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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12:38:08

잔드로 바그너

Die Deutsche Fußballnationalmannsch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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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4706F> 이름 잔드로 바그너
Sandro Wagner
출생 1987년 11월 29일 ([age(1987-11-29)]세)
서독 바이에른뮌헨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신체 194cm, 92kg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24706F> 선수 헤르타 뮌헨 (1990~1995 / 유스)
FC 바이에른 뮌헨 (1995~2006 / 유스)
FC 바이에른 뮌헨 II (2006~2008)
FC 바이에른 뮌헨 (2007~2008)
MSV 뒤스부르크 (2008~2010)
SV 베르더 브레멘 II (2010~2012)
SV 베르더 브레멘 (2010~2012)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2012/임대)
헤르타 BSC II (2012~2015)
헤르타 BSC (2012~2015)
SV 다름슈타트 98 (2015~2016)
TSG 1899 호펜하임 (2016~2017)
FC 바이에른 뮌헨 (2018~2019)

톈진 터다 (2019~2020)
감독 SpVgg 운터하힝 U-19 (2021)
SpVgg 운터하힝 (2021~2023)
독일 U-20 대표팀 (2023~ / 수석코치)
독일 대표팀 (2023~ / 수석코치)
국가대표 8경기 5골 (독일 / 201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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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재 독일 U20 대표팀독일 대표팀의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194cm의 장신 선수라 공중볼 장악능력이 좋고 강력한 몸싸움 능력을 지닌 타겟형 스트라이커였다.

2. 클럽 경력

2.1. FC 바이에른 뮌헨 1기

뮌헨에서 태어난 바그너는 어릴 때부터 그 지역에서 축구를 배웠고, 1995년 바이에른 뮌헨 유스 팀에 합류했다. 2007~2008 시즌에 바그너는 바이언의 1군 팀에서 기회를 얻었고 포칼에서 VfB 슈투트가르트를 상대로 득점도 성공했고 프랑크 리베리의 득점에도 기여했지만, 그 시즌 8경기 1골을 끝으로 바이언에서 나가게 됐다. 애초에 그 이전 2군 무대에서도 득점력이 워낙 부족하여 바이언에서 자리를 잡기는 힘든 일이었고,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그는 이적하게 된다.

2.2. MSV 뒤스부르크

바그너는 당시 2부 리그 소속이었던 뒤스부르크로 이적했다. 첫 시즌 리그에서 30경기 7골을 기록한 바그너는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다음 시즌에는 6경기 동안 많은 득점을 기록해 주목받는 유망주로 떠올랐다.

2.3. SV 베르더 브레멘

결국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그는 브레멘에 합류했고, 초기에는 2군에서 활약했다. 이후 2010~2011 시즌에 1군에 합류, 리그 27경기 5골을 기록했다. 공격수로 만족할 수 있는 기록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험이 부족한 선수로 보면 괜찮은 기록이었고 가능성도 보여줬다. 하지만 다음 시즌, 바그너는 충격의 부진과 함께 무득점 행진을 벌였고 기회도 점점 줄었다.

2.3.1. 1.FC 카이저슬라우테른 임대

결국 당시 강등 위기에 몰린 카이저슬라우테른은 반전을 위해 브레멘에서 바그너를 임대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바그너는 11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고 팀의 강등도 막는 데 실패했다. 임대에서도 처참한 성적을 거둔 결과, 브레멘도 완전히 바그너를 포기했다.

2.4. 헤르타 BSC

이후 강등 팀인 헤르타로 이적하였고, 2부 리그에서 31경기 5골을 기록했다. 득점이 많지는 않았어도 가능성은 다시 보여줬지만, 승격 이후 귀신같이 이전의 바그너로 되돌아왔고, 2013~2014 시즌에 25경기 2골을 기록했다. 다음 시즌에는 아예 15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치는 등 바그너의 앞날을 어두워졌고, 헤르타도 그를 포기했다. 이렇게 잊혀지는 듯 했으나...

