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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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관리. 삼국지 장기전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단 삼보결록주에 기록이 있다.태평광기와 법원주림에 따르면 자는 유제(幼齊)이며 우림중랑장(羽林中郎將)을 지냈다고 한다. 군의 공조였다.[2]
2. 생애
장기가 아이였을 때 그를 남다르게 여겨, 집에 초대하였다. 집에 먼저 도착하여 가족들에게 대접을 준비하도록 했는데, 장기가 도착하니 그의 부인은 웃으며 그저 순진한 작은 도련님에게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하였으나 유은은 그가 방백의 그릇이라고 평하며 장기와 패왕의 도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는 그의 아들 유초를 그에게 부탁했다. 장기는 사양했다가, 유은이 신망이 높았기에 거절하기 어려워 받아들였다.[3]유은은 사례교위 호진과 사이가 좋지 않아, 호진의 모함을 받고 살해되었으며, 호진은 한 달여 지나,라고 하며 숨을 거뒀다. 당시 사람들이 유은을 살아서는 사람을 알아봤고, 죽어서는 높은 영혼이 있었다고 칭송했다.
[1] 태평광기에서는 유돈(游敦)으로 오기했다.[2] 장기가 어렸을 때 돌봐주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사례 빙익군일 것이다.[3] 후에 장기는 과연 유초를 조조에게 한흥태수로 천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