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 |
출생 | 1896년 1월 6일 |
충청남도 서천군 | |
사망 | 1950년 9월 28일 (향년 54세) |
충청남도 서천군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묘비번호 627) |
본관 | 여산 송씨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송여직의 동생이다.2. 생애
송기면은 1896년 1월 6일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와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신교 신자로, 1919년 3월 전국에서 3.1 운동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온 뒤 거사를 계획했다. 그는 4월 23일부터 27일까지 집에서 극기 200여매를 만든 다음, 이튿날 같은 교인 유성렬(劉性烈)·이근호(李根浩)·임학규(林學圭)를 방문하여 독립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4월 29일 신장리 장날을 이용해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했다.이윽고 4월 29일이 되자, 그는 동지들과 함께 미리 제작한 태극기를 가지고 장터에 나가 모여드는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할 것을 역설하였다. 2천여명의 시위군중이 모이자,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장터를 행진하다가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서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0년 9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송기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