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쳇! 저 포도는 아직 익지도 않은 포도라니깐? 먹어 보나 마나 내겐 너무 시어서 맛도 없을 거야. 정 그렇다면 아무거나 가리지 않는 새들이나 실컷 먹으라지"
이솝 우화 중 여우와 포도에서 여우가 나무 높이 열린 포도를 따지 못해서 내뱉은 말이다. 가장 널리, 예전부터 알려진 정신승리 이야기
이솝 우화 중 여우와 포도에서 여우가 나무 높이 열린 포도를 따지 못해서 내뱉은 말이다. 가장 널리, 예전부터 알려진 정신승리 이야기
정신승리(精神勝利 / mental gymnastics[1], copium[2])는 일종의 방어기제로, 본인의 잘못이나 불리한 상황에 대해 반성 내지 책임을 회피한 채 오히려 본인에게 그러한 반성 내지 책임이 필요 없는 긍정적인 상황으로 인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허나 인터넷 용어화된 수많은 다른 단어들이 그렇듯이 정신승리라는 말 역시 원래 뜻을 잃어가며 단순히 인터넷상의 논쟁에서 승리한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논리적 오류를 범하며 승리를 자칭하는 자들을 비방하기 위한 속어가 되었다. 정신승리라는 단어의 오용의 예
2. 유래
정신승리라는 말은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창작한 명소설인 아Q정전(阿Q正傳)에 나온 정신 승리법(精神勝利法)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이 소설 속의 주인공 아Q는 성격이 거의 찌질이에 가까운 인물인데, 길을 가다가 무뢰배를 만나 그들에게 폭행을 당해도 이내 "저 녀석들은 내 아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들에게 찍힌 것뿐이다"라고 정신적 승리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자신 역시도 자기보다 약하거나 힘없는 하층민, 비구니 등을 때리고 비웃는 등 전형적인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무자비한 모습을 보인다.
루쉰은 당대의 중국 민중을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은 이 작품을 "가련한 아Q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보통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상대도 못 하는 중국인들을 다루었다고 하나 그것이 어디 중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인가? 아Q란 모습은 현대인들, 많은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라고 평했다.
아Q는 길을 가다가 불한당에게 자주 얻어터졌는데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넘기곤 했다. 아래를 보자.
나는 버러지다. 결국 저놈들은 벌레를 골려준 꼴밖에 되지 않는다.
↓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
'자기 경멸'을 빼고 나면 남는 건 '첫 번째 사람'뿐이며, 뭐가 됐든 '첫 번째'라는 건 좋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승자이다.
↓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
'자기 경멸'을 빼고 나면 남는 건 '첫 번째 사람'뿐이며, 뭐가 됐든 '첫 번째'라는 건 좋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승자이다.
...좀 얼토당토않은 의식의 흐름이지만 작중에서의 묘사가 실제로 이렇다. '내가 자식 놈에게 맞은 걸로 치자. 세상이 돼먹지 않은 거다' 같은 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실제로는 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이겼다 하여 정신이 승리해서 정신승리라고 한다. 줄여서 육체는 패배했으나 정신은 승리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의미의 자기만족과 비슷하다.
아Q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다 입 밖으로 말했기 때문에 아Q를 놀리던 사람들은 그에게 일종의 정신상의 승리법[3]이 있다는 것을 거의 다 알게 되었고, … (중략) …
그들은 이번에는 아Q도 꼼짝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초도 지나지 않아 아Q도 역시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그는 자기가 자기 경멸을 잘하는 제1인자라고 생각했다. '자기 경멸'이라는 말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제1인자'이다. 장원도 '제1인자'이지 않은가? "네 까짓 것들이 뭐가 잘났냐?"[4]
아Q정전 中
그들은 이번에는 아Q도 꼼짝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초도 지나지 않아 아Q도 역시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그는 자기가 자기 경멸을 잘하는 제1인자라고 생각했다. '자기 경멸'이라는 말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제1인자'이다. 장원도 '제1인자'이지 않은가? "네 까짓 것들이 뭐가 잘났냐?"[4]
아Q정전 中
고집을 끝까지 부려서 이겼다고 생각할 때, 본인의 인물 시세는 크게 하락한다. 이상하게도 완고한 본인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면목을 세웠다고 생각하므로, 이후로 남이 경멸하여 상대해 주지 않으리라고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다. 행복하다 생각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공교롭게도 위의 두 작가는 각각 근대 중문학, 근대 일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대문호들이다. 대문호들부터가 일찍이 정신승리를 경계하고 비판했음을 알 수 있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정신 분석학에 나오는 자기방어 기제 중 자기 합리화(rationalization)에 해당한다.
