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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9-01 00:56:01

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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滇國

1. 소개2. 역사3. 기타

1. 소개

현 윈난성 일대에 있었던 고대 국가. 이 나라가 복속되면서 현재의 윈난성 일대가 처음으로 중국의 영역에 들어왔다.

2. 역사

사기에 따르면 건국자는 초나라 장군인 장교(莊蹻)로 그는 초장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당시 초나라는 경양왕 치세였는데 기원전 279년 경양왕은 진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하는 검중군 일대를 통해 진나라를 공격하려 했고 이때 이 임무를 맡게 된 게 장교였다고 한다.

장교는 명령대로 검중군을 점령했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파촉을 거쳐 전나라가 세워지는 전지라는 땅까지 도달했다. 그 뒤 초나라에 이를 보고하려고 했으나 기원전 297년 장교 없는 검중군을 진나라가 다시 수복해버려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장교는 그냥 이 땅에 눌러앉아 왕이 되어 전나라를 세웠고 장교는 현지 풍습을 존중하였다고 한다. 이후 장교는 기원전 256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후에 진시황제가 다스릴 때에 진나라가 전나라를 격파했다고 하며 이때 잠시 전나라를 통치했다는 견해가 있으니 진시황제 사후 중원이 혼란에 빠지자 전나라도 진나라의 통제에서 벗어난 듯이 보인다. 이후 기원전 122년에 한무제가 흉노를 피해 서남쪽으로 서역과 통하는 길을 찾으려 했을 때 다시 언급되며 이후 기원전 111년에 남월이 멸망하자 한무제가 전나라 왕에게 입조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기원전 109년 전나라를 정복하고 익주군을 설치하였다.

다만 남월과는 달리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아서 한무제는 전나라 왕에게 인장을 하사하고 계속 그 땅을 다스리게 했다고 한다.[1] 그러다가 기원전 86년 이 지역의 민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한군이 진압했고 3년 뒤 익주태수가 반란에 휘말려 죽자 다시 진압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4000명의 병사를 잃었다. 기원전 82년, 다시 한군이 진압에 나서니 5만 명을 참수하고 가축 10만 마리를 노획하였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나라는 사실상 와해되었다고 한다. 이후 후한 시기에 이르러서는 점차 이 지역이 한나라에 동화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115년에 완전히 멸망하였다고 한다.

3. 기타

전나라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지만 현재도 백족, 이족, 합니족, 율속족, 납서족, 티베트족과 같은 티베트버마어파의 다양한 민족들이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지역인 만큼 전인들도 이들의 조상격인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하는 이들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왕족은 초나라와 연관된만큼 묘족과 같은 몽몐어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나라가 전나라를 정복한 후 이 지역의 농업이 발전했는데 이때 동원된 주민들은 타이족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도 운남 동북부에는 묘족과 요족들이 있고 남부에는 태족이 있는 만큼 현재 운남의 민족구성과 비슷하게 이 시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전나라는 스키타이의 아시아 쪽 일파인 사카족의 정착지 중 하나로 추정된다. 기원전 2세기 월지의 서진으로 인해 중앙아시아에 있던 사카인들이 남아시아로 밀려나고 그 외 다른 지역으로도 이주했는데 이때 많은 이들이 그리스인들이 지배하던 서북인도로 이주해 인도-스키타이를 건국했다. 동시대 운남의 많은 전나라 유물들은 전형적인 중앙아시아 스키타이 양식을 보여준다. 또한 한나라 시기 무제가 전나라를 정복한 뒤 한나라 관리들이 이 지역에 왔을 때 이곳에 선두인이 있다고 한 기록이 있다. 선두는 서북인도의 인더스강[2]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이를 통해 중앙아시아 혹은 서북인도에서 전나라에 정착한 사카인들을 중국인들이 목격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사카인의 영역을 말할 때 보통 운남도 포함된다. 다만 인더스강 유역에 사는 민족은 사카인 말고도 많았기에 반드시 이를 사카인의 전나라 정착의 근거라고 말할 수 없기도 하다.

이 국가의 이름인 전(滇)은 지금까지도 이 지역인 운남성을 뜻하는 한자가 되어 쓰이고 있다.



[1] 명목상 이 지역을 점령했어도 통치는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 게 한참 후인 삼국시대 때도 제갈량이 이 지역을 평정해야 했다.[2] 인도 언어로는 신두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