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만화박물관에 전시된 이도영 삽화 |
1. 개요
이도영은 1909년(융희 3년), 대한민보에 발표된 만화로, 한국 시사만화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한민보에 1909년(융희 3년) 6월 2일 창간호부터 1910년 8월 31일 폐간될 때까지 1년 2개월 동안 시사 삽화를 그렸다. 이 작품은 대한민보가 창간된 시기인 대한제국 말기에, 국운이 쇠해갔던 당대에 대한 통렬한 비평을 담고 있다.2. 행적
이도영은 18살이 되었을 때 조선시대 화가였던 조석진과 안중식의 문하생이 되어 전통적인 기법에 다양한 소재를 접목시켜 자유로운 화법을 펼쳤다. 그의 화가로서의 기여뿐만 아니라 1918년에는 "고희동, 조석진, 안중식" 등 13인 발기인과 함께 서화협회를 창립하며 민족 운동에도 앞장섰다. 이도영의 활동은 근대기 교과서 삽화와 잡지 표지 등을 통해 활발했으며, 1910년대 딱지본 소설책의 표지뿐만 아니라 『홍도화』, 『옥중가인』, 『옥중화』 등 다양한 작품을 그려냈다. 그의 표지 작품은 근대 초기의 고급스러운 문화상품으로 꼽히며, 한국 출판사의 근대 표지 디자인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2.1. 작품
<colbgcolor=#07446e> 1910년(융희 4년) 6월 23일 자 《대한민보》 만평. 통감부 깃발을 든 일본 관료 양 옆의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만평을 그린 화가 이도영은 "한쪽에서 울며 청하고, 한쪽에서 구걸하는 상황이 참 가관이다"라고 적어두었다. |
3. 기타
[1] 일제와 기득권층의 탄압에 대한 풍자 만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