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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01:15

이아나 로베르슈타인/성격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이아나 로베르슈타인
1. 개요2. 성격
2.1. 외강내유2.2. 외면해버린 스스로의 진심2.3. 외골수2.4. 이기주의2.5. 후회에 대한 강박2.6. 부정적 연애관2.7. 호감 한정 둔감
3. 신념

1. 개요

웹소설 아도니스의 주인공 이아나 로베르슈타인의 성격을 작성한 문서이다.

2. 성격

살아온 인생이 팍팍했던 만큼 여러 가지 비틀린 면모[1]도 지니고 있지만, 본질은 올곧다.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으면 바로 반성하고, 회귀 전의 자신이 저질렀던 원죄에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고 직시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점에서 잘 드러나는 부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정령들도 '자신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올곧고 강인한 영혼'이라고 평했다.

2.1. 외강내유

아이 같은 자신은 나약해서 싫다.
겉으로는 강인해도 속에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상처를 품고 있는 외강내유형 캐릭터. 나약함을 보이는 것을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하는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있고,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한다.

이는 나약함을 드러낸 것이 그녀의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던 점에서 기인한 것. 어린 시절 외로움을 드러냈기에 어머니한테 이용당했고, 인정 받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악의밖에 없었다.
마음에 철옹성을 둘렀다. 먼저 다가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멀리서 다른 이들의 행동을 관조하듯 바라보았다.
사람들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었다. 저를 절대 배신하지 않으리라 판단한 사람들은 성안에 두고 그들의 편이 되어 주었으며, 아군이 아닌 사람들은 적으로 돌변할 경우 언제든지 베어 가를 수 있도록 무생물처럼 취급했다.
그것이 그녀가 이제껏 적을 무심하게 처분하는 잔인한 심판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군에게 정을 주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정없이 자란 차가운 검은 저 홀로 고고하기에 바빴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한 적 없었다. 에게도, 아랫것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들이 그녀를 헐레벌떡 뒤쫓았을 뿐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잠시 뒤돌아봤을 때 그들이 힘들어하고 있으면 손을 잡아 주고 도와주었을 뿐, 그 이상의 감정의 교류는 없었다.
필요 없었다.
정을 구걸하는 것을 포기하고 결국에는 받는 것조차 거부하게 된 인간의 말로였다.
회귀 전에 모두에게 외면당한 끝에, 결국엔 완전히 홀로서기 함으로써 그녀는 강해질 수 있었다. 그 결과 가족이든 적이든 무생물을 처리하듯 베어 넘기는 잔인한 심판자가 될 수 있었던 대신, 그 내면의 외로움과 고독은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회귀 전의 그녀를 평생 괴롭혔다.

2.2. 외면해버린 스스로의 진심

아무리 애걸해도 받을 수 없는 애정에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나약한 소녀를 죽여 심장에 묻고, 아픔을 눅눅한 곰팡이 속에 처박아 두고 어른이 되었다.
'당신들을 이해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나를 미워하는 당신들을 이해해.'
나는 당신들의 호감을 바랐을 뿐이야.
'나는 억울해할 자격이 없어.'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어.
죽음도 몰랐고, 어머니가 건넨 게 독인지도 몰랐어.
'나를 미워해도 좋아.'
당신들이 미워하는 내 모든 것은 내 자의가 아니었어.
'당신들을 이해해.......'
그래서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어. 하지만 당신들은 노력하는 나를 나로 봐 주지 않는구나.

"어디 없어? 나를 나로만 봐 주는, 그런 사람 없어?"


.....없었다.
작중 초반부에 종종 속으로 '그들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이해하고, 포기했다'고 독백하는데, 4권에 학술제 편을 보면 알겠지만 이건 실제로 이해했다기보단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감정적 방어기제에 가까웠다. 그러한 감정의 방어벽을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듯 되새기다 보니 어느새 본인도 스스로의 상처를 자각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2] 그녀의 상처는 회귀 후 르보니를 죽이고 억울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나, 체르노가 자기를 걱정하거나 다가오려는 모습을 보이자 평소처럼 비웃듯 흘려넘기지 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회귀 전의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고 감정을 죽임으로서 자기 나름의 평온을 찾았다. 슈나이더의 밑으로 들어가 자신을 모욕했던 자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그 대가로 평온을 얻었던 그 삶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라고 한다. 작중에서 언급되지 않으므로 뇌피셜일 수도 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생각 또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세뇌시킨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다. 사랑받고 싶지도 않다' 라는 식으로 타인과의 감정 교류 자체를 차단함으로써 상처받을 수 있는 여지 자체를 없애버렸던 것. 검에 매달렸던 것도 단순히 자기보호나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엿 같은 삶의 유일한 보람이었기 때문[3]. 하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오기를 부리는 그 과정에서 그토록 원했던 '나를 나로만 봐주고 이해해줄 사람'이라는 최초의 바람을 포기하고 잊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을 천시했던 자들에게의 복수까지 끝낸 뒤에는 아마 속으로는 상당히 공허했을 듯. 행복하지 않은데 목표마저 사라진 삶이니. 결국 그 메마른 마음이 아직 남은 유일한 목표인 승리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2.3. 외골수

