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a40f16,#a40f16><colcolor=#ffffff,#ffffff> 前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 윤무부 尹茂夫 | Yoon Moo-bo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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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41년 4월 15일 |
| 경상남도 통영군 장승포읍[1] | |
| 사망 | 2025년 8월 15일 (향년 84세) |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 |
| 국적 | |
| 본관 | 칠원 윤씨[2] |
| 학력 | 거제국민학교 (졸업) 한영중학교 (졸업) 한영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생물학 /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생물학 / 석사[3])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생물교육 / 박사[4]) |
| 가족 | 배우자 김정애 딸 윤정림 아들 윤종민[5] 며느리 김영지 사위 김필관 |
| 직업 | 생물학자, 조류학자, 교수, 저술가 |
1. 개요
대한민국의 조류학자.경희대학교의 명예교수로, 새들의 먹이 활동과 번식 등의 생태를 일반인도 알기 쉽게 전달해 일명 새 박사라는 별명도 붙었다.
2. 생애
1941년 4월 15일 경상남도 통영군 장승포읍(現 거제시 장승포동)에서 태어났다.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탄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고, 초등학교 시절에도 산이나 바닷가를 다니면서 새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 탓에 7남매 중 윤무부 혼자만 공부할 기회를 얻었는데[6], 15살 때부터 경상남도 부산시 소재 미군부대에서 일하고 있던 둘째 형이 부대 이전으로 서울특별시로 가게 되면서 당시 중학생이던 윤무부도 형을 따라 상경해서 유학 생활을 했다. 이후 한영중학교와 한영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생물학과로 진학했다. 대학 시절 동기들과 함께 탐조 활동을 하며 이때부터 새를 관찰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탐조활동을 하는 와중에 위기도 수차례 겪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생물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1967년에는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7] 부평리 광릉에서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 철새의 이동을 관찰하다 개울가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6시간가량을 떠내려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당시 이 집중폭우는 광릉 부근에서만 주민 90여 명이 익사한 대형사고였는데, 윤무부는 다리 밑에서 시신 12구와 함께 발견됐다.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라서 이를 두고 호외도 났다. 의정부시, 포천시 같이 군부대가 많이 있는 곳이나 강화도[8] 같은 접경 지역에서 탐조활동을 위해 검문소를 지나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아 여러 번 철창 신세를 진 적도 있다고 한다. 후줄근한 옷차림에[9], 쌍안경과 값비싼 카메라를 소지하고 그외 다른 장비들을 넣기 위해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닌데다 탐조 활동을 마친 후 며칠간 씻지도 못한 꾀죄죄한 상태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니 간첩으로 오인받기 딱 좋았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출타해 며칠씩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는 탓에 이를 기이하게 본 동네 주민이 신고하는 바람에 어느 날 새벽에는 국군기무사령부에서 자택을 조사한답시고 들이닥친 적도 있었다고...
1979년부터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해 2006년 8월 말, 정년퇴임했다. 재직 중에도 조류연구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조류와 관련 없는 수업 중에도 새 얘기만 했을 정도.
2006년 12월, 탐조 활동을 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한때는 몸의 오른쪽이 마비돼 곧 죽을 거라는 진단까지 받았지만 2010년대 초, 재활에 성공했다. 후유증으로 오른손과 오른발은 예전처럼 잘 쓰지 못하게 됐는데, 재활하면서 왼손을 쓰게 돼 걷는 것만 다소 불편할 뿐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어 다시 탐조 활동에 나섰다.
3. 사망
2024년 6월 뇌경색이 재발해 투병하던 도중 2025년 8월 15일 사망했다.#4. 사건 사고
4.1. 태극기 집회 참여 오해
2017년 2월 4일,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윤무부로 짐작되는 사람이 촬영됐다. 윤무부가 맞는지 아닌지는 정식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아무리 봐도 얼굴도 그렇고, 또한 휠체어와 손가락 끝을 자른 장갑을 통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 심지어 많은 수의 기자들도 윤무부라고 기사를 내보냈다. 이때 일부 네티즌들은 박근혜의 별명을 이용해 닭도 새라고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인터뷰에 따르면 태극기 집회에 찍힌 게 본인은 맞지만 극우 논란은 오해라고 전했다. 그는 당시 새 사진 현상을 맡긴 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몰린 것을 목격했고, 이때 이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새박사'라고 반가워하면서 우연히 집회로 강제로 떠밀어 가게 된 거라고 했다. 목에 걸린 팻말은 집회에 참가한 한 분이 걸어준 것이며, 이를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고 한다. 현장을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에 대해서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외국인이 집회에 참여하면 외국에서도 이들을 지지한다는 선전 효과가 있어서 억지로 집회에 끌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5. 여담
