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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04 17:36:25

원춘망

<colcolor=#50A3E5><colbgcolor=#000> 연희공략 등장인물
원춘망
파일:원춘망.png
이름 원춘망 (元春望)
배우 왕무뢰(王茂賴)[1]
민족 불명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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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모
아내: 진아[2]
거주지 건청궁 → 신자고 → 원명원 → 연희궁 → 승건궁 → 신자고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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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연희공략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본래 내무부 태감이었으나 한비가 동생 상수를 위해 장신구를 궁 밖으로 내다 팔려던 일에 얽혔다. 고귀비에게 원춘망의 스승인 조경은 그에게 싸대기를 갈기면서 원춘망이 황궁의 재물을 훔쳤다고 덮어씌우자 신자고로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원춘망은 한때는 잘나가던 조경의 밑에서 일하다가 자금성의 똥이나 푸는 가장 천한 일을 하게 되면서 동료 태감들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어 갖은 괴롭힘을 당하였다.

그 후로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영락이 신자고로 쫓겨났을 때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구정물로 허기를 채우고 다니기도 했다. 이는 사람들의 가식이 싫어서 일부러 말을 피한 것. 그러던 중, 신자고의 높은 태감인 장관사에게 겁탈당할 뻔하다가 위영락에 의해 구조되면서 영락과 의남매를 맺고 평생 서로 의지하기로 약속하고[3] 부찰 황후가 죽은 이후 원명원에서 3년간 같이 살게 된다.

그러나 영락이 부찰 황후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순귀비에게 괴롭힘당하는 명옥을 지키기 위해 건륭제의 후궁이 되기로 하자, 결국 영락과의 인연을 끊고 복수를 다짐한다. 영락은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신자고 시절 의붓 오라비로서 자신을 돌봐준 원춘망에게 보은하기 위해 높은 벼슬도 주고, 금자도 내려주었으나 이미 영락에 대한 마음이 증오로 바뀐 원춘망은 영락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4]

한때 자신이 모셨던 황후의 편에 붙어 영락을 배신한 원춘망은 황후의 곁에서 계속해서 모략을 꾸민다. 침벽 때문에 영락이 잠깐 궁지에 몰리자, 부하 태감들을 시켜 영락에게 아무 음식도 주지 말라고 명한다. 하나 소전자는 영락의 사람으로 남기를 결심하여 몰래 영락을 위해 음식들을 주고 있었고, 이 탓에 영락을 굶겨죽이려는 원춘망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게다가 영락이 임신한 게 확인되자 원춘망은 태중의 용종에까지 해를 끼친 셈이 되어 곤장 200대라는 중벌을 받았다.

이 때의 일로 숙신에게도 내쳐질 뻔했으나, 그를 사랑한 진아가 제발 구명해달라며, 언젠간 긴히 쓰일 일이 있을 거라면서 숙신에게 빌었다.[5] 덕분에 다시 숙신의 밑으로 들어가 10년 동안 자중하다 결국 화친왕을 이용해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 이에 황후까지 엮여서 반역을 하다가 결국 실패한다. 화친왕이 황후를 두둔하는 와중에 모든 것은 황후가 시킨 일이라며 황후를 배신한다.

이때 위영락이 원춘망의 계략을 간파하는데, 원춘망의 진정한 목적은 역모를 꾸며 태후와 건륭제를 죽인 후 자금성으로 돌아가 모든 모반의 주모자는 황후와 화친왕이라고 공표해 두 사람마저 제거하려 했던 것. 또한 그의 최종 목표는 건륭제와 태후를 죽이는거였는데, 이유는 바로 원춘망이 선황제인 옹정제가 숨어 살았던 한 농가의 여인에게서 태어난 숨겨진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애신각라의 핏줄을 타고났으나 모질게 살았기 때문에 그에 앙심을 품고 자금성으로 들어와 건륭제와 태후를 죽이려 했던 것. [6]

이전에 위영락에게 어렴풋이 이야기를 했는데 이를 나중에야 떠올린 위영락이 미리 뒷조사를 시켜 결국 탄로나게 되었다.[7] 그러나 태후는 원춘망은 애신각라의 핏줄이 아니라며 부인한다. 이로 인해 평생을 자신이 애신각라의 핏줄이라 믿고, 복수까지 꿈꿨던 원춘망은 완전히 미쳐버린다. 이후 태후에 의해 목숨은 건졌으나 완전히 정신이 나간 폐인이 되어버린다. 얄궂게도 미쳐버린 원춘망이 환상에서 본 것은 자신이 처음으로 죽인 복혜였다.

