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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0년 12월 18일 |
충청남도 서천군 | |
사망 | 1968년 6월 27일 (향년 77세) |
충청남도 서천군 | |
서훈 | 건국훈장 애족장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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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919년 4월 28일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에서 송기면, 유성렬, 임학규와 같은 동지들과 함께 이튿날의 신장리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거사하기로 합의했다.거사일인 4월 29일 송기면이 미리 제작한 태극기 200여매를 가지고 장터로 나아가, 모여드는 장꾼들에게 나누어주며 만세운동에 같이 참여하도록 권유했다.
그는 2천여명이 운집한 장터에서 송기면과 함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장터를 행진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송기면, 유성렬과 같은 주도자들이 강제로 경찰 출장소로 연행당하자 나상준, 김인두 등 동지들과 함께 시위군중을 지휘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경찰출장소로 돌진하다가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