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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왕-무왕 단종/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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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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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국가
2.1. 대조선국2.2. 대두국2.3. 태노국(=메시카)2.4. 대원(=몽골)2.5. 북명2.6. 남명2.7. 대하2.8. 곡주(유럽)2.9. 포르투갈2.10. 영국2.11. 프랑스 왕국2.12. 돌궐(=오스만 제국)2.13. 로마(=베네치아 공화국)2.14. 중화국(=러시아)
3. 사건
3.1. 유술양란 (1453, 1454년)3.2. 을해호란 (1455년)3.3. 탈문의 변 (1457년)3.4. 임진동정 (1472년)3.5. 을사대전 (1484~1485년)3.6. 삼제전쟁 (1501년)3.7. 정묘훈도 (1507년)3.8. 해금령 (1588년, 개국 197년)3.9. 2차 임진동정 (1592년)3.10. 오색정난 (1616~1618년)3.11. 목야대전 (1800년 전후로 추정)
4. 용어
4.1. 나노머신4.2. 비의4.3. 영부자4.4. 공관삼학4.5. 참적검4.6. 천명퇴4.7. 고조삼책4.8. 신사학4.9. 격몽요결4.10. 세종 명황제4.11. 훈도4.12. 흑암요새

2. 국가

2.1. 대조선국

진유하가 칭제건원하며 내세운 국명으로 연호는 개국. 유하의 부국강병책의 성공으로 을해호란 등의 방어전에서 군사적 효과를 거두는 부분까지만 해도 평범한 대체역사소설 속의 강대한 조선이 되는가 싶었는데, 임진동정과 을사대전을 기점으로 지나친 부국강병책과 해외진출에 힘입어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유하가 '과거 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폐쇄적인 면모로 인해 망했다'라는 고정관념 비슷한 것을 품고 있었기에 대외진출과 국방정책에 적극적으로 힘을 쓴 결과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유하는 조선이 기술 중시적 면모와 군사 중시적 면모가 부족하여 제국주의 열강(일본)에게 멸망당했다고 생각했다. 아예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유하는 조선을 기술 중시적 면모와 군사 중시적 면모가 가득한 나라로 만들려고 한 것인데... 문제는 이 사상을[1] 사대부들에게 주입시켜 보니 제국주의와 구분이 안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하는 본인이 조선 제국주의 사상의 제창자인 만큼, 조선 제국주의에 브레이크를 걸 새로운 사상이나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못했다. 그 상태로 수 세대가 지나다 보니 조선은 유교 입국에서 완전한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한 것이다.

국내의 다른 유명 대체역사소설의 경우,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는 제국주의가 이미 유행하던 시기에 후다닥 이에 편승해서 패권을 이룬 뒤 반제국주의적 스탠스를 취했고,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는 불로불사 주인공이 평생 막후에서 초강대국의 권력을 휘둘러 제국주의를 제한하였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는 제국주의가 한물 간 시기에 제국주의의 민낯을 폭로하고 여론전을 펼쳐 민주주의를 이루어 시대착오적인 제국주의를 제어했고, 고종, 군밤의 왕은 제국주의의 시대에 평화주의 기조를 전파시켜 선한 영향력으로 제국주의를 밀어냈다. 하지만 유하의 조선은 "제국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부터 만들어내어 중화사상을 사대부 머릿속에서 치워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제국주의를 만들고 퍼트리기만 하는 데 일생의 시간이 소모되어 조선 제국주의에 브레이크를 걸 시간이 없었다.

그리하여 천조질서와 중화사상을 부정하고, 신천명이라 하여 국가 간 동등한 관계를 주창한다지만, 야만족은 국가가 아닌 결국 모든 국가들을 공평하게 군대로 압박하여 돈을 우려내는 제국주의의 모습을 제대로 보이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는 합리성과 타국에 대한 무지, 선민의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뭔가 흉악한 짓을 벌일 때마다 고조(유하)의 도를 내세운다. 평화를 위장한 기습공격,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점령지 약탈, 포함외교, 계획적인 방화, 백린탄 사용, 생화학 테러, 부비트랩, 포로를 총알받이나 폭탄 테러 도구로 사용, 국가 단위의 노예 무역, 전쟁배상금 일시불 납부 협박, 시체로 염초밭 조성, 노예 세뇌[2], 세종 명황제의 자비로운 노예 번식 등. 문제는 이게 몇몇 과격파들이 막나가서 조선에서도 지탄받을 짓을 일으키는 게 아니고 조선의 법과 매뉴얼에 정해진 규칙이다. 그래서 이순신처럼 원리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장수일수록 평화를 위장하고는 기습하여 적장을 베거나, 화차로 백린탄을 쏴제끼거나, 최대한 적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잡아 노예로 팔아먹는 짓을 태연하게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행한다. 오히려 적당히 부패하고 뇌물을 받는 조선 관리가 타국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편할 정도이다. 왜냐하면 부패한 관리는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 국익(=매뉴얼에 적힌 제국주의 짓거리들)을 포기할 수도 있으니까. 덕분에 고조의 이름은 타국에서는 저주와 증오의 대명사 정도로 취급된다. 스스로를 군자국, 예의지방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보기엔 돈에 미쳐 방화와 약탈과 노예무역을 일삼는 악마들이며 수틀리면 군함과 대포를 들이대는 깡패들이다.

기괴한 점은, 보통 제국주의 국가가 되면서 황제국을 칭하면 "대한제국"이나 "고려"와 같이 황제를 칭한다는 의미를 국호에다 넣기 위해 국호를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 소설에서는 칭제건원을 했으면서도 국호를 "조선"으로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왕조가 바뀌지 않아 이씨로 유지되었으니 국호를 유지하는 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작중에서 사대부들이 국호를 황제국에 걸맞게 바꾸고 싶어하는 것은 언급이 되긴 했는데, 주인공이 선조의 유훈을 따른다는 명목으로 "조선"이라는 국호를 유지한다. 그래서 원래 역사에서는 문약했다고 평가받는 조선이, 이 소설에는 전혀 문약하지 않은 행보를 보이면서 아이러니함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조선의 독"이면 효과가 매우 센 독이라고 평가받거나, "조선의 불"이라고 하면 쉽게 꺼지지 않는 화염이라고 평가받는 식이다.

2.2. 대두국

정민영이 타이완 섬에 세운 나라. 원 역사의 다두 왕국에서 따왔다. 정민영이 강화도로 친림한 진유하에게 상단을 이끌고 찾아와 칭신하면서 조선의 제일 번국이 되었다. 국기는 타이완의 청천백일만지홍기에 조선의 삼태극 문양을 더했다.

해운 무역과 해적질으로 먹고사는 해양 국가로, 조선 해군과 비견되는 강력한 해군력과 건함 기술 및 항해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토가 작고 인구 수가 적다. 국가 대사는 각 구역을 관장하는 일곱 선단장들의 합의를 따르며 선단장들은 해당 구역에서는 왕과 같은 위세를 누린다. 모든 선단장을 지배하는 총제독이 대두국왕을 역임하나 선단장들의 권한이 워낙 강하기에 중앙집권이 약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잔인하고 무도한 해적놈들이 모여 만든 나라다 보니 소프트파워가 바닥이라는 것도 큰 약점 중 하나이다.

유하와 민영이 친한 친구이자 동료이기도 하고, 결혼 동맹을 맺은데다 미래지식을 습득했다는 공통점 때문에 두 왕실 간의 사이는 매우 가깝다. 염초 무역 항로 유지에 대두국의 존재는 대체 불가능하며 대두국이 세계 각지에 운영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에 조선이 노예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대신 설탕과 커피, 고무 등의 농작물을 받는 등, 조선과 대두는 서로 떼놓을 수 없는 혈맹이다. 2부 시점에서도 조선의 번국으로서 활동 중이다. 국익에 도움이 되기에, 그만큼 강대한 나라가 없기에 조선에 신속하고 있는 블랙워그레이몬 같은 반골집단. 조선이 대두의 반란을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대두 역시 조선의 정벌을 걱정하고 있기에 2부 결말에서는 조선과의 동군연합을 서서히 추진하고 있다.

여담으로 민영이 장난삼아 외치던 타이완 넘버원이 액운을 쫓는 길한 주문으로 전해져 오며, 민영이 남긴 영은 목걸이는 대두의 가장 중요한 신물로 여겨져 대대로 태자에게 물려주고 있다. 2부 외전에서 밝혀진 바로는 왕국의 이름을 버리고 조선에 합병되어 대만제상협동회의 이름을 쓰고 있다.

2.3. 태노국(=메시카)

조선의 두 번째 혈맹. 구대륙의 신대륙 진출에 제동을 걸고자 유하와 민영이 합작하여 아메리카 대륙까지 항해한 끝에 아즈텍 제국과 교류에 성공한다. 아메리카 대륙 자체는 조선 기준으로 동쪽에 있기에 동양주라는 명칭이 붙었다.

조선은 테노치티틀란에서 따와 태노국 또는 원어를 살려 메시카라 부르며, 아즈텍은 조선을 테파틀라니아칸(의사의 땅)이라고 부른다. 조선은 종두법, 철기, 우마, 농업, 전투기술 등을 전수하고, 대신 담배, 감자, 고구마, 옥수수, 고추, 카카오, 물토끼, 큰수달 등의 식문화를 받아왔다. 조선의 유학에 감명받은 몬테수마 2세가 숙부 아우이초이틀을 제거하는데 조선이 한 몫 거들어 주면 식인 풍습을 근절하겠다는 확답을 받고 쿠데타를 일으켜 틀라토아니 자리에 오른다. 식인은 포기했지만 인신공양은 포기하지 못한 아즈텍은 태양신 오메테오틀 교리를 내세워 도시째로 불태우는 번제를 통해 제물을 바친다.

