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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국 우보 진충 | 眞忠 | |
<colbgcolor=#00A6A9> 직위 | 좌장(左將) ➝ 우보(右補) |
성씨 | 진(眞) |
이름 | 충(忠) |
생몰연도 | 미상 |
재임기간 (음력) | 백제 우보 |
247년 2월 ~ 미상 |
[clearfix]
1. 개요
백제의 고이왕 시절 활동한 좌장, 우보.2. 생애
240년(고이왕 7) 4월 좌장[1]임명되어 중앙 및 지방의 병마의 일을 맡았다.246년 8월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낙랑태수 유무, 삭방태수 왕준 등과 합력하여 고구려에 침공한 틈을 타서, 왕의 명을 받들어 낙랑의 변경을 급습해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나, 이에 낙랑태수 유무가 격노했다는 소식을 들은 고이왕은 후환이 두려워 다시 돌려주었다고 한다. 247년 2월에는 우보에 임명되었다.
260년 고이왕이 6좌평, 16품의 관등을 제정하고 품계에 따라 관인들의 복색을 정하면서 좌우보는 혁파되었다. 진충은 아마 260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3. 여담
- 진충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마지막 우보다.
[1] 좌장은 백제군에서 병관좌평에 다음가는 지위로, 병마의 업무를 총괄하는 최고위 군인이라 볼 수 있다.[2] 《삼국사기》 <고이왕 본기> 14년조[3] 진씨 가문은 다루왕 시절에도 우보를 배출해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