2.5. SV 다름슈타트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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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격 직후 스쿼드를 채우기 위해 움직이던 SV 다름슈타트 98의 눈에 띄게되어 다름슈타트로 이적했고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바그너는 리그 32경기에서 14골을 기록하여 커리어 하이에 도달했고,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는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독일 대표팀의 공격수들의 부진으로 인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국대 설까지 나올 정도였고, 이적설에 휩싸였다.

2.6. TSG 1899 호펜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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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호펜하임으로 이적한 바그너는 3년 계약을 맺었다. 마인츠와의 경기에서 데뷔 골을 넣은 것을 시작으로 바그너는 돌풍을 일으키는 호펜하임의 최전방을 꾸준히 책임졌고, 전 시즌에 이어 이번에도 31경기 11골을 기록하며 충분한 활약을 보였다. 국가대표팀을 거치며 이름이 높아진 그는 다음 시즌에도 호펜하임에 남아 활약했다. 전반기에 그는 리그 9경기 4골을 포함해 총 15경기 6골을 기록했다.

2.7. FC 바이에른 뮌헨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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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활약이 지속되자,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백업을 찾던 유프 하인케스 체제의 바이언은 레반도프스키의 백업 공격수로 바그너를 주목하였다. 결국 이적설이 돌기 시작했고, 호펜하임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도 인정하면서 이적은 급물살을 탔다. 2017년 12월 21일, 바이언은 바그너의 재영입을 발표했으며, 계약 기간은 2020년까지이다.

등번호는 2번을 달았는데 바그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넘버인 14번을 원했으나 이미 후안 베르나트가 달고 있어서 자신이 바이에른에서 두번째 삶을 상징하는 의미로 2번을 달았다. 베르나트는 다음 시즌에 바이에른을 떠났지만 바그너는 여전히 등번호 2번을 유지했다.

2.7.1. 20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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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7일 호펜하임과의 분데스리가 20라운드 경기에서 85분에 요슈아 키미히와 교체된 뒤 하피냐의 어시스트를 받아 뮌헨 복귀 후 첫 골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골을 넣고 격렬하게 세레모니를 했는데 경기 끝나고 이적시장전까지 호펜하임에서 같이 뛰던 키퍼 올리버 바우만이 인사를 하러 온 바그너에게 기분이 상한 듯한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경기 후 그것에 대한 인터뷰가 압권이었다.[1]

이후 2월 17일, 분데스리가 23라운드 볼프스부르크전에서 챔스를 앞두고 로테이션 차원으로 선발 출전했다. 연계 면에서는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이진 못했지만, 후반 19분에 아르연 로벤의 크로스를 받아 압도적인 헤딩 능력을 과시하며 헤딩 동점골을 뽑아냈다. 팀은 후반 추가시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페널티 골로 2대1 역전승.

3월 4일 리그 25라운드 SC 프라이부르크와의 경기에서 54분에 2:0 상황에서 한 골을 넣으며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오프사이드 논란은 있었지만 어쨌든 이 골은 인정됐고 바그너는 분데스리가 시즌 7호골을 달성한다.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베식타스 전에서 후반 68분에 레반도프스키와 교체되어 투입되었고 후반 84분에 다비드 알라바의 크로스를 받아 가슴으로 추가골을 터뜨렸으며 팀은 3:1로 승리했다. 결국 바이언은 도합 8대1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27라운드 라이프치히를 상대로 12분에 헤딩으로 선제골을 성공시켰지만 팀은 2:1로 역전패를 당했다.

4월 7일 분데스리가 29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는 선발출전하여 후반 막판에 코너킥에서 또 압도적인 뚝배기로 쐐기골을 넣으며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팀은 4대1로 이기며 리그 조기 우승을 확정지었다.

