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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혁

파일:전인혁2018-07-18_00;05;54.png
이름 전인혁
직업 가수, 기타리스트
출생 1980년 2월 2일[1] ([age(1980-02-02)]세), 서울특별시
신체 178cm, 65kg, O형
학력 서울성수초등학교
신양중학교
자양고등학교
서울재즈아카데미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2]
(2006년 10월 ~ 2008년 10월 /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
가족 1남 1녀 중 장남
배우자(2013년 결혼), 아들 전설(2015년생)[3]
데뷔 1999년 야다 1집 앨범 Wear to Healing YADA
경력 야다(1999 ~ 2004)
플라워(2004 ~ 2006)
전인혁밴드(2015 ~ 현재)
소속사 TB 엔터테인먼트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 내역3.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3.1. 경연곡 목록
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야다의 메인 보컬과 플라워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가수. 대표곡으로는 '이미 슬픈 사랑', '진혼', '사랑이 슬픔에게', '슬픈 다짐' 등이 있으며 다른 가수들의 작사, 작곡에도 다수 참여했다.

고음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스크래치라는 특유의 창법[4]과 록보컬 특유의 파워풀함이 특징이다. 남자들의 노래라 불리는 야다의 록발라드에 있어 이런 특징이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켜 지금도 사랑받을 수 있는 노래들이 탄생했다. '이미 슬픈 사랑', '진혼', '슬픈 다짐' 등[5] 대표곡들의 고음 파트는 전부 그가 불렀다.

2. 활동 내역

1999년, 그의 나이 19살에 밴드 야다의 기타리스트 겸 메인 보컬로 데뷔했으며 뛰어난 보컬 실력과 고음 라이브를 통해 야다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야다의 대표곡인 '이미 슬픈 사랑'은 유일하게 차트를 운영했던 SBS 인기가요에서 6개월 간 차트 순위에 있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뒤 '진혼', '사랑이 슬픔에게' 등이 큰 인기를 끄는 등 주목을 받았지만 2004년에 소속사 문제로 인해서 그룹이 해체되었다.

나중에 슈가맨에 나와서 근황을 전하기를 당시 야다는 금융계열 기업[6]으로 상당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소속사에서 활동했는데 대표의 횡령사건으로 인해서 팀이 해체되었다고 한다.[7]

야다 해체 이후 2005년에 고유진이 속해 있던 플라워에 들어가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플라워 4집 중 '그대 간 그 길에서'는 그가 직접 작사, 작곡, 편곡을 모두 맡았다.

그가 플라워에 들어가서 기타를 치고 있을 때 야다의 팬들은 굉장히 가슴 아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야다와 플라워는 동시기에 활동하던 밴드였고 인기도 비슷했는데 순식간에 해체를 한 뒤 메인 보컬이 라이벌 밴드에 들어가서 노래는 부르지 않고 기타나 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굴욕적이라고 보았을지도 모르겠다.[8]

이에 그는 자신의 음악적 뿌리는 기타고, 음악 인생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기타를 선택할 것이라 말할 정도로 기타리스트로서의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플라워의 기타리스트로 들어간 것도 원래 그가 갈망하던 음악적 길을 택한 것이라고 하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자.

사실 플라워 멤버가 되기전에도 레코딩 세션을 담당한 적이 있다. 프로 기타리스트를 지향하던 본인은 '내가 원했던 게 이건데..' 라며 음악적 갈망이 커졌고, 이것이 해체 후 플라워의 기타리스트로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플라워 공연에서 코러스를 맡고있던 사람이 야다의 보컬이 기타리스트로 들어온다는 얘기를 듣고 '적응을 잘 못할것같으니 잘챙겨줘야지..' 했다가 너무 자연스럽게 밴드에 녹아들어 놀랐다는 후문도 있다.

본래 야다에서도 기타리스트로 오디션을 봤는데 작곡가가 이미 슬픈 사랑을 들려주고 후렴구 한 번 불러보라고 해서 그 때부터 보컬도 맡은 것이라고 한다.

4집 이후 군복무를 마친 다음에는 솔로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 경연에 참가하면서 본인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금은 실용음악전문학원의 원장을 맡아 후생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한다. 군대에서 자대배치를 받고 들어갔는데 자신의 소대원들이 환영식으로 이미 슬픈 사랑을 제창하였고 그 자리에서 40분 동안 야다 시절의 히트곡을 줄줄이 불렀다는 여담. 그 후 부대 행사 때 마다 노래를 불렀다고 하고, 그런 계기로 한동안 기타리스트의 길을 가느냐 보컬의 길을 가느냐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겪었지만 군생활 덕분에 다시 노래를 해야 겠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2013년에 1살 연상인 약사와 결혼했다. 2016년부터 전인혁band로 활동했다.

