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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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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변 주도자
이름 <colbgcolor=white,#191919>이고 (李高)
출생 미상
사망 1171년 1월
고려 개경 정궁(正宮) 궁문 앞
최종 직위 대장군 위위경 겸 집주
(大將軍 衛尉卿 兼 執奏)
1. 개요2. 생애3. 난을 일으키다4. 대중매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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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무신이자 권신.

한때 이의방, 정중부와 견줄 정도로 위상이 컸지만 실질적으로는 집권하지 못했기 때문에[1]고려사》에서는 별도의 <열전>으로 수록되지 못했다. 남아있는 기록이 극히 적으므로 본관은 불명이다.

2. 생애

1170년 8월 정중부, 이의방 등과 함께 무신정변을 주도했으며, 당시 직책은 근위대 하급 장교에 해당하는 견룡군(牽龍軍) 산원(散員)이었다. 이때 이의방과 함께 정변을 일으킬 것을 사전에 계획한 후 명망 높던 장군인 우학유를 끌어들이려고 시도했으나 그가 거부하자 정중부를 주모자로 끌어들였다. 의종흥왕사에서 보현원으로 행차할때 거병을 할려고 계획했고, 이에 의종의 행차가 보현원으로 가는 도중, 오문(五門) 앞에 이르자 행차를 잠시 멈추고 무인들로 하여금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戱)를 개최했을때 문신 한뢰(韓賴)가 노쇠한 무신 이소응에게 따귀를 때리며 욕보이자 칼을 뽑아 즉시 거사를 일으킬려고 했지만 정중부가 이를 제지했다.

이후 행차가 보현원에 당도하자 이의방과 더불어 임금의 명령을 사칭해 순검군을 집결시킨 다음, 정변을 일으켜 직접 임종식, 이복기, 한뢰 등 왕을 호종하는 문신들을 모두 몰살시켜 버렸다. 그후 수도 개경에 들어가 추밀원부사 양순정(梁純精), 사천감(司天監) 음중인(陰仲寅), 대부소경 박보균(朴甫均), 감찰어사 최동식(崔東軾), 내시지후 김광(金光) 등 궐내에 숙직하고 있던 관료들을 모두 죽였다. 이후 이의방 등과 함께 순검군을 거느리고 밤에 태자궁(太子宮)에 다달아 행궁별감 김거실(金居實), 원외랑 이인보(李仁甫) 등을 죽였다.

이후 다시, 의종의 별장이었던 천동택(泉洞宅)에 들어가 별상원(別常員) 10여 명을 죽이고서, 사람을 시켜 길에서 외치기를, “모든 문신의 관(冠)을 쓴 자는, 비록 서리일지라도 씨를 남기지 말게 하라." 하였고, 이에 군졸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판리부사로 치사한 최유칭(崔褎偁), 판리부사 허홍재(許洪材), 동지추밀원사 서순(徐醇), 지추밀원사 최온(崔溫), 상서우승(尙書右丞) 김돈시(金敦時), 국자감 대사성 이지심(李知深), 비서감 김광중(金光中), 이부시랑 윤돈신(尹敦信), 위위소경(衛尉少卿) 조문귀(趙文貴), 대부소경 최윤서(崔允諝), 시랑 조문진(趙文振), 내시소경 진현광(陳玄光), 시어사 박윤공(朴允恭), 병부낭중 강처약(康處約), 도성낭중 강처균(康處均) 봉어(奉御) 전치유(田致儒), 지후 배진(裵縉)ㆍ배연(裵衍) 등 50여 명을 수색해서 죽였다고 고려사,고려사절요,동국통감 들의 고려시대 정사(正史)들에 전한다.
이에 크게 겁을 먹은 의종이 응양군 중랑장에 봉했으며, 이후 환관 왕광취 등이 정중부 등을 제거할려다 한숙(韓淑)이 일행을 배신해 이 사실을 정중부 등에 알렸을때 채원(蔡元)과 함께 의종을 시해할려고 하다가 고위 무장인 양숙(梁淑)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다시 정중부 등의 당여들과 함께 의종을 폐위하고 1170년 9월 명종을 옹립하면서 1170년 10월 대장군 위위경 겸 집주(大將軍 衛尉卿 兼 執奏)에 올랐는데 정중부, 이의방과 함께 벽상공신으로서 공신각 위에 초상이 그려졌다고 한다.

그 후 여러 무신들이 중방에 모여 남은 문신을 다 불러들이고는 이고가 모조리 죽이려고 했으나 정중부가 제지했다.

3. 난을 일으키다

이고는 무신정변의 공으로 벽상공신이 되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임금이 되기 위해 불량배들과 법운사(法雲寺) 승려 수혜(修惠), 개국사(開國寺) 승려 현소(玄素) 등과 결탁하여 이고의 난을 일으킬려고 했지만,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하고 채원과 이의방에게 죽는다.

4. 대중매체

파일:external/img.kbs.co.kr/1_b_0016.jpg}}}]] ||

5. 관련 문서



[1] 5개월 간의 연립정권 도중 살해당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