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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4:53:03

조지프 코니

1. 개요2. 일생
2.1. 몰락
3. Invisible Children과 KONY 2012
3.1. 조작 논란
4. 여담

1. 개요

Joseph K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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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테러 조직인 신의 저항군(Lord's Resistance Army, LRA)의 지도자. 지금은 완전히 몰락했으나 한때는 현존하는 세계 최악의 전범 중 한 명으로 반드시 꼽힐 정도로 잔혹하기 그지없던 반군 지도자였다.

2. 일생

1961년에 태어난 그는 어려서 교회의 복사로 일할 정도로 신심이 깊었으나 15살부터 교회를 등지고 아프리카의 주술사였던 형 아래서 몇 년간 견습생활을 하다 형이 사망한 후 그 동네의 주술사로 몇 년간 일하기도 했다.

1986년 우간다의 폭군을 내쫓겠다는 일념하에 반군을 조직해 정부군에 대항하기 시작했다는데 더한 폭군이 됐다. 현재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인간백정에 의해서 1986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2백만 명의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고 66,000명의 아동이 소년병이 되었다고 한다. 2007년에는 무려 88명의 첩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전해지며 첩들과의 사이에서 자식은 2006년에 확인된 바에 따르면 44명으로 추정된다.[1]

그렇게 26년 동안 6만 명이 넘는 아이들을 납치해 남자아이들은 소년병으로 만들고 여자아이들은 성 노리개로 만들었다. 여기까지 해도 이미 최악이지만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훼손하고 친부모를 살해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어린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배반할 기색이 보이거나 절대 복종하지 않을 경우 가차없이 죽이거나 코, 입술, 귀를 칼로 잘라버리는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 모든 만행들은 사상, 이상이라고는 일절 없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저질러지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조약을 하는 척 하고 상대 세력을 공격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사이비 교주의 행태도 보이는데 스스로 신의 예언자라고 하면서 신의 음성을 듣는다고 주장해 왔다고 한다.

그는 이런 주제에 스스로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그의 악행은 교회를 등지고 주술사로 일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다르푸르 학살을 저지른 수단의 도살자 오마르 알 바시르[2]가 그를 지지하고 무장 및 병참 등을 후원하면서 서로 친하게 지냈다.

2.1. 몰락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상기한 만행들은 현 시점에서는 이미 과거의 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LRA는 이전의 위세를 완전히 잃은 소규모 반군으로 전락했다.

한때는 LRA 반군의 숫자가 10만 명이 넘을 정도로 강력했으나 국제범죄인 법정에서 그를 범죄자로 지정한 후 미국이 특수군 100명을 파견해 우간다 정부와 함께 반란군 색출 작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고 한다.

LRA 세력은 2005년에 우간다에서 추방된 후 2007년에는 500~3,000명으로, 2011년에는 300~400명으로 이전에 비해 완전히 축소된 상태였고 2013년 알려진 보도에 의하면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라고 전해지며 우간다 옆에 있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 미셸 조토디아가 자신이 그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현재까지도 항쟁을 고집하고 있는 걸 보면 별 성과가 없는 듯 하다.

2017년 4월에는 LRA 병력이 고작 100명 정도로 축소된 상태였으나 2022년 1월 기준으로는 200~1,000명으로 증가하긴 했다.[3] 그러나 이 시점 기준으로 LRA 병력은 뿔뿔이 흩어진 데다 그와 긴밀하게 접촉하지도 않아 이전의 위세는 사실상 완전히 잃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

2005년경에 그는 오마르 알 바시르의 도움을 받아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으로 도피하고 후술할 것처럼 죽었다고 착각하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로 철저히 은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생존 중인 데다 다르푸르에서 LRA 병사들에게 계속해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2024년 4월 코니의 근황이 전해졌다. 예멘이라는 마을에서 10마일 떨어진 캠프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같은 달에 정부군에 LRA 구성원 14명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그너 그룹은 코니의 캠프를 공격했고, 이에 코니와 그의 부하 71명은 수단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

물론 LRA가 몰락한 뒤에도 우간다의 전망이 좋게 변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LRA가 없어진 자리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고 있는 연합 반군 ADF가 치고 들어와서 지금까지도 각종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