- 새 관련 필름 스크랩과 녹화 테이프가 수천 개에 사진이 60만여 장, 수많은 새소리 녹음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다. 이런 소장품을 두고 2006년, 거제시에서 윤무부 조류박물관을 건립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 자택 안과 외부에도 항상 새장을 직접 만들고 손을 볼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고, 이른 아침마다도 정성스레 새들을 돌보는 모습을 인근 주민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 연구용 도구 이외의 도구에는 상당한 기계치다. 브레인 서바이버에 게스트로 나왔을 때는 정답을 입력하는 기기의 사용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해 오답률이 매우 높았다. 한편 조류를 연구하는 박사답게 몰래카메라 게스트로 등장했을 때는, 이경규가 날렸던 로봇 새가 날개를 펄럭이는 소리를 듣고 그 새가 로봇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이경규도 이 사실을 보고 매우 당황했는데, 아무래도 사전조사를 깊이 안 했던 모양.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라는 말은 이경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아들 윤종민 박사도 아버지를 따라 조류학자의 길을 걸으며 경희대학교 생물학과[10]와 콜로라도 주립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을 거쳐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 과거 아내와 데이트할 때도 야외에 새를 보러 다녔고, 가정을 꾸린 후에도 휴가 때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새를 보러 다녔고, 가족들이 반대를 해도 꿋꿋하게 새 보러 가자고 할 정도로 못 말리는 중증 새 덕후. 하지만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조류학자가 되겠다고 하자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조류학자 쪽이 다른 분야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돈벌이도 잘 안 되고 먹고 살기도 힘든 쪽인지라...[11]
- 키가 작다. 학창 시절 키 순서로 번호를 매겼는데, 늘 1번을 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별명은 이름 때문에 붙은 내무부, 총무부. 아들에 따르면, 윤무부 본인이 키가 작기 때문에 키 큰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했단다. 그러던 중 사촌의 소개로 현재의 부인인 충청남도 예산군 출신의 김정애 여사를 만났는데, 긴 생머리에 키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관인 예비 장인이 가난한 대학원생에게 딸을 시집보낼 수가 없다며 반대했는데,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해서 결혼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데이트할 때에도 새 관찰을 했다고 하며, 결혼 후에도 가족 휴가를 갈 때는 유원지 대신 새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 체험 삶의 현장 역대 최저 일당 기록의 보유자이다. 고물장사 체험을 가서 하루 동안 겨우 3,010원을 벌었다.
- 교수직 외에 당시 엔터테이너 교수 중 하나로[14] 방송 출연 등 다수의 작품 출연을 많이 한 편인데, 특히 2000년대 초중반 예능이나 개그 프로에 자주 얼굴을 비추었고, 특유의 사람 좋은 말투와[15] 수더분한 인상으로 깨알같이 웃음을 주고는 했다. 몇 번 광고도 찍었는데, 대표적으로 엠파스가 운영하던 시절, 고인 役을 맡은 윤 교수 앞에 양배추 조세호와 낙지 윤석주가 왜 갈매기살을 돼지고기집에서 파냐고 묻자 벌떡 일어나 천연덕스럽게 '나도 몰라, 지식인도 몰라', '엠파스는 모르는 게 없네'라고 대답해 주는 광고가 유명하다. 광고.
-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황새춤 동영상을 만들었다. 2014년 말에는 아이온 : 영원의 탑 업데이트 기념 광고에 출연했다. 2015년에는 KT 올레 기가 홈캠 광고에 출연했다.
- 2021년 5월 1일,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에 출마한 부천 FC 1995의 후보 헤르(보라매)의 지지를 선언했다.
6. 관련 문서
[1] 現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2] 38세 원(遠) 항렬이나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3] 석사 학위 논문: 배나무 밭에서의 알락할미새(Motacilla alba leucopsis) 및 제비(Hirundo rustica gutturalis)의 社會的 就眼行動의 觀察 (1966)[4] 박사 학위 논문: 韓國에 사는 휘파람새(Cettia diphone) Song의 지리적 변천 (1995)[5] 경희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 후 학부 생활 4년 동안 부친의 전속 조교로 있었다.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에서 근무 후 현재는 국립생태연구원 멸종위기종 복원센터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6] 정작 학창 시절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7] 현 남양주시 진접읍[8] 1960 ~ 70년대만 하더라도 강화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소를 6개가량이나 지나쳐야만 했다.[9] 복장이 화려하면 새가 도망가버리기 때문에 수수한 옷을 입어야 한다.[10] 부자가 사제지간으로 있었다. 아들을 전속 조교로 삼아 주말마다 탐조 활동을 다녔다고...[11] 윤무부 본인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생물학과에 합격했다고 하자 학비를 대주던 둘째 형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둘째 형은 어렸을 때부터 미군부대에서 질시받으며 일해왔기에 동생만큼은 영어영문학과 같은 유망한 학과를 나와 떳떳하게 살기를 바랐다고 한다. 지금이야 생물학과가 영어영문학과와는 비교도 안 되게 취업이 잘 되지만, 그 당시는 미국과의 교류 때문에 영어 구사자의 수요가 폭증할 시기라 영어영문학과 나와서 영어 좀 잘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때였던 반면, 생물학과는 응용과학도 아니고 순수과학이라 최빈국인 한국에서 당장 쓸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경희대 생물학과에 다니게는 됐다.[12] 황새(종) 항목에도 있지만, 암컷은 1983년에 창경원으로 옮겨져 보호받다가 1994년에 서울동물원에서 사망했다.[13] 수컷의 박제는 현재 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암컷 역시 박제가 되어 인천 국립생물자원관에 보관돼 있다.[14] 방송의 신선함과 전문성을 위해 1990년대 ~ 2000년대 초반 실제 교수, 박사 등 전문직 인력들이 대거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에 패널로 방송 출연을 많이 했다. 윤무부 교수 외에도 조경철, 김동길, 황수관, 이원복, 민용태 등이 그 예.[15] 한 예로, 브레인 서바이버에서 김용만이 새가 창문에 부딪히는 이유를 물어봤는데 '새는 지능이 인간과 같지 않아서, 새대가리라서...'라는 멘트로 녹화 현장을 뒤집어 놓은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