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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16 17:52:09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United Airlines Flight 232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89년 7월 19일
유형 기체결함으로 인한 피로파괴로 유압계통 이상
발생 위치 미국 아이오와주 수시티 공항
탑승인원 승객: 285명
승무원: 11명
사망자 승객: 110명[1]
승무원: 1명
생존자 승객: 175명[2]
승무원: 10명
기종 DC-10-10
항공사 유나이티드 항공
기체 등록번호 N1819U
출발지 덴버 스테이플턴 국제공항
경유지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도착지 필라델피아 국제공항

1. 사고 개요2. 사고 진행3. 사고 원인4. 조종사들의 훌륭한 대처5. 여담

파일:74567456.png
사고 1년 전 덴버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고기.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1428696.jpg
사고 나흘 후인 1989년 7월 23일 찍힌 꼬리 부분 잔해.[3]
공항 근처에 있던 뉴스 취재진이 사고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냈다.[4]
히스토리 채널 다큐멘터리
파일:external/images3.wikia.nocookie.net/United-Airlines-Flight-232-Overhead-View-31039731_2170_ver1_0_320_240.jpg

1. 사고 개요

1989년 7월 19일, 미국 콜로라도덴버에서 출발, 일리노이 주 시카고를 경유해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로 도착할 예정이던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DC-10기가 엔진 팬 블레이드의 결함으로 인한 피로파괴로 2번 엔진[5]이 파손되어 유압 계통 자체가 작동 불능이 되면서 오로지 남은 2기의 엔진의 출력 조절만으로 조종하여 아이오와주 수시티 공항에 겨우 비상착륙한 직후 파괴된 사건. 이 사건으로 296명 중 185명이 생존했지만 111명이 목숨을 잃어, 유나이티드 항공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항공 사고로 남게 되었다.[6]

그러나 이 사건은 유압 계통이 전부 나간 상태에서 공항에 접근해서 착륙시도까지 했고, 추락 후 탑승객의 60% 이상이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기적적인 사고로 평가받는다. 전술한 것처럼 유압 계통이 박살 나면 착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압 문제가 생기고 사람이 살아남은 민항기는 이 사고를 포함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사실 비슷한 상황에서 착륙에 실패하고 단일 항공기 최악의 참사로 남은[7]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에서도 생존자가 있긴 있었다.[8]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과 상당히 비슷한 상황의 사고였는데, 먼저 발생한 JAL 123의 사고가 이 사고의 피해를 줄이는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승객으로 탑승했던 조종사가 JAL 123과 같은 사고 상황에서 유압계가 나갔을 때 비행법에 대해 깊이 연구하던 사람이었다.

해당 기체의 등록번호는 N1819U이며 1973년에 제작되었다.

2. 사고 진행

1989년 7월 10일 오후 2시경, 232편은 콜로라도주 덴버 공항에서 이륙하여 일리노이주 시카고를 향한 비행을 시작했다. 기장 앨 헤인스(Alfred Clair "AI" Haynes), 부기장 빌 레코즈(William Roy "Bill" Records), 항공기관사 더들리 드보르작(Dudley Dvorak)을 포함해 286명이 탑승해 있었다. 헤인스 기장은 3만 시간의 총 비행 경력 중 숙련된 파일럿으로 인정받는 7천 시간을 DC-10기 조종석에서 보낸 베테랑이었으며, 레코즈 부기장 역시 2만 시간의 비행 경력을 50세가 되기 전에 이미 달성한 실력자였다.