양국은 인적 문화적 교류를 꾸준히 진행 중이며 유하 입장에서는 유일하게 자신을 약술왕으로 불러주는 국가이기에 국교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조선을 의사의 땅이라 칭하고 조선왕을 약술왕이라 부르는 이유가 전염병을 적극적으로 치유해 주는 등의 행동 덕분인데, 그 전염병은 조선인들이 가지고 온 것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선의 화기 및 조함 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 조선의 대외전쟁 때 주로 용병으로 참전한다. 원 역사에서 포로에 환장하던 것처럼 유럽인들을 붙잡아 각종 기술을 빼내려 하기에 유럽에서는 서쪽의 인간 사냥꾼들이라며 두려워한다. 보통 대체역사소설에서 아즈텍이라 하면 막장 식인 국가로 응징당하는데 여기서는 우호세력으로 등장한다.

2부 말미에는 조선, 중화 러시아와 함께 세계의 3화 중 하나로 서로를 인정할 만큼 발전했다. 2부 외전에서는 석유의 보고인 북미 텍사스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것 때문에 결국 조선에게 공격당해 거대한 영토와 배상금을 빼앗기고 굴복했다. 케찰코아틀 신도들이 목숨을 버려가며 개발에 투자한 덕에 조선의 뒤를 이어 자체적으로 비행기 개발에 성공했다고 한다.

2.4. 대원(=몽골)

다얀 칸이 조선의 도움을 받아 몽골의 대칸으로 즉위하고 우호관계를 이어가던 중 을사대전을 계기로 동맹을 맺고 중원을 침공해 북경의 항복을 받아내고 북명을 멸망시킨다. 그리고 양국은 북원이 북명을 약탈하여 번 은 300만 냥을 조선에 일시불로 지불하는 대신 북경을 비롯한 중원을 넘겨받는 내용의 거래를 한다. 원래 유하는 성화제를 생포하고 국체를 보전하는 대신 전쟁배상금을 왕창 뜯어낼 계획이었지만 성화제가 도망치자 선택한 제2안이다.

조선은 고토인 요동과 함께 막대한 돈을 얻고 과거 고려를 지배했던 몽골에 친히 재조지은을 베풀어 주었다며 좋아하고 몽골은 막대한 비용이 들었지만 중원을 얻으면서 해당 거래에 쌍방 만족한다. 조선과 대원은 형제관계와 함께 결혼동맹을 맺는다. 그후 조선이 바다로 진출하는 동안 북원은 몽골 제국의 부활을 천명하며 서쪽으로 진출해 페르시아에서 중국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는데 다얀 칸 사후 아들들 간의 제위 계승 분쟁이 터지고 장남이 서쪽으로 원정을 간 사이 차남이 조선의 지원을 받아 대칸으로 즉위하자 이에 반발한 장남이 타슈켄트 칸국을 건설하여 제국이 동서로 분열된다. 타슈켄트 칸국도 그렇고, 남명도 그렇고 서쪽과 남쪽이 적이라 일단은 조선과 동맹관계이지만 알탄 칸 시절에 만주의 지배권을 두고 크게 붙을 뻔하는 등 서로가 서로를 방심할 수 없는 위험한 이웃으로 여기고 있다.

원나라의 교훈을 반영해 숲과 도시를 불태우며 중원에 초목지대를 생산 중이며 막대한 수의 기병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2부의 배경이 17세기 초반인데 내부 생활상은 12세기 수준이라는 서술을 보면 유목 제국의 한계(기술 발전의 정체)를 드러내는 중이며 조선과의 관계가 계속해서 악화되어 남명과 가까워지는 움직임을 보이자 조선은 몽골과의 전쟁을 계획하였다. 남명 및 일본과 대 조선 전쟁을 준비하다 결국 선제 공격을 받은 끝에 북경과 카라코룸을 잃고 멸망하고 만다.

2.5. 북명

탈문의 변을 계기로 남북으로 분열한 중국 중 정통제가 지배하는 명국. 북명이라는 명칭은 타국에서 부르는 말이지 자칭이 아니다.

조선 사신단이 복벽에 조력하고 각종 특산물을 바치면서 조선과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으나 북명 사신이 지뢰 폭발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두 국가 사이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조선이 북명의 정벌군을 막아내 야전 역량을 소멸시키고 칭제건원 뒤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점령하면서 멸망한다. 북명 황제는 북경 점령 직전에 황태자와 도망가는 데 성공했으나, 대하국에 붙잡혀 마약을 잔뜩 먹여져 선전선동 용도로 대하국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최후를 맞는다.

2.6. 남명

탈문의 변 이후 우겸이 경태제의 사촌 회남왕 주기전을 황제로 옹립하여 세운 명국. 남명이라는 명칭 역시 타국에서 부르는 말이지 자칭이 아니며, 당연히 북명과는 생사대적 사이이다.

을사대전에서 북명과 전쟁 중인 조선의 등뒤를 치려고 하다가 조선-대두 연합함대에게 반격받아 수군을 잃는다. 유하 사후 오우치와 작당하여 전쟁을 준비하다 딱 걸려서 조선-북원-대두의 총공세를 받은 끝에 남경이 불살라지는 수모를 겪는다. 일단 조선을 동등한 황제국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조선을 최대한 견제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조선과 대두국 사이를 이간질하려고도 했으나 실패한 상태. 몽골과 함께 조선을 공격할 계획을 짰으나 대하, 대월, 왜구까지 끌어들인 조선의 침공을 못 이겨 결국 국토를 잃고 내륙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2부 외전 시점에서는 한족이라는 이름을 잃고 주초, 즉 주씨가 세운 초나라라 하여 변방 오랑캐 취급당하며, 후술할 중화 러시아가 그 이름을 차지한다.

2.7. 대하

명나라가 북명과 남명으로 갈리고 북명의 황제가 한창 아편에 절어 있었을 때 1482년에 사이비 도사인 조운산이 사천성과 운남성을 중심으로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과 함께 봉기하여 세운 나라. 조운산 치세엔 원통도라 불리었으나, 정신이 나가 천자를 넘어 신의 대리인을 칭하던 조운산 사후 2인자이던 정지문이 황제를 자칭하며 대하국을 건국한다. 물론 대하국 내에서만 불리는 명칭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머리에 검은 띠를 둘렀다 하여 흑대적이라고 불린다. 북명에서는 도적놈들이라며 토벌하려 했지만 신정국가 특유의 충성심과 앵속분 복용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광신도 병사들 덕분에 도리어 북명의 토벌군이 패배하고 만다. 북명 멸망 후에도 험한 지형 덕분에 몽골과 남명 사이에 끼어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주요 수입은 앵속분(아편)+비단+소금. 대놓고 마약을 유통하는 나라이기에 주변국과 사이가 안 좋다.

2.8. 곡주(유럽)

조선에서 유럽을 이르는 말. 유럽인들을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한 도적놈(또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곡적(髷賊)' 또는 '곡인(髷人)'이라 부르고, 곡적놈들이 사는 지방이니 곡주로 대충 묶어서 부르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다른 대륙으로 취급되는 게 아니라, 아시아 대륙에 붙은 곡주 반도라고 조금 큰 반도로 취급당한다. 처음에는 조선에서만 유럽을 반도 취급했으나, 조선이 전세계에 강대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중화 러시아 같은 조선의 우방은 물론이고 남명, 영국 같은 조선의 적국에서도 유럽을 반도 취급하게 되었다. 메시카에서는 테믹티아니아칸(무뢰한의 땅)이라 부른다.

조선인들이 만날 수 있는 유럽인이라고는 주로 군인, 탐험가, 선원 등으로 대부분 물리적 충돌 끝에 죽거나 노예로 잡혀서 끌려온 이들이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유럽인들을 대개 더러운 거지 오랑캐 도적놈 정도로 취급한다.

조선과 유럽인의 첫 충돌부터가 바스쿠 다 가마와 조선&대두국 선단이었는데, 조선과 대두국 사람들에겐 쓰레기와 같은 잡동사니를 내놓고 금과 은을 달라는 뻔뻔한 짓을 한다. 일단 조선 측에서 하사품을 준다며 조선답지 않게 온건하게 나갔으나, 바스쿠는 욕심에 눈이 멀어 조선과 대두국 선단을 밤에 기습하려 한다. 물론 그런 기습 방법을 잘 알고 있던 조선 측에서 거짓 항복을 가장해 보낸 예물로 폭탄을 보내 다스쿠 다 가마를 기함째 폭사시키고 지휘관 부재로 우왕좌왕하던 포르투갈 선단 대다수를 나포하였는데, 별다른 귀금속 같은 게 없고 배 크기도 초라했던지라 이후 조선과 대두국 사람들의 유럽인에 대한 인식이 후술할 거지 해적떼가 되는 계기가 된다. 즉 유럽인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박힌 건 항로 개척을 한답시고 해적질을 하던 유럽인들이 스스로 불러온 재앙.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사람이면 고향에서 살지 미쳤다고 바다로 가지 않으니, 머나먼 바닷길을 넘어온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목숨보다 돈이 우선인 탐욕은 있고 돈은 없는 이들일 수밖에 없다. 원 역사에서도 유럽 상선 겸 해적선을 본 비유럽 국가들은 '저놈들 해적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진짜였다.

그럼에도 노비 출신으로 시작해서 해군 관직까지 오른 끝에 순국한 마갈랑과 같은 경우도 있으며, 비의를 깊이 익힌 역대 황제들은 내오란, 마기아, 갈내리, 이새익 등 원 역사에서 이름난 명사들을 매수하거나 혹은 납치해서 꾸준히 조선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유럽인들 역시 후술할 베네치아와 러시아를 빼면 조선을 가리켜 돈에 미쳐 온갖 흉악한 짓을 일삼는 적그리스도라며 증오하지만 그 조선산 무기들에 대해서는 위력을 인정해 조선에서 도태된 무기들을 사들이거나, 밀수하거나, 아니면 몰래 복제해서 쓰고 있다. 미래지식을 아는 조선과 대두의 대유럽 정책은 꾸준한 탄압으로, 해외진출을 최대한 틀어막아 국가 역량을 줄이기 위해 언제나 고심 중이다. 비의를 모르는 국내인들은 동아시아 주변국이 아닌 먼 유럽에 그토록 신경 쓰는 이유에 항상 의문을 품는다.

