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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23:28:47

존 펨버턴

<colbgcolor=#666><colcolor=#fff> 존 펨버턴
John Pemberton
파일:John Pemberton.jpg
본명 존 스티스 펨버턴
John Stith Pemberton
출생 1831년 7월 8일
미국 조지아주 크로포드 카운티 녹스빌
사망 1888년 8월 16일 (향년 57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직업 약사, 발명가
자녀 2명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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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발명가, 약사. 코카콜라라는 상품을 최초로 개발했다.

2. 생애

미국 남부 조지아주 출신인 펨버턴은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남부) 측에서 싸운 군인이었고[1] 당시 콜럼버스 전투로 입은 부상 때문에 투약한 모르핀에 중독되어 전후에는 모르핀 중독자가 되었다. 남북전쟁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는 애틀랜타 시민들을 돕기 위해 약을 만들기로 결심하며 이것이 코카콜라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그가 처음 시도한 음료는 포도주를 주 원료로 해 당대의 인기 음료였던 뱅 마리아니(Vin Mariani)를 베낀 제품이었다. 당시 이름은 펨버튼의 프렌치 와인 코카(Pemberton's French Wine Coca)였고, 뱅 마리아니의 흔한 유사품 중 하나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1886년 애틀란타 카운티에 금주법이 시행되자 포도주를 탄산수로 대체해서 새로운 음료를 만들었고, 펨버턴의 경리 직원이었던 프랭크 메이슨 로빈슨(Frank Mason Robinson)이 주성분의 이름을 조합해 코카콜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

1886년 당시에는 첨가물 없이 순수히 코카잎 추출 성분과 콜라나무[2] 씨앗 추출물과 탄산수로 만들어졌었으며,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첨가물을 더 넣고 만든 것이 오늘날의 코카콜라 음료가 되었다. 이후 로빈슨은 펨버턴과 동업자가 되었고, 하술하듯 펨버턴 사후에는 에이사 캔들러와 동업하여 코카콜라 컴퍼니를 창립했다. 특히 로빈슨은 코카콜라의 독특한 흘림체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 음료는 그가 운영하는 약국의 소다수 판매 진열대에서 잔당 5센트로 판매되었지만, 별로 판매량이 좋지 않았다. 2년 후, 그는 이 청량음료에 대한 제조, 판매 등 모든 권리를 단돈 2000달러(현재가치로 5500만원)에 팔아버렸고, 존 펨버턴은 코카콜라의 권리를 판매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위암으로 별세했다. 그 때문에 죽음을 이미 직감하고 죽기 이전에 본인의 역작을 능력 있는 사업가에게 맡겼다는 얘기도 있다. 이 권리를 구매한 사람이 약제상인 에이사 그릭스 캔들러이다. 에이사 캔들러는 이 청량음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프랭크 메이슨 로빈슨과 함께 1892년코카콜라 컴퍼니(The Coca-Cola Company, TCCC)를 설립했다. 이후 에이사 캔들러의 탁월한 영업 능력으로 판매량은 급증하였고, 코카콜라는 미국을 상징하는 청량음료로 성장하게 되었다.


[1] 계급은 중령. 조지아 주방위군 3기병대대장이였다.[2] 나중엔 콜라나무 특유의 향과 맛이 부적합하여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