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월터 스튜어트 Walter Stewart |
출생 | 1296년경 |
스코틀랜드 왕국 웨스트로디언 베스케이트 성 | |
사망 | 1327년 4월 9일 (향년 30~31세) |
스코틀랜드 왕국 웨스트로디언 베스케이트 성 | |
아버지 | 제5대 스코틀랜드 대시종장 제임스 스튜어트 |
어머니 | 자일스 드 버러 |
형제 | 에지디아 |
배우자 | 마조리 브루스, 이사벨 드 그라함 |
자녀 | 로버트 2세, 존, 앤드류, 에지디아 |
직위 | 제6대 스코틀랜드 대시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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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시기 로버트 1세의 휘하에서 잉글랜드 왕국에 맞섰다.2. 생애
1296년경 스코틀랜드 왕국 웨스트로디언 베스케이트 성에서 제5대 스코틀랜드 대시종장 제임스 스튜어트와 초대 얼스터 백작 월터 드 버러의 딸 자일스 드 버러의 아들로 출생했다. 누이로 두리스디어의 영주 알렉산더 드 멘지스의 부인인 에지디아 스튜어트가 있었다. 스튜어트 가문은 13세기 중반부터 브루스 가문과 긴밀한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1306년 로버트 1세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를 상대로 반기를 들고 스코틀랜드 국왕을 칭하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월터 역시 로버트 1세의 군대에 종군했다.1314년 배넉번 전투에 참전했다. 일부 사료에 따르면, 그는 제임스 더글러스와 함께 스코틀랜드군 좌익을 이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사료에 따르면, 그는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으로 인해 쉴트론[1] 3개 중 한 개의 명목상 지휘관이었고, 실질적인 지휘는 제임스 더글러스가 맡았다고 한다. 그는 배넉번 전투에 참전한 공으로 로버트 1세로부터 서쪽 국경지대의 관리자로 선임되었고, 존 발리올 왕이 스튜어트 가문으로부터 몰수했던 라그스 영지를 돌려받는 보상을 받았다. 1316년, 월터는 라그스를 페즐리 수도원에 기부했다.
1314년 10월 로버트 1세의 왕비 엘리자베스 드 버러와 딸 마조리 브루스가 오랜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스코틀랜드로 귀환할 때, 월터가 두 사람을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국경에서 영접하고 스코틀랜드 왕실로 인도했다. 그 직후인 1315년, 그는 마조리 브루스와 결혼했고, 아내의 지참금으로 린리스고셔의 베스게이트 자작령을 받았다.
1316년 로버트 1세가 아일랜드로 출진한 동안, 월터는 제임스 더글러스와 함께 스코틀랜드 수호자를 맡았고, 국경을 방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1318년 제임스 더글러스와 함께 베릭 공방전을 통해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국경의 최고 요충지로 손꼽히는 베릭을 공략한 뒤, 베릭 수비대를 이끌었다. 1319년 7월 24일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와 제2대 랭커스터 백작 토머스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이 베릭을 포위했다. 그는 이에 맞서 결연하게 저항했고, 여러 공성무기를 파괴한 뒤 기습 출격해 잉글랜드군에 타격을 입혔다. 그 사이에 제임스 더글러스와 초대 모레이 백작 토머스 랜돌프가 베릭을 우회하여 요크셔로 침투해 심각한 약탈을 자행하고 마이톤 전투에서 잉글랜드 민병대 10,000~20,000명을 격파하자, 에드워드 2세와 랭커스터 백작은 베릭 공성전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1322년 제임스 더글러스, 토머스 랜돌프와 함께 로버크 1세의 지휘하에 요크셔의 몰튼 인근에 있는 바이랜드 수도원에 있던 에드워드 2세를 생포하려 했다. 이들은 올드 바이랜드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했지만, 에드워드 2세는 그 사이에 탈출했다. 월터는 기병 500명을 이끌고 요크로 도망치는 에드워드 2세를 추격했지만, 끝내 잡지 못하고 물러났다. 1327년 4월 9일 베스케이드 성에서 사망했고, 페이즐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마조리 브루스(1296 ~ 1316년 또는 1317년): 스코틀랜드 국왕 로버트 1세와 마르 백작 돔놀 1세의 딸 이사벨라의 딸.
- 이사벨 드 그라함: 에버콘 영주 존 그라함의 딸.
- 존 스튜어트: 랄스톤의 기사.
- 앤드류 스튜어트: 기사.
- 에지디아 스튜어트: 크로퍼드 성주 제임스 린제이와 초혼, 휴 에깅턴과 재혼, 달키스의 제임스 더글러스와 삼혼.
[1] Shiltron: 최전방에 창병이 있는 조밀한 원형 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