henscheid)[3]
“차범근은 매우 위대하고 훌륭한 선수다. 아직도 독일에는 그의 뛰어난 기량을 기억하는 팬이 많다.”
프란츠 베켄바워, 1995년 방한 당시 MBC NEWS 인터뷰
“차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 줄 알고 즐길 줄 안다.”
펠레
“차붐은 나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큰 영웅이다.”
루이스 피구[4]
승부차기까지 가서 이겨 더욱 기뻤죠. 차붐은 매우 중요한 선수였어요.”
“차붐이 50%만 해내도 나는 다른 어떤 선수보다 먼저 차붐을 기용할 수밖에 없다”
에리히 리베크
“차붐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엄청난 스타입니다. 그는 리그를 주름잡았죠”
아르센 벵거
“차붐은 당시 독일에서 정말로 특출한 존재였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차붐의 영입으로 UEFA컵을 우승할 수 있었다. 레버쿠젠 구단 역사에서 첫 우승이었다.”
루디 푈러
“차붐은 케빈 키건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이다. 세계 어느 클럽의 최전방에 배치해 놔도 주전을 꿰찰 수 있을 것이다.”
귄터 네처
“현재 서독 대표팀의 왼쪽 윙 포워드가 시원찮다. 차(Cha)가 서독 선수라면 당장 그 자리에 넣고 싶다.”
유프 데어발, 1980년 유니세프 세계 올스타전 경기 후 언론사 인터뷰
"루메니게와 동급의 선수이지만, 그가 헤더를 훨씬 더 잘한다."
"루메니게를 제외하면 나를 그만큼 묶어놓을 수 있는 선수는 없다. 그를 눈에서 놓치면 안 된다. 그가 나를 따라오지 않으니, 그를 마크해야 하는 동안에는 내가 공격에 가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국제적인 위상을 가진 센터 포워드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런 공격수를) 찾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차범근이 있으면 우리는 확실히 빅 2(※ 바이에른 뮌헨, 함부르크)와 대등해질 수 있다!"
한스페터 브리겔, 차범근의 라이벌로 불리던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수비수
“전설을 마주하게 돼 큰 영광입니다. 차붐이 다름슈타트에서 뛰었다는 사실을 구단은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뤼디거 프리치 SV 다름슈타트 98 회장, 2017/18 시즌 출정식에 초대된 차범근을 만나며 건넨 인사말
“차범근은 나의 롤 모델이자 우상이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5]
“직접 대결해 본 적은 없으나 유럽 컵 등의 대회에서 그의 활기찬 플레이에 여러 번 감탄했다. 차범근을 묶지 못하면 한국에 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현역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파올로 로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과의 조별 예선을 앞두고 인터뷰[6]
“왜 그런지 여러분은 몰라요.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에 그는 유럽의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죠. 독일에서, 아마 프랑크푸르트 선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는 최고의 유럽 선수 중 한 명이었죠.”
거스 히딩크, 손차박 중 최고의 선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차범근을 뽑으며.
“타고난 기량에 노력을 더한 불세출의 스트라이커. 비교 거부.”
최순호, 역대 한국 스트라이커를 평가하던 중 차범근에 대한 평가.[7]
"그의 기록을 경신해서 자랑스럽다. 차범근을 존경한다. 내가 그의 출장 기록을 넘어섰다고 해서 내가 그를 뛰어넘은 건 절대로 아니다."[8]
하세베 마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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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말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한국 기자가 먼저 발락에게 "여기가 차붐의 나라인 걸 아십니까?"라는 질문에 발락이 답한 것이다. 사실 대화의 앞뒤 문맥을 생각해 보면 저절로 답이 나오기는 한다. 입국하자마자 한 말도 아니고 인터뷰 중에 뜬금없이 여기가 차붐의 나라냐며 운을 뗄 리는 없기 때문이다.[2] 선수 시절 당시 차범근의 백업 선수였다. 이후 독일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 사실 차범근도 해설자 시절 뢰프가 자신의 교체선수였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3] 차범근의 찬양 시를 쓴 독일의 작가. 이에 관한 정보는 선수 경력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란에 나와 있다. 원래 프란츠 베켄바워가 한 말로 알지만, 슛포러브에서 차범근이 베켄바워가 한 말이 아니라고 언급했다.[4] 다만 피구는 2019년 리오 퍼디난드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본 최고의 선수 세 명으로 펠레, 에우제비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꼽았다.[5] 실제로, 베르바토프는 어린 시절부터 레버쿠젠의 골수 팬이었다고 한다.[6] 이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 여느 아시아권의 팀과 달리 특이한 축구를 하는 팀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7] 여기서 최순호는 황선홍, 이동국, 안정환, 박주영부터 심지어 또 다른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인 이회택에 이르기까지 근성, 의욕면에서의 단점, 약한 체력, 자기 관리 부족 등 각각 선수 대부분의 크고 작은 단점을 언급했다. 그러나 차범근만큼은 단점을 언급하기는커녕 불세출의 스트라이커라며 극찬을 남긴 것이었다. 최순호 역시 대한민국 월드컵 최다 공격 포인트 기록의 소유자이자 당시 유벤투스, 인테르 등에서도 노릴 정도의 재능과 능력을 가진 공격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가히 차범근의 위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8] 이에 차범근도 "이 기록이 30년 넘게 이어졌고 하세베가 발자취를 이어간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다." 라고 격려를 해 줬고 "하세베는 수년간 아시아에서 명성을 떨친 선수였고 젊은 선수들의 본보기와 귀감이 되는 선수다." 라며 찬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