4월 14일에 펼쳐진 분데스리가 30라운드 묀헨글라드바흐와의 홈경기에서 로테이션으로 선발출전하여 0대1로 뒤지는 상황에서 토마스 뮐러의 패스를 받아 동점골을 기록했고, 이어 또 헤딩 능력을 활용하여 역전 결승골까지 넣었다. 멀티골을 기록하였으며, 팀은 5대1로 승리하였다.

5월 1일,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는 후반전에 교체로 출전하면서 드디어 챔스 무대에서 레반도프스키와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2] 하지만 그 레반도프스키가 폐급 활약을 보이고 있었고, 바그너또한 골을 넣을 기회가 없었다. 결국 2대2 무승부를 거두면서 합산점수 4대3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종합해보면 후반기에 팀에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레반도프스키의 백업 및 로테이션 자원으로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2.7.2.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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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이적설로 시끄러웠지만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부진과 새로 부임한 니코 코바치 감독의 NFS 선언으로 뮌헨에 남게 되었다. 다만 바그너는 이번 월드컵에서 나오지 못하는 등 자존심이 상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프리시즌부터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다.

시즌 첫 공식전인 슈퍼컵 결승에서 후반 교체투입되었으나, 알라바의 부상으로 인한 이탈때문에 공격기회는 별로 없었으나 확실한 찬스를 날려먹으며 시즌 1호 헛발질을 기록했다.

8월 28일 열린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고별전에서 역시 헤딩으로 팀의 두번째 골을 넣으며 4대0 승리에 일조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지난 시즌보다 훨씬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10월 23일을 기준으로 바이언은 12경기를 치렀는데 그 중 고작 3경기에밖에 나오지 못한데다 두 번은 10여분 밖에 부여받지 못했다. 나머지 한번 역시 선발로 출전하긴 했으나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후반 막판에 교체되고 말았다. 게다가 바이언이 초반 7연승 이후 다소 어려움을 겪는 사이에 도르트문트가 굉장한 기세로 약진하면서 리가 경기에서도 여유있게 기용하기 어려워졌다. 바이언이 다시 본 궤도를 확실하게 되찾기 전에는 출전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포칼 2라운드에서는 오랜만에 선발 출전하여 전반 5분만에 선제골을 기록했다. 다만 그 이후에도 수 차례 찬스를 잡았으나 매번 날려먹으며 답답한 경기를 해결해주지 못했다. 팀은 2대1 승리.

겨울 휴식기 중 열린 텔레콤컵[3] 결승전에서는 선발출전하여 정우영의 크로스를 받아 멋진 헤딩슛을 날렸지만 아쉽게 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는 실축했지만 나머지 팀원들이 모두 성공시키며 우승한다.

후반기 개막 후 두 경기 연속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이적설이 돌기 시작했다. 19라운드 종료후 톈진 터다에서 무려 15M의 연봉을 제시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2019년 1월 30일 톈진 터다로의 이적이 공식 발표되었다. 톈진 공식 홈페이지 이적료는 5M 유로이며 등번호는 9번.

2.8. 톈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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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슈틸리케 감독이 독일 공격수를 강력히 원했고, 중국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친구인 터다의 독일인 수비수 펠릭스 바스티안스의 권유도 있었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이 바이에른 복귀를 원하는지 언젠가 다시 한번 바이에른으로 돌아가서 뛸것이고, 바이에른에서의 생활이 더 좋았다고 언급했다. 바그너가 선수 은퇴 후 지도자 코스를 밟고 싶으면 뮌헨에서 유스 지도자로 시작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7월 25일, 중국 슈퍼리그의 개막에 따라 소속팀에 재합류해야 했으나 본인이 구단의 요청을 세 번이나 거절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 뒤 계약을 해지했다. 본인에 의하면 코로나 19 사태 때문에 세계 정세가 불안해진 만큼 가족을 독일에 두고 떠나기 불안하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했다고 한다. 이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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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09년 시기에 바그너는 독일 U-21 팀의 일원으로 뛰었고 또한 마누엘 노이어, 메수트 외질, 마츠 훔멜스, 베네딕트 회베데스, 사미 케디라 등과 더불어 독일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미래로 불린 된 2009 U-21 유로 우승의 일원이기도 했다. 결승전에서 잉글랜드를 4대0으로 꺾을 때 바그너가 멀티골을 넣었다.