위 사례들이 이해나 공감하기 힘들다면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가 포도를 따 먹으려 했지만 너무 높이 달려 있어서 따 먹지 못하자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며 지나치려는 대목을 생각하면 쉽다. 이 또한 자신의 상황이 목표를 이루지 못함에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목표물 자체를 폄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는 그렇게 크지는 않은 규모의 사고나 사기 같은 일에 휘말려서 손해를 입었지만 '더 큰 손해를 보지 않았으니 다행이다.'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표현은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 위로 삼아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상상 속의 피해를 피했다는 방어 기제이므로 합리화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 경우 본인의 정신 건강에는 실제로 이롭다.
사실 정신승리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방어 기제에 가깝고,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을 때도 많다. 당연히 인간이 모든 정보나 사건을 처리하며 살아갈 수 없고, 특정 일에 있어서는 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3. 본뜻
아Q정전에서 나온 정신승리는 단순한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자기객관화가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는 행동을 하면서도 자기가 승리하고 있다는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실제로 루쉰이 아Q정전을 통해 비판하고자 한 대상은 중화사상이라는 헛된 자존심에 사로잡혀 시대에 뒤쳐져 고사되어가고 있는 중국 그 자체이다. 단순하게 논쟁에서 상대를 조롱하거나, 반대로 추태를 보이는 사람에게 쓰는 단어가 아니다.자기합리화나 현실부정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보이는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아Q정전이 인간 전반을 비판하는 소설이 아니라 당시의 중국을 비판하는 소설인 이유도 그것이다. 아Q정전에서 묘사되는 아Q의 모습은 식민지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했음에도 여전히 중화사상에 빠져 고사되어가는 중국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중에서 보여지는 아Q의 모습을 보면 명백하다. 아Q는 단순히 자신이 마주한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현실도피를 하는 것이 아니다. 깡패에게 거들먹거려서 자기가 화를 자초해 놓고는 '나는 아들에게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게다가 여인과 어린아이를 희롱하는 불한당인데다가, 혁명당과 관련해서 자기 죽을 짓을 해서 무덤을 파는 인물이다. 실제로 아Q정전을 읽어보면 단순한 자기합리화의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물론 논쟁에서 추태를 보여 놓고 이겼다고 생각하는 행태도 잘못되었지만, 이러한 행태는 자기합리화지, 정신승리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정신승리법이라고 불릴 정도의 행위의 예시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은 정도는 되어야 한다.
VPN을 무적이라고 착각하고 테러 협박 글을 쓰다가 잡혀놓고는, '내가 중요하고 대단한 인물이니 경찰이 나선거다. 하찮은 네놈들은 경찰이 나서지도 않는다.' 라고 자기를 거물이라고 착각한다. 거물이 된 듯한 느낌에 취해 자기가 적은 악플 등 경범죄까지 술술 불어버린 결과 가족에게는 의절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래놓고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가족들이 날 버린 게 아니라 내가 가족들을 버린거다. 내가 이렇게 거물이 되었으니까 감옥 밖으로 나가면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망상에 젖어 있다.
