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티모 드래곤 | 사이토 료 | YAMATO | 드래곤 키드 | 모치즈키 마사아키 | ||
돈 후지이 | 요코스카 스스무 | 호리구치 겐키 | 칸다 야스시 | 요시다 타카시 | ||
콘도 슈지 | Kagetora | 펀치 토미나가 | 모치즈키 주니어 | 후다 류 | ||
나가노 카이토 | 야나기우치 다이키 | 문제용 | 샤치호코BOY | 요스케♡산타마리아 | ||
코노마마이치카와 | 도이 나루키 | 루이스 만테 | 아라이 켄이치로 | 라 에스토레쟈 | ||
T.N.Revolución | 효 |
DRAGONGATE 최고고문 겸 선수 | |
<colcolor=#E7161B><colbgcolor=#191919> 링네임 | ウルティモ ドラゴン Último Dragón レイ デ シャブシャブ[1] 2代目 ザ タイガー[2] The Tiger II Yoshihiro Asai Asai Saigon Dragon Tiger Dragon Ultimate Dragon |
본명 | 浅井 嘉浩[3] |
생년월일 | 1966년 12월 12일 ([age(1966-12-12)]세) |
출생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아이치현 나고야시 미나토구 |
신장 | 173cm |
체중 | 84kg |
별명 | 究極龍[4] |
유형 | 테크니션 + 하이 플라이어 |
주요 커리어 | WWF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CW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 2회 WCW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2회 NWA 월드 미들웨이트 챔피언 2회 NWA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NWA 월드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월드 웰터웨이트 챔피언 2회 UWA 월드 미들웨이트 챔피언 5회 UWA 월드 웰터웨이트 챔피언 1회 UWA 월드 주니어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 1회 AJPW 월드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NOAH 디파컵 우승 (2003년) 토류몬 멕시코 스즈키 컵 우승 (2007년) 토류몬 멕시코 스즈키 컵 우승 (2008년) 토류몬 멕시코 야마하 컵 우승 (2008년) 토류몬 멕시코 야마하 컵 우승 (2012년) PWR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IWA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IWA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Distrito Federal 트리오스 챔피언 1회 WAR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WAR 월드 6인 태그팀 챔피언 1회 브리티시 컴온웰스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도호쿠 태그팀 챔피언 2회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J 크라운 챔피언 1회 WWA 월드 주니어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코파 하이어 파워 토너먼트 우승 (1998년) |
피니쉬 무브 | 아사이 DDT 아사이 문설트 러닝 라이거 밤[5] 칸쿤 토네이도[6] 드래곤 슬리퍼 드래곤스타이너[7] |
테마곡 | Separados Dragon |
1. 개요
일본의 프로레슬러. 드래곤 게이트의 최고고문으로, 토류몬과 드래곤 게이트 등 단체를 통해 많은 제자들을 키운 트레이너로도 유명하다.2. 커리어
2.1. WWE에 입단하기 이전
초등학교 3학년 당시에 안토니오 이노키의 경기를 보면서 사야마 사토루를 동경해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나고야시립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기 위한 테스트를 받지만 신장 관련 문제로 불합격 당하고, 그 후로 일본 보디빌딩센터의 회장 밑에서 일하며 회장이 야마모토 코테츠를 소개하면서 도장에서 연습해도 좋다고 허가를 받아 반년 정도 도장에 다니게 된다. 야마모토 코테츠의 제자로 들어가면서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한 과정을 위해 멕시코로 원정을 가면서 1987년에 멕시코에서 프로레슬러로 데뷔하게 된다.1990년 유니버설 프로레슬링 출범에 참여해 경량급의 에이스로서 단체를 이끌었다. 1991년 CMLL의 제안을 받고 멕시코로 건너가면서 그 때부터 울티모 드래곤 기믹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울티모 드래곤은 스페인어로 '마지막 용'이란 뜻인데, 이소룡의 마지막 제자라는 현재 시점에서 보면 다소 황당한 설정이었다. 이소룡의 제자라는 설정은 얼마 못 가 사라졌지만 이후로도 쿵후를 모티브로 한 킥[8]을 구사한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는 WAR에서 경량급의 에이스로 활약했고, 신일본과 멕시코의 AAA에서도 활동하면서 1992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도 챔피언 경력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일본과 멕시코를 오가며 인지도를 쌓아 1996년 WCW와 계약을 맺었다.