상당한 고집쟁이에 독불장군. 자기가 한 번 이 길이다 하고 정하면 남의 말을 좀체로 듣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가 찾아낸 삶의 방식이었고, 이는 회귀 전에 아르하드의 회유에 귀를 닫고 승부에 집착하는 쪽으로 발현됐다. 만약 회귀 전 이아나에게 "힘들었지? 잘 버텼어."라고 말해준 사람이 이아나의 곁에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아나가 그렇게 마음을 닫고 차갑게 행동하진 않았을 것이다.

학술원에서는 바하무트로 국적을 이동하기 위해 교양과목으로 바하무트 관련 교양을 들으려하며 이마저도 학술원에서 3년을 버텨 청년 검술대회에서 아르하드를 만나며 학술원은 조기졸업하기 위해 모든 수업을 검술수업만 듣고 남은 시간에는 상위 학년의 검술수업을 들으려다 1학년 1학기에는 불가능하기에 그 시간에 검술수련을 해야하나 고민하는 이아나를 에이지가 말린것.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던 회귀 이전 이아나와 아르하드의 관계는 아르하드의 방치나[4] 황금의 악마와의 연결로 인한 광기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었지만, 모든 것의 시작은 주변의 악의에 잠식되어 망가져버린 이아나의 마음이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소원을 포기한 이아나가 검에 집착한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검을 들었을 때만큼은 사람들이 그녀를 색안경을 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원한다는, 체념해버린 그 평생의 바람을 불완전하게나마 이루어 준 스스로의 검술 실력을 보잘것없게 만드는, 그녀를 패배시키는 아르하드를 용납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그 체념이었다.

이아나는 회귀 전의 생애에서 외로움과 공허함을 잊으려고 내내 집착할 무언가를 찾아 해맸다. 검을 통해 얻는 승리에 취하며 대리만족을 느꼈지만, 스스로의 상처를 외면하는 이상 그 만족감이 오래갈 수는 없었고, 은연중에 집착할 대상을 찾아 해맸던 것이다. 집착은 검과, 검을 통해 자신을 모욕하는 자들에게의 복수로, 그 다음에는 아르하드와의 승부로 이어진다. [5] 즉 아르하드라는 인간이 그렇게 싫어서 거부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울분을 승리로 달래기 위해 아르하드라는 '적'이 필요했던 것. 무의식적으론 삶의 이유가 필요했고, 의식적으론 '검술에 있어서만은 내가 최고여야 한다. 검을 들어야만 사람들이 나를 나로 봐주니까.' 라는 강박이 있었다.

아마 승부에 대한 집착이라도 없었다면 이아나도 회귀 전의 에이지처럼 자살까진 아니더라도,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상실감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에이지와 이아나의 삶은 '상처받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원하던 것을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이해해줄 사람이라는 최초의 바람을 잊어버렸다' 는 점에서 묘하게 비슷한 면이 있는데, 정작 그런 에이지는 회귀 전의 삶에서 복수를 끝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죽을 때 후련해한 건 아마 지쳐서 모든 걸 끝내고 쉬고 싶다는 심리도 어느 정도는 반영됐을 듯. 실제 작중에서도 죽기 직전의 이아나는 초라한 말로에 만족하며 웃었으며, 독백으로 '지친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머리로는 납득하지만 가슴으론 납득하지 못하는 실력 차' 라고 되뇌인다. 그랬기에 아집에서 해방된 회귀 후에는 회귀 전의 자신이 수도 없이 상처 입힌 '회귀 전의 아르하드' 에게 몇 번이고 죄책감을 느낀다.

2.4. 이기주의

빛이라니. 자신과 제일 어울리지 않는 말이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잘 웃지 않고, 무뚝뚝하기만 하며, 아집으로만 가득 차 제 것들밖에 챙길 줄 모르는 이기적인 자신이 빛이라.