이륙 후 1시간 10분 정도 지난 오후 3시 16분경, 오토파일럿을 가동한 채 아이오와주 상공을 순항 중이던 항공기 후미에서 폭발음이 들리며 수직꼬리날개에 달린 2번 엔진이 동력을 상실했다. 곧이어 위로 상승했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기체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부기장은 조종간을 쥐고 요동치는 기체를 안정시키려 힘썼으나 조종실 시스템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기장이 직접 조종에 나섰으나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는 오른쪽으로 더 기울어졌고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헤인스 기장은 유압 장치 고장으로 비행기 통제 시스템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유일하게 조절 가능한 1,3번 엔진 추력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했다. 좌우 엔진의 출력을 서로 다르게 하면 방향을 바꿀 수 있고[9], 양쪽 엔진의 출력을 동시에 높이면 속도가 빨라지며 기체에 가해지는 양력이 증가하여 고도를 상승시킬 수 있다.[10] 그는 오른쪽 엔진의 추력을 높이고 왼쪽 엔진의 추력을 낮춰 수평 비행 상태를 겨우 회복했다. 다만 비행기의 고도는 쉽사리 안정되지 않았다. 엔진 추력 조절에 따라 널뛰기하듯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추력 조절의 미세한 균형을 상실하는 순간 곧바로 추락할 수 있는 불안정한 비행이 지속됐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일등석 탑승객 데니스 피치(Dennis Fitch)가 조종에 도움을 보태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베테랑 기장이면서 동시에 그냥 기장도 아닌 체크 파일럿이었다. 즉 유나이티드사의 조종법 훈련교관이며 누구보다도 DC-10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당시 그는 4년 전 일어난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와 관련해 유압 계통 손상 시의 조종법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피치는 첫 폭발 당시 기내에 전해진 충격으로 무릎에 쏟은 커피를 닦던 중 비행기가 위험에 처했음을 직감으로 인지했으며, 승객들을 안정시키러 돌아다니는 승무원에게 이런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는 사고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구원투수와도 같았다.

승무원으로부터 피치의 말을 전해들은 조종사들은 당장 그를 조종실로 호출했다. 조종실로 간 피치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경악했다. 훗날 그는 "조종사로서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기장과 부기장 모두 반팔 셔츠 차림으로 (항공기를 안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나머지) 힘줄이 솟고 관절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늘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이오와주 지상에 추락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부터 궁금할 정도였다."고 당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회고했다.

피치는 곧장 스로틀을 잡고 엔진 추력을 조절해 기체의 수평을 유지하는데 집중했으며, 헤인스 기장과 레코즈 부기장은 조종간을 잡고 기체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항공기관사 드보르작은 항공사 정비팀과 교신하며 시스템 고장을 수리할 방법을 물었으며, 상황이 여의치 않자 피치에게 자리를 내주며 엔진 추력 조절을 통한 항공기 통제에 힘을 보탰다. 네 사람은 지상과의 교신을 통해 가장 가까운 수 시티 공항으로의 비상착륙을 결정한 뒤 추력 조절에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며 항로 설정과 하강 방향 및 속도 계산까지 마무리했다. 그렇게 232편은 추락을 간신히 면한 채 수 시티 공항으로 향했다.

또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수 시티 공항도 사고 당일에는 우연히 이런 비상상황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수 시티 공항은 항공기 화재훈련을 주기적으로 해 왔었고, 마침 사고 당일은 공항을 같이 쓰는 오하이오 주방위군 공군의 훈련일이었다. 즉 이 날은 수시티 공항에 평소의 3배에 달하는 사고대응 인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또한 해당 항공기의 비상이 선포된 이후 수시티 공항 착륙까지 시간이 꽤 있었기 때문에 지상의 화재구조인력들이 공항에 모여서 준비(staging) 할 수 있었으며, 사고 시점이 공항 주변 병원들의 근무 교대 시간이었는데 근무가 끝난 의사/간호사/치과의사/기타 직원들 중 자원자들을 병원에 대기시킬 수 있었다.

파일:ua232 map.png
232편이 최종 착륙까지 선회한 비행 경로.

