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自然發生說 / Spontaneous generation theory[1]말그대로 특정 생물이 부모도 없이 그냥 환경만 맞으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현재는 실험을 통해 부정된 이론이고, 과학이 발달한 현대의 사람들이야 이 무슨 어이 없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당시에만 해도 정설이었다. 사실 현대에 와서도 꽁꽁 닫은 방에 모기나 초파리가 생기면 놀라는 것을 보면[2] 과학이 현대보다는 미진했던 전근대 시대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는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과학적 방법에 대한 이론과 실험 방법론이 발전한 것이 최소 18세기 들어서의 일이었고, 철저한 반증과 증거 수집을 위해 현미경과 미생물학이 발전이 뒷받침 되어야 했기 때문에, 무려 19세기까지도 자연발생설은 중론이었다.
2. 자연발생설의 주장
자연발생설을 처음 주장한 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벼룩은 먼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 구더기는 썩은 고기나 흙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 곤충이나 진드기는 이슬이나 흙탕물 구덩이, 쓰레기, 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 새우나 장어는 흙탕물 구덩이 속 '대지의 내장' 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 물고기와 개구리는 호수 밑바닥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 이는 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 벌레는 운하의 진흙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인도 문명의 문서에서도 자연발생설이 등장하며, 화생(化生, 산스크리트: upa-pāduka)이라는 용어로 불린다. 고대 인도인들은 의탁하는 곳 없이 업력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존재도 있다고 생각했으며, 지옥의 존재, 일부 축생, 일부 아귀, 아수라, 천신 등이 이렇게 태어난다고 믿었다. 바빌로니아의 고대 비문에서도 언급된다.
자연발생설의 근거로 삼았던 가장 유명한 실험중에 벨기에의 연금술사[3] 얀 밥티스타 판 헬몬트의 쥐 자연발생 실험이 있는데 이 실험은 다음과 같았다.
밀가루 낱알과 땀으로 더러워진 셔츠에 기름과 우유를 적셔서 항아리에 넣어 창고에 방치하면 쥐가 자연발생한다.
그가 보기에 해당 항아리에는 쥐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도 없고 쥐가 접근하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내부에 쥐가 있으므로 자연발생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이 실험은 외부의 교란 요인을 통제하지 않았고, 실험자가 지속적으로 실험실을 관찰하지도 않았다. 즉 실험의 결과물인 쥐가 스스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바깥에서 들어온 것인지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다. 현대적으로 보면 실험의 가치가 없는 뻘짓이지만 당시는 과학적 방법론도 발전하지 못했고 관측 기술도 부족했던 시대였으니 그러려니 하자.[4] 이 실험은 논리야 놀자에서 '귀납 추리를 할 때 주의할 점'의 예시로 실리기도 했다.
3. 자연발생설 부정 실험
일단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도 자연발생설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자연발생설 부정을 위한 대표적인 실험 중 하나로는 1665년 프란체스코 레디의 고기를 이용한 실험이 있다.- 2개의 병에 각각 고기를 넣는다
- 한쪽 병은 방치하고, 한쪽 병은 천으로 덮어서 막는다
- 그냥 놔둔 병은 구더기가 꼬이지만, 천으로 덮은 병에는 구더기가 꼬이지 않았다
"(중략) 동시에 나는 Barbi라고 불리는 물고기를 구멍이 가득한 박스에 넣었고, 같은 방법으로 구멍을 뚫은 뚜껑으로 닫았다. 4시간 뒤 내가 열었을 때 나는 아주 작은 구더기들이 물고기에 굉장히 많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물고기 관절과 박스 안 모든 구멍 근처에 굉장히 많은 알이 무리지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중략)"
1675년에는 레벤후크에 의해 미생물이 발견되었지만, 미생물의 발견이 오히려 자연발생설에 더 가속도를 붙여주게 된다. 애초에 첫 발견 당시 미생물의 생태까지는 별로 연구되지 않았고, 미생물이 어떤 방식으로 번식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또한 미생물은 어디에나 존재하는데다가 어설프게 천으로 덮어주는 정도로는 막을 수 없었으므로 가열한 고깃국물에서 미생물이 발견되는 것을 보고 "미생물도 자연발생한다" 라면서 자연발생설을 지지하는 근거로 이용된 것.
