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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58:13

지역 갈등/아시아/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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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2. 목록
2.1. 화북 VS (넓은 의미의) 화남(광둥성, 쓰촨성, 푸젠성, 장쑤성)2.2. 화둥(중국 동부) VS 서부2.3. 1선 도시 (베이징시, 상하이시, 광저우시, 선전시) VS 그 외의 지역2.4. 장쑤성 내부2.5. 쓰촨성(특히 청두시) VS 충칭시2.6. 위구르(신강) VS 한족2.7. 티베트 VS 한족 ※2.8. 티베트 vs 위구르 ※2.9. 티베트 vs 칭하이성후이족2.10. 허난성 VS 그 외의 지역2.11. 산둥성 VS 그 외의 지역2.12. 둥베이 VS 그 외의 지역2.13. 홍콩 vs 중국 본토2.14. 홍콩 섬 vs 구룡반도, 신계2.15. 홍콩 VS 마카오

1. 개관

중국은 그 크고 아름다운 땅만이만큼이나 여러 갈래의 지역감정이 상존하고 있고, 이는 민족 간 분리주의와 얽혀 현재 중국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의 중국56개 민족을 대단히 강조하는데, 역설적으로 중국 내 뿌리깊은 지역감정은 공산당 1당체제 하에서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뿌리깊다는 말이기도 하다.[1] CCTV의 <삼국지 강의>로 알려진 학자 이중톈은 아예 중국의 지역문화를 다룬 <독성기>라는 저서에서 "중국 인민은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충성한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애초에 중국공산당부터가 상하이방, 저장방 등 주요 계파에 지역 모임이 있다. 그리고 도농간 격차가 심하다보니 농민공 같은 문제도 대두된다.

2. 목록

2.1. 화북 VS (넓은 의미의) 화남(광둥성, 쓰촨성, 푸젠성, 장쑤성)

황하 유역 지방과 장강(양자강) 유역 지방간에는 역사적으로 꾸준히 대립관계였고, 중국 제왕조가 붕괴할 때마다 꼭 남북으로 분단되는 현상을 보여왔다. 그리고 역사상 장강 유역이 황하 유역을 몰아낸 적이 명나라 이외에는 없다. 1920년대 국민당의 북벌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이건 전통적인 지역대립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때문에 북부에 대한 남부의 반골성은 두드러지며 이러한 대립구도가 극단적으로 표출되었던 사건이 바로 태평천국의 난. 지금도 화북과 양쯔강 남부 지방 사이에는 서로간에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다. 물론 같은 남부인 광둥, 쓰촨, 푸젠 , 저장, 장쑤 및 지방끼리도 서로간에 은근히 알력이 있다.[2]

2.2. 화둥(중국 동부) VS 서부[3]

전통적으로 중국은 개혁개방이 주로 되었던 동부 연해 지역과 그외 서부 내륙 지역 간의 빈부격차가 존재했으며 중공의 개혁 개방 이후 이 경향이 더욱 심해져 동서부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전형적인 개발지역과 낙후지역 간 문재라 칠 수 있다.

2.3. 1선 도시 (베이징시, 상하이시, 광저우시, 선전시) VS 그 외의 지역

개혁개방 당시에 중국 당국에서 특정 도시들을 집중적으로 육성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중 상하이시선전시가 대표적이다. 특히 상하이시는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전부터 열강의 조차지가 되는 등 세계적인 도시였고, 따라서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광둥성의 경우 반골기질 때문에 독자적인 의식이 강해서[4] 타 지역 사람들과 마찰을 빚기도 하며, 타 지역 사람들은 상하이 사람이 거만하다고 싫어한다고 한다. 베이징이 워낙 중국 정치의 중심지인지라 그만큼 혜택이 많고, 그런 혜택을 노린 외지인들이 베이징에 진출하려는 걸 좋지 않게 생각한다. 반대로 외지인들은 베이징이 수도라는 특권으로 다른 지역을 착취[5]한다고 생각한다.

2.4. 장쑤성 내부

워낙 면적이 넓어 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인 "성(省)"의 면적이나 인구가 일개 국가와 동급이다보니, 같은 성 안에서도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회하와 장강에 의해 생활권은 물론 문화권까지도 갈리는 장쑤성 북부, 중부, 남부 간의 갈등이다. 메이저급 도시가 장쑤성보다 적어서 덜 알려져 있을 뿐, 안후이성도 회하와 장강에 의해 갈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양상은 대동소이하다.