2부 외전 시점에는 이등신민 또는 노예민족 정도로 취급당하며, 본인들도 그 평가에 저항하지 못한다. 한편 조선 문화를 받아들인 아프리카의 왕국에서는 갓 쓴 흑인 선비들이 곡주 노예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곡적은 맞아야 일을 한다'를 외치는 아스트랄한 광경도 연출되었다.

2.9. 포르투갈

조선을 잘못 건드렸다가 박살나다 못해 나라가 완전히 망해버린 개변된 역사의 최대 피해자. 인도 항로 개쳑을 위해 보낸 동방 원정대가 대두국 함대에 전멸당하고 아프리카의 거점들이 털린 것을 시작으로,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원정대가 캘리컷에서 조선군 함대에게 박살 나고 급기야 베네치아의 협잡질에 넘어간 조선군이 오스만군과의 공조로 수도 리스본에 쳐들어와 도시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노비로 잡아가는 정묘훈도(정묘년의 훈계)를 일으킨다. 결국 아조레스, 마데이라를 비롯해 모든 식민지를 떼어주고 잡혀간 귀족들의 몸값으로 80만 크루자드를 일시불로 지불하는 굴욕적인 내용의 조약을 맺었다.

이 피해를 극복하지 못해 나라가 무너졌고 결국 스페인에게 합병당했다. 원 역사에서 "행운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마누엘 1세는 "불행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스페인의 감옥에 유폐당해 옥사했다. 폐허가 된 리스본은 황제 이현의 부인 레일라가 리스보아 공작부인이라는 날조된 명분으로 조선이 차지했다. 협정에는 리스본만 언급되어 있었으나 조선은 '당연히' 그 주변 지역도 도시에 딸려오는 것으로 해석하여 넓은 영지에 자유롭게 군대를 밀어넣었고 포르투갈은 이에 반박하지 못했다.

2.10. 영국

비의에서 원 역사의 대영제국의 위엄을 경고했기에 눈여겨 보고 있으며, 교역 손실이 나면 아편을 풀 마약장수 놈들이라며 동아시아의 특산품인 차도 팔지 않고 경계한다. 인도 지배는커녕 아직 식민지 하나 건설하지 못한 영국에서는 억울한 누명. 이순신의 곡주 정벌로 런던이 불타고 제임스 왕은 포로로 잡혀 끌려갔으며 7왕국 시절로 회귀했다. 결국 영국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 찰스 왕을 갈아치웠는데, 그러자 러시아와 조선이 유학적 이유로 2차 침공을 단행하여 정벌당한다. 웨일즈와 잉글랜드는 서곡도라는 이름으로 조선에게 병합되고, 스코틀랜드는 러시아가 차지한다.

2.11. 프랑스 왕국

비의를 가진 조선이 막대한 돈으로 곡주의 인재들을 모조리 스카우트해가는 바람에 프랑수아 1세가 꿩 대신 닭으로 마르틴 루터를 자국에 초빙했고 그 영향으로 가톨릭을 버리고 개신교 국가가 된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 제국 + 스페인과는 원래부터 숙적이었지만 여기에 추가로 가톨릭 vs 개신교라는 종교 문제까지 엮이면서 합스부르크 가문과 더 치열하게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

일단 같은 개신교 국가인 영국과 함께 조선의 도움을 받아 합스부르크 가문과 전쟁을 치르고는 있지만 곡주 국가답게 조선을 적그리스도로 여기고 있다. 한편으로는 뒤로 영국과 짜고 반조선 세계 동맹을 결성해 조선을 정벌한 후 아메리카를 영국과 나눠먹을 궁리를 했으나 조선 사절단에 낚여 서로 먼저 배신하려 했다고 조선에 실토해버렸다. 조선에 낚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길길이 날뛰어 겉으로 존재했던 조선과의 협력 관계까지 내던지고 세계 동맹에 가담하나 곡주 정벌을 위해 달려온 이순신에게 영국과 함께 나란히 털린다.

아예 나라가 망해버린 영국과 달리 그나마 나라 꼴은 유지했지만 조선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프랑스에서의 목재 채벌권을 넘기는 등 '아시아 국가들도 유럽 착취에 뛰어들었다'라는 작중 해설에 사용되는 신세다. 대전쟁 와중에 이순신이 지휘했다지만 1개 함대에 불과한 전력이 프랑스와 영국을 동시에 박살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 아시아와 유럽의 격차는 19세기 유럽과 아시아의 격차 수준으로 벌어진 상태였다.

2.12. 돌궐(=오스만 제국)

조광조의 항해 당시 아라비아를 통해 온 조선과 처음으로 접촉하는데 공통의 적인 포르투갈을 두고 조선과 동맹을 맺은 후 정묘훈도에 일조한다. 앞으로 2~300년 동안은 전성기를 유지하니 그때까지는 친하게 지내라는 유하의 비의에 따라 조선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동쪽에서 계속 쳐들어오는 타슈켄트 칸국을 조선이 지원한다[3]는 의심과 더불어 결정적으로 조선 함대가 알렉산드리아를 불태우고 역병을 퍼트린 '알렉산드리아의 역병' 사건을 계기로 국교가 끊어진다.

그 후 조선과 적대관계가 되어 잠깐 가톨릭과 손을 잡고 세계 동맹에 가담한다. 그러나 이집트에서의 반란과 더불어 조선과 손을 잡은 에티오피아가 오스만령 이집트를 침공하고, 북으로는 조선을 도와 참전을 선언한 중화 러시아가 흑해 쪽에서 공격하고, 서쪽으로는 이순신이 지중해를 통해 해군으로 수도인 이스탄불을 공격하고, 그 와중에 내분으로 술탄이 암살당하면서[4]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가 결국 중화 러시아의 조공국이 되는 신세가 된다.

2.13. 로마(=베네치아 공화국)

조선은 처음에는 무왕국(왕이 없는 나라)라고 부르다가 원어를 살려 베네타라고 부른다. 열조 치세에 조광조와 변오천이 포르투갈 원정대를 박살 내고 테르나테를 쑥대밭으로 만들 당시 판로 개척을 위해 테르나테에 온 니콜로 브라치올라니가 그 광경을 보고 잽싸게 조선 편에 붙었다. 향료 무역 라이벌 포르투갈을 엿먹이기 위해 내렸던 니콜로의 선택은 이후 베네치아의 신의 한 수가 되었고 초대박을 터트린 니콜로는 훗날 10인 위원회의 공석으로 남아 모든 도제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순간의 선견지명으로 얻은 파트너가 라이벌을 패주다 못해 아예 없애버려주고 조국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 주었으니.

향료를 비롯해 비단, 도자기 등 조선에게 산 각종 아시아산 물품을 곡주에 독점해서 팔며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다. 주특기는 이간질과 독살이며 거기에는 조선의 발달한 독약이 한몫하고 있다. 다른 곡주 국가들에서는 돈에 눈이 멀어 적그리스도 편에 붙은 배신자라고 이를 갈고 있지만 악마한테도 영혼을 팔아넘긴다는 이미지로 찍혀버린 베네치아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조선의 위세를 열심히 빌리고 있다. 반면 조선에서는 이미지가 바닥을 뚫다 못해 나락인 곡주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예의를 아는 나라라고 해서 제일 이미지가 좋다.

2부에서는 반조선 동맹에 가담한 서로마(=신성 로마 제국)와 동로마(=오스만 제국)한테 두들겨 맞아 세력이 잠시 위축됐지만 오스만과의 전쟁에 국력을 소모하고 점차 쇠락해갔던 원 역사에 비하면 훨씬 여건이 좋다. 조선의 도움을 받아 지중해를 제패하고 고대 로마(정확하게는 제정 수립 이전 로마 공화국)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꿈꾸고 있다. 그 첫 시작으로 조선에게서 로마라고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사실 조선에게 있어서 로마란 서로마고 동로마고 다 때려부숴야 할 놈들(...)에 불과한데 왜 굳이 그 이름을 자청하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선심 쓰듯이 쿨하게 인정해줬다. 로마 공화국으로의 회귀를 주장하여 자신들을 파문한 가톨릭을 기꺼이 포기하고 올림포스 12신을 다시 모시기 시작한다.

2.14. 중화국(=러시아)

시황제 표도르의 급진적인 개혁으로 인해서 중화 러시아라는 혼종이 탄생해버렸다. 초기에는 단순히 조선을 롤모델로 러시아를 개혁한다는 정도였는데, 주인공이 러시아에 왔을 때에는 표도르 2세가 자신을 '중화 천자 시황제 표도르'라고 칭하면서 '중화 제국'이 될 것을 선언한 상태까지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단순히 조선산 무기 수입을 넘어 조선을 뛰어넘는 수준의 유교, 예학, 중화 사상을 도입하면서 이로 인한 엄청난 사회 변혁이 일어났다. 의복도 고대 중국식에다 거대한 구정을 만들고 밀 대신 쌀을 재배하는 등 고대 중국의 제도라면 모조리 가져오는 중. 그런데 원래 농경 사회를 기반으로 절대다수의 백성을 통치하기 위한 학문인 유학이 러시아의 뒤처진 농노제 등을 기묘하게 보완해주면서 나라 사정이 엄청나게 잘 풀리고 있다. 기묘한 사상과 사회 발전상 때문에 등장할 때마다 독자들을 뒤집어놓는 2부의 최고 뜨거운 감자. 독자들에게는 개그로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달리, 작중 등장인물들은 중화 러시아를 엄청 경계하는[5] 것도 포인트.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지기스문트를 사로잡고는 주인공이 예상한 삼궤구고두례의 수준을 넘어서 함벽여츤[6]으로 항복을 받아내버린다. 곡주 국가들은 "조선 독에 의해 나라 전체가 돌아버렸다"고 또라이 취급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괴상한데, 중화 러시아에서는 중화사상, 동방 정교회, 유교, 제국주의가 모두 정부에서 지원하는 주류 사상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굉장히 이질적인 사상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부 외전에서는 사상과 종교가 더욱 이상해져서, 러시아 정교회가 천자를 삼위일체 위격에 집어넣어 사위일체 교리를 완성한다. 성부, 성자, 성령과 동격이 된 천자의 위엄은 더욱 커졌지만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한 이단 종교가 되어버렸으며, 이후 조선은 반은 귀신이요 반은 사람인 반인반귀를 신봉하는 사교라고 열심히 비난한다.

