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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들 세 나라와 비교하였을 때 베트남이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나라인지라 분명 열세였지만, 정작 전쟁에서 이들을 격파하고 승리했기 때문에 현재 베트남인들은 인도차이나 전쟁을 엄청난 자랑거리로 여기며 자부심을 가지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트피플도 많이 발생했고, 수용소에 끌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기 때문에 남부 베트남인, 베트남 화교, 몽족, 참족 사람들 앞에서는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2]
2.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독립전쟁)
자세한 내용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
3.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전쟁)
대부분 사람들이 6~70년대 월남전쟁이라고 하면 아는 그 전쟁이다.미군의 베트남 파병으로 인해 미국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남베트남을 수호하려던 미국은 결국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근 20년에 달하는 끈질긴 공세와 저항에 지치게 되고, 국내의 반전여론에 밀린 미국은 1973년 남베트남을 포기하고 미군을 철수하게 된다. 미군이 철수한 남베트남의 군대는 무능한 지휘만을 드러내며 북베트남의 공세에 패배해 패망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
4.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
인도차이나 반도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였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전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19년 동안의 전쟁을 마치고 통일된 베트남은 다시 한번 인도차이나의 패권을 노리고, 민주 캄푸치아(그 당시의 캄보디아)와 충돌하게 된다. 베트남과 민주 캄푸치아는 국경 분쟁을 벌이게 되고 이는 베트남의 민주 캄푸치아 침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침공의 영향은 태국과 중국에게 까지 번졌다. 캄보디아를 손쉽게 점령한 베트남과 그에 대항하던 크메르 루주는 베트남으로 부터 도망가기 위해 태국 국경으로 도망쳤고 베트남군은 크메르 루주군은 추격하기 위해 태국에 포격을 가하고 침공까지 했다. 이에 중국은 베트남이 동맹국인 캄보디아를 침공했다는 명분으로 베트남 북부를 침공하고 태국과 크메르 루주를 지원했다. 베트남군은 중국군과 교전을 벌이다 중국군은 결국 군대를 철수했고 태국 또한 크메르 루주와 함께 베트남군을 몰아내려다 베트남군이 자진 철수했다.자세한 내용은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
[1] 비슷한 사례로 아프간 전쟁도 있다. 아프간 상대로 미국, 영국, 소련은 굴욕적으로 물러났지만 영국은 그나마 보호국화해서 잠시 영향력을 행사한데다 아프가니스탄이 완전히 독립한 수 있었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의 힘이 빠진 틈을 노린 것이었으니 유일하게 성공을 한 국가였다.[2] 이런 이유로 베트남인 이주자가 많던 미국등에서는 베트남 전쟁 얘기 할 때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