장쑤성은 성들 중에서는 면적이 넓기는커녕 오히려 좁은 축에 드는데도 불구하고 왜 가장 심할까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화북 문화권과 강남 문화권의 딱 사이에 끼어 있는데다, 황하와 장강 양대 강만은 못해도 나머지 중에서는 지리적으로 중요하기로 첫손에 꼽히는 회하(화이허)와, 크게는 한국의 시군 여러 개만큼의(...) 면적인 호수가 여럿 있어, 성 내에서도 회하 이북[6], 회하~장강 사이[7], 장강 이남 이렇게 큰 범주로는 물론이고, 그 안에서의 소지역 간에도 분절성이 제법 있는 점을 우선 들 수 있으며, 이 연장선상에서, 장쑤성은 삼국지 때의 지명으로 따지면 서주를 베이스로 하여 강남 지역이 +@되어 이루어져 있는 셈인데, 옛 서주와 이름부터가 같은 만큼 삼국지 및 그 이전의 진한시대에는 이 일대의 중심도시였던 쉬저우시(옛 팽성)로[8] 대변되는 북부지역이, 강남이 개발되면서 점점 비중이 낮아지고 밀려, 명청시대부터는 성의 대표성과 이름[9], 성도(성 수부 소재지), 경제ㆍ문화ㆍ관광 등 성 내 주요기능과 비중 등을 면적으로 따지면 장쑤성 내에서 상대적으로 좁은 장강 하류 유역에 죄다 뺏긴 채 소외되어 있다는 것으로 인한 불만을 들 수도 있겠다. 심지어 아래를 보면 같은 강남권(장강 하류)의 도시들끼리도 갈등이 있는데, 그 일대의 대표성을 어느 도시가 가질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2.4.1. 난징시 VS 쑤저우시 VS 우시시 VS 전장시

2.5. 쓰촨성(특히 청두시) VS 충칭시

충칭의 직할시 승격 이후 쓰촨성과의 미묘한 갈등이 존재한다. 쓰촨은 충칭의 독립을 배은망덕이라고 하고, 충칭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쓰촨 사람이라고 했을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식.

2.6. 위구르(신강) VS 한족

본래 위구르족은 중국의 한족들과는 달리 과거부터 언어와 종교, 인종 자체가 달랐던 민족이다. 위구르인 문서 참조.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중심으로 하는 위구르인들은 현재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다만 중국의 주장과는 다르게 오늘날 위구르인들의 반중 감정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의한 것이 아닌[10] 청말 중국 국민당 시절 이래 일방적인 한족과 동화정책에 대한 반감 및 오늘날 경제발전 혜택에서 정책적으로 소외되는 상황 때문이라 봐야 한다.

2.7. 티베트 VS 한족 ※

당나라때부터 서로 전쟁을 벌여서 사이가 나쁘다기 보다는... 과거 중국의 유목민 정복 왕조 중 원나라와 청나라가 티베트 불교를 띄워주었고, 중국인들이 극혐하는 몽골인들이 오늘날에도 티베트 불교를 믿기 때문에 한족 입장에서 얄미워하는 것이라 보면 이해가 빠르다. 티베트인이 호구 잡힌 오늘날에는 갖은 갈굼을 가해진다. 재밌는 점은 티베트와 중국은 원래 같은 시노티벳인으로 사촌 뻘이다. 마치 같은 일본어족으로 사촌 뻘인 일본인과 오키나와인의 대립과 비슷하다. 시노티벳인 중 티베트 고원에 남은 유목민은 티베트인이 되었으며, 황허 일대에 진출한 시노티벳인들은 장강 일대의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오스트로네시아어족, 타이카다이어족까지 몰아내거나 흡수하며 한족이 되었다.

