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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4 12:42:12

이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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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회림
(1962~1969)
제2대
이병두
(1969)
제3대
우만형
(1969~1970)
제4대
이회림
(1978~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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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199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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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석
(2019~2023)
제7대
이우현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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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그룹 초대 회장
이회림
파일:oci이회림.jpg
<colbgcolor=#e41d25><colcolor=#fff> 출생 1917년 5월 12일
경기도 개성군
(현 개성시)
사망 2007년 7월 18일 (향년 90세)
본관 전주 이씨
학력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아호 송암(松巖)
가족 아버지 이영주[1]
형제자매 2남 3녀 중 장남[2]
배우자 박화실
장녀 이숙인
차녀 이숙희
장남 이수영
삼녀 이정자
차남 이복영
삼남 이화영

1. 개요2. 가족관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경기도 개성시 출신으로 실향민 출신 사업가다. 그의 아버지는 개성상인이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개성에서 사업을 하였다. 그래서 이회림 회장의 별명은 '마지막 개성상인'이다. 이후 화학산업의 기초 재료인 소다회를 국산화해 대한민국 화학산업의 기초를 닦았다.

1945년 8.15 해방 직후 그는 서울로 상경해 종로에 포목 도매상인 이합상회와 무역회사인 개풍상사를 설립했다. 개풍상사는 당시 수출실적 1,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대한탄광 인수(1955년), 대한양회 설립(1956년)에 이어 서울은행 창립(1959년)에 동참하면서 한국 산업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회장은 경기도 인천시 남구 학익동(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앞의 서해바다를 매립, 80만평의 공단 부지를 조성해 1968년 소다회 공장을 준공했다.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화학산업을 국내 최초로 개척한 것이다. 이후 그는 40여년간 무기화학, 정밀화학, 석유석탄화학 분야 등 오로지 화학산업에 매진해 오늘날의 동양화학공업을 키워냈다.

국가산업발전에 대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1971년), 은탑산업훈장(1979년), 금탑산업훈장(1986년)을 수훈했고, 세 차례에 걸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또한 한국프랑스간 경제외교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사작위와 국민훈장을 받은 바 있다.

1989년에는 이북5도위원회 산하 개성시의 명예시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또, 학교법인 송도학원 이사장으로서 송도중·고등학교[3] 지원 및 장학사업 등을 벌이며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특히 한국 고미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평생 수집한 8400여 점의 문화재를 보유한 송암미술관을 건립, 인천시에 기증(2005년)하는 등 문화예술 사업에도 헌신했다.

2.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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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북 실향민 황해도 출신의 박화실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3남 3녀를 뒀다. 아들은 이수영 전 OCI 회장,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 이화영 유니드 회장 3형제가 있는데 장남 이수영 회장은 이미 작고했다. 손자들인 이우현 OCI 회장, 이우성 SGC이테크건설 부사장, 이우일 유니드 부사장도 경영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1] 개성에서 무역업에 종사했다. 주로 중국인들과 백삼 교역을 했다.[2] 남동생 이회삼은 유니온의 전 회장이다.[3] 이회림 본인의 모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