'자기 자신만을 위한다' 기보단, '자기 범위 안의 것들만을 위한다'에 가깝다. '제 것' 이 아닌 것에는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수 있는 성격. 이아나가 '사람'으로 인정하는 건 오로지 자신의 선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뒤지든 말든 상관없는 '무언가'. 일례로 회귀한지 얼마 안 지난 시점에서 죄 없는 부녀자인 사라체 로베르슈타인 독살을 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오로지 자신의 회귀 전 삶을 긍정하겠다는 이유만으로. [6] 이런 일면은 아르하드와도 비슷한 것 같지만 아르하드는 그게 '타고난' 거고 이아나는 '만들어진' 것. 또한 아르하드가 선 안에 들인 건 이아나 한 사람뿐이지만 이아나는 협소하긴 해도 아르하드보다는 범위가 넓다.

또한 자길 건드리는 놈한테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스타일. 본인 입으로 '자신은 절대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약자든 뭐든, 날 건드리면 전부 적이다'라고 인증한 부분. 근데 저게 사소한 것까지 돌려준단 건 아니다. 나름대로 본인의 기준이 있고 그 선을 넘지만 않으면 아예 신경도 쓰지 않지만 그 선을 넘어가는 순간 얄짤없다. 일례로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건 신경 하나도 안 쓰지만 자기 면전에서 모욕하는 놈은 절대 그냥 넘기는 일이 없다. 대표적인 게 자신에게 찝쩍거리던 쓰레기 넷을 고자로 만들어 버린 거랑 자기 면전에서 모욕과 망발을 지껄이던 교수를 살기로 무릎꿀려 사죄받은 사건. 그야말로 All or nothing이란 걸 온몸으로 실천하는 주인공. 이렇게 쓰면 악의만 돌려주는 것 같지만 호의도 받은 만큼 돌려주는 편이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컨디션 최악인 상태로 에이지를 구하러 가거나, 시아이외한테 '프리실라를 갖고 노는 거면 가만 안 둔다'라고 경고하거나 나중에 둘이 사귄다는 걸 알게 됐을 땐 '잘해줘라'라고 말하는 등. 한줄로 요약하자면 은혜와 원수는 반드시 갚는다는 게 인생의 모토.

본인도 스스로의 이런 성향을 자각하고 있는지 그녀의 성품에 반한 사람들이 칭찬해도 '나는 그다지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자조적으로 응수한다. 하지만, 애초에 막장 부모[7] 밑에서 이 정도 성격이면 상당히 잘 자란 거다. 피로 물든 회귀 이전의 생애에 대해서 '잔인한 선택들' 이라고 회고하는 이아나의 독백은 아직 그녀 안에 살아 숨쉬는 인간성을, 그리고 그걸 버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던 회귀 전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내면의 울분을 증오로 승화시켰던 그 삶이, 단련된 멘탈로 인해 어떤 비방에도 동요하지 않는 회귀 후의 그녀에겐 '나는 나 자신의 약함을 그런 식으로밖에 극복할 수 없었던 나약하고 어리석었던 놈이다' 라는, 일종의 자괴감이 되어서 다가오는 듯하다. 자기 자신의 외로움과 고독을 외면하고, 막상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던 사람과는 박터지게 싸웠으니.

이 기질은 회귀 후에도 이아나의 성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 중 하나. 다만 회귀 전에는 저 선 안에 있었던 것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었다면 회귀 후에는 회귀 전의 맹세에서 아르하드를 들인 것을 시작으로 에이지나 프리실라 등의 '타인'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편이다.

2.5. 후회에 대한 강박

회귀 이전 어린 시절에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으나 아무 소용 없었고, 검술을 갈고닦는 걸로 노력의 방향을 바꾸자 어미랑 딸을 엮어 이아나를 매도하던 사람들이 입을 닥쳤다. 이아나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 애쓸 시간에 진작 검술수련을 했다면 좋았다고 후회했다. 그런 경험이 회귀 전후를 통틀어 후회하는 걸 매우 싫어하는 성격을 만들었다. 설령 죽더라도 내가 선택한 결과니 후회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르하드 손에 죽을 때도 최고의 인생은 아니었지만 최선이었다며 후련해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모든 선택을 긍정하는 건 아니다. 그녀의 '후회 없음'은 스스로의 선택을 끝까지 짊어지는 일종의 책임감, 또는 스스로의 엿 같은 생애를 어떻게든 좋게 포장하려는 자존심과 자기방어에 가깝다. 회귀 전 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라고 생각하고, 명백하게 졌는데 인정 못 했다며 흑역사 취급하고는 있다. 아르하드에게 거의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은 7권 이후에도 회귀 이전의 이야기만큼은 털어놓지 않았다. 즉 양쪽이 '상대는 모르는 내 이불킥썰을 굳이 풀 필요는 없지, 그런데 이런 식으로 과거를 삽질하고 있는 나도 참....'이런 상태다. 나중에 둘이 회밍아웃하면 볼만할 듯
후반부 스포일러
이아나와 아르하드가 회귀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은 11권 41-43화. 참으로 길고도 긴 장정이었다. 회귀 이야기 때문에 매번 독자들 뒷목잡았지….

