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 이반 파블로비치 세레다 Иван Павлович Середа Ivan Pavlovich Sereda | |
출생 | 1919년 7월 1일 |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도네츠크 알렉산드롭카 (現 러시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크라마토르스크) | |
사망 | 1950년 11월 18일 |
소련 우크라이나 SSR 도네츠크 알렉산드롭카 |
[clearfix]
1. 개요
소련의 군인이자 취사병, 그리고 인류사에 오래 남을 '취사병을 열받게 하면 어떻게 되는가?'와 '병사부터 장교까지 올라온 특급군인의 이야기'에 대해 아주 좋은 사례를 남긴 사람.2. 생애
2.1. 군 입대 전의 평범한 나날들
알렉산드로프카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남쪽의 갈리치놉카로 이사한 후 도네츠크 식품기술학교에 입학해 전문대 과정을 졸업하였다.입영통지서를 받고 식품기술학교 전문대 과정 수료생이라는 학력 때문에 보직이 취사병으로 결정되었다.
2.2.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화
그는 '제92 전차연대' 소속의 모 보병 소대의 취사병으로서 연대의 주둔지가 위치한 라트비아 SSR의 어느 작은 소대 기지에서 군사 경력을 시작하였다.그는 소대원들이 여느 때처럼 정찰을 나간 사이에 소대원들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병영식을 조리하던 와중에 어디에선가 들리는 무쇠의 마찰음을 보고 그 곳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를 지켜보던 그는 아군의 전차인 줄 알았으나 확인해 보니 아군인 소련 육군의 BT 전차나 T-26이 아니라 적군인 독일 육군의 2호 전차였다.
이후 적의 2호 전차는 소대 진지를 무한궤도로 깔아뭉개고 즈려밟으면서 깽판을 치기 시작하였고 그의 밥차를 본 독일 전차병들이 그가 정성을 담아 갖은 고생을 하여 만든 병영식이 든 밥차를 전차로 엎어버리자...
이후의 내용은 대전차오함마술 문서 참고.
2.3. 정찰대대로 바꿨는데 또...
정성들여서 만든 병영식이 더러운 진창에 독일군 전차병들의 무쇠 군화발에 엎어지자 이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엄청난 분노를 담아 전차를 도끼로 무력화한 전과로 훈장을 수여받고,이후에 전투에도 소질이 있음을 인정받은 그는 취사병에서 정찰병으로 보직을 변경하여 임무를 받자 열심히 정찰을 하고 있었는데 이윽고 지나가던 독일군 전차를 발견하여 집속수류탄으로 전차를 파손시켰다.
집속수류탄으로 전차를 박살내고 여기서 또 본인 특유의 임기응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차장 해치로 들어가 기관총을 난사하여 인근의 오토바이에 타고있던 독일군 병력 약 20명을 사살했다.
거기에 장교 1명과 병사 2명까지 포로로 잡는 큰 전공을 세운 뒤 격렬한 전투가 한창 벌어지던 1941년 7월과 8월 즈음에 총상을 입었으나 의무대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나서 회복한 후 바로 전선으로 복귀했다.
2.4. 장교로 진급, 두 번의 공방전에 참여하다
앞선 공로들을 공산당과 군 수뇌부로부터 인정받아 상사로 진급한 그는 제4 소총병연대를 지휘하며 레닌그라드 공방전에 참가하였고 1942년 모스크바 공방전에서는 제 7 소총병연대를 지휘하였다.2.5. 기병 장교가 되다
지휘관으로 진급하여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자포로지예에서 벌어진 전투 도중에 착탄한 독일군 야포의 포탄 파편에 피격당해 중상을 입어 후방으로 긴급히 이송되었다.군 병원에서 약 4달을 치료와 회복을 위해 입원했다가 재능을 알아본 상관들의 추천을 받아 지휘관 교육 과정을 밟은 뒤 1944년에 초급장교과정까지 수료하여 소위 계급을 받고 제2 근위기병사단의 제8 근위기병연대의 장교로 부임하여 1945년 4월 14일~5월 3일 정찰 및 보급 임무를 수행했다.
대조국전쟁 종전 후 2급 애국자 훈장을 수훈받고 중위로 진급했다.
2.6. 은퇴 후 말년
전후에 고향인 도네츠크 주 알렉산드롭카로 돌아간 그는 고향 마을의 소비에트 의장으로 임명되어 고향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존경을 받으면서 살아갔다.그러나 전쟁 중에 입은 부상이 갑작스럽게 악화된 나머지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1950년 11월 18일에 파란만장한 군인의 삶을 살았던 그는 고향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