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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3:11:50

제6SS산악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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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친위대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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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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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무장기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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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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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룽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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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0> 제6SS산악사단 '노르트'
6. SS-Gebirgs-Division „Nord“
파일:제6SS산악사단 엠블럼.svg
창설일 1941년 9월
해체일 1945년 5월
소속 무장친위대
규모 사단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2. 역사
2.1. 은색 여우 작전2.2. SS 산악사단의 탄생2.3. 1944년의 후퇴전2.4. 서부전선
3. 편제

[clearfix]

1. 개요

무장친위대의 산악사단이다.

2. 역사

1941년 11월 30일, 다하우에서 각각 3개 대대를 가지고 SS 제6과 제7 해골연대가 편성되었다. 해골부대는 원래 수용소경비부대였고, 대원은 예비역인 30~40대의 노병이었으나 1940년 4월에 17~18세의 신병으로 교체되었다. 5월 시점에서 양 해골연대의 병력은 장교 92명, 하사관 845명, 병 3,853명이었다. 1940년 4월말, 양 해골연대는 점령된 노르웨이로 수송되어 경찰보조부대로서 치안임무를 맡았으나 무기의 대부분은 체코제였고, 차량수도 충분치 못했다. 1941년 2월 24일, 양 해골연대는 1개 통신대대를 보강하여 전투단 'Nord'가 되었고, 3월에 양 해골연대는 SS 제6 보병연대(SS6R)과 SS 제7 보병연대(SS7R)로 개칭되었고, 공병중대와 정찰대대, 2개 포병중대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핀란드령 라플란드 방면의 로바니에미 부근에 진주한 후(당시 핀란드는 북노르웨이에 진주한 독일군의 영내 통과를 인정하였다.), 포병 2개 대대와 1개 2cm고사포중대, 보급부대가 추가되어,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5일 전인 1941년 6월 17일에 SS 사단 '노르트(Nord)'로 개칭되었고, 사단장으로 카를 마리아 데멜후버(Karl Maria Demelhuber) SS 소장이 임명되었다.

2.1. 은색 여우 작전

은색 여우 작전에서 노르웨이군의 임무는 멕시코만 난류의 영향으로 부동항인 무르만스크 점령과 무르만스크~칸달락샤~로우히까지의 철도로 차단이었고, 에두아르트 디틀(Eduard Dietl) 대령 휘하의 산악군단은 무르만스크 방면, 한스 피게(Fiege) 휘하의 36군단은 칸달락샤 방면, 핀란드 제3군단은 로우히 방면에서 각각 서진하는 3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하는 작전이 채택되었다.

SS사단 '노르트'는 바이게 대령 휘하의 제36 군단에 배속되어 제169 보병사단과 함께 1941년 7월 1일 14시에 디틀 산악군단의 400km 남쪽에서 행동을 개시하여 발진거점인 사라를 공격, 7월 8일에 이곳을 점령하였으나, 이 초전에서 전사 및 행방불명 261명, 부상 307명의 손실을 기록했다. 7월 21일 현재의 사단병력은 장교 325명, 하사관 1,110명, 병 8,000명이었다.

이후 사단 내의 SS7R 제Ⅰ, 제Ⅱ대대와 SS 정찰대대 이외의 부대는 남핀란드 제3군단에 배속되어 8월 상순에 키에스팅 공략에 참가하였으나 손실은 엄청나서 SS6R 제Ⅰ, 제Ⅲ대대는 합계 450명의 전사자가 나왔다. 8월 11일에는 SS6R 제Ⅱ대대와 SS7R 제Ⅲ대대가 철도까지 35km 지점인 강카샤와라에 도달하였으나 그것이 한계점이었다. 또한 제36군단에 배치된 SS7R 제Ⅰ대대 이외의 부대도 8월 28일 철도로부터 36km 앞인 아라쿨티를 공략하였으나 공격은 결국 막히고 9월에는 강카샤와라에서 우수한 장비를 보유한 시베리아 부대와 사투를 벌인 후 사단 주력과 합류하였다. 9월 23일, 무르만스크에는 첫 눈이 내렸고, 이후 사단은 핀란드 보병사단 'J'(역주:J사단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제3사단에 속한 J전투단이다)와 함께 키에스팅~로우히의 그도른 방어선에서 월동 준비에 들어가 영하 30~40도의 극한의 겨울을 보냈다.

2.2. SS 산악사단의 탄생

1942년 4월 23일, 제23친위사단, 제186저격사단, 제80해병여단, 제8스키여단에 의한 소련군의 반격이 개시되어 사단의 좌익에 맹공이 가해졌다. 4월 29일 밤에는 일부 전선이 돌파되어 키에스팅 남쪽에 적부대가 육박하여 보급부대가 긴급히 전선에 투입되어 키에스팅 전방 1.5km 지점에서 겨우 저지할 수 있었다. 이후, 핀란드 보병사단 'J'와 군단 예비의 제139 산악엽병연대 공동의 반격작전에 의해 5월에는 다시 전선을 안정화 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942년 6월 1일, SS사단 '노르트'는 SS 산악사단 '노르트'로 개칭되었고, 재편성이 시작되었다. SS사단 '다스 라이히(Das Reich)'의 사단장으로 르제프에서 동계방어전의 공적을 인정받아 기사십자장을 수여한 바 있는 마티아스 클라인하이스터캄프(Matthias Kleinheisterkamp) SS 소장이 새로이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42년 10월 3일부 편성은 아래와 같다.

장비한 병기로는 기관단총 1,013정, 기관총 574정, 중박격포 94문, 화염방사기 30기, 대전차총 86정이 있었고, 마필 3,240두, 병력 21,075명으로 충실하며 다른 산악부대와 비교하여 포병화력이 아주 뛰어났다.

