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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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수나라의 장수.2. 생애
612년에 상서우승을 지내면서 수양제의 명으로 위문승과 함께 요하 동쪽의 백성들을 위무하고 10년의 부세를 면제하면서 군현을 설치하고 관할했으며, 고구려를 공격할 때 상서좌승이 되어 수나라의 별동대에서 위무사를 지냈다.수나라의 고구려 2차 원정 때 을지문덕이 수나라의 군영에 파견되어 그 군영에 가서 거짓으로 항복을 하면서 허실을 보려고 했다. 이 때 우중문은 수양제로부터 고원(영양왕), 을지문덕이 와서 만나게 되면 반드시 그들을 생포하라는 밀명을 받았으며, 우중문은 이로 인해 을지문덕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유사룡은 이를 굳게 말려 중지시켜버렸다. 이로 인해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대의 허실을 알아보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으며, 우중문은 을지문덕을 놓아준 것을 후회하고 사람을 보내어 을지문덕을 속여서 다시 오게 하려고 했지만, 을지문덕이 돌아보지도 않고 압록수를 건너가면서 완전히 놓치게 되었다.
황명을 거역하면서까지 독단적으로 풀어준 인물에게 국가의 정예병을 몽땅 잡아먹혔으니 이게 다 유사룡 때문이다로 몰리기 좋았으며, 결국 고구려 원정이 실패한 후에는 참수당했다. 수는 그 목을 통해 천하 사람들에게 사죄했다고 한다. 후대에도 유사룡은 복권되지 못했는데, 이 인물은 죽을 짓을 해서 죽은거지 양광의 폭정으로 인한 희생양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강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접대의 관습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유사룡의 주장이 마냥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만약 을지문덕을 붙잡았다면 전쟁의 판도는 어떨지 몰라도 항복하러 온 사람을 붙잡았다며 이후 수나라의 외교 신뢰도는 크게 하락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수나라군의 허실을 탐문하고 돌아가 전쟁의 승리에 기여를 한건 맞지만 설령 그를 붙잡거나 죽였다고 해도 이미 수나라군은 보급도 엉망이고 고구려군의 게릴라에 시달리는등 열세였고 고구려군은 승전에 가까운 시점이였기 때문에 붙잡았다해도 과정만 약간 달라질뿐 수나라의 패배는 변함이 없었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 단, 수양제는 접대의 관습에 매달리는 유사룡과는 성격부터가 상극이었을 것이며 황제인 자신의 말조차 듣지 않고 냅다 놓아줘버린 유사롱이 마음에 들었을리가 없다.[1]
드라마 연개소문 에서는 배우 이용진이 연기했다.양제가 패전직후 돌아온 이들을 꾸짓다가 유사룡을 본후 당장 참수하라고 하자 자신이 한 행동은 대국의 채신을 위한거였고 사신을 죽이는 법은 없다며 나름대로 자신이 을지문덕을 놓아주자 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설파해보지만 양제는 이곳은 피튀기는 살육의 현장이고 결과적으론 니가 놓아주자고 한 덕분에 을지문덕이 수나라군의 전략과 정보를 모두 다 알고 돌아가서 공격하는 바람에 30만 5천이라는 대군이 몰살 당했는데 국가의 채신 같은걸 운운할 수 있냐고 일갈하고 이후 참수후 목을 군문에 걸라는 말에 통촉하시옵소서 라며 애원하지만 양제는 들은척도 하지않고 결국 참수당하면서 등장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