232편은 조종사들의 기지와 신들린 조종 능력 덕에 연료를 최대한 버린 다음 크게 우선회했으며, 끝까지 엔진의 추진력만을 이용해 방향과 고도를 조절하는 처절한 사투를 벌인 끝에 최종 접근 단계에 도달, 수시티 공항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했다.[11] 하지만 엔진의 동력만으로 기체를 제어해야 했기에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활주로가 눈앞에 보일 정도로 낮은 고도라 해도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부드럽게 터치다운하는 방법을 쓰려 하다간 실속으로 바로 땅바닥과 정면충돌해 폭발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유압 계통이 전부 날아간 상태에서 플랩을 펼 수도 없었고, 기수를 들어 뒷바퀴부터 착지시키기도 어려웠기에 사실상 평소와 같은 착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상 착륙 직전 CVR
Captain: Left turn, left turn. Close the throttles.
기장: 좌선회, 좌선회. 스로틀 다 내려.
F/O: Pull 'em off
부기장: 내리라니까.
Captain: Left turn. Close 'em off.
기장: 좌선회. 스로틀 내려.
Fitch: Nah, I can't pull them off, or we'll lose it. That's what's turning ya.
피치[12]: 아뇨, 내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기체가 통제를 벗어날 겁니다. 방향 조절을 스로틀로 해야 합니다.
Captain: Ok.
기장: 알겠네.

(비행기가 활주로의 왼쪽에 치우치자)

F/O: Left Al!
부기장: 기장님, 왼쪽이요!
Captain: Left turn! Left! (x10)
기장: 왼쪽으로 선회한다! 왼쪽! (x10)
GPWS: Whoop Whoop Pull Up! (x4)
경보장치: (경고음) 기수를 올리세요! (x4)
Captain: Everybody stay in brace!
기장: 모두 충격에 대비해!
Captain: God!
기장: 주여!

(충돌음, 녹음 기록 끝.)

결국 232편은 정상적인 착륙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착륙할 수밖에 없었다. 착륙 당시 항공기의 속도는 200mph(=320km/h)로, 이는 웬만한 스포츠카들의 최고 속도이자[13] 정상 하강 속도의 6배, 정상 착륙 속도의 2배에 달할 정도로 고속이었다. 평상시에 비해 4배의 운동 에너지를 받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종사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232편은 착륙 마지막 순간에 오른쪽으로 기울었으며, 이 과정에서 오른쪽 날개가 지면에 닿아 엔진이 폭발하였다. 엔진 통제력마저 상실한 기체는 그대로 활주로를 쭉 미끄러져 이탈하면서 4부분으로 분해되어 화염에 휩싸이며 대파되었다.[14]

활주로 인근의 옥수수밭까지 뒤엎을 정도의 화마에 휩싸인 기체는 조종실, 일등석, (날개 위)중앙부, 그리고 후미 부분으로 총 4토막이 났는데, 일등석 부분과 (두 동강이 난)후미 부분의 승객 대부분이 착륙 당시의 동체 파괴에 의한 외부 충격으로 사망했으며, 날개 위 중앙부에서 상대적으로 뒤쪽에 앉은 승객들 대다수는 화염에 의한 연기로 질식사했다. 상술한 지상 소방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곧바로 출동해 화재를 진압하고 구조 활동을 벌인 덕에 날개 위 중앙부 앞쪽에 앉은 승객 대부분은 목숨을 구했다. 조종석의 잔해는 훼손이 너무 심각하여 충돌 35분 후에도 구조대원들이 찾지 못했지만, 조종석에 있던 조종사들은 다행히 모두 생존했고, 객실 승무원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살아남아 회복 후에 복직했다고 한다.

이 덕분에 총 185명이 생존했으며, 심지어 승객 13명은 경미한 부상조차 입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등석과 후면부에 탄 승객 111명은 충돌과 폭발, 화염과 연기로 인해 사망하였고 사고 31일 후에 중상자 1명이 사망했다.[15]

