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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00:37:21

구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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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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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디트
Gudit
파일:Queen Gudit.jpg
본명 구디트(Gudit)[1]
다른 이름 요디트(Yodit),[2] 이사토(Isato),[3] 가와(Ga'wa)
생몰년도 ? ~ ?
가족 부친: 기드온 4세(Gideon IV)
남편: 제노비스(Zenobis)
재위 기간 960년경 ~ 1000년
출신국 시미엔 왕국(Kingdom of Simien)
왕조 기드온(Gideon) 왕조
종교 유대교
전임자 딜 나 오드(Dil Na'od)
후임자 구디트의 후손들[4] → 자그웨(Zagwe) 왕조

1. 개요2. 생애
2.1. 유대인들의 전승2.2. 첫 번째 에티오피아 전승 (기독교 전승)2.3. 두 번째 에티오피아 전승
2.3.1. 황금 휘장 사건2.3.2. 유대교로의 개종과 복수2.3.3. 악숨의 몰락
2.4. 구디트 사후
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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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티오피아의 역사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여왕으로서 기독교 국가였던 악숨 왕국을 멸망시키고 악숨 왕국을 통치하던 지배자를 몰아냈다. 구디트에 대한 정보는 사실상 중구난방인 상태라 명확한 행적을 알기 어려우며 전승에 의지할 수 밖에 없고 당대의 기록 역시 종종 16세기의 무슬림 여성 섭정인 가에와(Ga'ewa)와 구디트가 혼동되기도 한다.

2. 생애

2.1. 유대인들의 전승

구디트는 베타 이스라엘(Beta Israel)[5]인 '시미엔 왕국(Kingdom of Simien)'의 기드온 왕조의 '기드온 4세(Gideon IV)' 왕의 딸로 태어났으며 미모가 아름다웠다. 하지만 악숨인들이 이들에 대해 강제로 징수를 하려 들었고 국왕인 기드온 4세가 그것을 거부하자 악숨 왕국에서는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 부왕이 전사하여 그 왕위를 이은 구디트가 악숨의 군대를 물리친 뒤 도리어 악숨 왕국을 멸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2.2. 첫 번째 에티오피아 전승 (기독교 전승)

에티오피아의 공주였던 구디트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뒤 악숨 왕국을 멸망시키면서 교회를 불태우고 기독교 방식으로 매장된 무덤의 묘비를 뒤집었으며 수원(水原)을 막아 에티오피아의 일부를 사막으로 만들었다. 또한 구디트는 자신이 통솔하는 병력이 얼마나 큰지를 자랑하기 위해 병사 1명 당 돌 1개를 쌓게 했는데 그게 마치 산처럼 쌓였다. 구디트는 무려 40년이나 에티오피아를 통치를 했으며 유대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탄압했다. 철권 통치를 하던 구디트가 죽자 사람들은 그녀가 병사들을 시켜 쌓은 돌무더기의 산 아래에서 숨겨진 언약궤를 찾아냈고 자신들의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다시 개종했다고 한다.

2.3. 두 번째 에티오피아 전승

2.3.1. 황금 휘장 사건

구디트는 일상 생활이 무료해질 때면 으레 매춘으로 무료함을 풀기 위해 악숨의 성읍으로 가곤 했다. 그러다가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기독교의 부제였다. 그 부제는 구디트를 보고는 그 미모에 반해 자신과 동침하자고 요구했다.

구디트는 "당신은 사제고 나는 왕의 딸이다." 면서 거절했으나 부제는 "왕국과 사제단은 동등하다"는 이유를 대며[6] 치근대다가 동침의 대가가 무엇인지 물었다. 구디트는 '황금으로 만든 우산과 황금으로 만든 샌들을 가져오라'고 했고 부제는 황금 샌들을 만든답시고 왕국의 보물이 보관되어 있는 '시온의 보물창고(Treasuries of Zion)'에 들어가 황금 휘장[7]에서 구디트의 샌들을 만들 만큼의 천을 뜯어가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당연히 그 일대 주민들은 난리가 났고 뜯어간 황금 휘장의 크기가 딱 샌들을 만들 만큼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드나드는 모든 이들의 샌들을 계속 들여다 보면서 범인을 찾고자 했다. 그러다 구디트가 방문하자, 예외없이 그녀의 발을 대조했는데 놀랍게도 발 크기가 뜯겨진 부위와 일치했다. 마을 사람들은 구디트를 붙잡고 신발을 보여달라 요구했고 구디트는 그것을 순순히 보여주며 자신은 단지 한 부제에게서 선물을 받은 것이라며 둘러댔다.

