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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2-27 12:27:47

쪼맹

<colbgcolor=#8017bd,#8017bd><colcolor=#fff,#fff> 쪼맹
파일:왕 멋쟁이 쪼맹 공연.jpg
본명 조명수
출생 1992년 9월 26일 ([age(1992-09-26)]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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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유튜버, 트위치 스트리머, 치지직 스트리머, 기타리스트[1]
학력 고등학력 검정고시
추계예술대학교 (중퇴)[2]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재학)
구독자 수 2.23 만명(2025.11.22 기준)
MBTI ENTP
플랫폼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3]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4] | | 파일:트위치 아이콘.svg
커뮤니티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약력3. 특징4. 사용 장비5. 친분 관계6. 여담

1. 개요

대한민국기타리스트유튜버, 트위치/치지직 스트리머

2. 약력

유튜브에 업로드한 해당 영상에서 본인의 음악 일대기에 관한 내용을 푼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가요 음악보다는 밴드 음악을 더 선호했고, 버즈투니버스 OST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이 밴드 음악인지, 그 곡에 일렉 기타가 사용되는지는 잘 모르고 그저 귀에 익고 듣기 좋다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도중, 서태지의 음악을 접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아, 이게 밴드 음악이구나."라고 밴드 음악에 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Funtwo(임정현)캐논 락 연주 영상을 보게 되면서 본인이 말하길, 마치 번개를 맞은 듯 무언가 팍 하고 터진 듯 했다고 한다. 매일같이 캐논 락을 들었고, 당시 코원의 MP3에 담아 들었다고 한다. 당시 영상의 배경[5], 기타의 소리와 연주하는 모습 등이 너무나 멋지고 재밌어 보인다고 생각했고 그때 "나도 일렉기타 쳐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까먹었지만,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10년 정도 배운 덕에 새로운 악기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에는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6] 계속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중학교 2학년 때 즈음 어머니를 설득하여 평택에 있는 "비엔나 악기"[7]에 가서 첫 일렉기타[8]와 앰프를 구입했다고 한다.

이후 교본을 보며 간단하게 연습을 하던 와중에 친구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라는 소설을 빌려주었는데, 이것이 쪼맹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것 같다고 한다. 그 소설의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되며 처음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J-POP, J-ROCK을 많이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기타를 연주하던 도중, A-Sound라는 카페를 알게 되었고, 그 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찾아보다가 밴드를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취미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합주와 공연을 해보며 고등학교 1학년 쯔음에는 완전히 기타와 밴드 활동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때 서태지와 아이들교실 이데아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입학한지 두 달만에[9] 자퇴를 결심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자퇴하고 기타보다는 게임[10] 을 더 열심히 해버렸다고 한다.[11] 이후 1년 뒤, 18살에 게임을 접고 자취를 시작하게 된다. 진지하게 음악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좋은 악기를 구입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토건 회사에서 일을 하며 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 구입한 악기가 윌로우즈사의 악기라고 한다.[12] 그러나 그 악기를 구입한지 약 10년 뒤에 금전적 위기가 와서 결국 판매하게 되었다.[13] 지금은 본인에게 없지만, 정말 고마운 악기이고 지금도 보고 싶고 소중한 악기이며 가끔 꿈에도 나오는 악기라고 한다.[14] 이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입시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본인이 말하길 당시의 스스로는 입시를 할 정도로 기타를 잘 치진 못했었다고 한다.[15] 그리고 결국엔 입시에 실패했다고 한다. 입시에 실패하고 나서 서울로 상경해 영등포 당산에 있는 연습실에서 생활하며 편의점 알바를 병행하며 다시 입시를 준비했다고 한다.[16]

이후 21살에 재수를 하여 적당한 실용음악학과[17] 1학년만 다니고 휴학을 한 뒤 군대를 다녀오게 되었다.[18] 군대에서 진로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게되었다고 한다.[19] 계속 기타를 칠지, 아니면 음악은 부업 내지 취미로 삼고 본업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아예 음악을 접고 다른 일을 할 것인가에 관해 고민하다가 결국 기타를 계속 연주하기로 마음은 먹었는데, 음악에 도움이 되는 다른 기술도 같이 배우기로 했다고 한다.

