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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워릭 백작 에드워드 플랜태저넷

<colbgcolor=#D5E5DC><colcolor=#000> 제17대 워릭 백작
에드워드 플랜태저넷
Edward Plantagenet, 17th Earl of Warwick
파일:Edward Plantagenet, 17th Earl of Warwick.jpg
이름 에드워드 플랜태저넷
Edward Plantagenet
출생 1475년 2월 25일
잉글랜드 왕국 워릭셔 워릭
사망 1499년 11월 28일 (향년 24세)
잉글랜드 왕국 런던 탑
아버지 클래런스 공작 조지 플랜태저넷
어머니 이사벨 네빌
형제 마거릿
직위 제17대 워릭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3.1. 조상

1. 개요

잉글랜드 왕국 요크 왕조의 왕자. 에드워드 4세의 형제인 클래런스 공작 조지 플랜태저넷의 외아들로 헨리 7세 재위 기간 동안 잠재적인 왕위 도전자로 인식되어 런던 탑에 감금되었다가 헨리 7세를 축출할 음모를 꾸민 혐의로 처형되었다. 에드워드 플랜태저넷의 죽음으로 요크 왕조, 더 나아가 플랜태저넷 왕조의 직계 남성 계통은 단절되었다.

2. 생애

1475년 2월 25일, 잉글랜드 왕국 워릭셔 워릭에서 클래런스 공작 조지 플랜태저넷제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의 장녀인 이사벨 네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에게는 세 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마거릿만이 성인이 되었고 훗날 헨리 7세의 즉위 후 왕의 이종사촌인 리처드 폴과 결혼한 뒤 막대한 영지와 재산을 누리다가 세 아들이 헨리 8세의 종교 개혁에 반대하고 왕을 축출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그들의 배후로 지목되어 처형된 뒤 1886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순교자로 시성되었다.

에드워드가 두 살도 안 되었을 때 어머니 이사벨 네빌은 1476년 12월 22일 차남인 리처드를 출산한 직후 사망했고 1477년 1월 1일 리처드도 사망했다. 클래런스 공작은 아내가 독살당했다고 확신하고 하인 두 명을 처형했다. 그 후 클래런스 공작은 형 에드워드 4세를 상대로 반역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당했고, 결국 1478년 2월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으며 그의 모든 재산과 작위는 몰수되었다. 에드워드는 나중에 외할아버지의 워릭 백작 작위를 물려받았지만, 에드워드 4세는 이는 예의상의 작위일 뿐이라며 재산과 영지를 반환하지 않았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급사했다. 에드워드 4세의 장남 에드워드 5세가 잠시 새 왕이 되었지만, 곧 호국경으로서 어린 왕을 대신해 다스리던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에게 축출되었고 글로스터 공작이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3세로 등극했다. 1483년 9월, 에드워드는 리처드 3세와 앤 네빌 부부의 왕실 순방에 따라갔고 요크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 대관식을 치른 뒤 리처드 3세는 에드워드를 비롯한 조카들을 요크셔의 셰리프 허튼으로 보냈다. 에드워드의 어머니 이사벨 네빌의 여동생으로 언니와 사이가 좋았던 앤 네빌은 조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려 노력했다. 1484년 7월, 리처드 3세는 북부 지방을 통치하기 위해 북부 의회를 설립했고, 당시 아홉 살이었던 에드워드를 위원으로 포함시켰다.

1484년 4월 리처드 3세의 유일한 적자인 미들햄의 에드워드가 죽은 후 왕위 계승 문제가 급부상했다. 일부 사료에 따르면 왕비 앤 네빌은 리처드 3세에게 자신의 조카인 워릭 백작을 추정 상속인으로 지명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앤 네빌이 1485년 3월에 죽은 후 리처드 3세는 차기 왕위 계승자로 자신의 누나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아들인 존 드 라 폴을 점찍고, 그를 역대 잉글랜드 왕위 후계자가 맡았던 콘월 공국의 세입 관리관이자 아일랜드 부왕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리처드 3세는 새로운 후계자의 선임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1485년 8월 22일, 리처드 3세보스워스 전투에서 전사한 뒤 헨리 7세가 새 국왕이 되면서 요크 왕조가 몰락하고 튜더 왕조가 개창되었다. 헨리 7세는 요크 왕조의 마지막 남은 직계 남자 왕족으로 자신보다 왕위계승권이 앞서는 워릭 백작 에드워드가 요크파를 결집시켜 자신을 위협할 지도 모른다고 경계해서 에드워드를 런던 탑에 가뒀다. 다만 에드워드는 워릭 백작 작위를 유지했다. 1486년, 요크파 잔당은 램버트 심넬을 런던 탑에 갇혀 지냈다가 사망하거나 탈출했다는 소문이 나돌던 워릭 백작과 동일인물로 내세우며 헨리 7세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놀란 헨리 7세는 1487년 2월에 워릭 백작을 런던 탑에서 임시로 끌어낸 뒤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온종일 세움으로써 런던 시민들이 요크파가 내세운 자가 가짜라는 걸 분명히 인지하게 했다. 그 후 에드워드는 도로 런던 탑에 감금되었다.