2022년 2월 22일 이십세기 힛-트쏭에 출연해 이미 슬픈 사랑을 열창했다. 영상(4분 14초부터)

2024년 4월 개봉한 영화 은하수에서 버스킹 가수로 출연했다.

3.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017년 8월 6일, 8월 13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62차 경연에서 워터파크 우수고객 플라밍고라는 가명으로 참가해서 준우승을 거뒀으며, 정체를 밝힌 뒤에는 근황을 전했는데, 야다로 활동했을 때 소속사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활동하라고 해서 당시 유명했던 노래들에 비해 본인의 인지도는 낮아서 많은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실제로 이 부분에 대해서 근황올림픽에서 또 다시 언급했다. 전인혁은 야다의 멤버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다고 하는데 먼저 합류한 멤버들을 보자마자 너무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소속사도 전인혁에게 선글라스를 쓰게 권유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솔로 싱글 앨범으로 다시 가수 활동을 복귀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rowcolor=#fff> ▲ 창밖의 여자 ▲ 그대 눈물까지도 ▲ 사랑했지만
2021년 5월 16일, 5월 23일 154차 경연에서 따봉을 부르는 목소리! 따봉이라는 가명으로 다시 참가해서 제 노래로 비타민 충전하세요~ 한라봉, 이번 정류장은 가왕석 가왕석입니다. 저 이번에 내려요, 가왕석을 완성시킬 마지막 한 조각! 퍼즐을 차례대로 꺾고 해당 회차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정체를 밝힌 뒤에는 본인의 그룹인 야다의 최대 히트곡 이미 슬픈 사랑을 언급하며, 이 곡이 27주 동안 1위를 한 적이 있다고 밝혔으며 즉석에서 무반주로 선보였다. 또한 그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멤버들과 만든 곡을 공개할 예정이고 (자신이 속한) 그룹의 신곡도 내년 쯤에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활동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3.1. 경연곡 목록

워터파크 우수고객 플라밍고
<rowcolor=#fff> EP. 방송 날짜 곡명 원곡자 VS. 득표율
62-1 2017년 8월 6일 Always 본 조비 보기보다 과묵해요 앵무새 54
62-2 2017년 8월 13일 희야 부활 라듐 앤 블루스 퀴리부인 60
62-3 Here, I Stand For You 넥스트 노래 안하면 입에 가시돋나 마돈나 41
따봉을 부르는 목소리! 따봉
<rowcolor=#fff> EP. 방송 날짜 곡명 원곡자 VS. 득표수 환산
154-1 2021년 5월 16일 창밖의 여자 조용필 제 노래로 비타민 충전하세요~ 한라봉 12 57
154-2 2021년 5월 23일 그대 눈물까지도 투투 이번 정류장은 가왕석 가왕석입니다. 저 이번에 내려요 18 85
154-3 사랑했지만 김광석 가왕석을 완성시킬 마지막 한 조각! 퍼즐 11 52
154-K 탄생석 받고 가왕석으로! 5월의 에메랄드 1 5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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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빠른년생으로 1979년생과 친구로 지낸다. 반면 같은 1980년생이자, 야다 1기 멤버였던 "장덕수"는 형동생 호칭이다.[2] 제8보병사단 군악대에서 복무하다가 2007년 국방부 소속 홍보지원대로 전출되었다.[3] 2023년 12월 29일 플라워 콘서트에서 이제 콘서트를 보러 올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언급하였다.[4] 기본적인 목소리 자체는 허스키하지 않다. 고음에서 특유의 저 발성을 사용하는 것. 오히려 기본적인 목소리 자체는 몽환적인 느낌이 많이 드는 맑은 미성이다. 전인혁이 부른 솔로곡으로는 Believe, 약속, 망각, 플라워에서 부른 그대 간 그 길에서 등이 있으며 이 곡들에서 깔끔한 미성을 많이 들을 수 있다.[5] 각각 야다 1집, 2집, 3집 타이틀곡이다.[6] 삼부파이낸스 계열이었다. 1996년 설립된 이 회사는 부산광역시를 거점으로 한 금융회사였으며 양재혁이 대표로 있었다. 문제는 당시 대표가 과거에 사채업자였다는 것.[7] 이미 야다 해체 이전에도 1999년에 횡령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으며 이외에도 당시 광고모델이었던 배우 이정길도 각종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8] 참고로 전문 기타리스트들한테 이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애초에 밴드라는 것은 앙상블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어느 파트가 낫다말다를 따질 수 없기 때문. 기타리스트로 들어가는 것이 굴욕이라고 표현한다면 기타리스트들에게 욕먹기 딱 좋다. 보컬파트만 비대하게 주목받는 한국의 씁쓸한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