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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16:40:29

존 카제일

존 카제일
John Cazale
파일:존 카제일.jpg
이름 존 홀랜드 카제일
John Holland Cazale
출생 1935년 8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리비어
사망 1978년 3월 13일 (향년 42세)
미국 뉴욕 주 뉴욕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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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영화배우
활동 (1959~1978)
신체 179.1cm
가족 아버지 존 카제일[1]
어머니 세실리아 카제일
누이 캐서린 카제일, 동생 스티븐 카제일
1. 개요2. 생애3. 영화 데뷔4. 연극생활5. 여담6.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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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내가 처음 존을 만났을 때 그의 첫인상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는 자신을 남의 마음에 들게 표현했기 때문에 존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려다녔다."
알 파치노[2]
파일:뜨거운 오후 존 카제일.jpg
뜨거운 오후》에서의 모습
파일:존 카제일 대부.jpg
대부》에서의 모습

좋은 연기력을 가지고 쟁쟁한 명작들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로 42세의 나이에 단명했지만 알 파치노 등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다.

2. 생애

존 카제일은 1935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아일랜드계 미국인 어머니와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보스턴 근처 소도시 윈체스터에서 성장을 했고 윌리엄스톤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오하이오 주에 있는 오버린 대학교에서 드라마를 공부했다. 졸업을 할때쯤에는 택시기사로도 일했으며 1959년 보스턴에있는 찰스극장에서 호텔 파라디소와 아워 하우스 연극에 출연하며 데뷔했다. 카제일의 연기를 본 평론가 장 피에르 프랑켄후이는 그를 두고 우스꽝스럽고, 스릴있고, 감동적이며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느낌을 주는 배우를 찾았다고 극찬했다.

3. 영화 데뷔

이후 뉴욕으로 이주한 카제일은 사진기사로 일하다가 연기 일을 찾다가 배우 조합 도서관에서 시드니 하워드 원작의 연극 영광의 길에 출연했다. 1962년 마틴 스턱만이 감독한 단편 영화 "아메리칸 웨이"라는 작품에도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4. 연극생활

카제일이 스탠다드 오일사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고있을때 알 파치노를 처음으로 만났다. 파치노는 훗날 "내가 처음 존을 만났을때 그의 첫인상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는 자신을 남의 마음에 들게 표현하는 매력이 있어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려다녔다"라고 회상한다. 이후 둘은 1966년 이스라엘 호로비츠의 연극 "인도인은 브롱스를 원한다"에 캐스팅 되었으며 코네티컷 주 워터포드 유진 오닐극장에서 연극 공연을 했다. 이후 1968년에 다시 맨해튼에 있는 아스토어 플레이스 극장에서 연기를 선보였고 둘은 오비 어워즈를 수상하게된다[3]

4.1. 프레도 콜레오네가 되다

1971년 맨해튼에 있는 드 리스 극장[4]에서 리처드 드레이퓨스,버나드 휴즈 등과 연극을 하던 중 무려 대부의 캐스팅 디렉터 프레드 로스의 눈에 띄였다. 카제일을 인상깊게 본 로스는 대부의 감독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카제일을 프레도 콜레오네로 캐스팅할것을 건의했고 카제일은 마침내 장편영화에 데뷔를 한다.

대부에서 카제일은 정말 소심하고 찌질한 남자 프레도 콜레오네의 캐릭터를 매우 성공적으로 연기했다. 이후 카제일은 코폴라 감독의 컨버세이션[5]에 출연했다.

4.2. 뜨거운 오후

대부를 찍은 후 1975년 카제일은 알 파치노와 다시 뭉쳤다. 파치노가 연기한 은행강도 써니 워칙의 동료인 살 네처럴리를 연기하였다. 소심하고 찌질한 프레도의 모습과는 반대되는 과묵하고 불안감에 휩싸이는 인물인 살바토레로 분해 연기력에서 다시 한번 호평을 받았다.

4.3. 유작이 되어버린 디어 헌터

훌륭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던 카제일은 1977년 잦은 흡연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폐암선고를 받았고 많은 항암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암세포가 뼈에까지 전이되고 만다. 그럼에도 당시 연인이었던 메릴 스트립의 도움으로 마이클 치미노 감독, 로버트 드 니로, 크리스토퍼 워큰, 존 세비지 그리고 연인이였던 스트립이 참여한 디어 헌터에 출연하게 된다. 치미노 감독은 투병 중인 카제일을 위해서 카제일의 장면들을 먼저 찍게 했지만 끝내 디어 헌터의 개봉을 보지 못하고 1978년 3월 13일 메릴 스트립 곁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5. 여담

파일:존 카제일 메릴스트립.jpg
메릴 스트립과 함께

6. 필모그래피

연도 제목 배역 기타
1962아메리칸 웨이[9]비트닉주연
1968NYPD[10]데이비드 프레스맨주연[11]
1972대부[12]프레도 콜레오네조연
1974대부 2[13]프레도 콜레오네조연
1974컨버세이션[14]스탠조연
1975뜨거운 오후[15]살 네처럴리주연
1978디어 헌터[16]스탠리 스토시주연


[1] 아버지와 아들 이름이 같다.[2] 둘은 대부 1, 2편과 뜨거운 오후에서 함께했었다.[3] 같은해에 카제일은 호로비츠가 쓴 "라인"이라는 연극에서 또다시 오비 어워즈를 수상했다.[4] 현재는 루실 로텔 극장[5] 프렌치 커넥션으로 유명한 진 해크먼이 도청 기술자로 나오는 영화이다.[6] 당시 메릴 스트립은 영화계에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떠오르는 젊은 신인 배우였다. 둘의 나이 차이는 14세.[7] 대부 2편에서 마이클 콜레오네가 카제일이 맡은 프레도 콜레오네에게 외친 명대사에서 가져온 제목.[8] 장편 극장개봉작품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그렇다. 물론 이런 필모를 가질 수 있던 것은 그가 이른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이다.[9] 마빈 스턱만이 감독한 짧은 영화이다.[10] 60년대 뉴욕경찰을 소재로 한 드라마[11] 에피소드 The Peep Frank에 출연했다.[12]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13]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14]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15] 감독 시드니 루멧[16] 감독 마이클 치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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