조선에서는 떨떠름해하면서도 조선의 문물을 본받으려는 자세를 높게 쳐 곡중화, 즉 유럽식 중화라고 부르다가 공식적으로 중화국이라고 불러주고 있다. 남명은 대놓고 초적(초나라 오랑캐)이라 취급하니 세상에 유일한 중화로 인정한 것. 조선에서는 곡주 안에서는 예의를 지키는 지방인 로마(베네치아)와 더불어 제일 괜찮은 나라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러시아 사람들도 타타르 야만인 취급하는 유럽인들보다는 진정한 중화라고 인정해 주는 조선 쪽에 호감을 더 표하고 있다.

2부 결말에서는 오색정난에서 승전국이 되어 유럽 대부분을 영향권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중화에 진심이 되어 주변국에게 스웨덴 왕이니 돌궐 선우(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말한다) 등의 인장을 보내어 분봉했고 심지어 네덜란드 왕을 분봉하는 자리에서는 우크라이나 흑토의 논에서 겨우 키운 벼를 통해 얻은 쌀을 조공 답례품 명목으로 선물로 주기도 했다. 당연히 받는 쪽에선 저놈들이 미쳤구나 싶을 뿐. 화룡점정으로 분봉식에서 고대 중화의 문물만을 무조건 따라하지 않고 조선의 고조(유하)의 뜻을 이어받아 일신우일신의 예를 따라 코사크 전사들이 코사크 댄스 팔일무를 길고 느린 가락으로 춘다. 안그래도 다리가 튼튼해야 출 수 있는 코사크 댄스인데, 느린 음악에 맞춰 코사크 댄스를 추려면 다리 힘이 엄청 튼튼한 정예 코사크 전사들이 아니면 출 수 없다고 한다(...).

2부 외전에서는 한(漢)이라는 명칭은 중화 러시아가 차지하여 러시아인은 한족, 러시아어는 한어라고 일컬어진다. 조선 황제들이 비의를 악용해 전노급 전함으로 건함경쟁을 걸어 막대한 재원을 낭비시킨 뒤 진짜 드레드노트급을 등장시켜 기껏 건조한 전함들을 한순간에 폐물로 만들어버리는 등 다양한 견제를 당했고, 그 이후에도 대립하던 끝에 결국 세계에 마지막 남은 양대 초강대국이 서로에게 선전포고를 걸고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전면전을 준비한다. 선전선동을 사랑하는 조선답게 중화 러시아를 곽거병의 후예니 진정한 중화이니 떠받들어 주던 것을 당장 때려치우고 달단이 곡적을 범해서 낳은 쌍만잡종이라고 극딜을 꽂는다.

전쟁 초기에는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조선이 우세한 듯 싶었으나, 중화 러시아가 동원령을 내려 압도적인 병력 수를 과시하며 조선을 밀어붙여 조선령 시베리아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왠지 조선군의 방어가 약한 부분을 깊게 돌파하여 그 위치에 진영을 꾸렸는데, 그 위치에서 퉁구스카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군인들이 죽거나 미쳐버려 군대가 증발해버렸다. 종교에 진심인 러시아인들은 이를 보고 천자(러시아 황제)가 천벌을 받았다고 여기면서 조선에 항복하게 된다. 결말에서는 러시아 시골의 고아한 선비였던 니콜라이 2세를 바지사장으로 삼아 중화 러시아를 괴뢰국으로 만들면서 끝이 났다. 니콜라이 2세의 딸 아나스타샤와 조선의 황태자가 썸을 타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으로 보아, 결말 이후에는 결혼을 통해 러시아 전체가 조선으로 흡수될 것이 암시된다.

3. 사건

3.1. 유술양란 (1453, 1454년)

계유년(1453년, 이홍위 즉위 이듬해)에 일어난 제3차 왕자의 난과 갑술년(1454년)에 일어난 제4차 왕자의 난을 일컬어 부르는 명칭.

제3차 왕자의 난은 원 역사의 계유정난이며 제4차 왕자의 난은 유하의 박대에 분노한 혜빈 양씨가 금성대군과 자신의 아들인 영풍군, 한남군과 짜고 유하가 온천욕차 온양에 간 사이 일으킨 난이다. 제3차 왕자의 난은 유하의 활약으로 진압 직전까지 갔다가 진압 도중 단종과 유하가 죽자 단종의 몸으로 부활한 유하가 마무리를 했고, 제4차 왕자의 난은 유하가 양성한 금군이 경복궁에서 농성하는 사이 한양으로 달려온 유하의 활약으로 진압했다. 첫 번째 난의 주동자인 수양대군은 원 역사의 단종이 죽은 것처럼 활시위로 교살당했고 두 번째 난의 주동자인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세 왕자는 유하가 난중에 직접 참했다. 유하가 어린 나이인 단종의 몸으로 친정을 시작한 첫걸음이며, 반정을 핑계로 성공적인 군제개혁을 할 수 있었다.

3.2. 을해호란 (1455년)

야심을 품은 올량합 추장 낭발아한이 두만강 이북의 여진족을 규합하여 6진을 침공하면서 일으킨 호란. 여진족의 민간인 학살에 격노한 유하는 저항하는 자는 모두 죽이고, 항복한 자는 포로로 잡으며, 모든 재산은 빼앗은 뒤 마을은 불태우라고 교시하였고, 현장은 충실히 해당 지시를 따른다. 추후 이 교시는 진멸 5개조라 하여 걸리면 다 죽이고, 빼앗고, 태우고, 노비로 팔아먹는 조선군의 모토가 되었다.

지방군의 군율을 도저히 믿지 못한 유하가 수경연대를 이끌고 친정한 끝에 조총 등 신무기의 활약으로 조선은 대승을 거두고 낭발아한은 붙잡혀 거열당하며, 조선은 파저강과 가야하 이남의 영토를 확보한다. 유하의 두 번째 친정이며, 유하 본인이 화살에 맞을 뻔 한 것만을 빼면 매우 성공적인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작품 외적으로는, 비누나 조총이나 천일염 따위를 만들며 열심히 돈 벌고 조선을 체질개선하던 평범한 대체역사 소설과 같은 초반의 작품 분위기를 과격하게 일신한 사건이기에 이 사건을 계기로 소설 분위기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부터 소설이 볼 맛이 난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한편 낭발아한이 조선이 소금에 독을 탔다고 핑계를 대고 난을 일으키는 바람에 유하에게는 독살왕 별명이 붙기 시작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낭발아한의 헛소문을 전해들은 몽골인들이 '그 악랄하다는 조선의 독을 가져와라!'하는 식으로 주변국들이 독 쓸 일만 생기면 조선산 독을 애용하며 조선은 진짜로 독술의 대국이 되어버렸다.

3.3. 탈문의 변 (1457년)

원 역사처럼 정통제가 복권하는 사건이지만 조금 다르게 진행된다. 조선 사신단이 황제의 축수를 빌며(경태제가 장수하여 명의 혼란이 지속되길 바라며) 유하 특제 우황청심원을 바쳤는데 하필 경태제가 청심원을 복용하고 환후가 좋아졌다가 갑자기 사망하고 만다. 경태제 사망을 알아챈 정통제 일파는 조선 사신단을 복벽 세력에 끌어들이고, 적극적인 조력에 힘입어 정통제가 복위에 성공한다. 한편 경태제의 측근이던 우겸은 남경으로 도망쳐 경태제의 사촌인 회남왕 주기전을 황제로 옹립해 대립 조정을 세웠고, 이 일로 인해 중원은 북명과 남명으로 쪼개져 중원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조선은 북명의 호감을 샀지만 북경에서 무력투사를 했다는 점 때문에 훗날 정치적 공세를 받을 위험에 처해졌다. 덧붙여 황제가 청심원 먹고 죽는 바람에 유하의 독살왕 의혹이 점점 굳어진다.

3.4. 임진동정 (1472년)

오우치 가가 쓰시마를 공격하여 다이묘 가문인 소 가를 멸한 뒤 조선이 시킨 일이라고 누명을 씌운데 이어 가신인 고노 일가의 수군으로 조선의 제포를 공격해 수군처치사를 참살하자 조선이 오우치를 정벌한 전쟁. 이진이 하급장교로 참전한 첫 전쟁이며, 조선군 12,000명, 군함 142척을 파병하여 조선의 성명절기 발화신기전이 처음으로 무기로 등장해 아카마가세키를 불태운다. 작가가 백린탄의 사용은 한제국 건국사의 오마주라고 밝혔다. 작중 등장한 소이신기전으로 추정.