레디의 1684년 책 "Osservazioni intorno agli animali viventi che si trovano negli animali viventi (살아있는 동물 안에서 찾은 살아있는 동물의 관찰)"에 보면 그는 기생충은 알에서부터 발생한다고 적었다. 이는 그 당시 자연발생과 대조되는 가설이었으나 레디는 파리는 자연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반면 미생물은 자연발생한다는 절충론을 내놨다.
결국 자연발생설은 200년 뒤인 1861년에야 루이 파스퇴르의 그 유명한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으로 완전히 부정된다.
3.1.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플라스크에 고깃국물을 넣고 주둥이를 가열하여 S자로 구부린다
- 열을 가하면서 끓인다
- 플라스크에 미생물이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구부러진 주둥이를 제거하면 미생물이 증식한다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의 모습
이 실험은 일단 둘다 '똑같은 조건'에서 '공기가 통하는 플라스크'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파스퇴르 이전에도 자연발생설을 반박하며 '공기 때문에 생물이 번식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한 예로 라차로 스팔란차니[5]란 학자는 유기물 용액을 가열한 뒤 용기를 금속으로 완전히 밀폐하면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자연발생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연발생을 위해선 공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서 "공기가 없으니 어차피 자연발생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라는 반박을 하였고, 자연발생설을 비판하던 학자들은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6]
파스퇴르의 플라스크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데 일단 고깃국물안에 있던 미생물은 가열 살균을 통해 없어진다. 그리고 S자로 구부러진 병목 중간에 미생물이 걸려서 공기만 들어올 수 있지 미생물은 플라스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당연히 아무 처리도 하지 않으면 미생물이 들끓게 된다. 이 당시 파스퇴르가 실험한 플라스크는 실험 당시의 고깃국물이 담긴 그대로 파스퇴르 연구소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물론 고깃국물은 부패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실험도 그렇게 완벽하지는 않아서 결국 몇가지를 더 거쳐야 했다. 한 예로 파스퇴르의 실험을 반박하기 위해 펠릭스 푸세란 학자는 동일한 실험을 했는데, 이 때 푸세가 선택한 도구는 고깃국물이 아닌 건초의 추출물이었다. 그런데 이 건초 추출물에는 열에 강한 바실루스 균이 있었고, 가열 살균 후에도 남아 있는 바실루스 균이 번식했다. 이에 대한 논란은 1876년에 공식적으로 열에 강한 바실루스 균을 발견한 뒤에야 끝마치게 되었다. 어쨌든 파스퇴르의 실험은 일단 자연발생설 부정의 근거를 확립했고, 이 실험 이후 자연발생설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실험에 쓰인 것은 고깃국물인데 과학 관련 단행본 서적이나 인터넷에는 종종 고깃국물이 아니라 우유로 실험했다고 나올 때가 있다. 이는 육수를 사용한 실험 후에 우유 등으로 추가실험을 한 것이 잘못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링크 한편 어린이용 동화집이나 과학 서적에는 또 '스프'라고 적혀 있어서, 오뚜기 수프의 그 걸쭉한 노란색 크림스프를 떠올리는 어린이 독자들도 왕왕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사진에서 보듯 그냥 고깃국물(육수)다.[7]
4. 최초 생명체의 자연발생 여부
생명의 기원 | |
<colbgcolor=#F1FCFE,#212121> 유기물 형성 추정원 | 밀러 실험 |
막 형성 추정원 | 코아세르베이트 ㅣ 마이크로스피어 |
중합체 형성 추정원 | 유기물 정렬 |
유전 물질 생성 추정원 | RNA 세계 |
최초의 세포 |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 |