[9] 이 때에는 주로 악역을 맡아 일본계 미국인 소니 오노를 매니저도 대동하고 다녔다. 그렇게 일본, 미국, 멕시코를 종횡무진하면서 활동하다가 1997년 프로레슬링 학교 설립과 WCW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WAR에서 탈단했다. 이후 WCW에서 텔레비전 챔피언과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을 각각 2차례 지냈다. 그러던 1998년, 미국에서 경기를 하다 왼쪽 팔꿈치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중 신경이 손상되는 의료사고를 당하면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부상을 당하기 전인 1997년 멕시코에 루차도르 양성 학교 '울티모 드래곤 짐'을 설립해 토류몬 출범전을 열었다. 은퇴를 선언한 후 1999년에는 고베시에 '울티모 드래곤 짐 토류몬 일본교(토류몬 JAPAN)'을 설립해 이러한 레슬링 학교를 통해 수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한편 2002년에 왼쪽 팔꿈치 재수술을 받으며 현역 복귀를 준비했는데, 재수술을 받았음에도 과거 수술의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왼쪽 손목을 움직이는 데에 지장이 있고 왼손 악력도 초등학생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2.2. WWE
2003년 현역 복귀를 선언하면서 WWE와 계약했다. 복귀무대로 WWE를 선택한 건 그의 소원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경기하는 것과 레슬매니아에서 경기하는 것 등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원래 피니쉬 무브인 러닝 라이거 밤은 러닝 싯아웃 파워밤이고, 이밖에 점핑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저먼 수플렉스, 드래곤 수플렉스, 타이거 수플렉스 등을 구사했는데 이런 기술들이 대부분 고각도이거나 피폭자가 접수하기에 고난도의 기술들이라서 WWE에서는 봉인됐고, 대신 새로운 피니쉬 무브인 아사이 DDT[10]를 만들었다.히트와 벨로서티 등에서 다크 매치를 가지다가 2003년 6월 26일 셰넌 무어를 상대로 WWE 데뷔전을 치렀다. WWE에서는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벨트를 따내지는 못했고, 늘 도전자에만 머물렀다. 2004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WWE 레슬매니아 XX이 열렸는데, 크루저웨이트 오픈 경기에 출장하면서 그의 꿈을 이루게 됐다. 그러나 긴장했는지 경기장으로 나오다가 미끄러질 뻔했고, 셰넌 무어를 아사이 DDT로 탈락시켰지만 곧바로 제이미 노블에게 탈락됐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WWE에서는 주요 기술들이 죄다 봉인당한데다 크루저웨이트급이 WWE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다 보니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고, 2003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에서 가장 저평가된 레슬러로 뽑히기도 했다. WWE는 어떤 대우를 했든지간에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경기와 레슬매니아에서 경기하는 것, 계약 조건 2개를 모두 이행했다.[11] WWE에서 가면을 벗고 활동시키려고 하자 이를 두고 마찰을 빚다가 레슬매니아 이후 WWE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2.3. WWE에서 방출된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울티모 드래곤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다가 멕시코의 CMLL에서도 활동하고, 세계 각지에서도 경기를 가지며 WWE 시절보다 자유분방한 활동을 이어나간다. 2004년 토류몬 JAPAN이 드래곤 게이트로 독립하면서 새로운 기믹인 더 타이거(2대)로 잠시 활동했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초대 타이거 마스크였던 사야마 사토루를 동경해서 1991년 멕시코에 진출할 당시 가면을 쓰고 활동하기를 원하자 차기 타이거 마스크를 맡으려고 했으나,[12] 당시 멕시코인들에게 일본하면 호랑이보다 용이라서 울티모 드래곤으로 데뷔하게 된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타이거 마스크와 비슷한 기믹을 갖게 되며 나름대로 꿈을 이뤘다.선수로서 활동 외에도 후배 양성까지 하며 여러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고, 일본 각지에 있는 단체를 돌며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전일본 프로레슬링, 카이엔타이-도조, IGF 게놈, WRESTLE-1, 프로레슬링 NOAH 등 여러단체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2020년부터는 드래곤 게이트 위주로 활동하고 다닌다.