전역 후에는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하게 된다. 본래 경기도 안성에 본가가 있었으나, 고향인 대구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대구로 갔으나, 음악을 계속 하려면 수도권에 있어야 겠다고 생각하였고[20] 이로 인해 혼자 경기도로 독립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와 주공아파트 5층에 월세를 잡아 같이 살았다고 한다. 이후 알바를 1년 정도 열심히 하게 되는데, 팀장 직함까지 달게 되었다고 한다.[21] 팀장이 되고 나니 점점 돈도 안정적으로 벌리고 부모님도 좋아하시며[22], 좋은 애인도 생기며 놀러다니거나 사고 싶은 물건을 사보기도 하는 등[23], 순간 "이 정도면 괜찮은 인생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자금 조달을 위해 시작했던 일이 아예 주 목적이 되어버리면서 사실상 본래 목적이었던 음악은 뒷전으로 밀려버린다.[24]

그러다가 어느 날, 오랜 친구였던 AZ가 유튜브 출연을 제안했다고 한다. 재밌어보여서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오랜만에 음악하는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고 기타도 의무적으로 계속 잡게 되면서 잊고 있던 음악에 관한 욕망이 다시 되살아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한 번 기타에 관한 생각이 커지기 시작하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점점 불만족스러워 졌다고 한다.[25] 이후 부모님 및 애인과도 얘기를 나눠봤는데, 결론적으로 "음악을 다시 하면 좋겠다."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퇴사하고 기타를 연습하며 다시 예전처럼 알바를 병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애인과 개인적인 사유로 헤어지게 되고, 그 쯤부터 개인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기타 연습도 열심히 하고, 잊어버린 감각을 되찾기 위해 많은 사람도 많나 조언도 들으며 현재는 얼떨결에 다시 기타를 연주하고 있으며, 혹여나 과거처럼 다시 음악을 하지 않게 될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들었기에 대학도 다시 다니고 있다고 한다.

쪼맹의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해 보자면, 순수한 열정으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에 의해 음악을 그만두었다가, 모종의 이유로 포텐셜이 터지며 남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다시 음악으로 귀환하였다 볼 수 있다. AZ의 코멘트에 따르면 10대 20대를 내리 음악에 전념하다가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30대에 접어들 때 즈음 다른 일을 알아보기 시작한다는데, 쪼맹처럼 20대 때 음악을 접었다가 30대에 가까운 나이에 다시 음악활동을 재개하는 케이스는 정말 보기 드문 경우라고.

이후 천타쿠, 미확인 생명체 등 다양 커버 밴드를 전전하고 자작곡을 발표하였고, 수강생들을 상대로 레슨 또한 진행중이며, 대한민국의 기타 제조사 HEX에서 시그니처 기타까지 발매되는 등 프로 기타리스트로서 활발히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 특징

위 약력 문단에서 볼 수 있듯, 원래 실용음악과를 다니며 프로 기타리스트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하였으며, 거의 30이 다 된 비교적 늦은 나이에 다시 프로 기타리스트로 데뷔한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26] 최근에는 자작곡 밴드는 아니지만, 천타쿠와 미확인 생명체 등 커버 밴드를 하는 모습도 보이며 외주까지 받았다고 한다.

AZ의 채널 고정 출연자인데 본인 입으로 입 기타리스트의 표본인 것처럼 소개되지만 실용음악과 출신답게 준수한 기타 실력을 보여준다.# # 연주 시에 새끼손가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본인도 이 점을 가끔 밈으로 써먹는 중. 현재는 본인만의 시그니처로 여기는 것 같다.

유튜브를 처음 시작했을 즈음에는 종합게임이나 토크 위주의 컨텐츠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라이네라, 리락 등의 기타 유튜버들과의 콜라보 이후로는 완전히 기타 유튜버로 전향한 것으로 보인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치지직유튜브를 통해서 라이브 방송을 한다. 오후 10시 즈음부터 생방송을 시작하며, 자세한 방송시간은 네이버 카페 공지로 확인하자.

HEX에 자신의 시그니처 기타(dc 500)가 있는 프로 기타리스트이다.