3.1. 201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러시아

그러나 청소년 대표 이후 오랫동안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성인 무대에서의 오랜 부진을 털고 리그에서 활약한 결과, 드디어 201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러시아 최종 명단에 포함됐다.

2017년 6월 7일 덴마크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지만 후반에 율리안 브란트와 교체됐다. 6월 11일 산마리노와의 월드컵 예선에서는 선발로 출전, 3골을 넣으며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7:0 대승에 크게 기여했다.

201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호주전에서는 선발로 출전했지만 전반에 몇 개의 결정적인 찬스에서 득점에 실패했으며 후반 12분에 티모 베르너와 교체됐다. 이 경기에서 독일은 3:2로 승리했다. 그는 컨페더컵에서 그 뒤에는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독일은 컨페더컵에서 우승하며 생애 첫 국대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됐다.

3.2.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2017년 10월에 러시아 월드컵 유럽예선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는 북아일랜드전에 선발로 출전해 풀타임 활약했다. 그는 전반에는 공격적인 역할, 후반에는 연계 플레이에 집중했다. 그는 활동량 면에서는 티모 베르너보다는 부족한 모습이었지만 자신의 큰 키를 활용해 본인의 직접 득점 이외에도 모든 골에 관여한다. 전반 2분 제바스티안 루디의 선제골 역시 바그너가 레온 고레츠카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했으나 이걸 상대 수비수가 막아서 밖으로 나간 것을 요슈아 키미히가 루디에게 연결한 것이었다. 전반 20분에는 토마스 뮐러의 패스를 받아 강력한 터닝 슈팅으로 독일의 두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후반 41분에는 마빈 플라텐하르트가 왼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바그너가 북아일랜드 수비 조니 에반스와 경합 과정에서 오른쪽으로 흘렀고 요슈아 키미히는 이를 바로 득점으로 성공시켰다. 독일은 이 경기에서 3:1로 승리하며 월드컵 진출을 확정짓는다. 바그너는 동시에 쾰른의 전설적 공격수 디터 뮐러 이후 처음으로 A매치 4경기에서 4골을 넣는데 성공한 선수가 됐다.

2017년 10월 아제르바이잔과의 월드컵 예선에서 선발로 출전해 풀타임 활약했다. 전반 30분에는 본인의 슈팅이 골대맞고 나온 직후 독일이 실점하며 1:1이 되기도 했지만 54분에 율리안 브란트가 올린 크로스를 받아 헤딩골을 성공시켰다. 독일은 이 경기에서 5:1로 승리한다.

2017년 11월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 소집됐다. 그는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72분에 티모 베르너의 교체 선수로 출전했으나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독일은 잉글랜드를 상대로 0:0 무승부를 기록한다.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도 85분에 티모 베르너의 교체 선수로 출전했으나 공격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교체되어 들어가자마자 바로 거친 파울로 옐로 카드를 받았다.