1490년, 애빙던 수도원장이 워릭 백작을 풀어주려는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처형되었다. 또한 프랑스에 있던 엑서터 출신 상인 존 테일러는 튜더 왕조에 복무했던 존 헤이스에게 편지를 보내, 프랑스 국왕 샤를 8세가 워릭 백작과 그의 모든 지지자들에게 돈과 군대 등 가능한 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거라고 약속했다. 1491년, 퍼킨 워벡이라는 자가 자신을 에드워드 4세의 차남인 슈루즈버리의 리처드 왕자라고 주장하며 잉글랜드 왕실을 위협했다. 그는 수년간 헨리 7세에 대적했다가 1497년 끝내 체포된 뒤 런던 탑에 감금되었다. 퍼킨 워벡은 자신이 사기꾼임을 인정하고 런던 탑에서 풀려난 뒤 궁정에서 환대를 받았다가, 18개월 후 탈출을 시도했지만 다시 붙잡혀 런던 탑에 갇혔다.

런던 탑에 감금된 퍼킨 워벡과 에드워드는 서신을 주고받았는데, 이 때문에 퍼킨 워벡이 탈옥을 다시 시도한 사실이 드러나 체포되었을 때 에드워드도 연루되었다. 1499년 11월 21일, 에드워드는 제13대 옥스퍼드 백작 존 드 베레가 주재하는 귀족 법정에 출두했다. 법정 문서에 따르면 퍼킨 워벡은 또 다시 자신을 왕이라고 선포했고 에드워드는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퍼킨 워벡의 이름 아래 아버지의 지지자들을 소집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에드워드가 관여했다는 건 날조라고 여겼지만 이미 어릴 때 끌려가 무려 15년간 런던 탑에 갇혀 지내면서 정신 상태가 불안정해진데다[1]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던 에드워드는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이 선고된 지 6일 후인 1499년 11월 28일, 워릭 백작 에드워드는 런던 탑의 타워 힐에서 참수되었다. 그의 시신과 수급은 버크셔의 비삼 수도원에 매장되었다.

워릭 백작 에드워드 플랜태저넷의 처형은 헨리 7세의 장남 아서 튜더아라곤의 카탈리나의 결혼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발생했다. 동시대의 수많은 역사가들은 워릭 백작의 처형은 카탈리나의 부모인 페란도 2세이사벨 1세가 예비 사위의 지위와 통치를 잠재적으로 위협하는 워릭 백작을 제거하라고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에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훗날 아라곤의 카탈리나는 유산과 사산을 비롯한 자신의 고난을 시아버지 헨리 7세가 워릭 백작을 억울하게 죽인 데서 비롯되었다고 여겼다고 한다.

3. 가족 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제17대 워릭 백작 에드워드 플랜태저넷
(Edward Plantagenet, 17th Earl of Warwick)
<colbgcolor=#fff3e4,#331c00> 클래런스 공작 조지 플랜태저넷
(George Plantagenet, Duke of Clarence)
<colbgcolor=#ffffe4,#323300> 제3대 요크 공작 요크의 리처드
(Richard of York, 3rd Duke of York)
제3대 케임브리지 백작 코니스버러의 리처드
(Richard of Conisburgh, 3rd Earl of Cambridge)
앤 모티머
(Anne Mortimer)
세실리 네빌
(Cecily Neville)
초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
(Ralph Neville, 1st Earl of Westmorland)
조앤 보퍼트[2]
(Joan Beaufort)
이사벨 네빌
(Isabel Neville)
제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
(Richard Neville, 16th Earl of Warwick)
제5대 솔즈베리 백작 리처드 네빌
(Richard Neville, 5th Earl of Salisbury)
제5대 솔즈베리 여백작 앨리스 몬터규[3]
(Alice Montacute, 5th Countess of Salisbury)
제16대 워릭 여백작 앤 뷰챔프
(Anne Beauchamp, 16th Countess of Warwick)
제13대 워릭 백작 리처드 뷰챔프
(Richard Beauchamp, 13th Earl of Warwick)
이사벨 르 디스펜서[4]
(Isabel le Despenser)

[1] 연대기 작가인 에드워드 홀에 따르면 워릭 백작 에드워드는 "인간과 소통하지 못하고 동물도 보지 못한 채 너무 오랫동안 감금되어서 거위와 수탉을 구별할 수 없었다"라고 한다.[2]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딸.[3] 제4대 솔즈베리 백작 토머스 몬터규의 딸.[4] 초대 글로스터 백작 토머스 르 디스펜서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