4. 사용 장비

5. 친분 관계

6. 여담


[1] HEX 공식 엔도서[2] 기타리스트 JuNN과 동문이라고 한다.[3] 생방송 다시보기 채널[4] 쪼맹맹 채널[5] 당시 Funtwo가 사용하던 ESP Afree Custom의 번쩍거리는 기타, 뒤에서 내리쬐이는 후광 이라고 한다[6] 실제로 기타 및 베이스의 경우 화성 악기에 관한 이해도가 높다면 성장폭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 실제로 본인도 어릴 적 배운 피아노가 기타 연주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 적 있다.[7] 2025년 3월 1일 기준 영업 중인 듯 하다.[8] 발리 엔트라고 적힌 합판 기타였으며, 검은색에 하얀 픽가드를 가진 전형적인 입문용 스트라토캐스터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9] 어버이날 2일전 이라고 한다[10] AZ 영상에서 언급한 것으로는 당시 상당히 헤비한 마비노기 유저였다고 한다.[11] 다만 완전히 기타를 안 친 건 아니고, 기타에 조금 소홀해진 것 뿐이라고 한다. 본인은 이때를 "제정신이 아니었던 때"라고 회상한다.[12] 속칭 보라돌이라는 악기인데, 현재도 쪼맹이 출연한 과거 AZ의 영상이나 초창기 쪼맹의 유튜브에 그 모습이 남아있다.[13] 비교적 안정적인 궤도까지 올라온 현재, 기타를 되찾기 위해 당시 구매자에게 연락을 몇 차례 시도했으나 답장이 없었고, 이로 인해 현재는 사실상 되찾기를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14] 나름 어린나이에 직접 돈을 벌어 구입한 기타 중 하나이고, 본인의 어린시절을 함께한 기타라 그런지 기억에도 많이 남는 듯 하다.[15] 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좋아하는 것만 연주하려고 했으며, 못하는 걸 배우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한다.[16] 이때 마인드를 조금 고쳐 실용음악학원에 한 달 간 다녀봤지만, 본인과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독학으로 입시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17] 아마도 위의 선술했듯 추계예술대학교일 가능성이 높다.[18] 이때 바로 군대를 간 건 아니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당시 1포병여단 편성 부대 보급병으로 입대했다고 한다.[19] 실제로 딱히 꿈이나 제대 후 비젼이 없는 사람들이 군대에서 제대 후 진로에 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20] 실제로 우리나라의 민간공연장, 합주실, 악기상, 대학등 거의 모든 음악 인프라는 모두 수도권에 집중되어있다. 괜히 음악한다고 상경하는게 아니다.[21] 이 내용은 AZ 채널에서도 간략히 다룬 적이 있다. 본인의 말로는 "이때부터 꼬였다"라고 한다.[22] AZ 채널에서는 '부모님께도 인정받는 느낌이고"라고 했었다.[23] 이때 처음으로 차를 사게 되었다고 한다.[24] 아예 안 하는건 아니였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칠까말까 하는정도 였다고 한다. 사실상 접은 셈.[25] 매일 회사를 다니면서도 고민하고, 자기 전에도 고민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잠도 잘 못잤다고 한다.[26] AZ의 언급에 따르면 10대~20대쯤 프로로서 이름을 날리지 못한 음악인들이 음악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기 시작하는 시기가 대략 30살 정도부터인데, 쪼맹은 반대로 일찍이 음악을 포기하였다가 30살 가량에 프로 기타리스트로 데뷔한 것이다.[27] 패시브 타입 픽업[28] 순정 픽업이 고장났다고.[29] 스윙의 공식적인 답변에 의하면 홈페이지 리뉴얼 과정속에서 소실되어 공식 홈페이지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30] 어느 시청자는 덧글에 실력도 좋은데 왜 저가형 모델을 사용하냐는 질문에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고 답변을 하였다.[31]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직접 돈을 벌어서 구입한 기타이기도 하고, 본인의 어린시절과 젊은시절을 함께한 기타라 더더욱 그런듯 하다[32] 파일:유니웰 레스폴 커스텀.jpg[33] 파일:아이바네즈J커스텀8570Z.jpg[34] 파일:펜더 아메리칸 쇼버커 선셋 버스트.jpg[35] 미디 컨트롤러 페달과 오디오 인터페이스 기능이 함께 들어있는 제품이다. 번거롭게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미디컨트롤러를 따로 챙길필요 없이 이 제품 하나만 챙기면 끝난다[36] 같은 멜로 오디오 사에서 출시한 익스프레션 페달 이다[37] 이쪽도 미디 컨트롤러 페달이다. 다만 이쪽은 정말 컨트롤러 기능만 있다[38] 본래 009를 쓰다가 주변에서 "너도 010쓸때 되지 않았냐"라는 말에 생각없이 넘어갔다가 지금은 다시 009로 정착했다고 한다[39] 케이크워크를 설치하면 같이 설치되는 플러그인 이다.[40] TH-3의 후속작[41] 다이소의 화분받침을 스피커 스탠드로 사용하고 있다.[42] 과거 베일톤의 GP200을 잠시 사용했다. 지금은 판매한듯 하다[43] 담배를 피울 때는 항상 해당 이미지로 입부분을 가리고 피운다.[44] 약 10년동안 사용하였던 윌로우즈 커스텀 기타 또한 보라색 피니쉬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