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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602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양나라 | 수나라 | ||||
위치 | 베트남, 중국, 라오스 | ||||
정치 체제 | 군주제 | ||||
국성 | 이(李)[2] | ||||
국가 원수 | 황제 | ||||
주요 황제 | [ 펼치기 · 접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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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북조시대 말기에 현 베트남 북부에 잠시동안 들어선 왕조이다. 그래도 단명왕조 치고는 60년 가까이 꽤나 장수하긴 했지만 이건 당시 남조의 상황이 좋지 않기도 했고[5] 또 치세 대부분이 3대 황제인 리펏뜨의 치세였으며 초대 황제인 리비 사후 두 명의 황제가 병립하여 20년 넘게 대립하는 등 상당히 불안정한 국가였다.[6]2. 국호
- 만춘(萬春): 544년 건국당시 국호. 베트남어로 Vạn Xuân/반 쑤언으로 발음된다.
- 야능(野能): 548년 변경된 국호. Thiên Đức/티엔 둑으로 발음된다.
3. 역사
건국군주인 리비(李賁 이분)는 지역 토호 출신으로 7대조때 전한 말의 혼란을 피해 이주한 사람이다. 당시 그는 양나라에서 벼슬을 했으나 전란이 벌어지자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당시 황족이자 교주 지사인 소자는 폭정을 벌였고 이에 리비는 541년, 참파가 교주를 공격한 틈을 타 채준, 조숙 등과 큰형인 리티엔바오(李天寶 이천덕)와 리펏뜨(李佛子 이불자)와 함께 소자를 공격해 몰아냈고 참파의 공격도 마아냈다. 이후 541년 용편을 수도로 하여 전 리 왕조를 세우게 되었고 양나라를 공격하며 세를 늘렸으며 544년에는 자신을 남월제라 칭하고 국호와 연호를 정했다. 그러나 546년에 리비는 진패선과의 전쟁에서 패배했으며 548년 4월 13일에 사망했고 황위는 리티엔바오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리티엔바오는 스스로를 도랑왕이라 칭하며 국호를 자넝이라 고쳤다. 그러나 진패선과의 전쟁에서는 계속해서 패하였으나 550년에 양나라에서 후경의 난이 벌어지자 진패선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리티엔바오는 용편을 재장악하였다.555년에 리티엔바오는 사망하였고 황위는 리펏뜨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리펏뜨는 봉주를 도읍으로 하였으며 대립하던 군주인 찌에우꽝푹과의 대결을 지속하였고 마침내 571년에 그 세력을 멸했다.
하지만 전 리 왕조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수나라를 세우고 천하통일을 이룬 수문제가 전 리 왕조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601년에 수문제는 유방과 경덕량 등을 보내어 전 리 왕조를 공격했고 유방이 리펏뜨에게 항복을 권하니 리펏뜨는 항복하여 전 리 왕조는 멸망했다. 항복한 리펏뜨는 수나라의 수도로 끌려간 뒤 처형당했다.
4. 역대 황제
대수 | 시호 | 휘 | 연호 | 재위기간 |
1대 | 전리남제(前李南帝) | 리비 | 천덕 | 544년 ~ 548년 |
2대 | 조월왕(趙越王) | 찌에우꽝푹 | 548년 ~ 571년 | |
2대 | 도랑왕(桃郎王) | 리티엔바오 | 548년 ~ 555년 | |
3대 | 후리남제(後李南帝) | 리펏뜨 | 555 ~ 602년 |
5. 둘러보기
베트남의 역사 | ||||
양나라 | 반 쑤언 | 수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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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44년부터 548년까지는 만춘(萬春, Vạn Xuân) 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2] 현지 발음으론 '리'.[3] 왕조 개창자.[4] 전 리왕조 마지막 황제.[5] 애초에 전 리 왕조의 성립 자체가 양무제 말기의 좋지못한 양나라의 상황을 이용한데다 양나라를 멸하고 들어선 진나라 또한 초기에는 수도 근방 외에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고 중기에는 북주에게 후기에는 암군 진숙보의 통치와 수나라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진나라는 공통적으로 남조 국가들 중에서 가장 강역이 좁았는데 양나라에서 진나라로 교체되던 시기에 파촉 지역을 잃어 오나라 말기처럼 국가를 지키는게 상당히 버거워졌다. 그나마 북쪽도 북주와 북제로 갈라져 있었기 망정이지 그마저도 아니었다면 더 빨리 무녀졌을 수도 있다. 실제로 북제가 몰락하는 틈을 타 장강 이북의 영토를 일시 수복하기도 했으나 북제를 멸한 북주에게 단 4년만에 모두 잃고 말았다.[6] 물론 베트남사가 불안정성으로 많이 점철되긴 했다. 독립 이후 세워진 응오 왕조, 딘 왕조, 전 레 왕조는 모두 단명했으며 리 왕조에 들어서야 안정되었다. 문제는 리 왕조도 300년을 가지 못했고 쩐 왕조는 120여년 정도밖에 유지되지 못한 채 호 왕조에게 멸망했고 호 왕조는 존속기간 내내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겨우 7년만에 명나라에게 멸망, 그 다음 들어선 후 레 왕조는 100년만에 멸망하고 막 왕조가 들어서며 이후 후 레 왕조 부흥운동이 일어나나 이것도 분열하여 찐씨 정권과 응우옌씨 정권으로 삼분할된다. 이를 깨버린게 떠이선 왕조였지만 떠이선 왕조도 30년을 못 가고 망하고 응우옌 왕조가 들어서지만 그마저 반세기만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다. 그러다 보니 그래도 비교적 안정기였던 리 왕조 시절이 베트남에서 평가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