章學誠 / 章学诚 (Zhāng xuéchéng), 1738년~1801년[1]
1. 개요
중국 청나라 중기의 역사학자이자 사상가. 본명은 장문표(章文鑣), 자는 실재(實齋), 호는 소암(少巖)이며, 저장성 사오싱시 출신이다.2. 사상과 행적
역사가는 변화하는 역사 과정을 맹목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훌륭한 덕을 갖춘 뒤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에는 고증학이 주류였으나 그와 별개로 자신만의 역사관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다만 경세치용(經世致用)[2]은 긍정했다고 한다.문사통의(文史通義) 1권 역교(易敎)편에서 육경개사(六經皆史)라는 글을 썼는데, 육경이 모두 역사와 관련 있는 책들이며, 옛사람들은 사실(事)에 대한 내용 없이 사상(理)을 말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문자가 완성되기 이전이었던 주나라 이전에는 모든 지식이 글이 아니라 구전(口傳)으로 전해졌으며, 이러한 기록 없는 사실과 감추어진 역사를 밝히는 것이 역사학자의 임무라고도 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경전학의 하위 분류로 취급받던 역사학은 경전학과 분리되고 오히려 더 상위로 오르게 된다.
같은 책의 시교(詩敎)편에서는 문체 및 문학의 다양성과 동일성이 합일된다는 관점에 의거하여, 당시까지만 해도 주나라와 한나라를 이어 주는 시기로만 취급받았던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적 평가를 바로잡을 것을 주장하였다.
한서 이후 상서의 유의가 잊혀졌음을 지적하고, 사기(역사책)의 기전체와 상서의 형식을 합친 종합적 사체 기사본말체를 애용하였다. 이는 사건별로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인과를 밝히는 역사 서술로 역사의 사변적 의의를 살리려는 것이었다.
천자가 거주하는 중앙뿐 아니라, 지방의 역사 또한 역사 편찬의 주요 사료라고 여겼으며, 지방사를 포함하지 않은 역사는 완전한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장학성 역시 많은 지방사서를 편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