2.6. 부정적 연애관

아이의 남녀관은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는 법인데, 이아나가 본 부모관계는 르보니의 일방적 지랄. 때문에 로판의 주인공인데도 사랑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사랑은 파괴적이고 금방 식어 버리는 감정이며, 연인이란 관계는 내가 노력해도 상대방이 소홀해지면 파탄나는 부질없는 관계라고 묘사한다. 다만 그렇다고 사랑을 완전히 혐오하는 것도 아니다. 엘로냐의 낙원 부부나 르보니가 끼어들지 않은 로베르슈타인가 부부들을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사랑을 혐오한다기보단, 일그러진 사랑의 안 좋은 면을 너무 가까이서 오랜 시간 봐았고,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사랑이란 감정에 자신을 내맡기기 두려워하는 것에 가깝다.

회귀 후에는 아르하드와 관계를 맺어가며 서서히 극복해나가는 중. 프리실라에게 사랑이 뭔지 물어보기도 하고, 압실롯과 란카의 사연에 대해 듣고, 로베르슈타인의 기억 속 사랑을 느끼면서 사랑이란 감정 속에 자신이 알지 못했던 따뜻하면서도 뜨거운 면이 있다는 걸 깨달음으로써 7권 쯤에는 사랑에 대한 거부감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게 된다.

2.7. 호감 한정 둔감

결코 눈새는 아니다. 전장에서 상대의 기색을 읽는데 이골이 나서 악의비밀 쪽으론 오히려 눈치가 빠르다. 카마트로스션의 정체도 금세 알아채고, 레리트 타루이트의 사교계 귀족다운 예의바른척 시비거는 화법도 다 감지한다.

하지만 호감, 특히 연애 감정에 한해서는 둔하다 못해 아예 그쪽 뇌가 없는 수준. 회귀 전엔 타로라랏슈아의 관계를 하인이라는 라랏슈아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8], 아르하드가 아무리 구애해도 단순한 인재 욕심으로 받아들이다가 3권 말미에서야 그게 단순한 인재욕 이상임을 깨달으며, 빼박 러브레터인 분홍 편지지를 받아도 첫 반응이 "결투신청인가?"였을 정도... 아르하드가 갈 길이 멀다
또한 악의 없이 돌려 말하는 화법은 알아듣지 못하는 편이고,[9]. 악의는 잘 받아치다 못해 상대방을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호의에는 익숙하지 않아 하고, 자길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미숙한 일면도 있다.

이런 성향을 낳은 가장 큰 원인은 경험 부족.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줄 리가 없다'는 비틀린 가치관을 무의식중에 갖고 있는 듯하다. 6권 전까지 '아르하드가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쭉 독백하는 데에서 스리슬쩍 암시되는 부분. 저런 식의 자아관을 갖고 있는 만큼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에도 언젠가는 나를 떠날 것이란 전제를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편이다. 인간불신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회귀 전에는 이런 성향이 극에 달해서 '상대방이 나가떨어져도 전혀 지장 없을 정도의 관계'만 유지했었다고. 타인과 깊계 연결되어 본 적이 없는 만큼 복잡한 관계, 깊은 감정에 대해서는 상당히 서툰 것.

3. 신념

세상은 약육강식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므로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건 당연한 일이며, 이를 죄라고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아나가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광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전쟁보다는 평화가 낫다'라는 보편적인 윤리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윤리의식의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이 일반적이지 않은 것. 이아나는 보편적 윤리보다 개인의 신념을 더 중요시한다.

일반적인 도덕이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해칠 권리가 없다'라고 주장한다면 이아나는 반대로 모든 사람에게 그런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신념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나아갈 권리가 있으며 이는 탓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라는 것.

이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과도 유사하다. 도덕과 윤리보다 힘과 의지를 중요시하는 모습, 기존의 도덕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자신만의 신념을 따르는 사람을 좋게 평가한다는 점 등에서 니체의 초인 사상과 공통점을 보인다. 하지만 니체는 신념 없이 노예도덕을 따르는 사람들을 '말종 인간'이라 부르며 혐오한 반면 이아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혐오도 하지 않는다는 차이점도 있다.