상대를 이겼다는 착각은 정신승리의 핵심이 아니다. 정신승리의 핵심은 지독할 정도의 자기객관화의 결핍이며, 상대를 이겼다는 망상은 자기객관화의 결핍을 매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즉, 단순한 논쟁에서 쓰일 정도로 가벼운 개념이 아니다. 논쟁에서 상대를 이겼다는 착각이나, 자기가 옳다고 억지를 부리는 건 자기합리화지, 정신승리는 아니다.
현실에서 국가단위로 정신승리를 한 사례는 그 유명한 일본 제국이 있다. 도조 히데키는 일본이 미국을 이기가 힘들다는 육군선 군사과의 보고를 받자 아무리 전력이 삼분의 일이라도 우리 일본에는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황국정신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임팔 작전에서 무타구치 렌야가 보급을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을 받자 대일본제국의 군인은 본래부터 초식동물이다. 산과 들이 펼쳐져 있는데 식량이 모자라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 또한 정신승리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아니, 파악하지 않으려고 하며 헛된 자존심에 사로잡혀서 제 무덤을 자기가 팠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팔 작전에서 일본군은 아Q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정리하자면 정신승리는 단순한 자기객관화의 부재도 아니며, 자기합리화도 아니다. 자기객관화가 부재되어 있는 사람이, 자기객관화의 부재를 매우기 위해 자기합리화를 끌고오면서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복합적인 상황이 정신승리다.
4. 정신 분석학
정신 분석학에 의하면 정신승리는, 어떠한 행동을 한 이후에 초자아(superego)에 의해 발생하는 죄책감이나 불안을 억누르기 위해 자아(ego)가 자신의 행동을 포장하고 합리화하는 것이다.4.1. 대처법
우리 일상에서 흔히 건강하게 살기 위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힘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신승리를 흔히 긍정적인 생각과 혼동하는 경우가 잦다. 가장 큰 차이라면 책임의 동반과 현실의 인지에 있다.간단하게 구분하자면 다음과 같다.
열심히 준비한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졌을 경우
이번 시험은 별 관심도 없었어. 어차피 친구 얘기 들어보니까 돈도 얼마 못 버는 일이야.
떨어지는 게 오히려 잘됐지. 시간만 낭비했어.
: 점수가 낮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책임을 외부의 탓으로 돌린 경우. 정신승리에 해당한다.
이번엔 좀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나왔는데, 만약 내가 이걸 모른 채 합격했다면 자격증을 땄었더라도 크게 실수했을 거야.
실수한 문제들을 보완해서 다음번에 다시 도전해야지.
: 점수가 낮은 결과 자체를 자신의 책임으로 분명히 인지하고,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경우. 정신승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렇듯 긍정적인 사고나 태도 그 행위 자체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부정적인 일과, 자신이 앞으로 책임져야 할 것에 대해 피하는 행동까지 내포되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즉, 나쁜 상황을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 이후,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괴로워할 시간에 이미 일어난 일을 바로 잡거나 혹은 털어버리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행위와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라는 행위는 서로 반하는 개념이 아니란 이야기이다.이번 시험은 별 관심도 없었어. 어차피 친구 얘기 들어보니까 돈도 얼마 못 버는 일이야.
떨어지는 게 오히려 잘됐지. 시간만 낭비했어.
: 점수가 낮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책임을 외부의 탓으로 돌린 경우. 정신승리에 해당한다.
이번엔 좀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나왔는데, 만약 내가 이걸 모른 채 합격했다면 자격증을 땄었더라도 크게 실수했을 거야.
실수한 문제들을 보완해서 다음번에 다시 도전해야지.
: 점수가 낮은 결과 자체를 자신의 책임으로 분명히 인지하고,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경우. 정신승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 해석되어 긍정적인 사고방식에만 초점을 두게 되어 정신승리로 이어지게 된다. 긍정적인 사고로 삶에 활력을 주라는 말과 함께,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은 취하지 않으려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정서 상태와 결합되어 나쁜 것을 감당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긍정적인 태도로 해석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자기 합리화, 정신승리로 변질되는 것 이다.