3. 사고 원인

조사 결과, 사고의 원인은 정비 불량. 수직꼬리날개에 달린 2번 엔진의 팬 블레이드가 다년간 운항을 거듭하며 노후화되면서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음에도, 유나이티드 항공의 정비팀이 이를 제대로 수리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피로파괴였다. 피로가 누적되어 갈라진 팬 블레이드가 쪼개져 2번 엔진으로 빨려들어간 탓에 해당 엔진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고속으로 회전하던 엔진의 원심력 때문에 튕겨나간 파편들이 꼬리날개 내부에 장착된 유압 장치를 망가뜨렸다. 유압 장치는 비행 시스템 제어의 핵심으로 항공기의 전면에 걸쳐 하나의 계통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꼬리날개 부분의 파손으로 비행기 전체의 유압 계통이 멈춰버려 통제가 불가능해진 것이다.[16]
파일:추락 직전 유나이티드 232편.gif
추락 직전에 찍힌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적색으로 표기된 부분이 손상된 곳이다.[17][18]

4. 조종사들의 훌륭한 대처

파일:유나이티드항공 232편 조종사들.jpg
유압 장치 파손 항공기의 비상 착륙이라는 기적을 행한 232편의 조종사들.
왼쪽부터 앨 헤인스 기장, 빌 레코즈 부기장, 더들리 드보르작 항공기관사, (승객으로 탑승했다가 엔진 추력 조절에 큰 도움을 준)데니스 피치 기장.

급박한 위급 상황에서도 조종사들은 서로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 잘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 사회 심리학자는 조종사의 업무 수행을 연구하면서 예전 에어 플로리다 90편 추락사고 당시 조종사들이 충분히 의견 교환을 하지 않았다고 대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 불시착 직전의 34분 동안, 비행기를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비행기의 손상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어디에 어떻게 착륙할 것인지, 승객들에게 안내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갔으며,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서 적절하게 전파하여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였음이 밝혀졌다. 승객 중에서 조종법을 연구 중이던 기장을 발견한 것도 이 때의 일. 가히 천운이라 할 수 있을 일이지만, 그만큼 시의 적절하게 효율적인 대처가 있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조종실 음성 기록 장비를 분석한 결과, 1분에 평균적으로 31회의 의사소통, 급할 때에는 초당 1회의 의사소통을 했음이 밝혀졌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185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셈이다.

네 명의 조종사는 착륙 당시 충돌로 비행기가 파괴되면서 조종실과 함께 떨어져나갔으나, 35분이 지난 시점에 소방대에게 구조되어 전원 생존하였다. 이들은 공로를 인정받아 폴라리스상을 수여 받았으며 부상으로부터 회복한 이후 모두 업무에 복귀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데니스 피치 기장은 자신이 사고기의 정식 조종사가 아니었음에도 "112명[19]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음을 알았을 때 억장이 무너졌다. 내 목숨을 그들 중 누구의 것과도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내게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To find out 112 people didn't make it, that just about destroyed me. I would have given my life for any of them. It was a really tough time.)"라는 소회를 밝혔다.

앨 헤인스 기장은 착륙 충돌 당시 심각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병실에서 겨우 살아났다.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을 앓던 중 아내가 착륙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자 "내가 추락을 하고도 살았다고?!"라며 크게 놀랐다고 한다. 다행히 완쾌한 그는 사고 당일의 기억을 모두 회복했으며,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증언할 수 있었다.