위의 이기주의와도 연관이 있는데, 이아나는 모르는 사람 100명보다 좋아하는 사람 1명을 더 소중히 여기는 성격이다. 그런 사람은 일반인 중에도 많겠지만 이아나는 단호함의 차원이 다르다. 일반인에게 가족 한 명과 모르는 사람 100명 중 살릴 쪽을 고르라고 하면, 결국 가족을 선택할 사람도 그 과정에서는 상당히 망설일 것이다.하지만 이아나라면 망설임 없이 100명을 죽일 것이다. 설령 소중한 사람이 큰 죄를 저지른 범죄자고 100명은 아무 잘못 없는 무고한 사람이라도. 아르하드가 바하무트 제국을 차지하고 정복전쟁을 벌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겠지만 이에 반대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모르는 대륙민 수십만명의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르하드의 소망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이아나가 폭력과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회진화론자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다.
결국 이 세상은 약육강식이라는 섭리 안에서 돌고 돈다. 약자가 강자에게 잡아먹히는 건 당연한 거다.
그리고 약자가 모두 사라지면 최상위층에 있는 강자도 사라지게 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불평등한 균형'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섭리만 강조된 것이 아닌가?
아르하드가 말하는 '강약만 존재하는 세상'은 야만적이었다. 실제 세상은 그보다 다채로웠다.
선악과 희생, 동정과 자비 같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행동은 약육강식의 섭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개념도, 방금 전 이아나가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네준 행동도, 약육강식의 섭리와는 맞지 않았다.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적인 섭리와 대립하며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또 한가지.
그것은 한 존재의 가치관과 신념이다.

이아나는 약육강식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세상은 약육강식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으며, 개인의 신념도 자연의 섭리만큼 중요하다는 것.
"그러니……."
(아르하드: "그러니?")
"강자의 신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념은 누구나 가진다.하지만 약육강식의 섭리에 따라 약자는 강자에게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제 신념이 어떠하든, 국왕과 귀족들이 만든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듯이.
하지만 강자는 다르다. 약자를 이끌고 주변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강자들은 제 신념을 바탕으로, 세상의 섭리를 거부하고 제가 원하는 대로 바꾸어 나간다.저의 신념과 충돌하는 다른 강자들과는 한바탕 전쟁을 벌인다. 그렇게 승리를 거듭하며, 제 신념을 정의(正義)로 만드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강자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체계는 '국가'다. 정의는 강자의 세계에서 법으로 빚어져 그에 소속된 이들의 신념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강자의 신념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아나는 약육강식과 신념 중시론을 '강자의 신념'이 가장 중요하다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냈다. 약자의 신념과 달리 강자의 신념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상을 통해 알아본 이아나의 신념은 '도덕보다 신념이 중요하고 윤리보다 힘이 중요하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겠다.


[1] 자기혐오, 본인조차 직시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상처 등[2] 어른스럽고 성숙한 이아나가 감정, 특히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에 한해서는 미숙하고 익숙하지 않아 하는 이유이다.[3] 아이러니하게도, 이걸로 인해 수천 년의 욕구불만자인 아르하드조차 충족감을 느낄 만큼 열정 넘치는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4] 물론 고의적으로 이아나를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결과가 심각하게 좋지 않았을 뿐.[5] 당시는 그 적개심이 단순한 열패감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했지만, 회귀 후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보니 그건 단순한 열패감이라기보단 좀 더 스스로의 자긍심과 관련된 무언가였다.[6] 근데 이 때는 성격 문제보단 자신이 노력해 봤자 바뀌는 건 없을 거라는 체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엿 같은 인생이라는 더럽게 어려운 퀘스트를 볼 꼴 못 볼꼴 다 보면서 중도포기만은 안하고 겨우 클리어는 했는데, 그게 싹 다 리셋된 상황이었으니 엄청나게 허망했을 듯.[7] 8살 먹은 딸에게 살인을 시키는 어머니와 너 같은 건 죽어버리라는 말과 경멸밖에 날려 준 게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다고 상상해 보라. 상식적으로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가지지 못한 아이들은 고립감에 자멸하기 쉽다. 연쇄 살인범 등의 흉악범이 되거나 알콜, 마약 등에 찌들어 산다는 방법으로. 이아나야 검술이라는 그런저런 건전한 방법이 있었기에 망정이지...[8] 회귀 전 이아나가 만났던 타로는 아르하드에 의해 사망한 타로를 라랏슈아가 그대로 본떠 만든 키메라였기 때문이 반쯤 맞긴 하다.[9] 아르하드가 "내가 남자로 보이냐"라고 묻자 "물론 남자로 보고 있습니다. 당신이 여자는 아니잖아요."라며 아르하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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