2018년 3월 말 브라질, 스페인과의 평가전 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5월 15일 발표된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예비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월드컵행이 불발되었다. 바그너 대신 명단에 포함된 중앙 공격수는 마리오 고메스닐스 페테르센인데, 페테르센은 리그 득점 2위라는 납득할만한 이유라도 있지 고메스는 바그너와 역할도 겹치는데 딱히 바그너보다 퍼포먼스가 우위라고 보기도 힘들어서 엔트리 선발에 대해 말이 많았다. 물론 4년 전 월드컵에서도 요아힘 뢰프가 분데스리가 득점왕 슈테판 키슬링을 뽑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냈던 것이나, 고메스가 지난 유로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베테랑으로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점도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보다 비판 여론이 크진 않긴 했다.[4] 결국 월드컵 명단에서 탈락하자 팀 훈련 중 울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엄청난 실망을 드러내며 국가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바그너가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건 이것대로 갑론을박이 오갔는데, 요지는 너무 성급하게 은퇴를 선언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나이를 고려하면 2년 뒤 UEFA 유로 2020에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것도 아니고, 실망까지는 이해해도 국대 은퇴는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반응. 뢰프 감독과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대차게 까이기도 했는데, 특히나 클로제는 36세의 나이로 월드컵에 나가서 맹활약했으니 바그너의 이른 은퇴가 이해되지 않을 법도 하다. 그러나 뢰프의 보수적인 선수 선발 성향을 고려하면 이해된다는 의견도 많다. 뢰프는 바그너 정도는 고사하고 리그 득점왕까지 먹을 정도로 더 좋은 활약을 했던 슈테판 키슬링조차 국대에서 몇번 써보고는 본인 성향과 맞지 않아서 후보로조차 기용하지 않고 외면했으며[5], 클로제의 은퇴 이후 독일의 원톱 자원 부재 문제가 조금씩 거론되자 다른 공격수를 기용하는 대신 그나마 자신의 성향과 맞는 마리오 고메스를 기용하거나 아예 제로톱을 활용하는 등 다른 방안을 찾을 정도로 고집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다음 유로에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국대에서 여러차례 합을 맞춰본 바그너 대신 국대에 거의 뽑히지도 않았던 페테르센이 승선한 것은 사실상 뢰프가 국대 감독으로 있는 한 바그너의 자리는 없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를 선발하지 않았던 뢰브 감독이 최악의 32강 본선 조별리그 성적으로 러시아 월드컵에서 탈락(22등)하면서 바그너에게도 국가대표로서의 길이 다시 열릴 가능성이 생겼다[6]. 현재 베르너가 원톱으로 보여준 한계는, 그가 만샤프트의 주전 원톱으로서는 많은 것이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지라 바그너는 필수이기는 하다. 허나, 뢰브가 바그너의 은퇴 발언까지 대놓고 디스를 한 것을 보면 그가 자신의 과거 선택을 철회할 지는 의문. 하지만 현재 바그너를 제외하고 베르너나 다른 원톱 자원을 믿기에는 다들 이래저래 단점이 있다보니, 결국 독일의 원톱 자원 부족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바그너가 이후 노쇠화로 폼이 떨어지고 2020년에 은퇴를 선언했으며, 유로 2020 역시 코로나19로 1년 늦게 개최되었기 때문에 바그너의 이른 국대 은퇴가 본인이나 독일 대표팀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 대표팀의 원톱 문제는 감독이 나겔스만으로 바뀐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7]

4. 플레이 스타일

FC 바이에른 뮌헨 팬들 입장에서 굳이 표현하자면 뻣뻣한 마리오 만주키치 정도 된다. 성실한 전방 압박과 투쟁적인 모습도 매우 닮았고, 둘 다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 매우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속된 말로 "대갈메시"라고 불릴 정도로 롱볼을 떨궈주는, 포스트 플레이 능력이 월드클래스였던 만주키치에 비하면 바그너는 그러한 정교함은 매우 떨어지며, 대신 매우 투쟁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공중볼 상황에서 언제든 득점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러모로 과거 독일 축구를 대표했던 올리버 비어호프를 떠올리게 하는 선수. 기량으로는 비어호프에 못 미치지만 피지컬을 앞세운 우직한 포스트 플레이어라는 점이 상당히 유사하다.

바그너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헤딩 능력이다. 강력한 피지컬과 제공권이 상징적인 스트라이커로, 상대 수비수와 지속적으로 경합을 하여 상대를 지치게 할 수 있는 선수이다. 바이에른 뮌헨 이적 이후로 발로 넣은 골보다 머리로 넣은 골이 더 많을 정도로 그의 키는 잘 활용하기만 하면 세트피스나 크로스 상황에서 치명적인 무기이다. 하메스, 티아고, 키미히 등 크로스가 정확한 선수가 많은 바이에른 입장에서는 세트피스 시 아주 좋은 자원을 확보한 셈.