3. Invisible Children과 KONY 2012

미국의 캘리포니아 출신 영화 제작자였던 제이슨 러셀 등이 만든 단체 Invisible Children은 우간다에서 벌어지는 그의 범죄행위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미 정부에 압력을 넣어 그를 체포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원래 이들은 이 참상을 보고 미국 정부의 사람들에게도 말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쪽에 대해 미국 정부의 변명을 하자면 당시 미군은 양질의 병력이 모자랐긴 하다.[4]

유튜브에 올라온 'KONY2012' 영상
유튜브에 올라온 'KONY2012'의 한국어 자막 버전

위 영상은 2012년 3월 5일에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으로, Invisible Children에서 제작한 영상이다. 제목은 'KONY 2012'로, 그의 범죄행위를 널리 알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영상 자체는 매우 잘 만들어졌으며 상당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3.1. 조작 논란

영상이 발표된 후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A)는 "반군에 의한 납치와 살인을 과장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조작했다", "우간다 군이나 수단 인민해방군(SPLA)도 강간, 약탈 등의 혐의를 받지만 영화는 오히려 이들을 옹호하고 있다"면서 "코니만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우간다 소녀의 반론 영상
'KONY2012'를 비웃는 영상(한글 자막)

첫 번째 영상은 2012년 3월 7일에 게시된 유튜브 영상으로 자신이 100% 우간다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소녀의 주장을 담고 있다. 역시 대단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2010년에 부모가 있는 우간다에 다녀온 적이 있으며 아무도 코니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련된 반군 활동을 본 적도 없다고 하며 KONY2012 영상을 보고 부모에게 여쭈어 보자 '왜 옛날 이야기를 하느냐'며 웃었다고 한다. 부모의 말에 따르면 6년 전부터 이미 그의 반군 활동이 없었으며 코니는 5년 전에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5][6]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Invisible Children이 기부받은 금액의 31%만이 우간다 지원에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내용은 모두 위 영상의 주장에 따르는 이야기들이며 우간다인이라고 주장하는 소녀의 신원이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에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할 것.

그러나 KONY 2012 영상 자체에서도 모순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의 활동 지역이 우간다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이미 말했음에도 우간다에 대한 지원을 주장하는 점이다. 그가 이미 죽었다는 의혹에 대해서[7] 언급이 너무 없다는 점도 의심을 부추기는 면이 있으며 기부금과 수익금의 사용내역에 투명성 문제를 지적받기도 한다. 게다가 종이에 뭐라도 적어놨는지 계속 아래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미심쩍다는 주장도 있다.

조회수 조작이 유튜브에 의해 적발되어 1억이 넘어갔던 본 동영상 조회수가 1억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4. 여담



[1] 여담으로 한 아들 이름이 "조지 부시"라고 한다.[2] 이쪽은 코니와는 정반대로 가혹한 샤리아 법률로 나라를 통치했을 정도로 독실한(?) 무슬림이었다.[3] 물론 그것도 전성기에는 10만이 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완전히 몰락한 셈이다.[4] 실제로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전쟁으로 꽤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명백한 이국 땅에서 이국의 테러리스트 체포 활동을 하기에는 힘이 부족할 수도 있었지만 이 영화로 여론이 들끓은 탓인지 코니의 체포를 위한 팀을 보냈다고 한다.[5] 실제로 2005년 이후 LRA는 우간다에서 쫓겨나는 등 세력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코니가 수단으로 도피해 2023년 기준으로도 철저히 은거 생활을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코니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다.[6] 이와 비슷하게 프랑수아 뒤발리에 시기에 아이티정치범수용소인 '포트 디망슈'의 소장을 역임하며 코니 못지않은 잔혹성을 보여주던 막스 아돌프 부인도 1986년에 뒤발리에의 아들로서 권력을 세습받은 장클로드 뒤발리에가 축출된 후 미국으로 도피해 공식적으로는 '행방불명'으로 처리될 정도로 철저히 은거 생활을 하다가(그녀 역시 코니처럼 '1986년에 이미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2018년 11월 18일에 미국 조지아주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코니조차 상상도 못할 수준의 학살인 킬링필드를 주도한 폴 포트도 1979년에 민주 캄푸치아 정권이 붕괴된 후에는 1997년까지 거의 20여년간 서방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캄보디아의 정글로 도피해 게릴라전을 벌였기 때문에 한동안 사망설이 돈 바가 있다.[7] 전술했듯 이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코니가 워낙 은거 생활을 철저히 했기 때문에 착각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