2.8. 티베트 vs 위구르 ※

두 민족 모두 한족 위주의 중화인민공화국 치하에서 분리 독립주의적 성향이 강한 민족들이지만, 티베트-위구르 관계는 중세 당나라부터 지금까지 매우 감정이 좋지 않다. 위구르족이 달라이 라마 5세의 영향으로 준가르 칸국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 더욱 악화되어 서로 한족보다 더 척을 진 상태다. 티베트 위구르(+후이족) 간의 장회(藏回)충돌이 현재까지도 간간히 일어날 정도이며, 각 지역 지방 정부에서도 이를 말리는 척 하면서 뒤로는 가짜뉴스 살포 등의 수법으로 갈등을 은밀히 조장하기도 한다. 이 탓에, 똑같이 공산당의 탄압과 극심한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면서도[11] 두 민족의 연대 투쟁은 요원한 상태이다.

2.9. 티베트 vs 칭하이성후이족

칭하이성으로 이주한 후이족들이 마부팡 정권을 중심으로 티베트인들을 탄압한 역사가 있다. 칭하이성 기준으로는 후이족은 주로 도회지 중심으로 거주하고 티베트인들은 주로 농촌 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에 도농 갈등에도 해당된다. 후이족들이 티베트인을 괄시하는 이유는 한족과 마찬가지로 청나라 시절 만주족이 지원했던 티베트 불교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무슬림으로서의 종교 감정까지 더해져 오히려 일부 전통 티베트 불교를 믿기도 하는 한족보다 더 심한 감이 있다. 티베트인들도 후이족들이 선민 사상을 가지고 티베트인들을 차별하고 경제적 이권까지 침탈한다며 싫어한다.

2.10. 허난성 VS 그 외의 지역

개혁개방 초기 중국의 사회 분위기가 혼란스러우던 시절, 특히 허난 지역의 치안이 안좋아 허난사람에 대한 차별이 은연중에 존재한다. 특히 90년대 맨홀 뚜껑을 훔쳐 팔았다고 하여 "허난사람=맨홀 뚜껑 도둑"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혹시 그럴듯한 문헌적 근거를 보고 싶다면 한국에도 번역된 '독성기(讀城記)'를 참조할 것. 심지어 친중적인 위구르인이나 티벳인들조차 허난 사람은 경기가 일어날 정도로 싫어하며, 한족우월주의자들 조차 허난 사람을 중국의 수치로 취급한다.

2.11. 산둥성 VS 그 외의 지역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문화, 같은 지리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화남지방(예를들면 바로 아래 장쑤성, 상하이시 등)에 비해 뒤떨어지는 경제적 수준으로 중국 내에서의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특히 남존여비, 가부장적인 문화로 인해 가정폭력 사건의 상당수가 산둥성에서 발생하거나 산둥 남성이 가해자인 뉴스가 많아 "산둥 남자와는 결혼하면 절대 안된다" 같은 내용이 인터넷에서도 많이 보인다.

2.12. 둥베이 VS 그 외의 지역

2.13. 홍콩 vs 중국 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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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특별행정구로 말만 중국 소속인 사실 상 자치령이며 그때문에 본토와 대립이 심하다. 이것은 대만처럼 중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놓고 보면 이 자체가 지역감정이며 특히 북중국을 싫어하고 같은 광둥계라도 본토 광둥성에서 오는 사람들을 냄새나는 거지 떼 취급한다. 자신들이 홍콩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중국인과 같은 취급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홍콩에서는 중국산 저질 식품들이나 짝퉁 등 소위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불신이 강하며 홍콩 마트에서는 중국의 식자재 즉 원재료만 수입되고 제조는 다 홍콩 내의 공장에서 한다. 가내수공업 형식의 식품공장들이 아직 구룡반도에 많이 있기 때문. 중국 산 가공식품에 대한 불신이 강해 홍콩 마트에 중국산 가공식품은 아예 수입되지 않고 차라리 한국산 식품들을 선호한다.

2.14. 홍콩 섬 vs 구룡반도, 신계

홍콩도 홍콩 섬, 구룡반도+ 신계로 지역구분이 있으며 이들은 서로 지역감정이 있다. 특히 과거에는 MTR과 홍함 해저터널이 개통되기 전에 페리만 다녔기 때문에 왕래도 힘들었다.

홍콩 섬 쪽은 옛부터 인프라가 집중되어 가장 혜택을 많이 보고, 가장 국제화 된 지역이라서 진짜 홍콩[12]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구룡반도 주민들을 툭하면 못사는 중국 거지떼로 무시했고 반면 구룡반도 주민들은 영국령의 후광으로 잘 사는 홍콩 섬 사람들을 돼지라고 비하하곤 했다. MTR해저터널 개통으로 크로스 하버가 쉬워지고 홍콩이 선진국에 진입해 지역격차가 좁아진 현재는 이렇지는 않지만 여전히 섬 원주민과 광동의 중국계 이주민 사이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한국인의 눈에는 그놈이 그놈 같지만 현지인들은 둘을 헷갈리면 화낸다!

