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위충 문서
, 서진과 전조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위충(전조) 문서
참고하십시오.韋沖
(540 ~ 605)
[clearfix]
1. 개요
중세 중국 수나라의 인물로 자는 세충(世沖).2. 정사
옹주 경조군 두릉현 사람으로 분주 자사를 지내다가 581년 산기상시에 임명되었으며, 당시 계호인 흉노 사람들을 징발해 장성을 수축했다가 분주에 사는 호족 1,000여 명이 반발해 도망가자 수문제가 계책에 대해 물었다. 위충은 이들을 설득하기로 하고 한 달이 지나자 도착해 장성의 부역장으로 돌아갔다.598년 요서 총관을 지내고 있다가 고구려의 영양왕이 친위대와 말갈족의 무리 1만여 명을 인솔해 요서를 공격하자 이들을 공격해 격퇴했으며[1], 이를 안 수문제가 분노해 군사 30만을 보내 고구려를 정벌하게 했다.
3. 대중 매체에서의 위충
한국의 대중매체 중에서는 사극 연개소문에서만 등장한다. 배우는 오후석. 6화에서 고구려가 수를 선제공격하자 강이식과 대등하게 결투를 벌여 제법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무예에 뛰어난 모습을 보였는데, 조금씩 불리해지는 것으로 묘사되기는 했지만 작중에서 그야말로 최강자로 그려지는 강이식과 수십 합을 겨룬 인물은 그가 유일하다[2]. 실전 경험이 부족해 장수들끼리의 결투가 왜 중요한지 모르는 한왕 양량이 노인네들끼리 장난치는 걸 보고 있을 수 없다면서 군대를 끌고 나가서 강이식을 제거하려고 하지만, 위충이 양량이 이끈 군대를 막아서 강이식이 도망치게 할 수 있게끔 했다. 이후 요택에서 벌어진 고구려군과의 싸움에서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선봉을 맡아서 지휘하는데, 아군의 희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요하지 않고 고구려군을 밀어붙이며 노익장을 과시했으나 고구려군이 석포를 퍼붓자 바위에 맞아 강물에 빠져서 사망한다.[1] 사이비역사학 위서 환단고기에는 598년 요서를 침공하나 이에 맞대응으로 연태조가 등주를 침공할 때 죽었다고 나왔다.[2] 후에 수 문제가 고구려를 원정할 때 등장하는 맥철장이나 그 부장들은 서방 원정 당시 삼국지의 조운을 연상시킬 정도의 전공을 세운 것으로 소개되지만 불과 몇 합 만에 나가떨어지는데(...), 그에 반해 위충은 그러한 배경이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