전쟁 결과 오우치 가가 바지사장용 인질로 잡고 있다가 조선군이 신병을 확보한 소 가의 마지막 핏줄인 소 모토요시(宗職吉, 종직길)가 가문의 영지인 쓰시마의 다이묘로 임명됨과 동시에 추가로 이와미국을 받게 되고 모토요시의 보호국인 조선은 이와미 은광을 뜯어낸다. 근거지인 나가토국이 큰 피해를 입은데 이어 오우치의 자랑이던 대규모의 육군과 수군을 모두 잃어버리면서 일본 서부 최대의 세력이라 자부하던 오우치 가가 크게 쇠락한다. 또한 이 오우치 가가 일본에서 한창이던 오닌의 난에서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에 대항하는 서군의 주축이었기 때문에 오닌의 난이 동군의 판정승으로 끝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덤으로 야마나 소젠이 기혈이 막혀 쓰러졌다가 조선 청심환을 먹고 잠시 정신을 차렸다가 사망하는 바람에 조선의 독살국 오명이 확정되고 만다.

3.5. 을사대전 (1484~1485년)

남이가 설치한 지뢰에 의해 실수로 북명의 요동도사가 폭사당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하자 이참에 기어오르는 조선을 손봐줘야겠다고 생각한 북명이 부당한 지시를 강요하였고 결국 폭발한 조선이 대놓고 천조질서를 거부하자 분노한 북명이 조선을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

이때를 틈타 몽골은 만리장성을 넘어 남하해 화북을 약탈하고 남명은 장강을 넘어 북경 점령을 위해 북상한다. 암군 성화제의 치세 아래에서 국력이 쇠락한 북명이 조선에 대패를 당했고 오히려 조선이 몽골과 동맹을 맺은 후 역으로 북명을 침공한다. 조선의 공격에 의해 산해관이 함락되고 북경이 항복하면서 북명은 멸망한다.

한편 조선-몽골 연합군과 북명이 싸우는 틈을 타 북경을 차지하려던 남명은 조선군의 이질 테러를 당해 진격이 돈좌된다. 남명이 국력차를 빌미로 대두국에 이리저리 강요한 것이 화근이 되어 대두가 조선 편을 들어 참전, 조선-대두 연합함대에 의해 남명 함대가 대패를 당하면서 무위로 돌아간다.

전쟁 결과 북명 땅을 분할하는 조선과 몽골과의 거래로 중원은 몽골이 차지하고, 조선은 요동과 요서를 차지했으며, 대두국은 남명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3.6. 삼제전쟁 (1501년)

유하 사후 남명이 오우치와 전쟁을 모의하다가 딱 걸리는 바람에 일어난 전쟁.

오우치는 조선의 선전포고도 없는 선공을 받고 농토에 소금과 석회가 들이부어지는 참사를 겪은 끝에 일가가 전멸한다. 남명은 조선-북원-대두 연합군의 침공을 당해 남경이 불타버린다. 조선의 공격 명목이 '선황의 제사를 방해했다'였기 때문에, 독자들 사이에서는 남경대효도라 부르기도 하며, 2부에선 작중 인물이 효(孝)라는 글을 보고 이 사건을 떠올리기도 한다.

전후 조선 황제, 몽골 대칸, 남명 황제, 대두 국왕이 한 자리에 모여 조약을 체결한다. 그 내용은 조선과 몽골은 남명에 주차관을 파견해 내정간섭을 할 수 있으며, 남명은 송강부와 합비, 천주를 각각 조선, 몽골, 대두에 넘기고 10년 동안 노비와 재물을 지불하는데다 조선과 몽골의 허락 없이는 배를 함부로 만들 수도 없는 정신나간 불평등 조약이다. 정식 명칭은 신유약조지만, 세 황제가 모여 맺은 조약이라 삼제맹약이라는 별칭으로 자주 불린다.

3.7. 정묘훈도 (1507년)

열조 시기 베네치아의 협잡질에 넘어간 조선이 포르투갈의 라이벌인 오스만과 동맹을 맺고 대대적으로 리스본을 침공한 사건. 사실 오스만은 세우타 공략에만 도움을 줬을 뿐 실질적으로 조선이랑 조선이 용병으로 데려온 메시카가 다 해먹었다 해도 무방하다.

그 결과 리스본이 불타고 그 주변 지역까지 조선에게 뜯겼으며 수많은 포로들이 끌려갔다. 수도를 하루 아침에 잃은데다 막대한 인명피해, 전쟁보상금 80만 크루자드를 일시불로 뜯긴 포르투갈은 맥없이 에스파냐에게 합병당한다. 이만한 대사건을 그냥 훈도 정도로 표현하는 조선의 기상을 볼 수 있다. 총력전을 깔고 들어가는 동양권의 전쟁과 비교했을 때 고작 도시 하나만 태워먹었으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유럽 내부에서 일어난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쓰지도 않을 것이고.

3.8. 해금령 (1588년, 개국 197년)

조선은 고조 치세 때부터 비의의 도움을 받아 해외의 온갖 알짜배기 지역에 도독부, 상관 등의 거점들을 건설하고 유지해 왔다. 조선은 해외 교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누려왔지만 인적, 물적 손실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때문에 해외 진출 규모를 줄이자는 근해당의 지속적인 반대에 힘입어 헌종이 조선이 해외에 건설한 모든 거점을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해외 교역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해외 거점을 보호해야 하는 군대를 대거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조선이 국체 보존 상 무조건 유지해야 하는 인도 초석 항로까지 파기될 위기에 처한다. 헌종이 승하하고 요녕공 이현이 제위에 오르면서 다행히 해금령이 철폐되었지만 조선 신민들이 조정에 대한 신뢰를 잃어 해외 진출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게 될 위험에 처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존 세력들의 이권을 인정해주고, 일부 요충지에나 식민지를 작게 만들고 대국과는 제한된 규모의 교역을 실시해오던 조선은 기존의 정책을 대폭 수정해 급격한 확장적 제국주의로 전환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요충지이건 대국이건 해외 식민지를 적극적으로 건설하고 식민지의 기존 세력들은 개무시하고 하층민으로 전락시키는 정책을 수행한다. 조선의 정책 기조를 근본에서부터 뒤흔든, 2부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3.9. 2차 임진동정 (1592년)

헌종 치세에 조선이 약간 주춤한 사이 사쓰마의 시마즈 가가 유구국을 세력권에 넣기 위해 유구국을 사주하여 조선인 군관인 원연을 참수하는 사건이 터지고 유구국과의 전쟁 이후 진상을 파악한 조선이 이현 치세에 규슈로 대함대를 보내 시마즈 가를 응징한 전쟁.

원정군 총사령관인 이순신과 시마즈 가의 객장으로 있던 원균의 서로 다른 의미로의 활약으로 조선이 대승을 거두고 규슈를 호령하던 시마즈 가는 패망한다. 조선은 시마즈의 영지였던 규슈 전체를 비여도(飛汝道)[7]라는 이름으로 합병한다. 시마즈 가의 본가인 사쓰마에는 목화군(木花郡)을 설치해 이름 그대로 목화 플랜테이션을 만들고 인도양에서 노예무역 하던 아랍인들을 잡아와 목화 재배용 노비로 써먹는다.

3.10. 오색정난 (1616~1618년)

조선이 곡주, 몽골과 남명을 정벌한 전쟁. 이순신의 함대가 곡주를 정벌하러 떠난 사이 몽골과 남명이 조선 침공을 모의하는 것을 눈치채고 조선이 몽골을 선제공격한다. 곡주는 런던이 불타고 몽골은 대도와 화령을 잃은데다 대칸과 태자가 포로로 잡히고, 남명은 내륙국으로 전락한다.

황제 이현이 그놈의 중2병이 도져서 몽골 침공 작전명을 비의의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따와 적색작전계획이라 이름 붙이고, 화북지방의 포로를 잡아들이는 작전명을 블랙리스트 작전[8]에서 따와 흑색작전계획이라 명명하는 바람에 신하들이 농담삼아 오색정난이란 이름을 바친다. 처음에는 정상결전이니 천마대전이니 하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려다 실패한 이현은 신하들의 제안이 마음에 들어 타슈켄트 칸국을 공격하는 건에 청색작전계획이란 이름을 붙이고 진행한다. 적혈북방통제사, 창천서방통제사라는 위엄찬 관직을 두 개나 받은 정무수는 덕분에 붉으락푸르락 장군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3.11. 목야대전 (1800년 전후로 추정)

2부와 2부 외전 사이에 있던 조선 - 메시카(아즈텍) 간 전쟁. 외전인 1905년 시점에서 ‘1세기 전의 전쟁’이다.

외전 시점에서 이미 종결된 전쟁이라 자세한 전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요참관을 아즈텍이 틀어막아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어버려 분노한 조선 황제가 총력전을 선언하고, 아즈텍이 패배해 황제의 친척들이 굶어죽을 정도의 막대한 전쟁보상금을 지불하고 텍사스 유전지대까지 뺏겼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텍사스 이북 땅 전체와 파나마 운하까지를 조선이 영향권에 넣은 듯하며, 이 정도만 해도 현대의 미국+캐나다+파나마를 합친 초강대국의 영토를 확보한 셈이다. 조선이 여러 ABC 병기를 사용했는지 전장에서 처음으로 시안화코카딜 포탄을 쏘았다가 바람이 잘못 불어 군마가 떼죽음을 당하거나, 아즈텍 포로에게 전염병을 감염시켜 풀어주는 생물학 공격이 등장했다는 이야기 정도만 나온다. 2부 시점까지만 해도 삼화의 일원으로서 조선과 동등하게 대우받던 메시카는 이 전쟁으로 세력이 급락했다.

그나마 100년이나 지난 뒤에는 조선의 우위의 질서를 인정한 아래 국민감정이 완화되었다고 언급된다. 그 완화된 게 메시카 사람과 조선인이 얼굴 마주보는 순간 총칼을 뽑지는 않을 정도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기술수준이 석유기관까지 발전하지 않았으나 비의를 통해 미래를 알고 있는 조선 황제가 유전지대를 뺏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었다는 함의도 보인다.