실제로도 홍콩 섬구룡반도는 가 보면 느낌이 확 다르다. 최근에는 구룡반도도 동구룡과 서구룡의 구별이 생기고 있다. 서구룡에 홍콩 국제금융센터(ICC)가 올라가고 가뜩이나 번화한 침사추이 같은 관광지가 있는지라 활기차고 사람들도 때깔이 고운 반면 동구룡은 과거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의 소재지로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고 동네도 대개 낙후되어 있어 우중충하다.[13]

2.15. 홍콩 VS 마카오


[1] 중공중앙의 공식 지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인민들이 단합하여 반정부 봉기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고자 지방 정부 차원에서 지역감정을 은근슬쩍 부추기는 측면도 있으며, 그것만큼은 중앙 정부에서도 묵인한다.[2] 그리고 사용하는 방언이 달라서 서로 자기네 방언으로 얘기했을 때 의사소통이 안 되기도 하다. 중국어 항목 참고. 화북은 대체적으로 보통화로 대표되는 북방방언으로 통일되어 있는데 반해, 남부는 북방방언을 제외한 많은 방언군으로 갈라져 있어서 통역이 필요할 정도. 지도 참조. 물론 여기서도 쓰촨, 윈난성은 오히려 표준중국어와 같은 계열인 북방방언(만다린)을 사용한다.[3] 중국의 서부 지역은 서북(西北), 서남(西南)으로 이뤄져있으며, 크게 내륙지역까지 포괄한다면 화북, 화중지역도 포함된다. "화서(华西)"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4] 애초에 그 2000년 봉건제에 작별을 고하고 근대 국민국가를 세운 사람도 광동 출신이다.[5] 이를 흡혈이라고 표현한다. 베이징+흡혈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아주 많이 나온다.[6] 이쪽은 넓게 잡아도 강남이라고는 하기는 어렵고, 특히 회하 유역에서도 북쪽으로 꽤 떨어진 최북단쯤 되면 빼박 중원(=화북) 문화권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안후이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한고조가 바로 이 장쑤성의 최북단 지역 출신이고, 위무제 조조가 그 옆동네이자 마찬가지로 안후이성의 최북단 지역인 現 보저우시 출신이다.[7] 이쪽은 넓은 의미의 강남에는 포함된다. 한편 조금 다른 표현으로 강회(江淮)라고 하면 좁게는 이 회하~장강 사이 지역만을 의미한다. 안후이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8] 삼국지에 나오는 서주의 주요도시 하비(下邳)성도 쉬저우와 멀리 떨어져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피저우(비주 邳州: 같은 邳자가 그대로 이어져오는 것이 보인다)시라고 쉬저우 시 예하의 현급시라 대강 쉬저우 시내 주변지역의 읍내(?)나 위성도시 정도로 보면 이해가 쉽다.[9] 장(강:江)은 난징을, 쑤(소:苏(=蘇)는 쑤저우를 의미한다. 안후이성도 마찬가지라서, 안(安)은 간발의 차이로 장강 이북이지만 장강변에 딱 붙어 있는 안칭시에서, 후이(휘:徽)는 성 최남단으로서 그냥 장강 이남인 정도가 아니라 직선거리로 100km 이상 떨어져 있는 황산시(구 후이저우=휘주시)에서 따왔다.[10] 애초에 튀르크계 무슬림 대다수가 세속 성향이다.[11] 티베트족과 위구르족은 한족에게 대낮에 길거리에서 맞아죽어도 한족들에게는 아무런 동정도 받지 못하고, 공안에서도 범인을 잡으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으며 간혹 보여주기 식으로 범인을 처벌한다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거나 몇 달 만에 가석방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12] 홍콩 섬과 구룡반도 일부 남부는 완전한 영국 정식 영토였지만, 신계 지역 및 주변 도서지역은 조차지였다.[13] 홍콩 영화 좀 많이 봤다 하면 알 그 구룡성채가 바로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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