특정 생물이 특정 환경에서 자연발생한다는 이론은 이제 완전히 폐기되었으나, 여전히 의문점은 남았다. ‘생명체가 자연발생하지 않는다면 지구 역사상 최초의 생명체는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8]
이 문제는 20세기 초반까지도 이렇다 할만한 대답이 나오지 않은 문제였고, 이에 ‘최초 생명체는 자연발생했고, 이후 복잡한 형태의 생물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라는 식으로 자연발생설이 부활하나 싶었으나, 러시아의 생화학자 알렉산드르 오파린(Алекса́ндр Ива́нович Опарин, 1894~1980)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식물학회에서 화학반응으로 인한 최초의 생명체 탄생 논문을 발표하며 주장한 화학진화론에 의해 다시 전면 반박되었다. 오파린 박사는 1938년에 저서 <생명의 기원>을 출간해 대중들에게 화학진화에 대해 널리 알렸고, 1952년에 미국의 스텐 밀러와 해롤드 유리 교수가 밀러 실험을 통해서 이 가설의 일부를 입증한다.[9] 이처럼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는 후속 연구들이 거듭된 끝에 화학반응에 의해 무기물에서 최초의 생명이 합성되었다는 과학적 합의가 도출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면 이것도 자연발생의 일종으로 보일 여지가 있으나,[10] 자연발생은 특정 환경에서 ‘그냥’ 발생하는 것이고, 이쪽은 엄연히 화학작용의 결과로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이론이기 때문에 주류 과학계에서는 자연발생과 화학진화를 엄격히 구분짓는다.
최초 생명체의 탄생이 화학작용에 의해 일어났다는 이론은 유력하나, 구체적으로 어떠한 화학작용에 의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아 아직도 연구중에 있다. 그러나 적어도 두번 다시 자연발생설이 중론으로 채택되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1] 본래 Abiogenesis라는 단어가 자연발생의 의미했으나 과학의 발전으로 생명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생명의 기원을 다루는데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2] 오죽하면 화랑곡나방과 나방파리는 하도 집 구석구석 오만곳에서 튀어나오는 탓에 쌀통과 하수도에서 자연발생한다는 드립이 나돌았을 정도다.[3] 연금술사이며 화학자이자 자연철학자이며 의사이기도 했다. 정식직업은 의사였다.[4] 다만 헬몬트가 사이비 연금술사는 아니었는데, 물질이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킬 때 그 물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일 뿐이라는걸 밝혀냈다. 또한 가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식물은 흙이 아니라 물이 있어야 자란다는 걸 밝히기도 했다.[5] 의학 및 생물학의 여러 분야에 관여한 학자로 인체의 소화 작용 원리, 신체 조직의 재생 작용, 혈액 순환 등의 분야를 연구했다. 소화 작용을 연구할 때는, 자신이 먹은 음식을 토한 뒤 그걸 다시 먹고 토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소화의 진행 과정을 연구하기도 했다.[6] 참고로 미생물 중에는 산소 없는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만약 정말 미생물이 자연 발생이 가능하다면 산소 없는 공간에서는 이것들이 자연발생 했을 것이다.[7] 프랑스인 만큼 고깃국물이라면 아마도 콩소메일 가능성이 높다.[8] 한때 본 문서에서는 ‘신자연발생설’이라는 이름으로 최초 생명체의 자연발생 가능성을 소개했으나, 실제로는 주류 과학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용어였고, 위키 사용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로 밝혀졌다.[9] 간단한 화학분자를 원시 지구환경을 모사한 실험기구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기물 합성에 성공한다.[10] 어찌되었건 ‘자연’에서 생물이 ‘발생’했으므로. 하지만 자연발생설이 말하는 현상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펑 하고 쥐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걸 말한다. 즉 화학변화로 나타난 최초의 생명은 '펑' 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므로 자연발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