4. 용어

4.1. 나노머신

한국에서 만든 차세대 보병 전술지원용 나노머신 프로토타입. 하지만 말 그대로 프로토타입이라 성공한 사례는 진유하의 '그슨대'와 정민영의 '어둑시니' 둘뿐이다. 감각과 신체능력을 증폭시키는 능력, 질병과 독소를 해독하는 능력, 여러 정보들을 저장하고 열람하는 능력, 최적화된 움직임으로 사용자를 강제 제어하는 능력, 나노머신 사용자 간에 근거리 통신을 주고받는 능력이 있다. 과거로 돌아간 유하와 민영이 인간을 초월한 무력을 발휘하고 미래 정보를 이용해 부국강병을 이룬 원동력이다. 유하는 시간이동 첫 날에 계유정난에 휘말려 죽고 이홍위의 몸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홍길동을 잡으려다 죽고 부활한 후 불로불사의 능력을 지니게 되었으나, 민영은 불로불사의 능력은 가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다 갔다.

4.2. 비의

진유하가 태조대왕 때부터 내려온 가전 비의라는 이름 하에 남긴 미래 지식. 지식 출처를 설명하기 힘들자, 세종대왕 이전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의 지식이라고 뻥을 쳤다.

다행히(?) 세종대왕 시절, 또는 이전부터 왕들이 미래를 내다본 것처럼 현명하게 행동하여 이 뻥에 개연성이 생겼다. 그슨대에 내장된 조선왕조실록 및 백과사전, 각종 문헌들을 총망라했으며, 분야는 군사, 원 역사, 사회제도, 예술, 기술 등 다양하다. 정치, 군사, 과학기술 등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나 예술, 종교처럼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시간 없는 유하가 대충 창작해서 넣은 바람에 오류가 많다. 간단한 일부 지식이나 기술 등은 황가 일원들도 익힐 수 있으나, 미래 역사만큼은 황제가 태자 한 명에게만 전수한다. 현대인의 지식이 전근대인의 안목 아래서 기묘하게 변주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작중 개그포인트.

유하의 개입으로 역사가 바뀌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일단 수양대군의 목부터 날아간데다가 계유정난의 공신 권람이 처형되면서 그 후손인 권율은 사라졌으며, 갑술년의 난으로 이극균이 처형되면서 후손인 이덕형 역시 그 존재가 없어졌다. 포르투갈은 아예 2부에서 나라 자체가 없어지는 등 지구 반대편의 역사도 달라진 면이 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대체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치트 그 자체. 인재등용의 방면에서는 실패가 없으며 기술개발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쓸데없는 낭비를 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아 효율적으로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진짜 위력은 개변된 역사와 무관하게 원 역사 그대로 진행되는 날씨와 기후 등 자연현상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는 점으로 근본적으로 농본국가인 조선에게는 하늘의 선물이다. 북원이 화북을 목초지로 만들어버리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드는 등 개변된 역사의 영향으로 인해 서서히 바뀔 수는 있으나, 현대 인류마냥 온실가스를 매년마다 수백억 톤 단위의 인위적인 변동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빠른 시일 내에 쉽게 안 바뀌기는 한다.

황실 일원만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선 황제가 통치 정당성 및 권위를 획득할 수 있는 방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비의를 맹신하지는 않으며, '미래를 내다본' 게 아니라 '진짜 미래에서 온' 것 같다는 것도 눈치챘고, 시험하고 평가하면서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악평이었던 원균이 '세 나라를 종횡하며 메주 밟듯이 한' 인재였다는 점에서 비의에 이름이 있을 정도면 능력은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또한 비의를 이용해 실패 없는 통치를 하다보니 비의가 어긋나기 시작하고 끝이 다가오자 황제들부터 불명확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방치하면 민중혁명으로 목 날아가기 십상이라는 것도 배웠으므로 2부 외전 시점에서는 그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 장기적인 민간 권력 이양과 입헌군주정으로의 '도피'를 준비하고 있다. 황가는 국가의 상징으로 남아 권위를 누리면서 정책 실패의 책임은 의회에 떠넘기겠다는 수작. 우스꽝스러운 전개이긴 해도 미래지식 없이 이런 성과를 달성했다면 자신감에 가득한 황제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가 제국 자체가 붕괴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두국도 똑같이 유하가 작성한 비의를 '견문록'이라는 이름으로 직계자손에게 교육했으며, 여기서는 민영이 배 타고 세계를 일주한 뒤 기록을 남겼다는 설정이다. 대두가 국체를 버리고 대만제상협동회가 되었어도 정씨 일가의 수장과 후계자는 비의를 익히고 있다.

4.3. 영부자

營釜者. 유하가 '연보비결'이라며 진실과 거짓을 섞어다 퍼뜨린 기초적인 화학지식을 담은 연금술 책을 보고 몇몇 사람들이 솥에다가 이것저것 섞고 굽고 끓이기 시작했는데, 생업도 내팽개치고 그런짓을 한다고 주위 사람들이 가마솥쟁이라는 뜻으로 불렀던 비칭.

초창기엔 현실의 연금술사들처럼 납으로 금이나 은을 만들겠다시고 가산을 탕진하거나 하는 경우가 잦았으나 유리를 만들어내는 등의 성과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다 유하가 알려준 지식을 이용해 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죽왕 세계관의 여럿 나라를 잡은 순도 높은 백린이 개발된 후 영부자들은 주로 폭약 종류에 집착한다. 폭약만 만드는 것은 아니라서 황화니코틴이나 고추기름 같은 제초제 종류도 개발하기도 하지만 독살국답게 산화카코딜, 청산가리 같은 독약이 우선적으로 줄줄이 개발되었다.

2부에서는 전기를 이용한 라이덴 병 비슷한 것을 만들더니 드디어 전기를 만들어내어 제대로 된 발명을 해내는가... 싶었더니 이걸 대조선국답게 전기충격기로 개발해 고문용으로 써먹는다. 작중에서는 높은 절개는 더 높은 전압 앞에 무력했다라고 표현하고 2부 외전에선 아예 뇌고판관이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로 널리 악명을 떨치는 중. 후반부에서는 영부자들이 하도 폭발하는 것을 많이 만들어내자 왕이 영부자들에게 안전을 위해 소방용 호스, 소방용 펌프를 발명해내라고 지시했는데, 결과물로는 화염방사기가 발명되어 왕이 뒷목을 잡는다. 외전에서는 과학이 영부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는다.

4.4. 공관삼학

대조선국이 설립한 강산학교, 강무학교, 경관학교 세 학교를 지칭한다. 강산학교는 수학자 및 과학자 육성, 강무학교는 장교진 육성을 위해 유하가 세웠다. 경관학교는 경찰관 육성을 위해 아들 이진이 비의를 참조하여 세운 학교이다.

유하가 친히 학교에서 강의를 하였기 때문에 초기 대소신료들의 자식들이 반강제로 학교를 수료하고, 그 자식들이 관직에 오르면서 학맥으로 서로 얽히게 되었다. 강습을 거부한 자는 인맥이 부족하여 조정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기에 모든 신하들이 공관삼학의 일부 혹은 전부를 수료한다. 2부에서 강무학교의 해군과가 독립하면서 육전강무학교와 해전강무학교로 분할되었다. 황제들은 비의를 따라 이들에게 서로 우아하게 경멸하는 전통을 심어주려 노력한다.

4.5. 참적검

적을 베는 검이라는 의미로, 유하가 유술양란 이후 손수 만들어 패용하는 어검. 검도를 익힌 유하의 손에 짧고 가벼운 환도가 손에 맞지 않아 우치카타나 형태로 만들었다. 참적검 형태를 본떠 새로 만든 환도를 군대에 보급했는데, 이를 신군도라 부르며 일본에 거꾸로 도입되기도 한다. 천명퇴 다음 가는 고조의 신물이며, 유하가 생전에 아들 이진에게 넘겼으며 유하 사후 평양왕부로 넘어갔다가 2부에서 신립의 손에 부러지고 만다.

4.6. 천명퇴

일반적인 무기들이 유하의 힘을 못 이기자 유하가 손수 벼려낸 20근 철퇴.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가시 돋친 철구와 긴 쇠자루로 이루어진 무식하게 튼튼하고 무거운 병기. 북명과의 두 차례 전쟁에서 유하의 손에 친히 들려 그 위용을 뽐내었다. 고조가 이 철퇴로 천명을 부수었다 해서 천명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고조의 최고 신물로 취급된다. 황권을 상징하기에 황제 또는 황태자만이 쥘 수 있으며, 황위 계승 시 천명퇴를 들 수 있느냐가 주요 조건으로 꼽힐 정도로 중요한 기물이다.

2부에선 여타 무구와 같이 점점 소문이 뻥튀기되어 100근짜리 철퇴로 세간에 알려졌으며, 황제 즉위식 때 봉퇴례라 하여 황제가 천명퇴를 들어올려 제단에 바치는 식순이 있는데 조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의식이다. 아울러 2부 시점의 황제 이현은 좀 가벼운 가짜를 만들어 올렸다.

2부에서 유하도 리스본에 있을 때 개인용으로 하나 더 만들었는데, 리스본 공방전 때 휘두르면서 '악마의 주먹'이라는 흉측한 별명이 붙는다.

4.7. 고조삼책

고조 무황제가 생전 발휘했다는 세 책략.

첫 번째 계책은 타도계로, 고조가 방심한 영풍군과 한남군의 목을 직접 베고 나머지 잔당을 토벌한 사례에서 따왔다. 이후 조선군은 연회나 협상 때 적의 수뇌부를 기습해 죽이고 혼란에 빠진 적군을 공격해 승리를 거두는 방식을 선호한다.

두 번째 계책은 인책계로, 낭발아한의 아들로 인간 방책을 만들어 기병대의 예봉을 꺾은 계책에서 따왔다. 조선군은 여기에 지뢰나 폭약을 더해서 인질과 상대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린다.

