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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8 14:22:48

일요신문

정식명칭 일요신문사
설립일 1991년
업종명 신문발행업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소기업
웹 사이트

1. 개요2. 특징3. 여담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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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서울문화사가 발행하는 타블로이드형 주간신문. 1987년 6월에 '일요뉴스'로 창간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타블로이드 주간지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래 타블로이드 주간지의 선도주자로 활약해온 신문이다.[1] 일간지와 달리 심층 취재 보도를 주로 하는 주단위 신문이다. 주간지와는 다르다.[2] 신문발행 허가가 난 때는 1987년이지만, 이때는 전두환 정부 시절인지라 신문을 새로 낸다는 말에 당국이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일요뉴스'라는 명칭으로 창간하게 되었다.

1987년 11월에 언론기본법이 폐지되자, 이듬해인 1988년 3월에 일요신문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창간 초기에는 보기좋게 망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있었지만, 흥미성에 집중한 보도들과,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정치 후일담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창간 1년만에 흑자를 거둘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로서는 미약하지만 '대안 언론' 형식의 성격을 띄고 있었던 셈. 그러나 1989년 말에 외압으로 돌연 휴간되었고, 이후 전 경영진이 서울문화사에 일요신문을 넘겼다. 서울문화사1991년 (주)일요신문사라는 계열사를 만들어서 1992년에 일요신문이 복간되었다.

젊은 세대에겐 인지도가 과거에 비해 한참 못하지만, 온라인 인프라가 보급되기 전인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타블로이드지의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지하철, 편의점, 버스터미널, 기차역 신문 가판대처럼 유동인구 높은 곳에 비치되어 유통됐기에, 높은 지명도와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신문 자체의 분량도 꽤 묵직하여,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대중교통 이용시, 명절 또는 연휴철에 이동하면서 버스, 철도를 탈 때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좋은 유용한 볼거리이기도 하였다.

2011년 7월 1000호를 발행했다. 일요신문의 자매지로는 경제신문 비즈한국이 있다.

2. 특징

지금은 존재감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한때 과거에는 매체 불문하고, 국내언론 중 고도의 신속성과 신뢰성을 보여주던 탐사보도 전문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창간당시엔 군사독재 및 그 잔향으로 인해 왜곡됐던 한국 언론환경의 특수성 덕택에, 오히려 타블로이드가 가진 언론자유도에 기인하여 주목받은 바가 컸다. 이후 21세기엔 언론사 인플레가 일으킨 기사표절 및 돌려쓰기[3] 및 공급과잉으로 인한 기자들의 질적하락 풍조 속에서, 묘한 선정성과 독특한 탐사취재 사이의 묘한 줄타기를 하는 식의 특수한 이미지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이미지나 시장지위는 일요신문 한정이고, '일요시사', '사건과 내막' 같은 다른 황색 타블로이드지들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물론 일요신문도 지면에 여성 수영복 모델들의 사진을 배치하여 유두만 별표로 적당히 모자이크한 반나체 여성들이 즐비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영국의 더 선이나 데일리 미러, 독일의 빌트 등 외국계 타블로이드지들이 자극, 선정적인 황색언론으로 악명높은 데 반해, 일요신문은 '선정성을 겸비한 탐사 보도'라는, 한국 시장에서는 꽤나 상이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취재에 투입하는 시간적 자원이 풍부한 주간신문이란 특성 탓이었던지, 과거 창간 당시부터 특종을 생산해내던 역사가 있으며[4] 2010년대에도 정주영 현대 회장의 숨겨둔 딸을 찾아내고# 이명박 일가 및 SM다스의 거래를 최초로 밝혀낸다든가#, 최순실이 먹은 곰탕집을 발로 뛰어 찾아서 다닌다는가 하는 내력을 자랑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여타 언론사에선 포착, 구사하지 못하는, 혹은 기성 언론에서 별로 신경쓰기 않던 분야의 탐사보도나 후속보도, 밀접 & 심층취재 덕에 일요신문의 명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력들 중에서도 기념비적인 일획이 바로 전두환 비자금의 최초 보도이다# 이렇듯 취재능력 뿐 아니라 예측능력도 발군이라 정확도가 높았다. 일요신문의 가장 대표적인 적중예측이라면 전두환-노태우 사형선고 후 사면이란 시나리오를 1995년에 정확히 예견했던 것을 들수 있다.

물론 이러한 탐사보도와 심층취재, 특별인터뷰와 기고는 다른 국내의 시사주간지나 주요 월간지도 행하는 바가 있지만, 이념지향성과 정치성향이 뚜렷한 사회적 분위기, 혹은 한국 언론들의 지형상, 매체의 이념 지형을 넘어서기는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참고로 한때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 언론의 자유가 대폭 확충되기 시작한 90년대 중후반 즈음까지는 과거 수십년 간의 권위주의 독재 시대에 묻혔던 이야기들에 대한 '시사 후일담 보도'가 월간지와 주간지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시절에 신동아월간조선 등의 월간지 등이 이러한 류의 특종을 많이 했다. 하여튼 주류의 언론 잡지들은 취재한 내용이 지면보도로 이어지기까지는 수많은 제약이 산재해 있고, 설령 보도를 하더라도 매체의 논조에 맞추고, 고정구독층을 만족시키는 취사선택적 악마의 편집을 일삼는다는 인식과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상황의 역설 덕분에 되려 정치색이 상대적으로 희미한 일요신문이 소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요신문에선 각 주요 일간지 및 신문사 계열의 시사잡지가 각자의 성향에 따라 발언창구로 애용하는 정치, 사회평론 및 사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3. 여담

4. 관련 문서



[1] 다만 민주화 이후로 타블로이드 주간지의 선구자라고 할만한 언론은 여기보단 토요신문에 더 가깝다.[2] 주간지는 A4 용지 크기에 발행되는 주간 잡지이다. 주간조선, 뉴스위크, 한겨레21, 시사저널, 시사IN 등이 여기에 속한다.[3] 이른바 '우라까이'라고 한다. 돌려쓰기의 경우 보통은 연합뉴스같은 뉴스통신사의 기사를 1차로 해서 이리저리 우려먹는 경우가 많다.[4] 한때 여성지가 매우 두꺼운 페이지수를 자랑하며 잘 나가던 90년대까지는 여성지 편집장들이 시사 분야 쪽 기사거리를 선별하기 위해 일요신문을 뒤진다는 카더라도 돌았다. 여성지에도 실을 만한 적당한 선정성을 겸비한 적당한 이슈를 일요신문이 잘 다루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