즉, 정신승리는 응당 짊어져야 할 책임을 무시하고, 마주 봐야 할 현실에서의 도피가 그 본질이다. 이렇다 보니 정신승리와 긍정적 사고를 착각하는 경우, 당장에야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게 보이지만 결국 무책임하고 나약한 태도가 금방 드러나 버려 주위 사람에게도 신임받지 못하게 되어 삶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쉽다.[5]
차라리 비슷한 상황에서는 이렇게 대응하는 편이 훨씬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결과적으로 고득점에 실패해 낙방했을 경우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 내 실력으로는 무리였다. 더이상은 나 자신을 무리하게 괴롭히고 싶지 않으니, 이제 시험은 깨끗이 포기하자.
: 자신의 현상황을 인지한 후 그것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도 결코 정신승리가 아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 내 실력으로는 무리였다. 더이상은 나 자신을 무리하게 괴롭히고 싶지 않으니, 이제 시험은 깨끗이 포기하자.
: 자신의 현상황을 인지한 후 그것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도 결코 정신승리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능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해야함이 필요한데, 이것은 공자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것은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포기를 선언한 것으로 설혹 근성이 없다고 지탄받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결과를 깨끗이 승복한 것이기 때문에 정신승리가 아니다. 오히려 성공할 기약이 없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정신승리는 일종에 자기기만으로 현실을 곡해하는 태도인 것이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까지 해당하지 않는다. 원래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데에는 그 수는 제한되어 있는 법이라, 많은 노력을 해보아도 밀려나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이런 경우는 차라리 "몰라! 괜찮아."라는 태도로 얼른 좌절의 감정을 털어내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이 훨씬 더 건설적이다. 괜히 깨끗한 승복이 페어플레이의 덕목인 것이 아니며, 패배로 인해 아예 낙망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솔직하게 "내가 역부족이라서 졌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신사적이다.
다른 경우도 있다.
듣자 하니 이번 시험의 감독관들은 뒷돈을 받고 합격자들을 선정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어.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하더라도 이 시험으로선 내가 결과 보기 힘들 거야.
그래도 여지껏 배워온 게 있으니까 분명 도움은 되겠지. 시험은 포기하자.
: 외부의 책임이 명백하게 현실일 경우. 정신승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런 예외를 굳이 적는 이유는, 꼭 외부로 책임을 돌리는 것 자체를 정신승리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그게 건강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실에서 외부의 책임이 명백한데 그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정말로 많다. 정신승리에 있어서 핵심은 외부의 책임이 현실에서 존재하냐 아니냐, 내 생각이 망상이냐 아니냐이지 무조건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하더라도 이 시험으로선 내가 결과 보기 힘들 거야.
그래도 여지껏 배워온 게 있으니까 분명 도움은 되겠지. 시험은 포기하자.
: 외부의 책임이 명백하게 현실일 경우. 정신승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책임을 외부 혹은 타인에게 돌리거나 사기를 치는 경우들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이 되려 정신승리 중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가스라이팅당해 정신승리가 아닌 경우조차도 정신승리로 착각해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이 과한 책임을 지는 현실도 왕왕있다.
지나치게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정신승리만큼이나 건강한 심리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결론을 항상 타인이 내려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중요한 건 개인의 판단이다.
타인이 정신승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그러한 상대와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이 내게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을 때 그저 연을 정리하면 그만이듯, 내 생각이나 말들이 정신승리인지 아닌지에 사로잡혀 있을 땐 잠시 지나치게 깊게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우선 현실을 명백히 인지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지나치게 깊은 생각은 자신의 감정을 더 부풀리게 된다. 그러한 생각들 자체는 그냥 한 켠으로 내버려 두고, 내가 마음을 평안히 유지하여 현재 내 현실에 전념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5. 예시
5.1. 논쟁에서
정신승리라는 말은 상당히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할 수 있는 말이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논리적으로 이기고 있을 때 상대의 승리를 "정신승리"로 치부하며 깎아내리는 식으로 많이 쓰이곤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순환 논법이나 인신공격의 오류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논리보다는 상대방을 자극하는 데에 중심을 두는 단순 어그로성 용법이기에 큰 문제는 없다.다만 인터넷 상 논쟁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정신승리는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논쟁, 일명 키보드 배틀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리 큰 가치를 가지는 논쟁이 아니다. 이겨도 져도 아무도 상벌을 주지 않으며, 현실의 그 어느 것도 바꾸지 못한다. 어차피 승패에 당사자들의 감정에 끼치는 영향 이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면, 정신승리는 그러한 비생산적인 논쟁을 중지시키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논쟁의 실제 승패와 관계없이 양쪽 다 "내가 이겼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 될 것이다.