세 번째 계책은 독무계로, 봉황산에서 북명의 군세를 백린탄으로 불태운 계책이다. 남해의 감흥패 조식이 고조의 세 가지 계책을 외치며 알렉산드리아의 반란세력을 멸하고 인척을 포로로 잡은 뒤 도시를 불태우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고조의 도와 함께 인의예지고 군자의 도리고 모조리 쓰레기통에 처박은 조선의 행보를 보여주는 용어 중 하나. 강무학교에서 가르치는 정식 방침은 아니지만 웬만한 무가에서는 구전으로 전수되어 온다. 이순신이 부하들에게 "고조의 계책을 쓴다"고 명령하자 바로 이해하는 것으로 봐서는 군인들은 대부분 다 아는 모양. 이따위 짓을 하는데 타국이 조선의 연회나 협상을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밀어넣거나 조선을 처음 만나보는 상대에게 사용한다. 다시 말해 처음 만나보자마자 저런 짓을 당한 상대방의 감정은...

4.8. 신사학

주인공인 유하가 직접 만들어낸 현대에서 가져온 학문 또는 풍조 또는 사상을 통틀어 말한다. 굳이 현존하는 용어로 옮기자면 모더니즘에 가까운 개념이다. 아예 작중에서 대놓고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조선에 모더니즘을 도입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주인공의 대사와 독백을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1부에서는 과학, 과학주의, 합리주의에 가까운 개념이었으나 2부에서는 제국주의에 가까운 뉘앙스까지 추가되었다.

임금이 직접 만든 학문이라고 하여 어사학이라고도 한다. 1부 초반부에서 주인공은 조선을 부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대 지식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고, 단순히 기술 몇 개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조선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질적으로도 주인공이 조선에서 처음 시도한 기술개발과 개혁은 자평하기로도 영 성과가 별로였다. 처음 주인공이 개입한 부분은 염전에서의 천일염 도입, 비누 개발 등 대체역사소설의 클리셰에서 많이 보이던 지엽적 기술이었다. 그러나 이런 지엽적 기술 도입은 부작용이 있고 성과에 한계가 있었을 뿐더러, 주인공이 죽는 순간 성장 동력이 없어져 조선이 딱 그 때의 수준에서 정체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결국 주인공은 지엽적 기술개발 이상의 가치를 조선에 도입하려고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적 사고방식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현대에서 배웠던 서양식 수학적 지식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학문의 형태로 조선에 도입했는데, 이를 작중에서 신사학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복선은 주인공이 현대적이고 합리주의적인 도덕심은 도입을 안했다는 것이다. 합리주의적 도덕심만 보면 유교와 좀 비슷한 얘기이기 때문에 포지션이 겹치기도 했고, 이미 주인공은 과하게 유교적인 신하들에게 시달렸기 때문에 현대적 도덕심의 필요성을 덜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애초에 주인공이 최전선에서 활동하던 현역 특수부대원 군인 출신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21세기 기준으로도 도덕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주인공 주변의 관학파인 기술관료나 (역시 관학파인) 젋은 신진관료들한테 신사학 지식을 우선적으로 주입했고, 이들이 사대부들 중에서 그나마 새로운 지식과 사상에 열린 사고 방식을 갖고 있어서 신사학을 주입하기도 쉬웠다. 이렇게 신사학의 유용성을 빠르게 깨달은 이들이 만든 파벌을 신사파라고 부르며, 반의어로 비기술관료 관학파나 올드한 관학파 출신들은 공신파 또는 훈구파라고 부른다.

신사파는 학문의 창시자인 주인공에게 가장 충성하는 친위 세력이 되었으며, 주인공도 이에 부응하여 과거제도를 은근슬쩍 입맛대로 개혁하면서 신사파들이 장래의 조선의 중추를 담당하게 된다. 공신파는 세대교체가 되거나 신사학의 유용성을 체감하면서 그래도 비교적 빨리 신사파로 흡수·통합되어[9] 1부 중후반에는 범 관학파=신사파+공신파로 대충 묶이게 된다. 공신파라는 파벌이 없어지거나 신사파·공신파라는 명칭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공신파 또한 신사학을 익히고 과학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등 행동과 사상만 보면 신사파와 구분이 안되게 수렴진화했다. 이 때문에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도 1부 중후반부터는 신사파와 공신파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림파는 한참 늦게 신사학의 유용성을 깨달으면서 1부 중후반부까지 언급도 거의 안되는 마이너 세력으로 남다가, 결국 김종직을 필두로 한 사림파도 뒤늦게 신사학을 배울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어 점차 사림파가 조정에 출사하게 된다. 조정에 출사한 사림파는 신사학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사림파 특유의 사상을 나름 보존하여 자기들을 관학파 계열과 구분짓는 한편, 지방에서 출사하지 않는 사림파와 민중들은 교화 대상으로 여기며 스스로를 청류파라고 자칭하는 독립적인 파벌을 이룬다.

을사대전을 거치며 총력전을 계기로 조선 구석구석까지 신사학이 알려지자, 남은 사림파까지 신사학을 익히고 조정에 출사하려는 청류파로 대체되었다. 이 때문에 조선에 신사학이 유교 이상의 보편적 헤게모니로 잡으면서, 1부 결말에서는 파벌에 따라 세부적 사상에만 차이가 조금 있지 조선의 사대부 전체가 신사학을 익히고 따르게 되었다. 자세한 정황은 안 나오지만 이미 1부 외전 후반부와 2부에서는 출신 파벌은 거의 안따지고 공관삼학 출신·기수를 더 중요시 여길 정도로 전통적인 파벌 의식이 거의 없어졌다. 다만 2부에서는 공관삼학 중에서 어느 학교를 어떤 성적으로 수료했는지가 중요해지면서, 출신 학교가 점차 새로운 파벌 소속의 기준이 된다.

2부에서는 정부에 도덕적 제약을 걸 조선 내 세력이 거의 없어지는 한편 주인공이 하필 현대적 도덕심을 신사학에서 도입하는데 빼먹는 바람에, 신사학이라는 용어에 제국주의 비슷한 뉘앙스가 추가되게 되었다. 다만 2부 초반에서는 일부 수구적인 세력이 조선의 과한 확장을 반대하며 해금령을 주장하는 근해당이라는 파벌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들마저도 신사학의 중요성은 인정함과 동시에 나름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할 정도로 신사학이 조선의 중심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다.

구체적으로 근해당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식민지를 반대한다거나 상업을 천시하는 모습이 아닌, 식민지 유지 및 경영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다는 나름 합리적이고 신사학에도 부합하는 근거를 댄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조선이 세계제국에서 지역강국으로 추락할 것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독자들뿐만 아니라 작중 등장인물들도 근해당을 근시안적이고 많이 비판했다. 게다가 황제 이천은 무능한 장자에게 좁아져서 경영하기 쉬워진 조선을 상속하고 경쟁자들을 숙청할 생각으로 근해당을 지원하였는지라 독자들뿐만 아니라 작중 등장인물들도 지나치게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경악했다. 결국 이 때문에 2부 중반부에서 황제 이천을 비롯한 근해당은 몰락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해금령이 취소되며 조선은 다시 급격한 확장의 시대를 맞이한다.

4.9. 격몽요결

광종 이견 때 발간된 저서. 원 역사 율곡 이이의 아동학습서와 같은 제목의 교육서적이다. 하지만 대상과 주제는 조금 다른데, 어리석음을 쳐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뜻에 걸맞게 어리석은 노비를 패서 말 잘 듣도록 교정하는 노하우를 정리한 교범이다. 딱히 군용이 아니라 노비를 다스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노비를 다스리기보다는 노비를 잡아서 팔아치울 때까지 관리하는 것이 임무인 군인들은 다음과 같은 앞부분만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

우선 노비를 잡으면 옷을 모조리 빼앗아 알몸으로 만들고, 일주일 정도는 말만 해도 두들겨패서 자기들끼리 작당도 못하게 만들고, 그냥 숨만 쉬어도 패서 머릿속을 텅 비워버리는 방식이다. 이래서 똑같이 노예를 부리고 있는 메시카마저[10] 잔인하고 무식한 방법이라고 욕하지만 그 효용성은 지상 최대의 노예매매 국가 조선에서 입증했다. 조선에서는 세종의 훈민정음에 비견되는 문의 극치라고 평가하며, 3세기가 지난 2부 외전에서도 그 성능은 유효하다.

상술한대로 단순히 패는 것만이 아니라 뒷부분에는 노비들에게 전공, 고발, 몸값 2배 납부 등등 신분상승의 희망을 심어주고 메시카에서는 노예를 잡아먹는다는 식으로 타국 노예의 처참한 환경을 날조하고 최소한의 생활환경을 만들어주는 등 구체적인 관리 방법도 설명되어 있고 조선의 노비 대우도 전근대 기준으로 생각하면 상당히 자비로운 편이지만 앞부분 임팩트가 너무 강하다.

4.10. 세종 명황제

주인공 유하가 세종대왕을 군사·과학·정복 위주로 업적을 띄워주어, 세종대왕은 이 세계관 안에서는 철혈 제국주의 정복 군주 취급을 받게 되었다. 유하가 조선 사대부들에게 군사기술, 과학기술, 합리주의, 정복주의를 주입하려고 할 때 명분이 없자 그나마 넷과 가장 비슷했던 "세종대왕의 유훈"을 근거로 제국주의를 주장했던 결과이다. 신하와 사대부들도 처음에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세종대왕의 유훈이라고 하길래 그럭저럭 순응하며 유하의 사상을 받아들였으나, 가면 갈수록 유하의 숨쉬듯이 자유롭게 해석하는 선대의 유훈에 질려하며 반항한다.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합쳐져서, 반항 과정에서 사대부들과 유하와의 말싸움 대결이 이 소설의 백미로 평가받기도 한다. 나중에는 결국 유하의 사상과 학문이 유용성을 인정받고, 유하가 성장하여 왕권이 강화되면서 유하가 판정승을 거둔다.

