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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15:39

존 타워

파일:미국 상원 문장.svg 미국 연방 상원의원 (텍사스 주 클래스 2)
제87대
윌리엄 A. 블래클리[1]
제87~98대
존 타워
제99~107대
필 그램
미합중국 제87-98대 연방 상원의원
존 굿윈 타워
John Goodwin Tower
파일:존타워.jpg
<colbgcolor=#e81018> 출생 1925년 9월 29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사망 1991년 4월 5일 (향년 65세)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의원 선수 4 (상원)
의원 대수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상원)
'지역구 텍사스 클래스 2 (상원)
정당

(1951년 이전)


(1951년~1991년)
학력 사우스웨스턴 대학교 (B.A.)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M.A.)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종교 개신교
신체 168cm
경력 라디오 아나운서
연방상원의원 (1961~1985 / 텍사스 )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 (1981~1985)
국방부 장관 후보자 (1989)
대통령정보자문위원회 위원장 (1990~1991)
서명 파일:존 타워 서명.jpg
{{{#ffffff 군사 경력}}}
복무 미국 해군
1943년 ~ 1946년
최종 계급 원사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 태평양 전선
1. 개요2. 생애3. 소속 정당4.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정치인. 남부 민주당원 출신 공화당 정치인으로, 재건 시대[2] 이후 최초로 당선된 텍사스의 공화당 연방상원의원이었다.

2. 생애

텍사스주 휴스턴의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텍사스 동부 지역에서 성장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 해군에서 복무했다. 종전 이후에 타워는 정치학 학사,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대학 조교수를 지내며, 영국에 유학해서 영국 보수당의 정당 운영을 배웠다.

민주당원이었던 타워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지지하게 되면서 정당을 공화당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1952년 대선,1956년 대선 텍사스주 공화당 대의원을 지냈다. 그러다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연방상원의원 선거에서 텍사스주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하지만 상대가 거물 중의 거물인 린든 B. 존슨 민주당 연방상원 원내대표 겸 부통령 후보라 57.9%vs41.1%로 낙선했다.[3]

그러나 41.1%라는 득표율은 1960년 기준 텍사스에 할당된 연방하원의원 22명 중 단 한명만 공화당원이었고, 주의회에서는 상하원 모두 공화당원이 없는 공화당의 미약한 당세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였고, 이를 기반으로 존슨의 미국 부통령 취임으로 발생한 1961년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도전했다. 타워는 보궐선거에서 자신을 "주의 권리를 존중하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하였고#, 구심점이 사라진 텍사스 민주당의 분열까지 겹쳐 1%p차이로 현직 상원의원을 꺾고 당선되었다. 타워가 당선될 수 있던 이유는 민주당의 분열 외에도 석유산업 종사자들과 휴스턴, 댈러스로 이주한 도시 중산층이 타워에게 표를 던진 덕분이었다. 당선 후 타워는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에 배정되었다. 1964년 스트롬 서먼드가 공화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구 남부연합 11개 주의 유일한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다.

남부 보수주의자로서 타워는 1964년 미국 연방 민권법,1965년 투표권법에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그렇지만 서굿 마셜[4] 대법원장 인준에는 찬성표를 던졌다.[5] 임기 중 워터게이트 상원 조사 위원회에도 참여하였다.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한 첫 상원의원이었다. 66년과 72년에는 재선에 쉽게 성공해서 3선 상원의원이 되었지만,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중 텍사스에서 훨씬 지지를 많이 받았던 강경 보수 로널드 레이건 대신 온건한 제럴드 포드를 지지하는 악수를 두어 당내 보수파에게도 불신을 받았다. 그래서 마지막 출마였던 78년에는 여론조사에서 근소하게 밀리다가 겨우 0.5%p차이로 승리한다. 레이건이 당선되자 타워는 국방장관을 희망했지만 레이건은 자신을 1980년까지 생깐 타워 대신 캐스퍼 와인버거를 임명하였다.

상원의원 임기가 끝나고[6]나서는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이란-콘트라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타워 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냈다. 조지 H. W. 부시국방장관으로 타워를 지명하려고 했으나, 여성편력 스캔들과 알코올 중독 의혹[7] 때문에 상원에서 찬성 47표, 반대 53표로 국방장관 인준에 실패하였다. 조지 H. W. 부시 정부의 국방장관으로는 딕 체니 와이오밍 광역구 연방하원의원이 대신 임명되었다. 지명 거부에 대한 보상으로 대신 대통령정보자문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타워는 위원장 임기 중인 1991년 4월 5일 애틀랜틱 사우스웨스트 항공 2311편 추락 사고에 당해 사망했다.

실질적인 텍사스주의 첫 공화당 연방상원의원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인물로, 그의 임기동안 텍사스 공화당은 점점 성장했다.[8] 하지만 그의 거만한 성격, 카리스마사교성 부족은 당내외의 인물과 끊임없는 갈등을 야기해 그의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주었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파벌을 만들 수완이나 주도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상원 임기 후 전현직 상원의원이면 웬만하면 프리패스인 상원 인준에서 거부당했을 정도.[9] 또한 텍사스 공화당의 파벌 갈등 봉합도 부진하였고, 공화당 조직 성장도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 1951 입당


1951 - 1991 입당
정계 입문
사망

4.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선거구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락 비고
1960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텍사스

926,653 (41.12%) 낙선 (2위)
1961 미국 연방상원의원 보궐선거 448,217 (50.58%) 당선 (1위) 초선[10]
1966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842,501 (56.42%) 재선
1972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1,822,877 (53.41%) 3선
1978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1,151,376 (49.79%) 4선

[1] 전임자 린든 B. 존슨 사임으로 주지사에 의해 상원의원 임명[2] 남북 전쟁 이후부터 러더퍼드 헤이스의 남부 군정 종료까지의 시기[3] 미국은 부통령 후보와 상원의원 후보에 동시에 입후보할 수 있다. 로이드 벤슨조 리버먼이 대표적인 사례다.[4] 첫 흑인 미국 연방대법원장[5] 로버트 버드, 제임스 이스트랜드, 스트롬 서먼드 같은 골수 인종주의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6] 84년 선거에서 공화당 필 그램이 승리해 타워의 상원의원 자리를 이어받았다.[7] 조사 결과 알코올 중독 수준은 아니었으나, 술을 지나치게 자주 마셨다.[8] 그의 현재 상원의원 의석은 지금도 존 코닌이 차지 중이다.[9] 특히 이념상으로는 그게 그거인 남부 민주당 의원들과 자주 부딪혔다.[10] 전임 린든 B. 존슨 사퇴(부통령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