결국 사태가 심각해지자 마을의 장로들과 학자들이 모여서 구디트와 부제를 잡아 놓고는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정에서는 고작 스무살 남짓한 부제가 구디트의 미모를 당해낼 리 없으며 구디트는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 부제를 유혹한 것이기 때문에 죄질이 나쁘다면서 구디트의 오른쪽 젖가슴을 잘라낸 뒤 추방했다. 구디트는 가슴을 잘린 후 이집트의 홍해 부근의 해안까지 추방당했다.

여담으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캠페인에서는 이 사건을 요디트가 마치 모함을 당한 것처럼 묘사했다.

2.3.2. 유대교로의 개종과 복수

추방지에서 구디트는 삼(Šam)[8] 통치자의 아들[9]이었던 '제노비스(Zenobis)'를 만나게 되었고 '당신은 누구고 누가 데려왔냐'는 제노비스의 질문에 '나는 머물 곳도 친척도 없으며 불공평한 일만 당했다'고 털어놓으며 자신의 잘린 젖가슴을 보여주었다. 그 처참한 꼴을 본 제노비스는 너무나도 놀라는 한편 슬퍼했고 구디트를 데려가 치료한 뒤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당시 제노비스는 유대교를 믿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제노비스가 너무 고마웠던 구디트는 자신이 믿던 기독교를 버리고 그를 따라 유대교 신자가 되었다.

제노비스와 결혼한 된 구디트는 제노비스에게 '자신을 사랑한다면 원수를 갚을 수 있게 나와 내 고국으로 가자'고 요청했으나 악숨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던 제노비스는 망설이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구디트는 포기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제노비스에게 요청하는 한편, 그와 동시에 은밀하게 상인으로 위장시킨 첩보단을 꾸려 자신을 추방한 땅을 염탐하곤 했다. 구디트가 파견한 첩보단은 '데그나 잔(Degna Djan)이 악숨을 통치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한 이후 얼마 안 돼서 데그나 잔이 대군을 이끌고 정복 및 선교를 위해 서쪽[10]으로 원정을 떠났으나 원정은 실패로 끝났고 그 강력한 악숨의 군대가 물 부족으로 전멸해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혔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그러자 구디트는 뛸 듯이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신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고난을 보셨도다!

구디트는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남편 제노비스를 다시 한 번 설득해서 자신의 고향을 자주 방문하고 싶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제노비스는 구디트의 부탁을 들어주어 꽤 시간을 들여 대규모의 군대를 모았고 함선들을 몰아 붙여 멜테와(Me'ltewa)를 거쳐 데호노(Dehono)에 진을 쳤다. 구디트가 이렇게 움직이는 시기에 데그나 잔은 결국 숨을 거두고 두 아들 중 딜 나 오드(Dil Na'od)가 왕위를 물려받았다.[11]

2.3.3. 악숨의 몰락

파일:f4d2c6d4e111385288b0136fe609d9cd.jpg
악숨의 데브레 비젠(Debre Bizen) 수도원

제노비스와 함께 대군을 이끌고 데호노에 진을 친 구디트는 자신의 고향인 하하윌레로 전갈을 보내 '나를 환영하지 않고 내게 오지 않는 자는 내 친구가 아니니 내 원수들과 함께 세어질 것'이라며 반 협박을 가했다.

이 전갈을 들은 하하윌레 주민들은 아사위르타(Asawirta)로 가는 길에 구디트를 알현하기 위해 이동했고, 구디트 역시 술쿠(Sulku)에서 이동해 이들을 만났다. 그 이전에는 미스좌(Missjwa)라는 지역에 길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지만 구디트가 이동하면서 길을 만들었고 하하윌레 사람들이 그것을 '술쿠(길)'라고 불렀다. 이로써 구디트는 이후 순탄하게 자신의 고향으로 복귀했다.

