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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7 00:41:55

장 2세 드 부르봉

<colbgcolor=#D5CFB8><colcolor=#000000> 부르봉 공작
장 2세 드 부르봉
Jean II de Bourbon, Duc de Bourbon
파일:Jean II, Duke of Bourbon.jpg
이름 장 2세 드 부르봉
Jean II de Bourbon
출생 1426년
프랑스 왕국 부르봉 공국
사망 1488년 4월 1일 (향년 61~62세)
프랑스 왕국 물랭
배우자 잔 드 발루아(1447년 결혼/1482년 사망)
카트린 다르마냐크(1484년 결혼/1487년 사망)
잔 드 부르봉-방돔(1487년 결혼)
자녀 장, 루이
아버지 샤를 1세 드 부르봉
어머니 아녜스 드 부르고뉴
형제 필리프, 마리, 이자벨, 샤를 2세, 루이, 피에르 2세, 카트린, 잔, 자크, 마르그리트
직위 부르봉 공작, 기옌 총독, 생 미셸 기사단의 기사, 프랑스 무관장
1. 개요2. 생애3. 가족

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군과 맞서 싸웠으며, 샤를 7세, 루이 11세, 샤를 8세 3대에 걸쳐 활약했다.

2. 생애

1426년경 프랑스 왕국 부르봉 공국에서 제5대 부르봉 공작 샤를 1세 드 부르봉과 부르봉 공작 용맹공 장의 딸인 아녜스 드 부르고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필리프[1], 마리[2], 이자벨[3], 샤를 2세[4], 루이[5], 피에르 2세[6], 카트린[7], 잔[8], 자크[9], 마르그리트[10]가 있었다.

1427년 클레르몽 백작에 선임되었으며, 1444년 메츠 공방전에 참여하면서 군사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노르망디 전선에 투입되어 잉글랜드군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1449년 프랑스 무관장 아르튀르 드 리슈몽과 함께 노르망디 원정에 착수해 다수의 성채를 공략했으며, 1450년 4월 15일 포미니 전투에서 리슈몽, 피에르 드 브레제와 함께 5,000 병력을 이끌고 토머스 키리엘, 로버트 드 베레, 매튜 고프, 헨리 노베리가 이끄는 잉글랜드군 4,000명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노르망디 전역 석권에 크게 기여했다.

1450 ~ 1451년 가스코뉴 원정에 참여해 블랑크포르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하는 데 기여하고 가스코뉴의 중심지인 보르도 공략에 기여했다. 1452년 잉글랜드 장성 존 탈보트가 가스코뉴로 쳐들어와서 보르도를 포함한 가스코뉴 서부를 점령하자, 1453년 2차 가스코뉴 원정에 참여해 카스티용 전투에서 존 탈보트를 패사시키고 잉글랜드군을 격파하는 데 일조했으며, 뒤이은 보르도 공방전에 참여해 가스코뉴를 완전히 평정하는 데 공헌했다. 이후 프랑스 국왕 샤를 7세에 의해 기옌 총독으로 선임되었으며, 1455년 왕에게 복종하지 않은 장 5세 다르마냐크를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1455년 12세기부터 잉글랜드 국왕의 영지였던 기옌 주민들이 여전히 프랑스 왕실에게 반항적인 것을 고려해 트롱페트 성을 건설해 주민들을 감시하게 했다. 1456년 12월 아버지가 사망한 뒤 부르봉 공작에 선임되었다.

1461년 샤를 7세가 사망하고 프랑스의 새 국왕이 되었던 루이 11세는 선왕의 총애를 받았던 그를 질시해 기옌 총독 직을 박탈했다. 이에 반감을 품은 그는 1465년 샤를 7세의 막내 아들이자 베리 공작을 맡고 있던 샤를 드 프랑스가 결성한 공익 연맹에 가담해 루이 11세에 맞섰다. 그해 11월 양자가 평화 협약을 맺은 뒤, 루이 11세는 그와 화해했다. 1466년 노르망디 공작이 된 뒤 루이 11세로부터 독립하려는 샤를 드 프랑스를 물리치고 노르망디를 탈환하는 임무를 완수했다. 루이 11세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랑그독 총독으로 선임했다. 1469년 8월 1일 생 미셸 기사단의 기사에 선임되었으며, 프랑스 대의원으로도 선출되었다.

1471년 프랑스 왕국과 부르고뉴국과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그는 부르고뉴군에 맞서 중부 전선과 남부 전선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리옹, 포레즈, 비바레, 보졸레, 부르보네, 베리 및 오베르뉴의 보안관에 선임된 뒤 전쟁이 끝나는 1477년까지 이 직책을 역임했다. 1483년 새 프랑스 국왕 샤를 8세에 의해 프랑스 무관장에 선임되었다. 한편, 그는 물랭에서 화려한 궁정을 세웠다. 작가이자 외교관인 필리프 드 코메니스, 시인 프랑수아 드 몽코르비에 디 비용, 장 로베르테, 앙리 보드 등을 후원했으며, 본인 역시 시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작품을 남겼다. 1488년 4월 1일 물랭에서 사망했다.

3. 가족



[1] 1428 ~ 1445년 이후, 보쥬의 영주[2] 1428 ~ 1448, 칼라브리아의 로렌의 공작 장 2세의 부인[3] 1437 ~ 1465,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샤를의 부인[4] 1434 ~ 1488, 리용 대주교, 리옹 추기경, 클레르몽 주교, 1488년부터 부르봉 공작[5] 1436 ~ 1482, 리에주 주교[6] 1438 ~ 1503, 보주 영주, 1488년부터 부르봉 공작[7] 1440 ~ 1469, 헬러 공작 아돌프 폰 에그몬트의 부인[8] ? ~ 1493, 오랑주 공작 장 4세 드 샬롱아를레의 부인.[9] 1444 ~ 1468, 샤를 7세대관식에서 황금 양모 기사단 기사에 선임되었지만, 샤를 7세와 갈등을 빛고 부르봉 공국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냈다.[10] 1438 ~ 1483, 사보이아 공작 필리포 2세의 첫번째 부인으로 사보이아의 루이사필리베르토 2세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