3. 기타
- 그란 하마다와 야마모토 코테츠의 제자이다.
- 조카로는 오쿠다 케이스케가 있다.
- 일본에선 경량급의 전설로 꼽히는 선수라서 매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선수로도 거론되곤 한다.
- WWE에서 사용한 테마는 리키 스팀보트의 테마랑 같다.
- 동시에 가장 많은 챔피언 벨트를 소지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94년 NWA 월드 미들웨이트 챔피언십, 1996년 주니어 8관왕[13], 여기에 WCW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벨트까지 더해 무려 10개의 챔피언 벨트를 갖고 있었다. 다만 그 기간은 1996년 12월 29일부터 1997년 1월 4일까지 6일로 길지는 않았다. WCW 시절 악역으로 활동할 때는 자랑삼아 이 벨트들을 모두 들고 나오기도 했다.[14]
4. 둘러보기
2004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역대 디퍼 컵 우승자 | ||||
창설 | → | 2003 | → | 2005 |
- | → | 울티모 드래곤& YOSSINO | → | 마루KEN (마루후지 나오미치 & KENTA) |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레슬링 피니셔 | ||||
레이 미스테리오 주니어 플립 다이브 인투 어 프랑켄슈타이너 온 더 플로어 (1995) | → | 울티모 드래곤 러닝 라이거 밤 (1996) | → |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다이아몬드 커터 (1997) |
레슬링 옵저버 선정 가장 과소평가된 선수 | ||||
부커 T (2003) | → | 울티모 드래곤 (2003) | → | 폴 런던 (2004)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기능상 | ||||
하세 히로시 (1991) | → | 울티모 드래곤 (1992) | → | 후나키 마사카츠 (1993) |
[1] 레이 드 샤브샤브[2] (2세대) 더 타이거[3] 아사이 요시히로[4] 궁극용[5] 드래곤 밤이라고도 불렀다. WWE 이전 피니쉬 무브였다.[6] 코크스크류 문설트[7] 설붕식 프랑켄슈타이너[8] 오른발 레그킥 → 왼발 바디킥 → 롤링 소배트로 이어지는 콤비네이션 킥.[9] WCW 초반에는 링네임을 영어식으로 읽은 디 얼티메이트 드래곤으로 소개되기도 했다.[10] 스탠딩 시라누이 혹은 백플링 인버티드 DDT. 세스 롤린스가 NXT 시절 피니쉬 무브로 썼다.[11] 공교롭게도 울티모 드래곤이 WWE에서 나간 직후에 데뷔한 켄조 스즈키가 경기력이 매우 나빴음에도 빅맨이라 그런지 푸쉬를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실 울티모 드래곤은 레슬매니아에 출전하기 위해 WWE와 계약한 것이기에 켄조 스즈키와는 차이점이 있었다.[12] 마침 당시 2대 타이거 마스크였던 미사와 미츠하루는 가면을 벗고 활동하고 있었고, 3대 타이거 마스크는 데뷔하기 이전이었다.[13]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NWA 월드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NWA 월드 웰터웨이트 챔피언, UWA 월드 주니어 라이트헤비웨이트 챔피언, WAR 인터내셔널 주니어헤비웨이트 챔피언, WWA 월드 주니어 라이트헤비웨이트 챔피언, WWF 월드 라이트헤비웨이트 챔피언, 영연방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등 8개 타이틀을 통합한 것.[14] 너무 많다 보니 일부 벨트는 매니저 소니 오노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