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그는 4월 28일 송기면, 임학규, 이근호와 같은 기독교 신자들과 함께 이튿날 열리는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했다. 4월 29일 오후 1시경 신장리 장터에 모인 2000여명의 시위 군중에게 태극기를 배포하고 송기면 등과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 경찰한테 체포된다. 그는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