조금 다른 유형이긴 하지만 한창 키배 도중에 한 쪽이 "에이 내가 그럼 그렇지 뭐…"하고 그냥 내빼버려 둘 다 허탈감을 안겨줘서 키배를 종결시키는 정신패배법도 존재한다. 서로에게 왠지 모를 패배감을 부여하여 키배를 종결시키기에 어떻게 보면 정신승리법보다는 효과가 좋을지도, 모습을 보여준 만화가 바로 그 유명한 우왕ㅋ굳ㅋ이다.
결국 문제는 ‘정신승리’ 그 자체가 아니라, 비방의 의도를 가지고 이 단어를 남발하는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신승리로 보이는 태도라도, 그것이 자기 회복이나 관계 단절의 완충 장치로 작동한다면, 오히려 성숙한 대응의 일종일 수 있다.
국회, 재판소, 공청회, 학술 토론 등에서의 공적인 토론들은 정말 사생결단이 되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도 아닌 인터넷이나 일상에서의 토론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시간과 에너지만 버리는 껍데기에 불과한 정신승리자들을 양산하는 태도다.
5.2. 게임에서
게임을 하다가 죽었을 경우, 자신의 실력이 부족함을 탓하지 못하고 정신승리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사실 난 실력이 좋은데
- 장전 중에 공격받지 않았고[6]
- 플래시뱅을 맞지 않았으며[7]
- 렉이 걸리지 않는 상황이고
- 뒤에서 공격받지도 않고[8]
- 다굴도 당하지 않고 1:1 상황에
- 첫 탄환에 헤드샷을 당하지도 않았으며
- 상대방은 나보다 우월한 성능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 상대방이 핵을 쓰지 않은 상황일 때
반면, 게임 커뮤니티에서 정신승리라는 단어가 위의 의미와 정반대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승리각이 보이는 시점으로부터 실제 승리까지의 과정이 꽤 먼 게임에서, 굳이 게임을 질질 끌면서 시간낭비를 하느니 차라리 승리각이 보일 때 승리를 했다고 여기고 게임을 끄는 것을 '정신승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시작 지점이 매우 사기적이어서 뭘 하든 이길 것 같은 경우나, 굳히기에 성공해서 승리를 위해 남은 게 무의미한 턴넘기기밖에 없는 경우, 더 이상 게임을 진행하지 않고 꺼 버리면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정신승리가 된다.
문명 시리즈 커뮤니티에서 자주 보이는 용법이다.
스텔라리스는 이런 정신승리를 방지하기 위해서 후반 위기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 위기를 타개하고 나면 정신승리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컬링은 경기를 계속 반복해도 이길 것 같지가 않으면 빠르게 정신패배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한다.
6. 어록
"쳇! 저 포도는 아직 익지도 않은 포도라니깐? 먹어 보나 마나 내겐 너무 시어서 맛도 없을 거야. 정 그렇다면 아무거나 가리지 않는 새들이나 실컷 먹으라지"
이솝 우화 중 여우와 포도에서 여우가 나무 높이 열린 포도를 따지 못해서 내뱉은 말이다. 가장 널리, 예전부터 알려진 정신승리 이야기
이솝 우화 중 여우와 포도에서 여우가 나무 높이 열린 포도를 따지 못해서 내뱉은 말이다. 가장 널리, 예전부터 알려진 정신승리 이야기
공명과 주유의 꾀가 별것도 아니구나! 나라면 이런 곳에다가 병력을 숨겨두었을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백만 대군 중에 수백명만 이끌 정도로 처참히 패하고 도망치는데도 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조조가 몇 번이나 내뱉은 허세.[9] 정작 그럴 때마다 곱게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 킬포인트.