그 결과로 세종대왕의 업적들이 다 제국주의적인 관점으로 해석된다. 세종대왕의 4군 6진 개척은 조선 정복주의의 시초로, 유교를 정치에 적극 도입한 것은 근대적 합리주의의 시초로, 과학 기술의 발전은 산업혁명의 시초로, 노비종모법과 출산휴가는 노예제도의 완비로, 훈민정음은 애민정신이 아니라 명령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군사효율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식이다. 타국에서는 노비 출산휴가를 노비 숫자를 증가시키려는 모략으로 볼 정도. 이러니 기독교도들은 세종 명황제를 문자(文字)의 정복자, 노예의 군주라 칭하고, 노예를 다스리는 철저한 정책이 세종 명황제의 제도를 기반으로 한다고 평가하며, 특히 기호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훈민정음은 지옥의 군주에게 후계자의 수명 절반을 주고 거래해서 얻어낸 지옥의 문자로서 사용할 때마다 악마가 힘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이 세계에서는 유럽이 짓밟히고 로마(베네치아)는 올림포스 신화로 복귀, 중화(러시아)는 유교와 기묘하게 뒤섞여 차르까지 포함한 4위일체를 주창하는 이단이 되어 기독교 자체가 구시대적 모습에서 멈춰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종교 개혁의 압력이나 합리주의자들의 종교 비판을 어느정도 수용하면서 기독교가 현대화된 모습이 된 것인데, 조선 덕분에 종교개혁이고 자시고 이런 피드백 과정이 전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조선이 박살낸 유럽의 잔해인 기독교도들에게는 다른 왕들 또한 이미지가 최악을 찍고 있다.
등등이 대를 이어 차근차근 악의 제국을 쌓아올렸다고 평가당한다. 이후에도 묵시록의 붉은 용[12]이자 기독교도들의 대적 고조 무황제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부왕이 잠시라도 악마의 눈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세계를 불태우고 기독교도들의 비명이 지옥에 울려퍼지게 하였다고 반쯤 망상화된 기독교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백미.

그 후의 황제들 역시 기독교식 이명이 화려하다.
다만 조선의 여러 악마(?) 황제들 중 아무래도 가장 임팩트가 강한 인물은 세종 명황제다. 원래 역사에서 애민정신과 유교정신의 결정체라는 이미지와, 이 소설 안에서 제국주의의 시초이자 공격·팽창군주라는 이미지 사이에 갭 차이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결과물이 과거인의 평가를 바꿀 수도 있다는 예시를 뽑으면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세종 명황제가 제일 먼저 언급된다. 또 빙환트로 인한 역사 개변이 단순한 역사 단절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닌 빙환트 이전의 역사 해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의 대표적 예시로도 뽑힌다.

아무래도 사이다가 중시되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한국의 대체역사물에서는 빙환트한 주인공의 업적들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소설 전개가 되다 보니 유난히 "이 나라에서 주인공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르다" 식의 전개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죽지 않는 왕-무왕 단종"에서는 "주인공의 노선은 기존에 선조들이 만들어낸 매뉴얼을 따라간 것이기에 놀랄 만한게 아니고, 사실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길을 닦아놓았다"는 식으로 묘사되니 특이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세종대왕의 업적만 보면 소설 속 세계관에서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것도 개그 포인트.

여담으로 이러한 해학적인 해석은 작가의 차기작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와 차차기작인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행해진다. 해당 작품에서는 조선을 전근대 계급주의 국가로서 관찰하고 있기에 다른 왕들은 '세자를 뒤주에 집어넣고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교차하도록 실험한' 과학군주 이금이라던가, '속도를 지배하여 시간을 지배한' 최속군주 이균 등 비웃음섞인 표현이 많지만 세종만은 여진족의 파멸, 쓰시마의 공포, 모든 이민족의 죽음, 공포군주 이도라고 호칭하며 '전쟁만 한 것 같지만 문자 같은 것도 만들기도 했다.' 라는 부연을 붙이고, 세종쯤 되는 명군이 육진을 옥토로 바꾸지 못할 리가 없는데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범죄자와 숨쉴 자격이 없는 여진족을 벌하기 위해 황무지로 남겨둔 것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대체역사물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많은 작품에서 세종대왕을 공격적인 전쟁군주라고 드립을 친다. 경제왕 연산군에서는 아예 한 화 전체에 '진격의 세종~정복왕~' 같은 소제목을 붙이고 '조선인들을 남김없이 구축하려고 의지를 불태우는 여진 예거들은 다 죽어나갔다.' 라고 마무리지었다.

4.11. 훈도

훈도(薰陶)란 "덕(德)으로 사람의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치고 길러 선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의미인데 이걸 글자 그대로 풀어서 흙을 다져 도자기(陶)를 굽는 것(薰) 마냥 모조리 불태웠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2부 시점의 충분히 힘을 가진 조선은 타국과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장형'을 자칭하며[13] 형의 가르침에 반항하는 동생을 적절하게 두들겨패서 혼내주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물론 현실은 다른 지역, 도시, 국가를 일방적으로 불태우고 박살내고 약탈하는 짓이지만.

사건 단락의 '정묘훈도'에서 유래했으며, 2부 이후 외전 시기까지 59차례의 대훈도가 있었다고 한다. '작은' 훈도가 몇 번이 있었을지는 언급조차 없다. 2부에서는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도시 14개를 싸그리 태워먹은 사례가 훈도의 예시로 언급된다. 당시 황제였던 이삭은 칠종(縱: 놓아주다)칠금(擒: 사로잡다)의 고사를 들며 온건하게 대처하라고 했으나, 명령을 받은 조선군은 7개 도시는 지워버려서 이승에서 놓아주고(縱), 7개 도시는 사람을 싹 잡아서(擒) 노비로 팔아버리는 뒤틀린 방식으로 처리했는데, 정작 이것조차 '14개 도시까지만 처벌하라' 라는 내용으로 알아들은 것이었고 그 외의 도시들에는 대두국 해적들을 풀어서 씨를 말려버렸다.

4.12. 흑암요새

2부 외전 시점에서 한성을 부르는 다른 이름. 중2병 걸린 황제의 취향이 강하게 영향을 끼친 명칭이다. 기존 한성을 뛰어넘는 거대한 면적에 드높은 성벽과 온갖 대포를 장비하였으며, 기존의 숭례문은 '태조 고황제께서 이런 쪼맨한 걸 만들었다고 하기엔 창피하니' 폭파시켜 날려버리고 새로 만들었다. 대를 거쳐 장기간에 걸쳐 건설하면서 발전하는 축성기술에 맞추어 지속적인 개선이 있었기에 성형요새 개념까지도 도입되어 결코 파괴할 수 없는 요새이자 적대국들에게는 악마의 본거지로 불린다.

단점이라면 그 막대한 돈을 들여 건설했는데 현실적으로는 한성까지 쳐들어올 만한 적 자체가 없고, 한성까지 쳐들어올 정도의 적을 상정한다면 이런 과도한 요새를 지을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군대를 더 양성해야 하며,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의를 통해 알고 있을 비행기, 고사포, 미사일 등 발달한 미래무기 앞에서 높고 두터운 성벽 따위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중간중간 일부 황제들은 '이거 어떻게 해체하냐' 하고 투덜거렸으며, 2부 외전 현재는 도시가 점차 커짐에 따라 국가적 중요시설이 성벽 밖에 위치하는 등 도시 계획으로서도 실패한 꼴이 되었다.

[1] 작중에서 신사학이라고 언급된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후술.[2] 노예 세뇌에는 격몽요결이라는 세뇌 지침서가 이용된다. 자세한 것은 후술.[3] 다만 이 문제는 조선이 억울한 것이 타슈켄트 칸국이 세워진 계기는 조선이 관여한 다얀 칸 사후 북원의 제위 계승 분쟁이라 오히려 타슈켄트 칸국은 조선과 적대 관계다.[4] 그런데 술탄 암살을 실행한 세력은 암살이 아니라 이순신의 이스탄불 공격 및 포격 과정에서 술탄이 죽었다고 위조했다.[5] 국력이 비등비등한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미래를 아는 조선의 왕실까지 "중화 러시아"라는 혼종이 튀어나온 것을 괴상하게 생각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는 모습이 언급된다.[6] 춘추좌씨전에 수록된 고대 중국의 항복방식으로, 몸을 묶고 옥을 입에 물고 관을 지고 항복하는 것. 포박을 풀어주고 관을 불태우면 항복을 관대하게 받아주는 의미가 된다. 물론 몸값 내고 풀려날 생각이었던 폴란드 왕은 중화의 광기에 기겁할 뿐.[7] 이현이 이순신에게 내린 칭호인 비장군(飛將軍)과 이순신의 자인 여해(汝海)에서 따왔다.[8]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미국의 일본 제국 영토 점령 작전. 참고로 미군의 한반도 남부 점령 작전이 블랙리스트 40 작전이었다.[9] 아무래도 공신파는 중앙 권력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보니 신사학의 유용성을 비교적 빨리 인식할 수 있었다.[10] 이들은 노예 세습을 금지하였으므로 조선보다 도덕적이라고 자부하지만, 그 대신 '꾸준히 노예를 확보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11] 신기전과 화차가 백린탄을 운용하는 유일한 플랫폼이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다.[12] 그래서 고조에게 칼질을 가해 죽일 뻔했다는 끝내주는 위업을 행한 수양대군동방의 게오르기우스라는 별명이 붙어 성인으로 추앙받는다.[13] 그리고 굳이 '형'이라는 지위에는 작가가 오래도록 쌓아올린, '아버지'의 앞에서는 마찬가지로 머리를 숙여 가르침을 받는 처지라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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