일개 태감 따위가 황제와 태후를 죽이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살려둔 걸 보면 의미심장한데, 극중에서 옹정제가 전씨를 데리고 농가로 숨었고 이후 전씨가 산적에게 능욕을 당해 궐로 돌아온 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감안해보면 원춘망은 전씨가 낳은 아이일 가능성이 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옹정제의 사생아가 아니더라도 건륭과는 어쨌든 모계로 형제 사이니 태후가 막는 것도 이해가 간다.

2.1. 연희공략: 금지옥엽

후속작인 연희공략: 금지옥엽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언급되었다. 작중으로부터 몇 년 전에 위영락의 딸인 소화공주를 납치하여 7일이나 분뇨차에 가두는 미친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결국 이 때문에 처형당했다.[8][9] 끝까지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아무 죄없는 사람에게만 화풀이를 한 셈.

3. 기타

작중에서 외모가 수려한 것으로 나온다. 이 때문에 신자고 궁녀들 모두 원춘망에게 들이대봤다는 언급이 나오며 태감에게도 잘생겼다는 평을 듣는다. 심지어는 원춘망을 마음에 들어한 태감에게 성희롱도 당한다. 부찰 부항이 자금성 내 여러 궁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면 신자고에서는 원춘망이 선망의 대상인 셈.

작은 체격이지만 싸움을 잘한다고 한다. 한비가 구휼소를 열었을 때 고귀비의 오라비 고항이 부리는 폭력배들이 난민 행세를 하고 구휼소에서 난장판을 놓은 적이 있었는데, 원춘망이 이들을 제압하고 그 중 제일 사나운 자 하나를 죽여서 이들이 진짜 난민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자 사태가 잠잠해졌다.


[1] 대군사 사마의에서 헌제 역할을 맡은 배우다.[2] 작중 최후반부인 64화 즈음부터 결혼하였다. 원래 태감과 궁녀의 대식은 엄히 금지되어 있지만, 나랍 황후가 묵인한 관계라 사실혼이나 마찬가지였다.[3] 원춘망은 영락에게 여동생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정인이 되어달라거나 부항대신 자신을 좋아하는 건 어떻겠냐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4] 원춘망이 자신을 돌봐준 것 때문인지, 영락은 영락답지 않게 원춘망이 자신을 배신할 것을 생각치 못하다가 역공을 당하고 말았다.[5] 이 때 "왜 하필 그런 남자를 사랑하게 된 거니? 결국 끝이 좋지 않을게 뻔한데."라며 한숨쉬는데...[6] 이 자의 흉악함을 생각해 보면 건륭제와 태후, 나랍 황후와 홍주가 모두 죽으면 당장 황자녀들에게 해악이 갔을 것이다. 이미 전과가 있었는데 총기 사고로 5황자 영기를 불구로 만들고, 4황자 영성을 총기 사고의 진범으로 몰아서 나랍 황후와 건륭의 눈 밖에 나게 만들었다. 게다가 5황자 영기는 독충에 감염되어 끝내 목숨을 잃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성인인 다른 황자들은 또다른 모략으로 치워버리면 될 것이고, 어린 황자녀들은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특히 원춘망이 영락에게 가진 집착을 생각해보면 영락과 건륭의 사이에서 나온 황자녀들은 곱게 죽지 못했을 것이다. 즉, 원춘망의 목표가 성공했다면 종래에 애신각라 황실의 직계가 아예 끊기는 대참사까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7] 원춘망의 양모는 죽어가면서 원춘망에게 '네 생부는 따로 계시니 그 분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한다. 그 말을 믿고 자금성에 찾아갔으나 원춘망은 염친왕 윤사의 음모에 휘말려 거세당하고 환관이 되었다. 환관이 된 원춘망의 첫 임무는 옹정제가 아끼는 아들 복혜(돈숙황귀비 연씨의 소생)의 장난감이 되는 것이었는데, 같은 황족의 핏줄을 타고 났으면서 누구는 귀하게 자라고 누구는 핍박을 받는 현실에 분개한 원춘망은 복혜가 아픈 어느 날 창문을 일부러 열어 찬 바람을 쐰 복혜의 병세를 악화시켰다. 복혜를 죽인 일은 원춘망 인생 첫 살인이었다.[8] 금지옥엽 시점은 휘발나랍 숙신의 몰락이 일어난 남순에서 5년이 지난 건륭 30년(1770년)이다. 금지옥엽 시점에서 소화는 15살이고 11살 때 오빠 영기의 쾌유를 빌려다 원춘망 때문에 영항에 갇혀서 고초를 당했으므로, 원춘망은 휘발나랍 숙신과 같은 해인 건륭 26년(1766년)에 죽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1년 동안 미쳐 지냈음에도 끝내 영락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못 놓아서 영락의 딸인 소화에게 해를 끼친 것으로 보인다.[9] 원춘망이 영락을 배신하고 굶겨죽이려 했을 때 영락은 소화를 가진 상태였으므로, 태중에 있을 때부터 원춘망은 소화의 원수인 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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