삼국지연의에서 백만 대군 중에 수백명만 이끌 정도로 처참히 패하고 도망치는데도 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조조가 몇 번이나 내뱉은 허세.[9] 정작 그럴 때마다 곱게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 킬포인트.
사람이 경지에 이르러 철면피를 쓰고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면 천하 무적이 된다.
중국 고사성어
중국 고사성어
아무리 전력이 삼분의 일이라도 우리 일본에는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황국정신이 있습니다!
1941년 9월 일본과 미국의 전력차 비교 결과 도무지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육군성 군사과의 보고에 대한 도조 히데키의 답변.
1941년 9월 일본과 미국의 전력차 비교 결과 도무지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육군성 군사과의 보고에 대한 도조 히데키의 답변.
7. 관련 문서
[1] 직역하면 '정신 체조'인데, 원래는 불필요하고 복잡한 논리나 사고를 동작이 복잡한 체조에 빗대어 일컫는 관용구였다. 이것이 다시 '허황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억지 논리'로 의미가 파생되어 현재는 일상생활에서 누가 'He's performing a mental gymnastics' 따위의 말을 하면 거의 이런 뜻이다.[2] (장애물을) 뛰어넘는다는 cope + opium(아편)의 합성어로 패배 등의 현실에서의 좌절을 애써 부정하며 쓰라림을 완화하기 위해 현실을 고의로 왜곡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온라인에서 상대의 왜곡되거나 억지 주장을 비아냥거릴 때 쓰이며 흔히 (페페 등이) 산소 호흡기나 병원 수술용 마취가스 호흡기를 쓰는 식으로 묘사된다.[3] 여기서 말한 '정신상의 승리법'이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종류의 정신 승리법이다. "나는 아들 놈에게 당해 버렸다"라는 그것.[4] 앞의 정신 승리법이 깨지니까 그 자리에서 새로운 정신 승리법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아Q정전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정신 승리법이 깨지자마자 새로운 정신 승리법을 만들어내는 에피소드의 연속이라고 볼 수도 있다.[5] 사족을 달자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불교 교리가 종종 허무함 종교 혹은 정신승리 종교와 같은 오해를 곧 잘 받는다. 불교의 가르침은 속세가 만들어 온 의미는 본질적인 의미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내 자신이 의미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내가 불행한 상황에 쳐해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에 더 가깝다는 것 이다. 그렇기에 불교에선 현실 직시를 더 명확하게 바라보는, 긍정적 사고 중심의 종교라 할 수 있다.[6] 보통 일반적인 FPS 게임에서는 장전시간이 심하게 길지 않아서 그 찰나에 당하면 핑계거리가 될 수는 있지만, 언제 장전할지 결정하는 것도 실력의 일부로 평가받는다. 반면 월드 오브 탱크나 워 썬더, 월드 오브 워쉽처럼 다함께 장전 시간으로 고통받는 게임에서 저런 소리를 하면 이뭐병으로 생각한다.[7] 유독 한국 FPS에서는(특히 서든어택) 섬광탄을 비매너로 취급하지만, 보통 섬광탄은 엄연한 전술 아이템이고 멀리 갈 것도 없이 CSGO만 봐도 섬광탄을 잘만 쓴다. 애초에 이게 그렇게 악랄한 물건이라면 지금까지 온갖 슈팅 게임에 아무 논란 없이 개근할 수가 없다.[8] 뒤를 잡힐 만한 대부분 상황이 자리를 잘못 잡았거나 사운드 플레이를 비롯한 주변경계를 소홀히 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9] 정사에서도 화용도를 힘겹게 지나가며 비슷한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