2.3. 1944년의 후퇴전

1942년에는 4월과 5월 이외는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지 않았고 오로지 소규모 전투만이 계속되었다. 1942년 1월 1일~12월 31일의 사단 전사자수는 장교 12명, 병 및 하사관 277명을 넘지 않았다. 1943년이 되어서도 그도른 방어선은 조용하였고, 1943년 10월 22일부로 사단은 SS 제6 산악사단 'Nord'로서 사단번호 6이 주어졌다. SS6GR은 SS 제11 산악엽병연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SS11GJR), SS7GR은 SS 제12 산악엽병연대(SS12GJR)(1944년 6월 12일부로 '미하엘 가이스마이어(Michael Gaissmair)'의 칭호 수여)로 개칭되었다.

1944년에 들어서 지루한 참호전 속에 SS 제6 산악사단의 전선 진지는 놀랄만큼 강화되어 병사, 사우나 설비, 영화관, 인쇄소까지 장비하게 되었다. 그러나 핀란드와 소련이 분리강화를 상정하여, 핀란드에 주둔중인 독일군은 적중을 돌파하여 스웨덴 국경까지 후퇴한다는 철수작전 '빌케'가 비밀리에 준비되었다. 1944년 9월 5일, 마침내 핀란드는 소련과 분리강화를 맺었고, '빌케' 작전이 발동되었다. 사단은 여러번 적부대에 포위되었으나 그때마다 돌파하여 제13 산악군단의 후위부대로서 힘든 철수전을 개시하였다. 9월 17일에 SS11GJR 제Ⅱ대대, SS 제6 포병연대 Ⅳ대대, 4연장 20mm 고사포중대가 적의 두터운 포위망에 빠졌으나 귄터 데겐(Guenther Degen) SS 대위 휘하의 SS11GJR 제Ⅰ대대의 야습으로 구출되었다. 대위는 이 공으로 1944년 10월 7일부로 사단 3번째로 기사십자장을 수여하였다. 또한, 이 후퇴전에서 SS12GJR 연대장 프란츠 슈라이버(Franz Schreiber) SS 대령과 사단장 카를 하인리히 브레너(Karl-Heinrich Brenner) SS 중장이 기사십자장을 수여하였다. 이후 사단은 케미, 로바니에미, 칼렉산드를 경유하여 1944년 12월 노르웨이의 나르비크에 도착하였고, 12월 18일 수송선을 타고 덴마크로 보내졌다.

2.4. 서부전선

도착하자마자 사단은 아르덴 대공세의 지원작전인 '노르트빈트(北風)' 작전을 위해 추출되었다. 먼저 SS12GJR을 중심으로 슈라이버 전투단이 편성, 12월 24일 알자스 전선의 제84 군단에 배속되어 1월 1일부터 비취 부근의 공세에 투입되었다. 사단의 잔여도 1월 10일에는 합류하여 당초 미 제45 보병사단 제17 연대의 5개 중대를 포위, 항복케 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곧 공세는 막히고, 1월 28일 작전은 중지되었다. 1945년 3월 6일부터 사단은 트리어(Trier) 부근의 반격작전에 투입되어 트리어에서 남방 6km 지점인 페링겐 근교까지 이르렀으나 최종적으로는 격퇴되었다. 이 작전에서 사단의 사상자는 500명을 넘었고, 돌격포 6량, 중대전차포 5문을 잃었다. 이후, 사단은 동쪽으로 후퇴를 개시하여 보팟에서 라인강을 도하하였다. 하지만 슈라이버 전투단은 서안에 남아 3월 24일까지 저항하다 미군에 항복하였다.

낯선 서부전선에서의 연속된 작전 투입과 거듭되는 공습, SS12GJR의 전멸로 사단 병력은 격감하여 라인강을 도하한 직후의 병력은 겨우 2,000명 정도였고 중화기는 경야포 16문, 대전차포 12문, 돌격포 수량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1945년 3월 24일, 미 제1군은 루르 포위를 목표로 레마겐 교두보에서 출발하였다. 프랑크푸르트 서북의 린부르크 방면에 전개한 사단 방어선은 순식간에 돌파되었고, 연료 부족으로 기동성이 없던 사단은 선봉인 미 3개 전차사단 등에 눈깜짝할 사이 포위되었다. 4월 1일, 사단 주력은 산악포 6문, 대전차포 3문, 돌격포 1량, 노획전차 2량과 함께 라이젠발트 방면으로 돌파를 시도하여 성공하였으나, 곧 미 제7전차사단 등에 다시 포위되어 사단은 소규모 인원으로 나뉘어 서쪽으로 탈출하였다. 1945년 4월 9일, 살아 남은 최후의 SS 산악엽병 총 300명이 뉘른베르크에 어렵사리 도착하여 편성중인 SS 제38 척탄병사단 '니벨룽겐'에 배치되어 운명의 5월 8일을 남바이엘른에서 맞이하였다.

SS 제6 산악사단은 핀란드의 라플란드 전선에서 오랫동안 참호전을 펼친 평범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격전의 척도인 기사십자장 수여자도 6명으로 작았고, 이것도 1944년 8월 이후에 수여한 것이다. 1년의 대부분을 얼음과 눈 속에서 지루하고도 기나긴 참호전을 벌인 후, 사단은 서부전선의 공습과 포격, 전차전의 바로 한복판으로 내몰려져 한여름의 얼음과 같이 순식간에 포연 속에서 소멸하고 말았다.

3. 편제



[1] 체코제 브루노 중기관총의 대공용 개조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