이후 구디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남편 제노비스의 군대와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 그리고 자신의 편으로 들어온 하하윌레의 지원까지 동원해 빠르게 악숨을 공격했고[12][13] 단번에 점거했다. 당시 악숨의 왕으로 군림하던 딜 나 오드는 고작 10개월 만에 왕위를 잃어버렸다. 딜 나 오드는 달아났고 딜 나 오드의 아들은 암하라(Amhara)[14] 지역으로 몸을 숨겼다.[15]

구디트는 수도 악숨을 점령한 뒤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는데 그 중 제일 큰 역사는 '시온의 마리아 성당(The cathedral of Maryam Tseyon)', 에티오피아의 언어로는 '가바자 악숨(Gabaza Aksum)'이라 불리는 거대한 성당을 통째로 불살라버린 것이었다. 이 성당은 전승에서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망한 이후 몰래 옮겨진 언약궤(the Ark of the Covenant)가 존재한다고 믿어지던 장소였으며[16] 금과 은, 그리고 희귀한 보석과 돌들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이었으나 전부 전소되었다.

구디트는 악숨 왕국을 무너뜨린 후 40년이나 통치하면서 자신이 유대교로 개종했음을 널리 선포한 뒤 대놓고 에티오피아 내의 레비(Levi)인들을 탄압하는 종교적 박해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꽤 평화롭게 통치를 했다고 하며 남쪽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2.4. 구디트 사후

구다트의 40년 간의 철권 통치 이후 왕위는 구디트의 후손들에게 넘어갔으나 1137년에 악숨 왕국의 마지막 국왕 딜 나 오드의 사위이자 라스타(Lasta) 지역의 영주 겸 장수였던 마라 타클라 하이마노트(Mara Takla Haymanot)[17]에게 전복 당해 멸망했고[18] 이후 에티오피아에는 자그웨 왕조(Zagwe dynasty)가 들어섰다.

3. 대중매체

파일:aoe2yodit before and after.png
위: 공주 시절 / 아래: 군주 시절


[1] 고전 에티오피아어.[2] 티그리냐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덕분에 이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3] 암하라어. '불'을 의미한다.[4] 이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5] 에티오피아에 사는 흑인 유대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솔로몬시바의 여왕 사이에 태어난 아들 '메넬리크 1세'의 후예라고 여기고 있다.[6] 당시에는 사제 집단의 권위가 강했는데 악숨 왕국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독교교구가 들어가 있었으며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의 입김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7] 그 휘장은 악숨 왕국에서 의로운 왕들이 시온을 위해 만든 휘장이었다고 한다.[8] 아랍 제국에 편입된 시리아를 의미한다.[9] 시기적으로 본다면 당시 시리아는 시아파에 속하는 함단 왕조가 통치 중이었으며 당시 모술의 아미르는 나시르 알 다울라(Nasir al-Dawla)였다.[10] 엔나레아(Ennarea) 일대로 보인다.[11] 전승에 따라서는 구디트의 침공을 받는 인물이 딜 나 오드가 아닌 데그나 잔으로 나오기도 한다.[12] 첫 번째 공격 당시, 구디트는 에리트레아의 데브레 비젠(Debre Bizen) 수도원에 은신해 있던 왕자들과 왕가의 인원들을 학살한 적이 있는데 이 잔혹한 행위와 기독교를 탄압한 덕에 지금도 이 수도원은 여성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13] 구디트가 데그나 잔과 겨뤘다는 전승에서는 악숨의 마지막 왕이 될 어린 나이의 딜 나 오드가 이 수도원에 숨어있었다고 되어 있다.[14] 오늘날 에티오피아의 산악지대인 암바셀(Ambassel)의 하이크(Hayq) 호수 일대. 해당위치[15] 구전에 의하면 딜 나 오드의 아들 일가는 구디트의 뒤를 이은 자그웨 왕조를 멸망시킬 솔로몬 왕조를 재건할 때까지 숨어 지냈다고 한다.[16] 실제로 언약궤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통치하던 신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면서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17] 스코틀랜드의 여행작가 '제임스 브루스(James Bruce)'는 마라가 구디트의 사촌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 주장이 맞다면 마라는 구디트가 악숨 왕국을 멸망시키는 와중에 어부지리를 한 셈이다.[18] 마라는 딜 나 오드의 딸인 마사바 와르크(Masaba Warq)와 결혼했다. 근데 문제는 이 결혼이 혼담이 오가서 치러진 결혼이 아니라 세력을 잃고 도망다니던 딜 나 오드가 마라에게 패배한 뒤 딸을 뻬앗기듯 그와 결혼시켰다는 점이다.[19] 미국에서는 유태인 엄마들과 아시아계 엄마들이 자녀한테 극성을 부리는 이미지가 있다.