5. 여담



[1] 부상자 1명이 사고 31일 후에 사망했지만, NTSB는 사고 후 30일 이내에 사망한 사람에 한해 사망자로 인정했기 때문에 공식 사망자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2] 전술한 것처럼 후에 부상자 1명이 사망했지만, 전술한 이유로 공식 사망자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3] 조종사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체가 네 부분으로 쪼개졌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볼링공처럼 착륙했다고 한다. 만약 조종사들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았었더라면 더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 전원 사망하게 되었거나, 애초에 착륙을 못하고 추락했을 것이다.[4] 착륙 후 한동안 미끄러지다가 이내 왼쪽으로 꺾이면서 구르는 것까지 포착되었다.[5] DC-10은 3발 엔진 항공기로, 2번 엔진은 동체 후방의 수직꼬리날개에 달려 있는 엔진이다. 즉 양쪽 날개에 하나씩 달린 두 개의 엔진(1번, 3번 엔진)에는 손상이 없었다. 대신 그 구조 상 꼬리날개쪽 엔진의 파손 충격이 심하면 조종 계통의 손상은 불가피했다.[6] 유나이티드 항공이 연루된 9.11 테러 제외. 사고가 아닌 테러로 분류된다.[7] 그렇다고 일본항공 123편의 조종사들이 무능하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유나이티드 항공사고는 유압 날아갔고, 일본항공 123편은 벌크헤드가 터지면서 동시에 수직꼬리날개 까지 같이 상실되었기에 비교대상이 아니다. 그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단지 운이 이 사건보다 많이 나빴을 뿐이다. 오히려 조종사의 실력과 노력으로 4명이라도 살려냈다고 봐야 한다. 해당 사고 이후 동일한 상황에서 각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테스트한 결과 단 한명도 일본항공 123편의 32분을 버티지 못 했을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 이 사고에서도 기장이 시뮬레이터에서의 비슷한 상황에서 추락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또한 이 사고는 일본항공 123편 이후 일어난 사고로, 마침 해당 기체에 승객으로 탑승해있던 데니 피치 유나이티드 항공 훈련 교관이 123편 사고와 같이 유압 상실시 추력으로만 비행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있었기에 대처를 더 잘 할 수 있었다.[8] 다만 그 사고는 524명 중 4명만이 생존했다. 296명 중 185명이 생존한 유나이티드 232편 사고와 무려 181명 차이가 난다. 애초에 일본항공 123편 같은 경우가 당연한 거고(오히려 4명이라도 살린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 이 사건은 그냥 기적이다.[9] 예를 들어 왼쪽 엔진의 출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오른쪽 엔진의 출력만 서서히 낮추면 기체를 오른쪽으로 회전 시킬 수 있다. 단, 당시 사고기는 이 방법을 동원해도 좌선회가 거의 안먹히고 직진에서 우선회 사이로만 조절 가능한 수준의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10] 사실 이게 말이 쉽지 방향타와 승강타 없이 둔해 빠진 거대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 자체가 탈인간급 능력이다. 뭐 하나라도 잘못되면 바로 실속에 빠져 추락하기 때문이다.[11] 심지어 이땐 휴고이드 사이클(휴고이드, 더치롤, 스톨 사이클. 기체의 조종계통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좌우로 흔들리는 더치롤, 상하로 흔들리는 휴고이드 운동을 반복하다 스톨하게 되는 사이클)이 반족까지 진행되고 있었다.[12] 승객 신분으로 탑승해 있던 후배 기장. 위기의 순간에 승무원들의 호출을 받아 조종실로 불려가 추락을 막기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탰다. 당시 엔진 추력만을 이용한 조종법을 연구 중이었다고 하니, 어찌 보면 232편으로서는 천운이었던 셈.[13] 1989년 당시 가장 빠른 자동차는 페라리 F40으로 324km/h 였다.[14] 이때 발생한 화염은 활주로 인근의 옥수수밭까지 뒤덮었다고 한다.[15] 이 사건 당시 조종사들의 사투와 수시티 공항 구조대원들의 신속한 후송과 구호 과정은 나중에 영화로 제작되었고, 한국에도 '천인의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적이 있다.#[16] 팬 블레이드가 파괴되며, 수십 개의 파편이 발생하는데 이 파편이 유압 라인을 다 끊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유압액이 다 빠져나가 조종불능이 된 것이다[17] 위의 CVR 영상의 썸네일이 이 흑백 사진의 원본이다.[18] 위 CVR 영상에는 사고 직전에 찍힌 사진이 더 있다. 그리고 다른 사진과 사고 당시 맨 위에 영상도 있다.[19] 사고 31일 후에 사망한 승객 1명도 포함[20] 2010년에 '팔라듐 촉매를 활용한 짝지음 반응'의 공로로 3명의 연구자가 노벨화학상을 받았는데, 스틸이 20여 년 앞서 비슷한 연구 성과를 도출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당시 노벨화학상 수상 가능성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21] 딸은 재생불량성 빈혈을 앎고 있었으며, 치사율이 매우 높아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22] 더구나 동일한 기종인 DC-10 이었기에, 기종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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