게다가 포스트 플레이어 답지 않게 활동량도 많아서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다만 발밑 기술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볼 간수 능력이 뛰어나진 않으며 팀의 빌드업을 도와줄 수 있는 유형은 아니다. 퍼스트 터치는 투박한 플레이스타일에 비해 의외로 괜찮은 편이지만 볼을 잡고 도는 속도가 굉장히 뒤떨어지기 때문에 지공 상황에서는 바그너의 위력이 크게 떨어진다.

5. 지도자 경력

2021년 3월 24일, SpVgg 운터하힝 U19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5.1. SpVgg 운터하힝

2021년 6월 25일, SpVgg 운터하힝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23년 3월 23일, 시즌 종료 후 떠난다는 소식이 공식 발표되었다.#

운터하힝을 3. 리가로 승격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아름다운 이별로 마무리했다. 팀의 주장이었던 요제프 벨츠뮐러는 최고의 감독이었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5.2. 독일 U-20 축구 국가대표팀

2023년 6월 27일, 독일 U-20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다.# 하네스 볼프 감독의 아래에서 일하게 된다.

5.3.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2023년 9월 10일,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한지 플릭 감독이 경질되자 감독 대행인 루디 푈러를 보좌하게 되었다.#

2023년 9월 22일,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이 부임한 후 그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6. 기타



[1] "상대가 제가 1년반을 머문 팀이어도, 심지어 그 팀의 코치가 제 부모님이어도 전 상관하지 않습니다."[2] 여태껏 둘이 서로 교체되었기에, 챔스에서 같이 뛰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3] 말 그대로 도이체 텔레콤에서 주관하는 독일 축구 친선 대회로, 4팀이 준결승을 벌여 이긴 두 팀은 결승, 진 두 팀은 3/4위전을 치른다. 모든 경기는 45분 단판 승부이며, 동점일 경우 바로 승부차기로 돌입한다.[4] 오히려 예비명단 발표 당시만 해도 고메스의 승선에는 납득하는 사람이 더 많은 반면 페테르센의 발탁에 놀란 사람이 상당했다.[5] 물론 키슬링이 클로제처럼 다재다능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지만, 거의 기회를 주지도 않고 완전히 외면한 것은 뢰프의 고집이 상당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심지어 이 문단에 언급된 마리오 고메스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줄때도 마찬가지였다.[6] 현재 인터넷 짤방에선 이번 독일 국대에 오르지 못한 리로이 자네 등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포함된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행복해 할 독일 선수들'이란 제목으로 올라와 있을 정도다.[7] 티모 베르너, 카이 하베르츠, 케빈 폴란트는 전형적인 원톱으로는 쓰기 어려운 자원이고, 닐스 페테르센은 애초에 바그너와 한살 차이인 만큼 금세 국대에서 멀어졌다. 21세기 출생 선수들의 경우 카림 아데예미는 아직 윙으로 더 많이 뛰고 있으며, 유수파 무코코는 나이 대비 훌륭한 완성도로 원톱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건만 최근들어 나이 조작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러한 평가도 흔들릴 위험이 있다. 그나마 카타르 월드컵에서 처음 대표팀에 승선한 니클라스 퓔크루크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서 급한 불은 끈 듯 하나 퓔크루크의 나이도 곧 30줄이라 2026년 미국에서도 퍼포먼스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8] 분데스리가에서는 11/12 시즌부터 40번을 넘는 등번호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변경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던 선수는 예외.[9] 리그는 다르지만 실제로 이런 케이스가 은근히 있다. 일례로 진성욱 역시 제주에서 다소 부진했을 때 두자리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싶어 등번호를 2번으로 고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